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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리네르는 왜 마델린을 잊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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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0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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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루브르 박물관 2 층의 '모나리자' 앞에는 언제나 많은 관중이 몰려 있다. 이 그림이 유명해진 것은 1911년에 벌어진 도난 사건 때문이었다. 빈센초 페루지아라는 이탈리아 사람이 이 그림을 훔쳐 고국으로 가져갔는데, 2년 후 경찰에게 덜미를 잡혔고 작품은 회수돼 프랑스로 되돌아오게 된다.
그런데 그림을 훔친 범인이 아닌데도 이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사람이 있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들 사랑도 흐르네….' 이렇게 시작하는 유명한 시 '미라보 다리'의 기욤 아폴리네르다. 그는 모나리자 도난 사건 와중에 이탈리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용의자로 몰려 1 주간 상테 감옥에 구금 당하는 어이없는 일을 당했다. '미라보 다리'에서 사랑의 주인공은 로랑생이란 여성이었는데, 구금 사건 뒤 아폴리네르와 로랑생의 관계는 서먹해져 결국 헤어졌다.
그 뒤 미술평론가로 맹활약하던 아폴리네르는 마델린 페이지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약혼한다. 이 때 제 1 차 세계 대전이 터졌고, 자원해 전쟁에 참전한 그는 참호 속에서 잡지를 읽던 중 어디선가 날아온 탄환에 머리를 맞는다. 다행히 철모를 쓰고 있어 목숨은 건졌지만 이 사고 이후 왼쪽 팔·다리 마비 증세가 생겼다. 마비 증세는 얼마 뒤 좋아졌지만 이 무렵부터 아폴리네르에게는 눈에 띌만한 변화가 찾아왔다.
점잖았던 그는 이 때부터 늘 안절부절못하고 갑자기 화를 내곤 했다. 한 마디로 사람이 달라진 것이다. 게다가 마델린에 대한 관심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녀에게 매일처럼 쓰던 편지를 4개월 동안 쓰지도 않았다.
아폴리네르가 썼던 철모의 탄환 구멍을 검토한 스위스 의사 보고슬라브스키는 만약 총탄이 아폴리네르의 뇌를 관통했다면 분명 오른쪽 측두엽을 손상시켰을 것이라고 밝혔다. 잠시 왼쪽 손발이 마비되었다 회복한 것으로 볼 때 경막하 출혈(뇌를 싸고 있는 경막의 아래쪽에 피가 고이는 병)이 발생해 잠시 뇌를 압박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했다.
오른쪽 측두엽은 감정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그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실제 측두엽 손상 후 성격 변화까지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나는 뇌출혈에 의해 전두엽이 손상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아폴리네르로서는 오른쪽 뇌 손상이 차라리 다행한 일이었다. 인간의 언어 기능은 왼쪽 뇌에 모여 있기 때문에, 만일 왼쪽 뇌가 손상됐다면 말을 못하거나 남의 말을 못 알아 듣는 증상, 즉 실어증이 생겼을 것이다. 그랬다면 시인이나 평론가로서의 삶도 끝났을 것이다. 감정 형성, 주의 집중 같은 기능을 담당하는 우뇌, 특히 균형 잡힌 마음가짐을 유지케 하는 전두엽의 손상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독(毒)으로 작용했다.
정확한 뇌 손상 부위는 알 수 없으나, 이 사건 이후 아폴리네르는 마델린을 완전히 잊었다. 나중에 그는 자클린이란 여성을 만나 결혼하지만 불과 6 개월 뒤인 1918년, 스페인 독감에 걸려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감했다. 아폴리네르는 파리의 페르라세즈 묘지에 묻혀 있다. 그의 묘지에서 몇 걸음 떨어져 묻힌 사람은 그의 첫 번째 연인이자 당시 보기 드문 여성 화가였던 로랑생이다.
[김종성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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