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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정신적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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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05-08-05
[여의도 포럼―민성길] 재난과 정신적 상처
서남아시아에서 발생한 지진해일로 인한 재난에 구호의 손길이 전 세계로부터 물밀 듯 쏟아져 들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구호 활동과 더불어 의료지원단이 파견되고 있고 필자가 근무하는 세브란스병원에서도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 의료지원단이 파견되었다. 그런데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피해자들에 대한 신체적 구호 활동,예를 들어 식량,의약품 등의 지원은 활발하지만 정신적 상처에 대한 지원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고가 전 세계에 알려졌을 때 환태평양 정신의학회,세계정신의학회,세계보건기구(WHO) 등의 국제적 전문가들 사이에 지원계획이 논의되었지만 문제는 정신건강 전문가가 대단히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WHO 보고에 의하면 스리랑카의 경우 난민 수는 19만명인데 비해 전국의 정신과 의사 수는 30명에 불과하다.
정신건강상의 문제를 나타내는 재난에는 지진,해일,토네이도,화산 폭발,산불 등 자연재해와 전쟁 등 정치 사회적인 재난,그리고 강간,고문,테러,납치,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사고 같은 개인적 재난이 있다. 이러한 재난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피해자가 재난 당시 실제적인 죽음의 공포를 느끼거나 죽음의 장면을 목격할 때 극도의 공포와 무력감을 느낀다는 데 있다. 이를 외상(Trauma)이라 하며 그에 따른 후유증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나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 당시 이 장애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재난이 끔찍할수록,또는 피해자의 감성이 예민할수록 심한 후유증을 앓게 된다. 그 증상은 즉각적으로는 정신상태가 멍해지고,비현실적 느낌이 나타나며,재난을 회상하게 하는 장면이나 장소,물건 등을 회피하는 것과 함께 기억상실,불안,불면 등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후에는 재난 장면과 당시의 고통스런 기억이 억제할 수 없이 반복 회상되고,재난과 관련된 악몽을 자주 꾸며,사건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엄습하는 한편 불면증,가슴 두근거림,주의 산만,쉽게 놀라거나 흥분하거나 화를 내는 충동성 등이 나타난다. 여럿이 같이 있다가 혼자 살아남았을 때는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 증상은 사건발생 직후 나타나 1주일 정도 지나면 회복되지만 수십 년 이상 지속되기도 한다. 또 일단 회복했다가 수년 후 갑자기 재발할 수도 있다. 필자의 연구에서도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이 외상 경험 후 60년이 지난 지금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가 장기화하면 대개 우울증,자살 시도 등 다른 장애가 복합되기 쉽다.
따라서 전문적 치료가 필요한데 정신 사회적 치료로 우선 위기개입 기법이 있다. 피해자의 불안,공포 등을 진정시키고 인지 행동 치료 등으로 후유증의 악화와 연장을 차단한다. 약물치료가 크게 도움이 되며 아마도 급성시 극도의 불안,공포,불면에 대해서는 응급적인 약물치료가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문제는 재난 피해자들의 정신적 문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데 있다. 물론 재난시에 생명 구조와 신체 외상에 대한 대처가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마음을 안도시키는 정신적 도움도 꼭같이 필요하다. 당장 재난 구호자의 태도,말씨 등에서 피해자는 위로와 안도를 느낄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죽음의 공포를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선진국의 경우 재난시 정신건강 전문가가 반드시 구호팀에 참여하고 있고 평소 구호팀에 정신치료 훈련을 받게 한다. 미국의 경우 9·11 재난시 즉각 전 국민에게 언론을 통해 정신적 외상에 대한 지침서가 제시되었다.
재난과 관련한 정신건강의 또 하나의 문제는 구호활동을 하는 봉사자에 관한 것이다. 이는 이른바 ‘탈진(burn out)’이라는 용어로 대표되는데 봉사자가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다 보면 지치고 좌절을 느껴 결국 우울증과 같은 현상을 앓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탈진을 예방하는 조처가 전체 구호활동에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계적 재난을 맞아 재난과 관계된 정신건강 문제를 잠깐 생각해 보았다. 재난 당한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리고 그들을 돕는 행동을 통해 우리는 인생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민성길(연세대 의대 정신과 교수)
( 국민일보 기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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