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비 1180px 이상
너비 768px - 1179px
너비 767px 이하

고객참여

[명의가 추천한 명의]

  • 담당부서 :
  • 전화번호 :
  • 등록일 :2009-03-30
중앙일보

[명의가 추천한 명의] 서경석 서울대병원 교수 → 이영탁 삼성서울병원 흉부외과 교수

기사입력 2009-03-30 00:56 |최종수정 2009-03-30 01:05 기사원문보기
[중앙일보 황세희.최승식] 그와의 만남은 두 번의 헛걸음 뒤 세 번째 방문 때 이뤄졌다.

첫 만남이 예정된 것은 지난 화요일 오후 4시였다. 차창 밖으로 삼성서울병원이 거의 보일 무렵 수술장에서 전화가 왔다. “이영탁 교수님 수술이 복잡해져 6시는 넘어야 끝날 것 같다”는 전언이다. 저녁 때 또 다른 취재 약속이 있었던 사진기자와 나는 다음 날 정오를 기약하며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 날에도 약속시간 30분쯤 전에 전화를 받았다. 이번엔 “응급 상황이 발생해 아무래도 오늘 중에 만나기 힘들다”는 내용이다.

글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사진 최승식 기자

목요일 오후, 마침내 대면하게 된 그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내가 하는 일이 원래 그래요”라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래도 세 번째 발걸음인지라 약간은 심술이 났다.

“아직도 그렇게 정신 없이 사세요?”라며 살짝 면박을 주자 그는 “아직도…라뇨? 지금이야말로 한창 일할 나이 아닙니까?”라며 큰 소리로 웃는다.

삼성서울병원 흉부외과 이영탁(54) 교수의 하루하루는 이렇듯 숨가쁘게 돌아간다.

그가 흉부외과를 선택한 계기는 본과 4학년 때 수술장 실습을 돌면서다. “수술장에서 펄떡펄떡 뛰는 심장을 보면서 제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어요. '내가 갈 바로 이 분야다'란 생각이 들었죠.”

이 교수가 흉부외과에 입문했던 1985년은 국내 심장수술이 도약을 준비하던 시기다.

“그땐 선천성 심장병 환자, 류머티스성 심장판막증 환자가 정말 많았어요. 반면에 의료보험 혜택을 못 받는 사람이 부지기수라 심장수술은 엄두도 못 내는 가정이 흔했지요.”

심장병 환자에게 숨통이 트이기 시작한 것은 당시 영부인이었던 이순자 여사가 '새세대 심장재단'(현재 한국심장재단)을 설립해 수술비를 지원하면서부터다.

무료수술의 길은 열렸지만 장기간 방치된 환자가 워낙 많았다. 막상 병원엔 수술조차 못할 상태로 오거나 수술 날짜를 기다리다 사망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주치의 시절, 환자 집에 전화를 해 '○○○환자댁이죠? ○○일에 입원하세요'라고 통보를 하면 '지난달에 죽었는데요'라는 식의 대답을 듣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88년 실시된 전국민의료보험은 심장병 환자에게 수술 기회를 높여주는 또 한 번의 계기가 됐다. 89년 흉부외과 전문의가 된 그는 심장수술 전문병원인 부천 세종병원에 근무하면서 매년 150~200명의 선천성 심장병 환자를 수술했다. 본격적인 흉부외과 의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세종병원 근무 초기엔 선천성 심장병 수술이 훨씬 많았어요.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태아 초음파 진단 기술이 발달하면서 선천성 심장병 환자는 급속히 줄었습니다. '태아에게 심장 기형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기겁을 하면서 낙태하는 부모가 적지 않습니다. 사실 지금은 의술이 발달해 제때, 제대로 수술받으면 아무런 지장 없이 살 수 있는데….” 말끝을 흐리는 이 교수의 표정엔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선천성 심장병 환자가 줄자 이번엔 성인 심장병 환자가 많아졌다. 서구식 식습관이 보편화하면서 심장혈관을 손상시키는 비만·고지혈증·당뇨병 환자가 급증한 데다 스트레스도 많아지고 활동량은 준 탓이다. 특히 흡연 인구가 많은 중·노년층은 심장병 위험이 가중된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심장혈관이 막힌 성인 심장병 환자를 수술할 땐 일단 심장을 정지시키고, 인공심폐기를 돌린 상태에서 수술을 했다. 이 교수는 외국의 수술 사례를 연구한 끝에 96년 국내 최초로 인공심폐기 없이 심장이 뛰는 상태에서 수술하는 '무펌프 관상동맥 우회술(막힌 심장동맥을 다른 혈관으로 이어주는 수술)'을 집도해 성공한다. 이 수술 기법이 도입되면서 관상동맥우회술 때 초래되는 뇌졸중과 부정맥 후유증은 현저히 줄었다. 또 수술 시간도 1~2시간 단축됐다.

2001년 삼성서울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성인 심장병 수술만 전담한다. 현재 해마다 400명 정도 집도하는데 수술의 90%는 '무펌프 관상동맥 우회술'로 한다.

2003년 응급순환보조장치(EBS)를 국내 최초로 도입한 것도 이 교수다. 이 기계는 갑자기 심장이나 폐 기능이 멎다시피 한 환자에게 산소를 공급해 한동안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장치인데 지금은 전국의 큰 병원에 도입돼 있다. 요즘은 피부 절개를 5~6㎝만 한 상태에서 수술하는 최소 침습적 우회술도 100명 이상의 환자에게 시술해 성공했다.

이 교수는 제자들 사이에서 좋은 스승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솔직담백한 데다 정이 많아서다. “이 환자를 어떻게 치료했으면 더 좋은 결과를 얻었을까?” 회의 땐 자신이 집도해 성공한 환자뿐 아니라 결과가 나빴던 환자 사례도 항상 토론 대상으로 삼는다. 전공의들은 스승의 이런 태도를 높이 사 2004년 삼성서울병원에서 '가장 존경받는 교수'로 그를 선정했다.

“우리나라 사람은 수술을 너무 싫어해요. 심장혈관이 막혀도 환자에 따라 약물, 스텐트 시술, 관상동맥 우회술 등 최선의 치료법은 달라요. 미국에서는 스텐트 시술 환자가 수술 환자의 3배인 반면 우리나라는 11배나 많아요. 가급적 수술을 피하고 일단은 스텐트 시술부터 받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재발 위험이 높거나 혈관이 심하게 막힌 환자는 곧바로 수술을 받는 게 좋습니다.”

현재 이 교수가 집도한 심장혈관 수술 환자 중 사망률은 200명 중 한 명, 즉 0.5%에 불과하며 사망자는 대부분 말기 심근경색 환자다.

서경석 교수는 이래서 추천했다

“햇병아리 시절, 환자 걱정에 밥도 제대로 못 먹더라고요”


'열정적이고 정 많은 의사'. 서경석 교수(사진)의 머릿속에 새겨진 이영탁 교수의 모습이다.

25년 전 햇병아리 의사 시절 이야기다. 전공의 시절 두 사람은 선배의 주선으로 우연히 저녁을 함께한 적이 있었다. 막 굽기 시작한 삼겹살을 두세 점 먹던 이영탁 전공의는 슬그머니 숟가락을 놓고 카운터로 가 전화를 걸고 돌아왔다(당시엔 휴대전화가 없었다). 자리에 다시 앉은 그는 선배 의사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환자가 걱정돼 병실로 돌아가야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물론 병실엔 당직 의사가 있다. 또 전공의인 그가 수술을 집도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다들 “먹던 밥이나 마저 들고 가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시골에서 오랫동안 병을 방치해 고생했던 환자인데 오늘 받은 수술 결과도 별로 안 좋다. 아무래도 주치의인 내가 옆에 있으면서 손이라도 한번 더 잡아 줘야겠다”며 끝내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이후 전공이 달랐던 두 사람은 별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저 '이 교수가 새로운 심장 수술법을 연구하고 성공도 했다'는 식의 소식만 간간이 전해 들었다.

한번은 이 교수와 함께 일하는 의료진이 그를 지칭하며 “그 많은 수술을 하면서도 결과가 좋을 땐 매번 어린애처럼 큰소리로 웃고 신나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순간 이전의 이영탁 전공의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한다. “명의란 질병 치료뿐 아니라 환자와 함께 웃고 울 줄 아는 감성도 풍부해야죠.” 서 교수가 밝히는 명의의 조건이다.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가 적용되지 않는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