너비 1180px 이상
너비 768px - 1179px
너비 767px 이하

고객참여

재수 없으면 걸린다? 비뚤어진 성관념

  • 담당부서 :
  • 전화번호 :
  • 등록일 :2009-04-11
중앙일보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 몸 & 맘] 재수 없으면 걸린다? 비뚤어진 성관념

기사입력 2009-04-06 01:12 기사원문보기
[중앙일보 황세희] 힘 있는 남성들의 쾌락을 충족시키기 위한 성(性)접대 문화가 또다시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달포 전, 꽃다운 여배우가 자살했고, 원인으로 연예기획사 대표가 유력 인사들을 위해 성 접대를 강요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 이 사건이 성 접대 실상을 폭로하는 판도라의 상자로 변모하는 동안 또다시 청와대 행정관이 성 상납을 받았다는 소식이 터졌다. 이번엔 화대로 추정되는 대금이 법인카드로 결제됐다는 민망한 사연도 전해졌다.

지난주엔 성매매 단속 책임기관인 경찰의 수장이 성매매 처리의 난감함을 지적하면서 “조심하지 않을 경우 재수 없으면 걸린다”는 발언과 함께 자신이 공보관 시절 기자들을 성 접대한 경험담도 털어놓아 비난의 화살을 받기도 했다.

인간의 성행위에는 수치심과 '은밀함'이 전제된다. 따라서 수면 위로 부상한 성 문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예컨대 성적인 학대를 받은 한 명의 아동이 보고되면 100여 명에 이르는 은폐된 어린이 성 학대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지금까지 전해진 소식만으로도 우리 사회엔 성 상납이 만연해 보인다.

성에 대한 관심과 욕구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자 종족 번식의 원동력이다. 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 내용을 분석해 보면 학력·지위·남녀·노소 등을 불문하고 '내용의 60%가 이성에 관한 이야기'라고 전해질 정도다.

정신의학적으로도 인간의 내면 세계엔 상대방의 의사를 무시하면서까지 자신의 성적인 호기심과 욕구를 발산시키고자 하는 충동이 늘 존재한다. 물론 이를 실행할 경우 상대방은 피해자로 전락한다. 따라서 문명사회에선 종교·윤리·도덕 등을 근거로 본능적 욕망을 자제하는 교육과 훈련이 사회적 합의에 의해 시행된다.

다행히 인간은 대뇌가 발달한 고등동물인지라 자신의 욕망이 현실 세계에서 강력한 제재를 받게 되면 이를 억제할 능력을 발휘한다. 현실을 판단하는 '자아(ego)'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살로 성 상납 관행에 저항한 여배우의 비극은 “재수 없으면 걸린다”는 식의 발언에서 보듯 사회지도층 인사조차 성 상납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강요된 성행위에 대한 사회적 제재도 미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학적으로 (도덕적 허용 여부를 떠나) 서로 원하는 성행위인 화간(和姦)은 정신적 충격과 후유증이 없다. 10대 소년·소녀의 사랑놀음인 춘향과 이도령은 대표적인 예다.

반면 성인이라 하더라도 원치 않는 성행위를 강요받은 경우엔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초래한다.

선진국에선 상대방이 '동의한다(Yes)' 는 의사를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행해진 성행위, 또 절정을 경험했더라도 시작이 강제적이었던 성행위 등은 피해자가 이의를 제기할 땐 분명하게 강간으로 간주하고, 가해자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힘없는 신인'의 신세를 한탄하며 유명을 달리했던 여배우의 안타까운 사연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또 우리 사회가 정신적으로 건강해지려면, 이제라도 사회 각 분야에서 힘 있는 자가 무기력한 상황에 처한 인간에게 강요하는 성 상납·성희롱·성추행·성폭행 등에 대해선 엄격한 법적·사회적 제재가 필요해 보인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가 적용되지 않는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