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비 1180px 이상
너비 768px - 1179px
너비 767px 이하

고객참여

“병원이 수익경쟁 시장터로… 저소득층 감당 못해”

  • 담당부서 :
  • 전화번호 :
  • 등록일 :2009-04-05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병원이 수익경쟁 시장터로… 저소득층 감당 못해”
 
 유희진기자 worldhj@kyunghyang.com
ㆍ3부 - 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1) 의료 민영화
ㆍ렐만 하버드의대 명예교수 인터뷰

아널드 S 렐만 미국 하버드대 의과대학 명예교수(86·사진)는 의사이자 의학잡지 편집인으로서 민영화된 미국 의료 체계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 다양한 사회활동을 해온 활동가이기도 하다. 1946년 컬럼비아 의과대학 졸업 후 보스턴 의대와 펜실베이니아 의대, 하버드 의대 교수를 지냈다. 77년 세계적으로 저명한 의학잡지인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의 편집장을 역임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의료제도의 개혁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캐나다 상원의 사회·과학·기술위원회에서 영리의료체제 도입의 문제점에 관해 증언하는 등 미국의 전국민 의료보험제 도입과 상업적 의료제도의 개혁을 위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그의 저서 <시장과 이윤을 넘어선 미국의 전국민 의료보장을 위한 계획>이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경향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를 통해 미국 의료체계의 위험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 교수님께서는 미국 의료 민영화 정책을 수정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왜 그런 활동을 하게 됐습니까.

“77년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 편집장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투자자들로 구성된 민간 기업이 비영리 공공 의료 기관을 대체하거나 공적 기관과의 경쟁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건의료체계가 환자의 진료에 전념하는 전문적 서비스에서 수지 맞는 경쟁시장으로 변하고 있었던 거죠. 이로 인해 미국의 의료 보험료가 늘 것은 자명했고 의료 기관의 서비스 또한 줄어들 것이 분명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런 현상에 대해 공공연하게 의견을 제시한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나라도 대중과 의료계에 이 사실을 주지시켜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미국 의료 민영화의 폐해 중 가장 큰 문제로 꼽는 것은 무엇입니까.

“시장 논리에 따라 운영이 되기 때문에 의료 서비스가 너무 비싸고 비효율적입니다. 돈이 없는 빈곤층에게는 불공정한 일이죠. 의료 민영화 체제에서는 의료진이 환자의 건강과 안정을 우선시한다기보다는 경제적인 이익을 우선합니다. 의료업 종사자들의 윤리적인 기준을 무너뜨린다는 점도 심각한 일입니다.”

- 미국의 의료보험 민영화에서 이익을 보는 쪽은 누구인가요.

“의료보험이 단순히 시장 소비재가 되면서 돈있는 사람들만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습니다. 대신 돈 없는 사람들은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점점 더 많은 부분에서 민영화가 됐는데 그 사이 의료보험 없는 사람들의 수도 늘어났습니다. 비싼 돈을 내고 개인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사람들조차 어려움을 겪었죠. 민간 보험회사들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보험 가입자들이 비싼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꼭 필요한 수술이나 약인데도 막았던 거죠. 수술 비용이 비싸면 그 수술을 못받도록 갖은 수를 썼어요. 당연히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사람들의 병은 더 악화됐죠.”

- 왜 그런 문제 많은 의료 민영화를 하게 된 걸까요.

“투자자들은 미국 의료 민영화라는 대안이 나왔을 당시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민영화가 됐을 때 보험 업계에 엄청난 돈이 들어오리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좋은 기회로 봤던 거죠. 바로 이들이 의료 민영화를 주도했습니다. 정부의 수동적인 대응은 의료보험이 민간 산업으로 전환되는 상황을 더욱 부추겼습니다. 당시 민영화에 반대한 이들은 나를 포함해 소수였어요. 반면 자유 시장 논리에 따라 의료 서비스업계를 지지한 쪽은 정부를 포함해 기업, 경제 관계자 등으로 훨씬 많았습니다. 수적으로 대항할 수 없었죠.”

- 민영화 이후의 미국 의료제도는 아파도 비싼 의료비 때문에 병원에 못가고, 의료비 때문에 파산하는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것을 바로잡지 못하는 걸까요.

“현 미국 의료 민영화 시스템에서 국민들은 피해를 보고 있지만 보험회사와 제약회사들은 많은 이익을 내고 있습니다. 이들이 지속적으로 로비 등의 활동을 통해 미국 정부가 현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것을 막고 있기 때문이죠.”

- 그러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런 의료보험 체계를 개혁할 수 있을까요.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도 의료보험이 필요한 사람들을 지원할 재정을 마련하자고 의회를 설득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개혁 방향은 높은 의료비를 규제하고 의료보험 및 의료 서비스 전달 체계를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둘 것입니다. 하지만 의료 민영화로 이익을 얻는 집단이 가진 경제적인 힘이 막강하기 때문에 개혁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나는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가 뿌리내릴 수 있다고 믿어요.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미 의회와 오바마 대통령 행정부의 결단이 있으면 가능한 일입니다.”

- 미국 의료 서비스는 어떻게 바뀌는 게 좋은가요.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의료비를 지원하는 ‘통합된 국가적 보험 계획’입니다. 빈곤층에는 정부 보조금으로 의료비를 지원해야 해요. 의료진은 1차 진료 서비스 공급자 및 전문가와 함께 다양한 의료 분야 전문가로 이루어진 비영리 그룹으로 조직되어야 합니다. 임금도 이 그룹을 통해 지급받아야 해요. 병원 및 외래 환자용 시설은 의사 그룹에 할당된 기금으로 운영하고 서비스 비용은 정부가 맡도록 하는 겁니다. 요양 기관이나 만성 질병 또는 재활 병원과 같은 장기 서비스 제공 기관은 정부 예산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의료 시설은 비영리 기관이 되는 겁니다.”

- 한국은 최근 미국 모델을 따라 의료보험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습니다.

“여러 심층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민간 의료보험 및 의료 서비스는 공공 또는 비영리 민간 기관에 비해 비용이 더 비싸면서 서비스 질은 그에 부응하지 못합니다. 의료 서비스 질을 조사해본 결과 민간 영리 시설은 비영리 기관의 시설보다 우수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더 낮은 경우도 있었어요. 의료 민영화가 더 큰 의료 혜택을 가져다 준다는 논리는 증명된 바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 의료보험 기업은 자신들의 이윤을 추구하는 데 골몰하고, 서비스에서 파생되는 더 비싼 행정 비용은 국민에게 떠넘겨지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국민이 제대로 된 의료 혜택을 입을 수 있겠습니까. 의료 보험 민영화 추진은 절대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특별 취재팀]

서의동 경제부 차장
조찬제 국제부 차장
김재중 문화부 기자
장관순·홍진수·송윤경 정치부 기자
이로사·유희진 사회부 기자

<유희진기자 worldhj@kyunghyang.com>
경향신문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미국 큰언니 출산때 하룻밤 진료비 2000만원”

기사입력 2009-04-02 18:22 기사원문보기


ㆍ3부 - 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1) 의료민영화 韓·美·伊 세자매경험으로 본 실태

ㆍ“예방접종도 수십만원…가족 아프면 파산해요”

서울 종로 3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혜영씨(40)의 세 자매는 우연히도 10년 전 같은 시기에 서로 다른 3 대륙에서 첫 아이를 낳았다. 김씨는 서울에서, 큰 언니는 미국에서, 작은 언니는 이탈리아에서 각각 출산을 했다.

“큰 언니는 미국 동포와 결혼해서 미국으로 떠났고, 둘째 언니는 이탈리아에 유학 갔다가 그곳에서 이탈리아인과 결혼했어요. 저는 한국에서 결혼했고요. 세 자매가 미국, 유럽, 한국으로 흩어지게 된거지요.”

1997년 세 자매는 좋은 소식을 들었다. 6개월 사이에 순차적으로 임신을 한 것이다. 김씨가 한국에서 6월 첫 아이를 가졌고, 약 20일 뒤에 큰 언니가 미국에서 둘째 아이를 가졌다. 그리고 6개월 후에는 작은 언니가 이탈리아에서 첫 아이를 임신했다.

“임신을 하게 되면 궁금한 게 많잖아요. 특히 저랑 작은 언니는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소한 것까지 서로 물어보면서 대답해주고 그랬어요. 초음파 검사 및 각종 검진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각 국의 의료시스템에 대해서도 알게 되더군요.”

이탈리아에서 공짜로 아이 낳은 작은언니

세 자매 가운데 의료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사람은 이탈리아에 있는 작은 언니었다. 임신 사실을 확인한 후 산모 등록을 하자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정기 검진비부터 출산 전후로 4박5일 동안 병원에 머무른 비용, 심지어 출산 후에 아기가 잘 크는지 확인하는 사후 관리 비용까지 전부 무료였다.

“무료라고 하니까 왠지 진료의 질이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병원 시설도 훌륭하고, 입원해 있는 동안 모유 수유 전문가가 와서 수유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간호사들은 아기 목욕시키는 방법을 알려줬다고 해요. 이 정도면 월급의 절반 가까이를 세금으로 낼 가치가 있지 않나요?”

당시 화장품 회사에 다니고 있던 작은 형부는 월급 중 약 40%는 세금으로 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첫 아이를 출산했던 김씨는 어땠을까.

“저도 작은 언니처럼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녔어요. 병원에서 권유하는 피검사, 초음파 검사 등은 다 받았죠. 검사는 작은 언니보다 더 많이 받았어요. 검사 비용은 비싸야 10만원대였고, 진료비는 2만원 정도였어요. 출산 때는 여성 전문병원의 1인실에 4박5일 동안 입원했는데 병원비는 36만원 정도 나왔어요. 병원비가 전액 무료인 작은 언니에 비하면 비싼 것 같지만, 제가 낸 보험료에 비하면 충분히 감당할 만한 금액이라고 생각했어요.”

김씨는 월 27만원 정도를 의료보험료로 납부하고 있다고 했다.

“저는 남편과 함께 식당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두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죠. 제가 내는 의료보험료가 비싼 건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미국의 큰 언니 가족이 내는 민영 의료보험료와 비교하면 제가 내는 보험료는 합리적이라고 느껴져요.”

미국에서 출산비용 2000만원 쓴 큰언니

미국에서 출산한 큰언니가 가입한 의료 보험은 임신과 출산 비용 혜택이 제외된 것이었다. 이렇게 보험 없이 치른 출산의 대가는 컸다. “큰 언니는 검사 비용이 너무 비싸서 저나 작은 언니처럼 검사도 제대로 못받았어요. 기형아 검사 같은 건 꿈도 못꾸었고, 산모와 아이 건강 체크하는 검사만 겨우 받았죠. 병원비가 비싸니까요. 진통이 시작되고 출산이 임박해서야 겨우 병원에 입원하고, 다음날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퇴원했어요. 산후조리는 언니의 시어머니가 맡으셨죠. 병원은 호텔처럼 으리으리했대요. 하지만 그 호텔에서 1박2일 머문 대가가 2000만원이었어요. 그뿐만 아니에요. 출산 후에 아이에게 맞혀야 하는 예방접종 때도 한번 맞을 때마다 수십만원씩을 내더군요.”

미국의 큰 언니 가족은 매년 초에 의료 보험료로 약 250만원 상당을 한꺼번에 내고 가족 의료 보험에 가입한다. 그렇게 많은 돈을 내고 보험 가입을 하고도 큰 언니는 한국에 나올 때마다 습관처럼 아이들과 병원 순례를 한다. 민영 보험에 가입해도 미국의 진료비는 본인 부담이 높아 한국에서 병원을 다녀 오는 게 훨씬 싸기 때문이다.

‘식코’는 영화가 아니라 미국의 일반적 현실

미국에 살고 있는 큰언니가 다른 두 동생과 달리 높은 출산 비용을 내야 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에는 전 국민을 포괄하는 공공보험이 없다. 미국 전체 인구의 4분의 1 정도는 공공보험인 노인의료보험(메디케어)과 저소득층 및 장애인 의료보험(메디케이드)에 가입돼 정부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인구의 약 67.5%는 민영 의료보험에 의존한다.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돈이 없어 민영 의료보험에 가입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의료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여 위태롭게 살아갈 각오를 해야 한다.

의료보험의 민영화 폐해를 신랄하게 파헤쳐 화제가 되었던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는 미국이 최고 부자나라라는 이미지 때문에 ‘과장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사는 경우가 많다. ‘식코’는 과연 미국 의료보험 민영화의 극단적인 사례만을 부각시킨 것일까. 김씨는 단연코 아니라고 답한다.

“큰언니뿐만이 아니에요. 7년 전쯤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막내 남동생이 교통사고가 나서 **발가락이 부러졌는데 그냥 참고 다니는거예요. 몸이 중요하지 돈이 더 중요하냐 싶어 병원에 가라고 했더니 의료보험이 안돼서 병원비 감당이 안된대요. 차라도 팔아야 하는데 학교에 다니려면 차는 꼭 필요하다고 했어요. 그때 제대로 치료를 못받아서 지금도 발가락 모양이 기형이에요.”

김씨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미국에서는 아기 출산에 2000만원, 예방접종비는 수십만원, 부러진 **발가락 치료비는 중고 승용차 한 대 값이다. 각종 자료들을 봐도 미국의 의료비용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1인당 진료비는 6401달러로 OECD 국가들의 평균(2759달러)보다 2배 이상 높고, 한국(1318달러)의 5배와 맞먹는다. 높은 의료비 부담을 피하고자 각자 민영 의료보험에 가입하지만 모든 질병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의료보험 가입 시 지정해 놓았던 질병에 대해서만 의료보험 회사에서 진료비를 대줄 뿐이다. 다른 질병은 전액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이런 사정 때문에 미국에서 아프다는 것은 파산으로 가는 고속열차를 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버드대 의과대학 힘멜스타인 교수는 2005년 “미국 내에서 파산 신고를 하는 사람 가운데 50%에 달하는 200만명은 의료비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충격을 준 바 있다.

미국 캔자스주 위치타의 세인트 조지프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재미 동포 도미틸라 수녀는 누구보다 미국 의료체계의 현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미국에서 중산층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려면 한가지 꼭 필요한 조건이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절대로 아프면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환자 보호자가 있어요. 아널드 돌셋이라는 분인데, 연 수입이 7만달러가 넘는 회사원이었습니다. 교외에 본인 소유의 집까지 있었던 전형적인 중산층이었죠. 부인, 세 자녀와 함께 꾸려가던 화목한 가정에 먹구름이 끼게 된 건 아들 재커리가 아프면서부터였습니다. 재커리가 8살 때 면역체계 기능장애 판정을 받았거든요. 그 때부터 돌셋 가족의 의료보험비는 천정부지로 오르게 됐죠. 의료보험은 재커리의 병원비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결국 3만달러가 넘는 카드 빚을 지게 되고 자동차 할부금이나 주택 대출금을 상환하는 것도 어려워졌어요. 돌셋에게 남은 선택은 파산 신고 뿐이었죠. 돌셋은 결국 파산하게 되면서 단순히 돈만 잃은 게 아니라고 했어요. 파산 신고를 하는 순간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자부심을 잃었다고 했죠.”

그는 의료 민영화가 환자들의 병을 더 악화시킨다고 말했다.

“보험회사는 환자의 상태에 상관없이 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날을 제한해요. 보험회사가 지정한 규칙에 따라 심장질환이 있는 환자들은 며칠만 머물고 집에 돌아갑니다. 그러면 며칠 후에 같은 증상으로 병원에 또 와요. 지속적인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의 상태는 당연히 훨씬 악화되죠. 보험회사 때문에 환자들은 점점 병을 키워가는거예요.”

약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의료 민영화 체제에서는 환자들이 먹는 약값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미국 뉴욕주의 한 대형 약국에서 약사로 일하고 있는 이현호씨(28)는 “약값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것을 약국에서는 매일 경험한다”고 말했다.

“손님들이 처방전을 가지고 약을 지으러 왔다가 처방전을 그냥 돌려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너무 화가 나서 제 앞에서 그 처방전을 찢어버리는 사람도 있죠. 보험이 없으면 약값은 비싸거든요. 약 보험이 있어도 환자 본인 부담액이 높으면 약을 포기하죠. 수많은 약들 중 브랜드가 있는 약은 한알에 1~5달러이고, 심지어 한알에 50달러짜리도 있어요. 이렇게 제약회사들이 비싼 값에 당당히 약을 내놓는 이유는 민영화된 의료보험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한 제약회사가 고혈압 약을 팔아요. 다른 경쟁사들도 고혈압 약을 팔죠. 가격이 더 싼 카피약도 있을 겁니다. 제약회사는 보험회사와의 계약을 통해 보험회사 고객들이 약값이 비싸도 자신의 회사 제품을 구입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 때문에 이씨는 “미국의 의료 민영화 체제에서 환자는 의사가 추천해준 약을 사먹을 선택권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의사가 환자한테 혈압약 ㄱ을 처방해요. 그런데 ㄱ이 브랜드 제품이라 약값이 비싸요. 보험회사에서는 선뜻 보험 처리를 해주지 않죠. 손해보는 장사는 절대 안하거든요. 그러면 가격이 싼 카피약을 쓰게 하든지 아니면 자기들과 유리한 계약을 맺은 제약회사에서 만든 ㄴ제품을 쓰게 해요.”

이씨는 “미국인들이 취업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값비싼 의료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서”라고 했다.

“미국에서는 병원비, 약, 안과 보험, 치과 보험 등을 다 따로 들어야 해요. 저는 제가 일하고 있는 약국에서 의사, 병원, 약, 치과 보험을 제공해줍니다. 이 보험비를 제가 다 지불하려면 1년에 2000달러를 넘게 내야 하지만, 회사에서 대부분 부담을 하기 때문에 1년에 520달러만 내는 보험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해고된 뒤 병나면 인생 끝장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씨처럼 회사를 다니면서 의료보험 지불비용을 낮춘다. 통상 회사는 직원들의 의료보험비 70% 이상을 부담한다. 이 때문에 경기침체로 회사에서 해고 당한 후 병이라도 걸린다면, 그 인생에는 미래가 없다. 힘멜스타인 하버드 의대 교수의 말이다. “어떤 사람이 병에 걸려 회사에 못나가게 됩니다. 해고되면 회사가 지불하는 보험도 없어지죠. 보험도 없고 돈도 없는 그 사람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이게 바로 ‘생산력 없는 사람은 바로 폐기처분된다’는 신자유주의의 핵심입니다.”

이씨는 “의료보험이 민영화되면 경쟁을 통해 더 좋은 서비스들을 싼 값에 제공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말했다.

“의료 민영화를 하면 가격 경쟁을 하게 되고, 그럼 서비스가 더 좋아진다고요? 제가 미국에서 약사를 하면서 경험하기로는 오히려 그 반대예요. 예를 들어 한 대형 보험회사가 특정 의료 서비스나 약들을 보험 가능한 항목에서 빼요. 그러면 다른 보험회사들도 기다렸다는 듯 역시 다 같이 그 보험 항목을 포기해버립니다. 돈이 안되기 때문이죠. 물론 보험액은 내리지 않아요. 결국 그 비용을 다 부담해야 하는 환자들만 피해를 입죠.”

이씨는 최근 로스쿨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약사를 하면서 겪은 미국 의료보험제가 그의 인생행로를 바꾸게 된 것이다.

“2010년도부터는 뉴욕 맨해튼에 있는 포드햄 대학교의 로스쿨에서 공부를 하게 돼요. 의료보험 관련 법률을 공부한 뒤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도울 겁니다. 보세요. 미국의 의료보험 민영화 제도는 대실패였어요. 미국은 이제 와서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데 한국은 왜 그런 모습을 닮아가려고 하는건가요.”

<유희진기자 worldhj@kyunghyang.com>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영리병원의 목적은 이윤 창출
 
 
 조홍준 울산대의대 교수 ㆍ이명박 정부 ‘의료 선진화’ 논리의 허구성
ㆍ인력 줄여 의료서비스 질 저하

한국 정부는 지난 3월13일 ‘의료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한 토론회’를 열고 의료 민영화 재추진 의사를 명확히 했다. 의료 민영화는 다음의 두 가지 내용을 포함한다. 하나는 현재 비영리인 병원을 주식회사형의 영리병원으로 전환하는 것, 다른 하나는 현재 건강보험의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고 있는 민간의료보험의 역할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다.

정부가 의료 민영화의 추진 명분으로 삼고 있는 논리는 의료기관에 대한 민간투자 활성화 및 고용창출, 경쟁을 통한 의료서비스의 질 개선, 해외원정 진료 감소 및 해외환자 유치와 의료비 절감 등이다. ‘삽질’ 말고는 달리 새로운 투자처를 찾지 못한 이 정부에 병원은 좋은 투자처로 보일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병원은 모두 ‘비영리’이다. 많은 병원이 ‘돈벌이’를 하고 있는데 이를 ‘비영리’라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지 모른다. 여기서 영리성을 나누는 기준은 영리적 행위 여부가 아니라, 발생한 이윤을 병원의 외부로 유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병원은 돈을 벌 수는 있지만 이를 외부로 가지고 갈 수는 없고, 병원에 재투자를 해야 한다. 영리병원이 되면 외부 자본이 이윤을 목적으로 투자될 수 있고, 병원은 환자의 건강보다는 투자자의 이윤 창출에 우선순위를 두게 되는 것이다.

미국을 보자. 병원의 응급실 기능은 지역사회 건강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미국 영리병원은 이윤이 남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경우 응급실을 닫기도 한다.

영리병원이 된다고 고용이 늘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더 높다. 영리병원은 기본적으로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지출을 최소화하려 한다. 병원 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인건비이기 때문에 인건비를 줄이지 않고는 지출을 줄일 수 없다. 실제 미국 비영리병원의 100병상 당 의료인력은 522명으로 영리병원의 352명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영리병원은 특히 진료와 관련된 인력(간호사, 의사 등)을 줄이기 때문에 이는 의료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초래한다. 영리병원에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질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미국의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의 질에 관한 연구를 종합한 한 연구에 의하면 영리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비영리병원에 입원한 환자에 비해 사망률이 2% 더 높았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영리기관에서 인공신장투석을 받는 만성신부전 환자의 사망률이 비영리기관에 비해 20%가 높았다. 영리병원에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질이 나쁘다는 연구 결과는 이외에도 수 없이 많다.

영리병원 도입으로 해외로 유출되는 진료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정부가 추산한 해외의료비 적자는 약 6000만달러(당시 기준 665억원)이다. 이는 국민의료비 54.5조원의 약 0.12%에 불과하다. 더구나 해외원정의료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정출산이나 부유층의 해외 의료 이용이 영리병원 도입으로 크게 줄어들 가능성은 없다. 정부의 주장 중 가장 황당한 것은 의료 민영화로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의료기관간 경쟁이 심해지면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일반론만 되뇌고 있다. 환자가 병에 걸리면 환자가 아닌 의사가 환자의 대리인으로 의료서비스의 내용을 결정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시장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병원간 경쟁이 심하다고 가격이 내려가지는 않는다. 영리병원은 멋있는 인테리어 등으로 환자를 ‘유인’해서 높은 진료비를 물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영리병원 도입은 악화되고 있는 건강 불평등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영리병원의 높은 진료비 부담은 저소득층 환자가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심각한 장벽이 되기 때문이다.

의료 민영화의 다른 한 축인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는 어떤 영향을 줄까. 현재 민간 의료보험의 건강보장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미국은 전 국민의 16%인 4700만명이 건강보장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일은 전국민건강보험을 가진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민간보험의 역할을 대폭 확대해서 현재의 건강보험을 대체하도록 하면, 건강보험은 현재보다 대폭 축소될 것이며 일부 저소득층은 ‘실질적으로’ 건강보장을 못하는 상태가 될 수도 있다. 민간보험은 환자진료에 필요한 진료비(민간보험회사는 이를 ‘의료적 손실’이라고 한다)는 가능한 한 줄이지만 행정비용은 훨씬 더 많이 지출한다. 캐나다 공공 의료보험인 메디케어는 가입자 1만명당 직원이 1.2명인 데 비해 미국 최대 민간보험사인 에트나는 20배인 20.8명에 달한다.

의료 민영화는 국가경제에도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최근 거의 부도 상태에 빠진 GM 자동차가 경쟁력을 상실한 이유 중의 하나는 직원과 은퇴자에 대한 과도한 의료비 부담 때문이다. 미국 GM의 경우 자동차 1대를 만드는 데 1525달러를 지출하는 데 비해 캐나다 GM은 187달러, 일본 도요타는 97달러를 지출했을 뿐이다.

주식회사형 영리병원 허용과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는 의료부문을 자본의 ‘놀이터’로 만들 것이다. 이제 병원은 국민의 건강이 아닌 투자자의 이윤 극대화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자본은 의료정책의 결정과정에도 깊숙이 관여할 것이며 이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취약계층의 접근성 축소와 건강 불평등의 심화로 나타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정책변화가 한 번 이루어지면 뒤로 무를 수 없다는 데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다시 건강보험체제로 돌아올 수 없다. 경제자유구역에는 래칫조항(다시 돌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이 적용되고, 그 외의 지역에는 투자자국가제소조항이 기다리고 있다.

의료서비스의 선진화는 의료 민영화로 달성할 수 없다. 의료기관에 대한 공적 자본 투입 확대,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와 함께 의료기관의 역할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올바른 대안이다.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을 확대하거나(예를 들어 보건소 방문간호 서비스 확대 등) 민간의료기관의 공공적 역할에 대해 정부의 지원을 강화하면(보호자 없는 병원에 대한 재정 지원 등) 질 좋은 일자리를 훨씬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정부는 의료를 시장에 맡기면 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이라는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조홍준 울산대의대 교수>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가 적용되지 않는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