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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정신은 100조 뇌세포가 생화학 반응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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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09-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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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뇌의 다양한 영역에서 처리되고 저장된다. 사람과 사물·장소·사실·사건에 대한 기억은 단기적으로 전전두엽피질(왼쪽 끝 초록색 부분)에 저장된 뒤, 해마(주황색)에서 장기 기억으로 변환된 다음, 관련 감각들을 관장하는 피질에 저장된다. 운동기억(연두색), 체감각기억과 청각기억(노란색), 시각기억(오른쪽 끝 파란색)은 각각의 피질 부위에, 솜씨와 습관 등의 기억은 소뇌(보라 색)에 저장된다./일러스트=정인성 기자1008is@chosun.com |
기억을 찾아서
에릭 캔델 지음ㅣ전대호 옮김ㅣ랜덤하우스|560쪽ㅣ2만5000원
저자인 에릭 캔델(Eric R Kandel)은 뇌 연구로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그는 192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히틀러 나치 정권 치하에서 유대인으로서 잊고 싶은 기억을 어린 시절에 경험해야 했던 그는 '기억'에 대해 남다른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후에 미국으로 건너가 처음 정신과 의사가 됐던 그는 결국 뇌 과학자가 되어 '기억'의 비밀을 풀어낸다.
캔델 박사는 100조개가 넘는 뇌의 신경세포가 복잡한 화학 반응과 전기 신호로 맞물려 있고, 이들 신경세포 간의 신호 전달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밝혀냈다. 그중에서도 그는 기억이 이뤄지는 과정을 분자생물학적 이론으로 찾아냈다. 우리가 생각하고 기억하는 정신 기능을 뇌 신경세포 수준에서 해석한 것이다. 이 공로로 그는 2000년 노벨상을 탔고, 책은 그 후에 쓰인 그의 자서전이다.
책은 빈에 대한 유년 기억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빈에서 활동했던 위대한 정신의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에 심취했다. 프로이트는 지금 우리가 혼미하게 느끼는 정신 기능의 실체는 언젠가 생물학적인 기초과학에 의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캔델 박사는 프로이트가 하고 싶었지만 당대 과학의 한계로 하지 못했던 연구를 이어받으려 했다. 그가 정신과 의사에서 신경과학자로 변신하게 된 것도 '정신'의 세계를 생물학으로 파고들려는 의도였다. 그는 구불구불 겹겹이 쌓여 있는 뇌 조직 어딘가에는 정신의 기능을 관할하는 신경물질이 꿈틀거리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뇌신경과학자이자 그의 연구 길잡이가 된 그룬드 페스트 교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아무런 진척을 얻을 수 없었다. 그의 멘토(mentor)는 캔델에게 "뇌의 한 세포의 활동에 집중해야 한다"고 충고했고, 그것은 전기신호처럼 그의 뇌리를 때렸다. '인간의 모든 정신 과정은 분자생물학적 반응'이라는 새로운 이론의 출발이었던 셈이다.
캔델 박사는 뇌 활동 신호를 전달하는 뉴런과 시냅스가 어떻게 작동하고 신경회로상에 그것들이 어떻게 저장되는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인간의 핵심적인 정신 기능 중의 하나인 기억이 뇌세포의 생화학적 반응"임을 찾아냈다.
그는 "인간의 의식은 상호 작용하는 신경세포 집단들이 신호 전달을 하는 과정"이라며 "우리의 자아(自我)는 200만~300만개에 이르는 뇌 속의 감각신경섬유 다발의 흥분이 지속적으로 퍼져 나가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신경세포 간의 신호 전달 네트워크와 생기 넘치는 확산 작용이 없다면 기억은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않고 조각나서 기억으로 남지 못하고 경험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의식과 기억은 뇌 신경세포들의 부단한 생물학적 활동이라는 설명이다. "고도의 정신기능은 뇌세포 한 개의 분자생물학적 수고가 모여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복잡한 뇌신경 기능의 이론을 유년기 기억으로부터 시작하여 신경과학적 연구 발전사와 함께 풀어나갔다. 따라서 이 책은 뇌 과학자의 자서전이자 분자생물학적 뇌 연구의 개론서이기도 하다.
캔델 박사는 마지막 장을 할애하여 21세기 생물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는 생명과학의 번성은 과학자들이 직접적으로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고 했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정신 기능인 사유·감정·기억에 대한 의미 있고 상세한 통찰을 갖고 현대인의 생활 깊숙이 개입하여 정신분열증·우울증·알츠하이머·치매 등의 원인과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분자생물학을 통한 유물론(唯物論)의 부활로도 해석된다. 정신이 우리의 모든 것을 지배하지만 그 실체는 단순히 뇌세포의 화학과 생물학의 반응이며, 신경물질로 인간의 정신은 언제든지 조절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미 제약회사들은 인간의 기분을 좋게 하고, 기억력을 높이고, 집중력을 강화하는 약물들을 개발하고 있다. 그가 본 미래는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언젠가 첫사랑과의 첫 키스 기억은 오래 남게 하고 떠나간 여인에 대한 슬픈 기억은 금세 사라지게 하는 분자생물학적인 접근이 이뤄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과학과 의학의 미래 패러다임을 논문처럼 보여주는 책이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뇌 과학의 발달 과정이 한 과학자의 개인사와 맞물려 이렇게 상세하게 묘사된 책은 이제까지 없었다"고 평했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docto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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