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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도발의 한계를 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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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5-08-05
[시론] 엽기 도발의 한계를 그어야 한다 민성길 연세대 의대 정신과 교수 ▲ 연세대 의대 정신과 민성길 교수 최근 우리 사회가 목격한 공개방송 알몸 노출이나 시어머니 뺨을 때리는 장면 같은 일련의 도발적인 엽기적 사건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후퇴하고 있다는 조짐을 느낀다. 마치 정상적으로 학교 잘 다니던 청소년이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을 보고 느끼게 되는 위기감과 같다고 할까. 이제 그 청소년은 머지않아 본드나 필로폰까지 사용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왜 하필 이들 사건을 마약 중독에 빗대어 이야기하는가 하면, 이들이 서로 유사하기 때문이다. 중독 현상이란, 예를 들면 술을 습관적으로 마시다 보면 주량이 늘고 더 독한 술을 찾게 되는데 이를 내성이라고 한다. 나중에는 술에다 수면제나 필로폰을 타서 마시고, 술을 마시기 위해 범죄를 마다하지 않게 된다. 알몸 노출이나 뺨 때리기 같은 성적 행동이나 폭력도 시작이 어렵지 한번 맛 들이면 중독되기 쉽다. 이런 행동은 마약처럼 쾌감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중독 현상의 또 다른 특징은 일단 중독이 된 이후 사용을 중단하면 고통스러운 금단(禁斷) 현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금단 현상이 얼마나 가혹한가 하는 것은 술이나 담배를 잘 끊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마약 중독뿐 아니라 쾌락을 위한 모든 중독 행동들 즉 인터넷 중독, 도박 중독, 섹스 중독 등등에는 내성과 금단현상이 있다. 그리고 모두 그 결과는 파멸이다. 섹스와 폭력은 쾌감을 주기 때문에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내성이 생겨 더 자주,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게 되기 쉽다. 예를 들어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영화나 비디오 게임에서 점점 더 성적 노출이 많아지고 폭력은 점점 더 피비린내를 내고 있다. 자극은 자극을 부르고 스스로 몸집을 불린다. 이러한 와중에서 TV 공개방송 알몸 노출 사건이나 시어머니 폭력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번 사건들은 모두 우리 사회에 이미 허용의 범위를 넘어 상당히 섹스와 폭력의 자극에 대한 내성이 키워져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찍이 아담과 이브가 자신들의 부끄러운 부분을 가림으로써 짐승으로부터 인간이 되었고, 문명사회가 발달하였다. 그런데 이번같이 공개장소에서 가린 것을 벗어던졌다면 그들은 무엇을 노렸을까. 아마도 그들은 알몸 노출 순간 그동안 길러왔던 내성의 벽을 돌파하는 폭발적 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동시에 이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통제하려 했던 바에 대한 폭력적 도발이었다. 그들은 가면과 같은 분장 뒤에 숨어서 야유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 성숙을 비웃고 짐승의 상태로 후퇴하는 몸짓에 다름아니다. 자연 상태의 동물이 멋지기는 하지만, 인간은 이미 동물 상태로 후퇴할 수는 없다. 물론 문명이란 인간이 짐승으로서 가지고 있는 충동을 억압하는 과정이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래서 일찍이 프로이트는 문명은 사람들에게 불만을 초래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유에 내성이 생겨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도 성에 차지 않는 것일까. 문제는 내성이 육체적 현상이며, 이런 육체적 현상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성인군자라 하더라도 술을 계속 마시면, 이성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육체에 내성이 생긴다. 따라서 쾌락을 향한 육체의 충동을 인간 정신이 억제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충동을 조금씩 허용해 주다 보면 언젠가는 눈덩이처럼 커져 그 압력을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한번 도발이 허용되면 도발은 도발을 부르고 스스로 키워갈 것이다. 나중에 이를 통제하려 들면 파괴적인 금단 현상이 복수에 나설 것이다. 우리는 충동 표현이 허용되다 보면 결국 짐승의 충동이 인간 사회를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예상해야 한다. 모든 병이 그러하듯이,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하지 못하면 결국 개인이나 사회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우리에게 아직도 냉철한 이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이런 파괴적 충동을 적절한 통제하에 두어야 한다. 아니면 전능하신 신에게, 우리를 파괴하려는 우리 자신의 충동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 조선일보 기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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