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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술좀 그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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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05-07-04
[엄마,술좀 그만드세요] 주부 알콜중독 55만명 가정마저 비틀거린다
월1회이상 음주여성 58%로 크게 늘어
자녀에 심각한 영향
주부 이형선(가명·여·34)씨는 석 달 전 달리는 차에 뛰어들었다. 곧바로 응급실로 실려간 그녀는 “가만히 있는 내게 차가 덤벼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이씨는 소주 6병을 마신 후 길을 건너고 있었다. 그녀는 4년 전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남편과 갈등이 깊어질 때마다 술을 마셨다고 했다. 남편은 “여자가 어디 할 일이 없어서 술을 마시느냐”고 몰아세웠고 그럴수록 이씨는 더 깊이 술에 빠져들었다. 그러는 동안 7살·6살짜리 딸 둘은 고아처럼 버려졌다. 술에 취해 아이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깨어나면 “내가 죄인”이라며 가슴을 쳤다.
국내 여성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의 숫자가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3년마다 실시하는 국민보건조사 결과 술마시는 여성 중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은 1998년 3.1%에서 2001년 10.5%로 3배 이상 늘어 55만명으로 집계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현재 집계가 진행 중인 2004년 수치는 이보다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술을 마시는 여성도 1999년 2003년 47.6%에서 49%로, 월 1회 이상 술을 마신다는 여성은 44%에서 58%로 크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특히 30·40대 연령층 여성의 알코올 의존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임신부나 가임여성의 음주는 유산, 사산, 기형아 출산의 가능성이 있어 위험하다”고 말한다.
주부가 알코올 의존인 경우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다. 지난해 강원도 춘천에서는 남편이 출근한 후 혼자 술을 마시다 우유를 먹고 있던 아들(2)을 이불로 덮어씌워 숨지게 한 20대 여성이 붙잡힌 일도 있었다. 권씨는 경찰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술김에 일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경기도 다사랑병원 신재정 원장은 “한 가정의 주춧돌인 어머니가 흔들리면 가정 전체가 흔들리고 아이들도 정서적 안정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술마시는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은 차갑다. 여성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은 사회의 냉대와 편견 속에서 방치되고 있다. 서울알코올상담센터 박애란 소장은 “남성은 가족들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치료를 받는 반면, 여성은 가족들에게조차 배척당하고 있다”고 했다.
박씨는 “아무리 여권이 신장됐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남성적 가부장적 문화가 남아 있어서 우리 사회가 술마시고 비틀거리는 여성은 용서가 안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말했다.
"남편 미워서… 시댁 때문에… 소주 보면 못참아"
여성전문 알콜중독병원 3박4일 숙식르포
아침에 의사 회진하자 "그분이 오셨어요"
환자 90%가 재발… "이 사슬 끊고 싶어"
스스로 술을 끊지 못하는 여성들은 그동안 사실상 방치돼 왔다. 가족들은 쉬쉬하며 지냈다. 지난 3월, 경기도 의왕시엔 국내 처음으로 여성전문 알코올병원이 생겼다. 다사랑병원이다. 기자는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3박4일 동안 그곳에서 숙식하며 ‘알코올 중독’의 늪에서 빠져 나오려고 애쓰는 여성들과 함께 생활했다. 기자는 그들과 똑같이 환자복을 입고, 함께 6인용 병실에서 잠을 잤다. 기자도 술을 좀 하는 편이다.
16일 오후 7시. ‘만취(滿醉)’ 상태의 이순덕(가명·38)씨가 실려왔다. 어딘가에 머리를 세게 부딪힌 듯 이마가 심하게 부어올라 있었다. “이순덕씨! 후, 불어 보세요.” 간호사가 음주 측정기를 들이밀었다. 묵묵부답. 그녀는 감은 눈을 뜨지 않는다. 기자가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술 얼마나 드셨어요?” 그러자 누워있던 이씨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아니, 그건 왜 물어요? 당신 누구야?” 그녀에겐 술냄새가 진동했다.
병원에는 41명의 환자들이 입원해 있었다. 이종섭 대표원장은 “대부분 이씨처럼 만취상태에서 가족의 요청으로 입원된다”고 했다. 갓 입원해 술이 덜 깬 환자들은 난동을 부리기도 하고, 화장실 창문을 통해 ‘탈출’을 시도하기도 한다.
오전 7시 아침 식사시간. 술에 대한 갈망감을 없애주고 손상된 간 등을 치료하는 약이 식사와 함께 지급된다. 옆방에 입원한 이명선(가명·34)씨가 방마다 문을 두드리며 “그분이 오셨어요!”라고 외쳐댔다. ‘그분’은 담당 의사를 뜻했다. 이 병원 의사 9명은 아침마다 회진을 하며 담당 환자의 상황을 체크한다. 오전 8시30분. 환자들 모두가 홀에 모였다. 둥글게 모여앉아 한 사람씩 하루를 시작하는 각오를 밝혔다. “저는 유쾌하게 보내겠습니다” “불안해하지 않겠습니다” “술 앞에서 당당하겠습니다”….
오전 10시. ‘회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책을 함께 읽으며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는 ‘독서모임’이 시작됐다. “저는 7년 단주(斷酒)했어요. 이번에는 정말 술을 끊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게 됐죠. 한번 나를 시험해보자는 유혹이 생기더군요. 아, 그런데 일단 맛을 보기 시작하니까 그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더라고요….”
“저는 지난달 퇴원했다 재입원했어요. 벌써 4번째 입원입니다. 병원에서는 술 생각이 안 나는데, 병원 밖만 나가면 보이는 게 술병이에요. 도처에 술, 술… 술병만 보면 소름이 돋아요.” 누군가 입을 열면, 환자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째 입원 중인 손선미(가명·47)씨는 10년 전 남편의 부도로 술을 입에 댔다. “한번 술을 먹기 시작하면 쓰러질 때까지 끝장을 봐야 했어요. 피까지 토해놓고 다시 또 술을 먹었어요. 깨면 몸이 아프고 죄책감에 시달리니까 그걸 이기려고 또 먹고….” 손씨는 “솔직히 퇴원해도 술을 끊을 수 있을지 자신없다”고 했다.
심재종 원장은 “이 병원 환자들의 90%가 퇴원 후 재발한 경우”라며 “알코올 의존자에게 한방울의 술은 기름통에 성냥불을 긋는 격이라 10년 이상 술을 끊었더라도 일단 맛을 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치료는 보통 3개월 과정. 입원 후 처음 1주일간은 가족 면회와 전화가 금지된다. 이 원장은 “틈만 나면 가족들에게 전화해 ‘날 좀 빼달라’고 호소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입원 한 달 후부터는 하루에 두 번씩 외출도 하고, 주말마다 외박도 가능하다. ‘나는 술 앞에 무력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치료의 시작이다. 상담과 집단치료, 일기 치료 등의 프로그램이 요일별로 진행된다.
18일엔 전수경(가명·42)씨가 강제퇴원을 당했다. 전날 외출하고 돌아오다 술을 숨겨왔기 때문이다. 전씨는 울먹이면서 “가게에서 소주를 본 순간 갖고 오고 싶었어요. 생리기간만 되면 스릴을 느끼고 싶어서… 못먹으면 버리려고 했다고요”라고 말했다.
환자들은 서서히 병원 생활에 적응해 갔다. 윤혜연(가명·36)씨는 “여기서는 의사의 도움보다 환자들끼리의 교감으로 치료하는 경우가 많다”며 “왜 술을 먹기 시작했고 어떤 고통을 겪어왔는지 서로 너무 잘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밤 10시반. 병실의 불이 꺼졌다. 반쯤 열린 창문 사이로 병원 앞 고층아파트의 불빛이 새어나왔다. “우리 딸 잘 자고 있나….” 한 환자가 중얼거렸다.
“집안 망신”셋중 한명꼴 이혼·별거
“가족에 대한 배신감으로 더 마셔”
‘술먹는 아내’ 상담전화 급증 추세
“술 먹는 아내 뒤치다꺼리 하느라 내 삶을 낭비했습니다. 지난 20년을 어디서 보상받아야 합니까.” 서울 중랑구에 사는 남모(56)씨는 지난달 16일 기자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그는 “맨정신인 아내를 본 기억이 까마득하다”고 했다. “울면서 협박도 해보고 타일러도 봤지만 다 소용 없었어요. ‘다시는 술 안 먹겠다’고 맹세해도 그때뿐이죠. 조금만 감시가 허술해지면 싱크대나 장롱 속에 숨겨두고 몰래 꺼내 먹었으니까….”
지난 한 해 동안 ‘한국 남성의 전화’에 걸려온 전체 부부문제 상담건수는 1582건〈그래픽 참조〉이다. 이 중 ‘아내의 술 문제’를 토로한 상담은 102건이었다. 전체 상담건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작지만, 아내의 술 문제 때문에 전화를 건 숫자는 2000년 29건, 2003년 57건에 비해 크게 늘어나고 있다. 한국 남성의 전화 이옥이 소장은 “술 취한 아내는 주로 전업주부인 경우가 많고, 남편들이 참다 참다 도움을 요청한 경우”라며 “간혹 만취 상태의 아내에게 맞았다고 호소하는 전화도 있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모(여·23)씨는 “어렸을 때부터 기억 속의 엄마는 늘 취해 있었다. 차라리 엄마가 없어졌으면 하고 바란 적도 많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들이 ‘너희 집 한번 놀러가자’고 할 때마다 ‘우리 엄마는 바빠서 안 돼’라고 따돌려야 했어요.” 그녀는 중학교에 다니는 여동생이 얼마 전 ‘(엄마의 술 때문에) 지긋지긋하다’며 집을 나갔다고 말했다.
박모(여·36)씨는 10여 년 전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암투병하던 어머니가 숨을 거둔 직후였다. 처음에는 맥주 한 잔만 마셔도 쓰러져 잠이 들었지만, 차차 주량도 늘고 주종도 맥주에서 소주로 바뀌었다.
술 취한 박씨를 본 아버지는 “집안 망신”이라며 펄쩍 뛰었고, 결혼한 언니들은 “창피하다”며 그녀를 피했다. 결국 박씨는 “당장 나가라”는 아버지 성화에 못이겨 따로 방을 얻었다. 그녀는 “가족들에 대한 배신감을 달래려 오기로 더 마셨다”고 했다. 말리는 사람이 없으니 생활은 점점 더 망가졌고, 15년 넘게 다니던 회사도 결국 그만둬야 했다.
박씨처럼 여성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은 대개 가족들에게도 버림받는다. 알코올 전문병원인 광주광역시 다사랑병원이 2001년 3월부터 2004년 5월까지 입원 환자 35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혼 환자 중 이혼이나 별거 상태에 있는 여성 환자는 전체 여성환자의 33.3%를 차지했다. 기혼 남성 환자 중 이혼이나 별거 남성은 이보다 훨씬 적은 15.8%였다. 경기도 의왕의 다사랑병원 이무형 원장은 “여성 환자들은 억압된 환경 속에서 남성보다 더 많은 좌절을 경험하기 때문에 치료가 두 배 이상 힘들고, 재발 위험도 크다”며 “창피하다고 감출수록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고 말했다.
이 병원 박차실 상담사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면서 주부뿐 아니라 직장 여성들도 술 문제에 빠질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알딸딸한 상태에서 노래방 가고, 평소에 못 했던 얘기를 술의 힘을 빌려 하기 시작하고…. 그게 다 ‘술 연습’이고, 서서히 중독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 상담센터는 전국에 20개. 갈수록 늘어나는 환자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알코올상담센터 박애란 소장은 “국립과학연구소처럼 ‘국립알코올연구소’가 세워져 실태조사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기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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