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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유전자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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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5-02-07
[과학칼럼] 망각 유전자와 시간 김대수 한국과학기술원 교수·생명과학 ▲ 김대수/한국과학기술원 대전으로 이사온 요 몇 달 사이 심각하게 느끼는 신체 변화가 있다. 예를 들어 로비에 나갔는데 왜 나오려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출근해서 주차장에 차를 대고 보니 뒷좌석의 ‘크큭’대는 웃음소리.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는 걸 잊고서는 아이들을 직장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심지어 어제는 상당히 오랜 기간 아내의 칫솔을 사용한 것이 발각되어 잔소리를 들었다. 경험에 비춰보면 이사를 한 뒤나 새로운 직장을 갖게 되었을 때와 같이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면 그 즈음해서 나의 뇌는 망각(忘却)이 증가된다. 망각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은 이미 알려져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미 컬럼비아대학 캔들(Eric Kandel) 교수는 단백질에서 인산(燐酸)을 떼어내는 탈인산화(dephosphorylation)를 증가시키는 단백질들이 단기기억을 감소시키고, 이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유전자들을 억제하면 약간의 기억력 증가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보고한 바 있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희미해진다는 사실로 볼 때 망각 메커니즘은 시간을 인식하는 뇌 기능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 본다. 물리학자들조차 현상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한 편의적 도구로 사용할 뿐, 절대적인 시간의 존재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우리의 뇌가 시간을 인식하고 어떤 기억이 먼저인지 순서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만일 나의 뇌가 냉장고 안에 음식이 있다는 사실과 음식을 다 먹었다는 사실의 순서를 모른다면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냉장고를 열어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뇌는 저장된 기억들 중 무엇이 먼저고 나중인지 어떻게 구별하게 되는 것일까? 열역학에서는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엔트로피(entrophy), 즉 무질서도(無秩序度)가 높아지는(즉 질서가 없어지는)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빨간 잉크 방울이 컵의 물 속에 떨어지면 점점 잉크가 퍼져나가 나중에는 물 전체가 빨간색을 띠게 될 것이다. 바로 무질서도,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현상이다. 잉크가 막 컵의 물 속에 떨어지는 순간을 찍은 사진과 빨간색 물이 담긴 컵을 찍은 사진이 있다고 하자. 열역학적 시간개념에 따르면 대부분 사람들은 엔트로피가 높은 후자의 사진이 나중에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억에 있어서도 이렇게 무질서도가 낮은 것을 과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면 기억 자체를 손상시키는 망각유전자도 열역학적 시간의 개념에 기여할지도 모른다. 즉 망각유전자들의 작용으로 복잡했던 현재의 기억들은 테두리만 남아 점점 무질서도가 낮아져 단순하게 되고 아련한 과거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살아가면서 갑자기 망각하는 일이 늘어났다면 현재 일상을 스트레스로 여기고 빨리 과거로 만들려는 망각유전자들의 활동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만일 괴롭고 아픈 상처들이 망각되지 않고 우리 뇌를 괴롭힌다면 어떻게 될까. 정신분열증·과대망상·과대공포증 등 많은 정신병들의 증상 중 하나가 과거에 일어난 경험들이 시간에 따라 정돈되지 못하고 현실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망각유전자들을 약물로 억제하여 기억력을 증가시키려는 시도에 관하여 신중히 생각해 봐야 한다. 현재의 기억을 빨리 정리해서 망각하는 것도 뇌의 고등한 기능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만들어낸 뇌의 창조 뒤엔 망각이라는 노력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 조선일보 기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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