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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곡병원 약물중독치료소'
- 담당부서 :
- 전화번호 :02-2204-104
- 등록일 :2005-04-03
"형님 한 3잔 했지예?" 마약중독자와 2박3일
[현장] ''국립부곡병원 약물중독치료소''
지난 3월 14일 보건복지부는 마약 중독자에 대해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할 경우 강제로 치료보호를 받게 할 수 있도록 ‘마약류 관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마약사범을 무조건 수감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치료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전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약중독자들은 어떤 치료를 받고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주간조선 남녀 인턴기자 2명이 마약중독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경남 창녕의 국립부곡병원으로 들어갔다. 인턴기자들은 3일간 마약중독자들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방에서 잠을 자며 ‘마약중독자’로 살았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기사에 등장하는 환자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다. <편집자 주>
지난 3월 14일 오후 경남 창녕의 국립부곡병원 약물중독진료소 병실. 본드 중독으로 입원한 최호영(29)씨가 골이 단단히 났다. “에이, XX. 내가 어떤 징계 먹더라도 여기서 나가고 말 테니까 형님들도 조심하시오. 괜히 내 신경 건드려서 주먹 날아가게 하지 마시고요.”
최씨는 상담실 문을 부서져라 걷어차며 소리를 질렀지만 간호사와 의사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가끔 벌어지는 일이라 그다지 신경 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마약을 끊겠다고 스스로 병원으로 들어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약의 강렬한 유혹에 흔들리는 환자와 병원 관계자가 벌이는 실랑이다.
작년에 교도소에서 출소한 최씨는 이곳에 자진입원했다. 14살 때부터 본드를 시작한 그는 교도소에서만 12년을 보냈다. 오늘은 어머니 생신을 앞두고 외박을 요청했다가 ‘나가자마자 마약을 찾을 것’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한 것이다. 그는 침대로 돌아가 씩씩거리며 분을 삭일 뿐 꼼짝하지 않았다. 기자의 ‘약물중독자 치료 체험’은 이렇게 살벌한 분위기 속에 시작됐다.
1988년 정신병원으로 개원한 국립부곡병원에는 일반병동과 함께 알코올중독자와 정신질환자, 마약중독자를 치료하는 전문병동이 있다. 1997년 12월에는 마약중독자의 수가 늘어나면서 이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약물중독진료소’가 문을 열었다. 전국적으로 정부가 지정한 마약중독자 치료병원은 23개. 그 중 약물중독 전문치료기관으로는 국립부곡병원이 유일하다. 마약중독자를 무조건 교도소에 수감시켜봐야 별 교정효과가 없기 때문에 치료를 통해 재범을 줄여보자는 목적에서 만든 기관이다.
이곳에서는 남자 19명, 여자 7명이 치료 받고 있었다. 현재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지만 매년 4월 초에서 6월까지 실시하는 ‘약물중독자 자수기간’에는 두 배 이상 환자 수가 늘어난다. 환자들은 20대부터 50대 중반까지 다양하다. 젊은 환자들은 대부분 본드나 가스를 흡입하는 경우가 많고 30대 후반부터는 필로폰 환자가 많다. 마약 경험이 많을수록 더욱 더 강한 약에 집착하게 된다. 남자 중독자들은 경험을 영웅담 풀어놓듯 떠벌린다.
반면 여성 환자들은 “놀다가 친구에게 (마약을)배웠다”고 말할 뿐 입을 굳게 닫았다. 약물 병동에서 일하는 전은미 간호사는 “여성 환자는 대부분 동거남자한테서 약을 배우거나, 유흥업소 다니면서 손님한테 받아서 해보는 경우가 많다”면서 “여성 환자 중에는 마약을 탄 술을 모르고 마시기도 하고 남자들이 강제로 찔러서 마약에 빠진 사람도 있다”고 했다.
기자가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철창 사이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긴장감에 등이 서늘했다. ‘마약중독자들이 혹시 해코지는 하지 않을까’ ‘혹시 억지로 마약을 권하는 건 아닐까’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일부 환자는 슬리퍼를 끌며 어슬렁거렸고 침대에서 링거를 맞고 있는 환자도 보였다. 한 환자는 멍한 눈으로 기자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불안해하는 기자들을 향해 권도훈 부장이 “지금 적응이 안돼서 그렇지 알고 보면 이 사람들 전혀 무서운 사람이 아니다”며 안심시켰다.
여성 환자 전민정(23)씨가 “또 시계가 나보고 한번 울어보라고 하네”라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6년간 시계가 자신을 괴롭힌다고 했다. 그녀는 TV에서 본드 흡입 장면을 보고 중학교 때부터 따라하기 시작했다. “시계가 말도 걸고, 뭘 시키기도 해요. 어떨 때는 막 울어 보라고 하기도 해요. 엄마가 시계한테서 벗어나면 꺼내준다고 했어요.”
“행님, 한 3잔 했지예?”
그녀는 이날 외출 허락을 받았다. 목욕탕, 미용실, PC방이며 들를 곳이 많다고 했다. 오전 10쯤에 나간 그녀는 귀소 시간인 저녁 7시를 넘겨 밤 11시가 돼서야 흐느적거리며 들어왔다. 본드에 취해 있었다. “지나가는데 갑자기 철물점이 보이는 거예요. 혹시 본드 있나 해서 가봤더니 있잖아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한 거예요.”
약물 없이도 몇 달을 잘 견디던 환자들은 병원을 나서는 순간 눈앞의 유혹에 쉽게 무너진다. 가스중독으로 병원에 자진입원해 1년간 약을 끊은 하희연(25)씨도 “오늘 직업교육 다녀오는 길에 가스통을 봤는데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벌렁벌렁 뛰면서 막 주위를 살펴보게 되더라”고 말했다.
외박이나 외출기간 중 마약에 취해 병원으로 돌아온 사람은 ‘치료보호소’에 들어가야 한다. 기자들이 방문한 첫날 치료보호소에도 환자 이상훈(42)씨가 침대 위에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그는 2일 전 외박을 나갔다가 어김없이 필로폰에 취해 병원으로 돌아왔다. 필로폰에 취해 있는 상태에서는 밥도 넘어가지 않고 잠도 자지 않기 때문에 약에서 깬 뒤에는 3~4일 동안 잠만 자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다음날 다른 환자들이 이씨에게 농을 걸었다. “행님. 푸욱 잤습니꺼. 솔직히 말해보이소. 한 3잔 했지예. 병원에 약에 취해서 들어오더만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또 졌다’ 카면서 막 울데예”
‘술 한 잔’은 마약중독자들의 은어로 필로폰을 한 번 했다는 소리다. 쑥스러운 웃음만 짓던 이씨는 ‘더 자야겠다’며 등을 돌렸다. 다른 환자들 역시 외박을 나갔다가 약에 취해 들어오기가 일쑤다. 병원의 권 부장도 이런 상황을 모르는 바 아니다.
“환자들이 외박이나 외출 나가면 본드 불고 필로폰 할 거 뻔히 압니다. 하지만 환각상태에서도 병원은 꼭 찾아옵니다. 그리고는 미안해하죠. 이런 과정을 거치면 다음번엔 마약을 끊는 기간이 훨씬 길어집니다. 마약중독이라는 것이 뇌를 잘라내지 않는 이상 완치가 없는 겁니다. 10년 끊었다가도 다시 손대는 게 마약입니다. 마약 10번 할 것을 5번 하게 하고, 5년 건강하게 살 것을 10년 건강하게 살게 하는 거 그게 마약중독자 치료의 목표입니다.”
마약사범만 모아놓은 병실에서 이들끼리 맺는 관계 역시 치료의 주요 부분 중 하나다. 특히 제 발로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들은 최소한 ‘마약중독에서 벗어나겠다’고 다짐을 한 사람들이다. 병원을 뛰쳐나가려고 하는 사람에게 환자들끼리 “너 임마, 나가서 또 약 하면 어쩌냐”고 만류하기도 한다.
마약중독자들은 ‘마약에 손대는 순간 인생은 끝장난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었다. 자신의 삶이 증거다. 입원 6개월 된 이경신(35)씨는 한때 잘 나가던 사업가였다. 아버지는 의사였다. 12살 때 파라과이로 이민을 간 그는 현지에서 청바지 단추와 지퍼를 만드는 금형공장을 운영하며 월 600만원 이상 수입을 올렸다. 그가 코카인에 의존을 하게 된 것은 사기를 당해 무리하게 확장한 사업이 기우뚱할 무렵.
“애 때문에라도 약 끊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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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고 담배로도 해결되지 않는 스트레스를 코카인으로 풀었어요. 남미는 완전히 마약천지거든요.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 구하기가 쉬워요. 처음엔 약 기운으로 일하다가 나중엔 도저히 사회생활을 못 할 지경에까지 이르렀죠.”
결국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마약재활병원이 있는 한국에 들어왔다.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사이 현지에 있는 아내가 자신의 운전기사와 눈이 맞아 살림을 차렸다. 이 소식을 접한 이씨는 다시 코카인의 유혹을 느낄 정도로 괴로워했다.
“내가 이거 꼭 끊어서 다시 재기할 겁니다. 제가 약 때문에 가족한테 실망 많이 끼친 건 사실이에요. 그래도 그렇지 한국까지 온 것도 다 누구 때문인데 아내가 그럴 수 있나요. 제겐 5살 된 애가 있어요. 그 애 때문에라도 약을 끊어야죠.”
병원에 들어오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자진입원하거나, 둘째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검찰에 의해 보내진다. 검찰에서 보내진 경우 두 달간 의무치료가 필요하지만 자진입원 환자는 언제든지 원할 때 나갈 수 있다. 예전엔 반반 정도였지만 최근엔 자진입원 환자수가 70% 정도로 부쩍 늘었다. 2000년부터 바뀐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보건복지부에 신고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환자의 신상 비밀이 보장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정부에서도 마약환자의 자진입원을 권하고 있지만 중독자들은 제 발로 병원에 찾아오기가 힘들다. 일단 회복불가능할 정도로 자신과 가족이 처절히 망가져야 치료의 필요성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진입원 환자들은 치료의지도 높은 편이라 병원에서는 대환영이다. 권 부장은 “검거 직후에 바로 병원으로 들어오면 치료 효과가 높다”면서 “무조건 구속할 것이 아니라 병원에 보내 치료하는 것이 마약중독자 수를 줄이는 데는 훨씬 더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환자들에겐 병원에 있는 것 자체가 치료다. 물리적으로 마약과 거리를 두고 머릿속에서 마약의 흔적을 지워나가기 때문이다. 병원에선 월·목·금요일 오전에 1시간30분 동안 강의 형식의 재활교육을 시키고 노래방, 축구, 배드민턴, 요가 등 프로그램으로 재활을 돕는다. 그러나 이런 프로그램은 환자들이 병원에서 오래 버티게 해주는 보조 프로그램일 뿐 치료의 핵심은 ‘마약으로부터의 차단’이다. 마약을 대신할 수 있는 게 담배이고 우울증 치료제와 수면제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다.
병원의 규칙은 까다롭다. 전화는 화·금요일 저녁에만 허락된다. 현재도 마약을 복용하고 있는 친구, 선후배들에게서 떼어놓기 위한 조치다.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세면장, 화장실 등에 거울이 없는 것은 물론 식사 역시 숟가락만으로 해야 한다. 마약 전과와 함께 교도소를 수차례 드나들었던 왕년의 ‘형님’들을 한곳에 모아놓았으니 그럴 법도 하다. 인터넷 사용도 입원 한 달이 지난 사람에 한해 일주일에 한 번 이메일 체크만 할 수 있다. 온라인으로도 마약거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출시 약물복용을 하면 ‘일주일간 산책’과 같은 외부활동이 금지된다.
둘째 날 아침, 백반으로 만든 가짜 마약을 앞에 두고 환자의 자극과 반응을 치료하는 행동치료가 실시됐다. 전문가들도 육안으로는 구별하기 힘든 가짜 마약이다. 이 치료는 환자들의 약물에 대한 자극을 감소시키는 훈련이다. 주사기 10여개와 마약류를 책상 한가운데 두고 남성 환자 10여명이 둘러앉았다. 환자들은 약을 두고 ‘진짜다’ ‘가짜다’ 한창 논쟁이 붙었다. 하지만 환자 대부분은 연방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와, 이거 괜히 온 거 아이가, 보기만 해도 가슴이 쿵쾅쿵쾅 뛰네”라고 말했다. 멀쩡한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이들에겐 보기만 해도 엄청난 흥분이 몰려오는 것이다.
의료부장이 “주사기로 약을 투약하는 것을 재현 해 보라”고 말했지만 환자들은 선뜻 주사기를 잡지 못했다. 한 환자가 주사기를 잡고 검지로 퉁겨가며 능숙하게 작업을 시작했다. “이래 해가, 여기에 탁 꼽으면, 으아…” 그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뿅 간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시늉을 한 것만으로도 마약의 추억이 되살아나기 때문일까. 훈련이 끝나자마자 환자들은 “너무 가슴이 뛴다”면서 진정제를 찾았다.
병원에서의 마지막 날 가족 면회가 있었다. 그러나 가족에게 버림 받은 마약환자에겐 면회객도 거의 없다. 간간이 초보 중독자들을 찾는 면회객이 있을 뿐이다. 병원에 들어온 지 일주일이 되는 이철승(31)씨의 부인이 병원을 찾았다. 7살짜리 아들을 꼬옥 안은 채 부인을 대하는 이씨는 겸연쩍어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일 당장 병원에서 나가버리겠다”고 흥분하던 그였지만 가족 앞에서 죄인이었다. 그는 아들을 부둥켜안고 얼굴만 비벼댔다. “뽕쟁이들 참말로 불쌍한 사람들 아이가. 그리고 나 이번에는 정말로 약 끊는다.” 아들 앞이어서 그랬을까. 주먹을 불끈 쥐고 호언장담을 하는 그의 모습에선 초라한 아버지의 의지가 스쳐지나갔다.
(주간조선 기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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