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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인도 그들만의 언어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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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5-11-22

자폐인도 그들만의 언어를 갖고 있다

세계적인 가축시설 설계가인 저자 템플 그랜딘박사는 ‘자폐’를 극복해낸 학자다. 그로 인해 마침내 ‘인류’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자폐의 세계’에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그가 10년전에 쓴 ‘어느 자폐인의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자폐를 관찰의 대상으로만 보았을 뿐 자기체험에 근거한 연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자폐아가 정상적인 언어를 자유자재로 활용하게 된다는 것 자체은 이번에 김진호군이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보다 수십배, 수백배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다.

자폐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 자체가 ‘소통단절’에서 나왔다. 일반인들이 쓰는 언어를 자폐인들은 이해하지 못하거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템플박사는 바로 그 ‘전혀 다른 세계’가 어떠한 것인지를 하나하나 보여준다. 때로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처음 들어보는 외국어를 익혀가는 과정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개와 인간, 코끼리와 개미가 서로 소통을 시도하려는 것처럼 무모해보인다.

그러나 증상의 정도 차이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말하는 자폐인의 사고의 핵심은 그림그리기다. ‘졸업’과 같은 추상적인 단어는 자폐인들에게는 고통스러운 도전이다. 그러나 비교적 상태가 좋은 편이었던 저자는 학교의 정문을 수없이 나서며 그것이 바로 ‘졸업’이라고 반복적으로 연상작용을 했다.

자폐아라고 해서 모두 지능이 낮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10% 정도는 소위 정상인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그림표상 능력을 갖고 있다. 전화번호부를 일일이 외우지 않아도 하나의 그림으로 한 페이지 전체를 받아들인다. 칸트가 말했던 통각(統覺)이 바로 이것이었던가?

템플박사 자신의 체험에 따르면 명사, 그 중에서도 구체적인 사물을 가리키는 명사는 쉽게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동사도 어느 정도는 따라갈 수 있었다. ‘달리다’라는 말은 ‘운동회 때의 허들을 뛰어넘던 기억’과 연결해도 암기를 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것, 저것, ~이다, ~의 등과 같은 대명사나 관사였다. 여기에는 아무런 뜻이나 가리키는 사물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수없는 반복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주 조심스럽게, 그러나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자폐아 세계의 독특한 면은 감정, 상식, 관습에 대한 인식불능이다.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이러저런 상황에서 ‘사랑한다’라는 음절을 발음해야 하도록 반복훈련된 결과일뿐, 일반인들이 그 말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이 자폐인에게는 수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사이보그를 연상시킨다 .

아직 자폐인의 세계는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가 달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도 더 적게 알고 있는지 모른다. 일반인과 자폐인은 마주 섰다. 먼저 일반인이 손길을 내밀고 그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걸어올지라도 쉽게 포기해서는 안될 일이다. 세계를 갖고 있는 한 그들도 분명 ‘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기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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