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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과 우울증의 연결고리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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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09-11-25
고문과 우울증의 연결고리 찾았다
한·미 공동 연구팀,
MRI 사진 컴퓨터로 확대해
'미세한 뇌손상' 세계 첫 확인
"머리 구타당한 수감자들 전두엽·측두엽 두께 얇아"
고문은 처절한 고통을 안겨주지만 뚜렷한 외상이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고문으로 정신질환이 유발됐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한미(韓美) 연구진이 고문이 뇌에 영향을 줘 정신질환인 우울증이 발병했다는 단서를 찾았다. 기존의 방법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뇌의 미세한 차이를 발견했기에 고문과 우울증의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이번 연구는 정치범 수용소나 포로수용소를 거친 수감자뿐 아니라 교통사고 후유증을 앓는 환자의 치료에도 도움을 줄 전망이다.◆뇌에 새겨진 우울증의 흔적
전쟁포로나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들이 대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같은 정신질환을 앓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전쟁, 자연재해 등을 겪은 사람이 심리적 공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해 사회 부적응을 보이는 정신 질환을 말한다. 하지만 정신과 전문의들은 수감자에게 가해진 고문이 어떻게 정신질환으로 이어지는지 정확한 경로를 알지 못했다.
서울대 의대 류인균 교수, 김지은 연구원 등 국내 연구진과 미국 하버드대 의대 리처드 몰리카(Mollica) 교수 공동 연구팀은 "베트남 전쟁에서 정치범 수용소의 일종인 '재교육 캠프'를 겪은 베트남인 42명을 조사한 결과, 고문으로 우울증을 유발하는 뇌 부위가 손상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24일 밝혔다. 연구진은 해당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인 '일반정신의학회지(Archives of General Psychiatry)'에 지난 6일 발표했다.
- ▲ 구타당한 베트남인의 손상당한 뇌 부위를 MRI로 촬영해 푸른 색으로 표시했다. 사진의 상단은 외부에서 바라본 좌·우 뇌를 촬영한 사진이고 하단은 뇌의 가운데를 기준으로 좌·우 뇌의 단면을 촬영한 것이다. 손상 부위는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하지만 우울증을 유발시키는 역할을 한다./서울대 류인균 교수 제공
베트남인들은 10여년간의 재교육 캠프 수감 생활을 마치고 미국에 입국했다. 수감자들은 이때 각종 건강 검진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하버드대 연구진은 수감자들의 뇌 손상을 알아보고자 자기단층영상(MRI) 촬영을 했다. 촬영한 사진을 넘겨받은 류인균 교수팀은 수감자들의 뇌 변화를 정밀 분석했다.
머리를 구타당한 수감자나 그렇지 않은 수감자나 MRI 촬영에선 일견 뚜렷한 뇌 손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류 교수팀은 '대뇌 피질 두께 분석법(cortical thickness analysis)'과 '용적 측정술(volumetric morphormetry)'을 활용해 ㎛(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 수준의 미세한 뇌손상을 밝혀냈다. 이 방법은 촬영한 MRI의 사진을 컴퓨터로 확대해서 MRI의 해상도를 높이는 기법이다.
분석 결과, 머리를 구타당한 16명의 수감자는 전두엽과 측두엽의 두께가 정상인보다 최대 수백㎛ 정도 얇았다. 우울증 환자의 상당수가 전두엽과 측두엽에 이상을 보인다. 이에 비해 같은 수감생활을 겪었지만 구타를 당하지 않은 26명 수감자의 뇌에는 이상이 없었다. 정신과 검진 결과 구타로 뇌손상을 입은 수감자들은 구타가 없는 수감자에 비해서 4~5배 정도 높은 우울증 발병률을 보였다.
류인균 교수는 "구타로 발생하는 뇌 손상이 정신 질환으로 이어진다는 사회적 통념을 첨단 뇌과학을 활용해 세계 최초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차 사고로 인한 정신후유증 보상 근거도 마련
베트남 수감자들은 주로 손이나 발로 구타당했다. 이 정도 구타로는 뇌에 출혈이 생기지 않아 MRI촬영에서 육안으로 외상을 쉽게 확인할 수 없다. 연구진은 "출혈이 없는 미세한 뇌손상이 정신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번 연구 성과는 중요하다"며 "전 세계 곳곳의 정치범 수용소나 포로수용소를 거친 수감자들이 이 방법을 활용하면 외상이 없을지라도 고문의 증거와 피해 보상의 근거를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김지은 연구원은 "탈북자나 통일 후 북한 주민의 보건 의료 정책에도 이번 연구가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권 유린이 아닌 일상생활에서도 이번 연구 결과를 적용할 수 있다. 자동차 사고가 발생하면 지금까지는 신체의 외상을 기준으로 피해 보상을 받았다. 이제는 육안상 확인할 수 없는 미세한 뇌손상을 근거로 정신 질환 치료까지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몰리카 교수는 "의사들은 자동차 사고 피해자들을 처음 진단할 때 뇌 검사를 보다 정밀하게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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