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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의 형평성에 관한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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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5-07-20
의료, ''''형평'''' 논리에서 벗어나자 이규식 ·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 이규식 교수 서울대 입시 문제를 놓고 청와대와 서울대가 벌이는 논전을 보면서 의료분야에서 이러한 논전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시장경제를 지향함에도 불구하고 교육과 의료만큼은 형평이 강조되어 하향평준화란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교육분야는 서울대와 같은 대표주자가 있어 모깃소리라도 내 보지만, 의료분야에서는 어떤 병원이 모깃소리만큼이라도 낼라치면 “병원이 공익성을 무시하고 돈벌이에 눈이 멀어…” 식의 비난이 앞선다. 그렇다 보니 국내 의료에 불만인 사람이 해외로 빠져나가도 원정출산 정도로 치부해 버리고, 외과계 수련의가 모자라도 일시적인 수급 불균형으로 치부하여 우리 의료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1970년대처럼 소득이 낮아 병·의원을 옆에 두고도 이용을 못하던 시절이라면 형평이 당연히 중요하다. 그런데 전 국민이 의료보장권에 들어온 지가 벌써 16년이 지나, 의료 이용률을 본다면 외래에서든 입원에서든 선진국 수준을 앞지르고 있다. 농촌과 도시 간에도 큰 차이가 없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급여의 이용률은 오히려 건강보험의 이용률을 앞지르고 있다. 그리고 경제면에서 본다면 세계 10위권의 GDP 규모에 2만달러 소득시대를 생각하고, 소형보다는 중·대형 아파트가 불티나게 분양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에만 형평을 강요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 하겠다. 우리 의료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먼저 ‘공공의료’와 ‘민영의료’에 대한 구분부터 바꾸어야 한다. 민간 병·의원이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단순히 민간의료로 치부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 민간 병·의원이지만 정부가 정한 건강보험 의료수가를 지키고 그 이행 여부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꼬박꼬박 심사받는다면 이를 민간의료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민간의료란 건강보험 의료수가와는 무관하게 병·의원이 독자적으로 의료수가를 매기고 심사도 받지 않는 자율적인 의료 서비스를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에는 현재 민간병원은 있지만 민간의료는 없다.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희망하는 병·의원에 대하여 자유롭게 의료수가를 받게 민간의료를 허용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민간의료를 다루는 병·의원은 해외로 빠져나가는 환자를 끌어들이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며, 공공의료는 이러한 민간의료에 환자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경쟁하게 되어 우리의 의료 수준은 세계 10위권 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민간 병·의원이라도 건강보험 환자를 보게 되면 공공의료이기 때문에 낮은 의료수가를 다른 측면에서 보상해 주어야 한다. 같은 의료수가로 건강보험 환자를 보는데 국·공립 병원만 정부가 지원을 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사립학교가 제공하는 교육도 공교육으로 간주하여 정부가 지원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보다 전 국민 의료보험을 늦게 달성한 대만에서는 건강보험 환자를 보지 않는 민간의료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병원의 98%, 의원의 91%가 건강보험 환자를 받는 공공의료권에 있다. 민간의료를 이용하는 사람은 별도로 높은 수가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대다수 국민들은 공공의료를 이용하게 된다. 몇 퍼센트에 불과한 자율의 허용을 국민 위화감을 이유로 반대한다면 자본주의 국가를 포기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공공의료의 붕괴를 두려워하여 반대한다면, 그렇게 취약한 공공의료는 국민을 위하여 빨리 붕괴시키고 새로운 공공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 낫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보다 높아진 다음에 허용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민간의료의 허용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는 데 오히려 유리한 측면이 많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 조선일보 기사 인용) 의료, 형평성 더 강화해야 조홍준·울산대 의대 교수 의료연대회의 정책의원장 ▲ 조홍준 울산대 의대 교수 우리나라에서 소득이 가장 낮은 계층은 가장 높은 계층에 비해 사망률이 2.15배이고, 암 발생률은 67%가 높다. 주관적으로 느끼는 불건강 수준은 저소득층에서 2~3배 높다. 이런 현상은 병원 이용에서도 나타나는데 고소득층은 저소득층에 비해 대형 병원 이용이 2배 이상 많다. 최근 8년 동안 고소득층의 의료 서비스 이용은 50% 증가한 데 비해 저소득층은 30%가 감소하였다. IMF 이후 소득 수준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건강 수준과 의료 이용의 양극화도 함께 심해지고 있다. 일부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의료 형평성의 과잉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형평성은 계속 악화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관심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의료기관이 많아지고 의료 이용이 과거보다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소득 수준간 의료 이용의 격차가 커지고 있으며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환자가 자기 호주머니에서 내는 진료비가 많기 때문이다. OECD 국가에서 환자가 직접 내는 진료비의 평균은 전체 진료비의 19% 정도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45%나 된다. 이렇게 되면 저소득층은 의료비 부담으로 병원 가기를 꺼리고 결국 병을 키우게 될 뿐만 아니라 과다한 진료비 부담으로 가계가 파탄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는 사회가 야만적인 사회이다. 일부에서는 병원이 자유롭게 의료수가를 받도록 하는 것이 경쟁력을 높이고 의료 수준을 높이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나라는 지구 상에 거의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의료수가를 공적으로 통제하지 않으면 의료비가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고, 이는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심각한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를 국가가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값비싼 의료장비 도입률이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어서 인구 100만명당 자기공명촬영기의 수는 미국과 비슷하고, 컴퓨터단층촬영기는 미국의 2.5배에 이른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없이 급속한 고령화를 겪고 있고, 이는 의료비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킬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율수가의 허용은 의료체계를 재정적으로 붕괴시킬 수 있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의료기관이 존재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가 모든 병·의원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도록 하는 것은 의료기관 간 의료 수준 차이가 존재하고, 의료기관의 지리적 분포가 균등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의 의료 이용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미 헌법에 합치된다는 판정을 받은 바 있다. 더구나 중대상병 보장제나 본인부담상한제의 철저한 시행으로 건강보험 보장성의 수준이 월등하게 높은 대만과 우리나라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소수에 대한 자율의 허용을 반대한다면 이는 자본주의를 포기하는 것인가? 우리나라는 현재 병원의 90%를 민간이 소유하고 있으며, 공공의료기관은 10%에 불과하다. 국민의 의료기관 선택권은 거의 100% 보장되고 있다. 현재의 의료제도하에서도 고소득층은 더 좋은 시설에서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더 자주 향유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형평성과 효율성 면에서 모두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형평성의 부정’과 ‘상업적 의료 확대’가 아니라 건강보험의 보장성과 공공의료의 강화이다. ( 조선일보 기사 인용) ''붕어빵 의료'' 벗어나자 암·사망률 계층간 차이 건강증진으로 줄여야 임구일· 의료와사회포럼 정책위원 조홍준 교수의 20일자‘의료, 형평성 더 강화해야’라는 기고는 독자들을 혼동시킬 소지가 있다. 조 교수는 소득계층간의 사망률이나 암발생률, 그리고 병원이용률과 의료이용률의 차이가 크다며 형평성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보건사회연구원의 최근 연구에 의하면 의료 요구를 고려하지 않으면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의료이용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으며, 의료 강도를 고려하면 반대 결과를 보여 소득수준에 따라 의료이용 격차가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설령 조 교수가 인용한 통계가 맞더라도 조 교수의 논리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의료이용률을 같도록 만들어 준다면 사망률 격차나 암발생률 격차를 없앨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의료이용과 건강수준은 상관성이 약하다는 것이 보건학의 정설이다. 미국 질병관리본부 자료도 조기사망과 관련하여 의료적 요인은 불과 1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건강의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서 선진국에서는 의료서비스의 제공보다는 행동양식의 변화나 예방사업과 같은 건강증진사업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만성병 위주의 고령화 시대에 저소득층의 의료이용과 특히 병원 이용을 중시하는 듯한 논지도 문제가 있다. 저소득층의 병원이용률도 이미 선진국 수준을 능가하는 현실에서 이용도가 더 높은 계층과 동일한 이용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형평 논리에 빠져 저소득층의 병원 이용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을 형평성 결여로 탓하고 있다. 특히 과다한 고가장비를 갖춘 병원 이용의 증가는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만 부채질할 것이다. 건강보험의료는 현재와 같이 정부가 수가를 고시하고, 일부 희망하는 병·의원에 대해서만 수가를 자율로 하는 민간의료를 허용하자는 주장에 대하여 조 교수는 의료수가를 자율로 하는 국가는 없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실제는 조 교수의 주장과는 반대로 모든 병·의원의 수가를 정부 통제하에 두는 국가는 거의 없다. 영국도 자율로 수가를 정하는 민간병원이 있고 전액 자비로 이용하는 병상도 허용하여 어느 정도의 자율은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병원의 90%가 민간 소유지만 국공립 병원과 똑같은 수가를 받고 진료행위도 심사받고 있다. 그 결과 진료행태에서도 민간병원이나 국공립 병원이 차이가 없다. 2000년에 발표된 자료를 보면 제왕절개술을 많이 하는 3차병원 5개 가운데 2개가 국립대 병원이었고, 2002년에는 진료비 삭감액이 가장 높은 병원이 건강보험공단병원이었고, 4위가 국립암센터였다. 이것은 국공립 병원도 수익성이 높은 의료행위는 즐겨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민간병원은 이익이나 챙기는 곳으로 매도하고 국공립 병원만 지원하는 현재의 의료정책은 모순이다. 민간병원이라도 보험환자를 보게 되면 공공의료로 간주하여 지원을 할 때 건강보험권 내에서 의료 수준의 형평을 유지할 수 있다. 물론 공공의료 영역에서는 이용의 형평도 중요하다. 그러나 보험료와는 별도로 돈을 더 내고 보다 나은 서비스를 원하는 일부 국민들의 요구도 들어주어야만 ‘붕어빵 의료’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21세기에 적합한 패러다임일 것이다. ( 조선일보 기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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