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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증후군… 정신병 아닌 발달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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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5-11-22

나홀로 증후군… 정신병 아닌 발달장애

전국에 3만여명…치료 어렵고 주위 시선에 이민ㆍ동반 자살까지

미국 버지니아주에 살고 있는 종현이(9) 엄마 정영미씨는 요즘 새 삶을 얻은 것처럼 기쁨과 희망에 가득 차 있다. 자폐증 종현이가 장애아와 정상인의 중간 정도에까지 올 정도로 증상이 많이 좋아졌기 때문. 자신의 감정을 80% 정도는 말로 표현하고 20%는 행동으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호전됐다. 이젠 장애인 특수학교나 병원이 아닌 일반 학교에서 일반인과 어울리는 연습을 할 정도가 됐다.
종현이가 자폐증 진단을 받은 것은 두 돌이 지난 무렵.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을 뿐 아니라 엄마 아빠를 부모가 아닌 어떤 물건으로 인식하는 듯했다. 또 말을 잘 못하고 괴이한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기도 했다. 이후 행복했던 가정에 웃음이 사라졌으며 나머지 가족들도 장애인화돼 갔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는 너무 억울해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 같은 일반인과 사회의 눈초리에 대한 부담도 컸다. 아이의 상태가 심할 땐 일과 살림을 함께 하는 그녀를 더욱 힘들게 했고 이 때문에 남편과도 갈등이 많았다. 경제적 부담도 힘에 버거웠다.
94년 부랴부랴 이민을 앞당겼다. 「미국서는 종현이를 좀더 잘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희망 때문이었다. 미국서 처음 만난 의사는 메릴랜드주의 종합병원 소아정신과 의사. 그 의사는 『가장 효과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은 의사나 교사가 아닌 부모』라며 『진짜 치료는 부모와 따뜻한 가정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의사와 치료기관은 그것을 보충해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치료는 가정에서" 정영미씨는 종현이를 특수교육기관에 보내는 것과 별도로 시간표를 짰다.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 아침 7시30분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 때까지 밥먹는 시간, 화장실 가기, 그림 그리기, 숫자놀이, 전화하기, 간식 먹기, 목욕, 책읽기, 텔레비전 보기, 외출 등 하찮은 것까지 모든 행동을 함께 했다. 하루, 일주일, 한달 시간표를 짜서 벽에 붙여 놓고 오늘이 며칠인지, 지금이 무슨 시간인지, 언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등 어르고 협박하기를 계속했다. 외출시에는 더 긴장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을 저질러 실랑이가 일어난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저 아이가 없었더라면...」 하는 생각도 여러번 들었다.
돌고래나 원숭이를 훈련시키는 것과 같이 아이가 성공했을 때만 좋아하는 것을 주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목표한 일을 해냈을 때는 업어주고 뽀뽀하고 요란하게 칭찬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일정한 시간 동안 좋아하는 것을 못하게 하는 「타임 아웃」도 주었다. 아이가 아무리 울고 난동을 부려도, 남편이 『그만 좀 울리고 웬만하면 그냥 줘라』고 해도 매정하게 밀고 나갔다.
『엄마』라고 부르면 캔디를 주겠다는 규칙을 만들었지만 『엄마』를 부르지 않고 울다 쓰러져 잠든 종현이를 보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악을 쓰며 운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녀 스스로도 그녀가 만든 규칙에 속이 뒤집어지고 미쳐버릴 것 같았으나 오기와 악으로 버티어 냈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 캔디』라고 말한 종현이를 보고 너무 기뻐 펑펑 울고 말았다. 지금은 자신도 「처절한 인간 승리」였다고 말한다. 그는 이같은 경험담을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members.xoom.com/foreverymc)로 만들어 올렸다. 자폐증으로 가슴 아파하는 엄마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과 도움이 되고자 이 홈페이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린이 1만명 당 9.2명꼴 자폐증과의 처절한 싸움. 자폐증 자녀를 치료하기 위한 엄마들의 눈물겨운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98년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홍강의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자폐증은 어린이 1만명당 9.2명꼴. 따라서 자폐증 환자는 전국적으로 3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자폐증은 현대의학으로도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어 치료가 가정, 특히 엄마에게 맡겨져 있는 상태. 이 때문에 주치의 역할을 떠맡은 엄마들이 직장을 사직하는가 하면 미국 이민까지 결행하면서 자폐증 치료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96년 3월부터 서울대병원을 다니는 이영규(9)군의 엄마도 비슷한 처지다. 영규는 네살 위인 누나가 있는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두 돌 정도 지나면서 평범하게 자라는 아이가 아니었다. 서울대학병원 주간치료실에서 부모 교육을 받은 영규 엄마는 자폐증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됐고 곧 영규의 특수교육을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 장애아 전문학교인 밀알학교가 위치한 서울 일원동으로 집을 옮겼다. 아이가 싫다고 해도 계획한 시간표대로 움직여 나갔다. 영규와 하나가 됐다. 서울대병원의 애착증진 프로그램과 특수교육, 광장종합사회복지관 조기 특수교육 등을 통해 영규는 조금씩 좋아졌고 가족들의 소중함도 다시 깨닫게 됐다.
순민(10)이 부모는 93년부터 특수엄마와 특수아빠가 되어 함께 자폐아인 아들 순민이를 키우고 있다. 가족과 떨어진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순민이 아빠는 목요일 밤 퇴근하면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을 구해 순민이 치료를 거들고 있다. 그는 반응이 없는 아이에게 뽀뽀하고 안아주며 이불을 편 후 그 위에서 레슬링을 하며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아이에게 주먹으로 배를 때려 보라며 권투도 하고 공을 주고받기라든가 자전거 태우는 일은 그의 몫이다. 영규ㆍ순민이네 가족도 자신들의 소식을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자폐아 임상혁(8)군의 아버지 임기원씨는 97년 10년 넘게 근무해온 직장을 그만두고 24시간 아이와 지내며 현실세계로 끌어내기 위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서울 수유리에서 찻집을 하면서 상협이와 함께 한 시간과 경험 그리고 「절망에 빠져 있는 자폐아 부모에게 적어도 이만큼은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함께 더 좋은 치료 교육을 찾고 싶은 소망」을 담아 「자폐아와 아빠」란 책을 펴냈다.
인천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회사원 백권주씨도 홈페이지를 제작, 자폐장애 진단을 받은 아들 우현(초등학교 4년)이와의 생활 과정과 자폐 관련 보도내용 등을 올려놓고 관리하고 있다. 변리사 채윤씨도 하영(8)이가 자폐 진단을 받은 이후 천리안에 「사랑으로 크는 아이」(go autism)를 개설, 동호인들과 함께 활동하며 소식지 「사랑지기」를 발행하고 있다.
이들의 공개적 활동은 과거 부모 특히 엄마 입장에서는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위의 시선에 움추려들거나 감추어온 것에 비해 엄청난 변화다. 부모들이 모임을 만들어 떳떳하게 장애를 이겨 나가는 모습도 생겨났다. 서울대병원 주간치료실에 다니던 다섯 가족이 주축이 돼 만든 한사랑회, 서울 노원지역 장애아동 부모모임 등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끼리 서로 의지하고 도움을 주고 받고 있다.
한사랑회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사이버 가족을 형성했으며 가족 모두가 함께 놀러가는 행사를 자주 갖는다. 변화를 싫어하는 자폐의 특성상 환경변화에 적응시킨다는 목적도 있지만 아이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나 부담감도 줄여 나가려는 뜻이 있다.
노원지역 장애아동 부모모임은 「우리 사랑 우리 아이」라는 10쪽짜리 인쇄물을 만들어 비슷한 처지의 가정에 배포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을 이용한 희망 찾기에 적극적이다.그러나 아직도 자폐아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차갑다는 것이 자폐아 가족들의 입장이다. 이 때문에 사회적 편견을 피해 혹은 더 나은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이민 가는 가족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간혹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던 엄마가 자식과 함께 자살하는 비극적인 사례도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모도 10명 중 7명이 우울증 걸려
이에 대해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전문간호사 주세빈씨는 『가족들이 현 상황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다음 의료진, 교육자, 부모가 하나가 돼야만 좋은 치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엄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주위의 협조와 도움 없이는 현실사회로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림의대 강동성심병원 신경정신과 신지용 교수도 『자폐아 치료에서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미미한 부분』이라며 『신경정신과전문의와 소아정신과 전문간호사, 특수교사, 사회사업가, 임상심리사가 한 팀이 돼 여러 분야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의사는 총괄적인 평가와 검사 그리고 상황에 따른 약물치료 정도며, 부모(특히 엄마)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게 신 교수의 견해다.
그렇기 때문에 자폐아 부모는 항상 과도한 부담에 힘겨워 한다. 신 교수는 『자폐아를 가진 부모 10명 중 7명 가량은 우울증을 경험하고 이 가운데 20% 정도는 자살을 생각해 본 경험이 있다. 따라서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그룹치료와 서로간의 경험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홍강의 교수는 『자폐증은 정신질환이 아닌 발달 장애』라는 점을 강조하며 『자폐아의 능력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0명 중 3명 가량은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개선되기 때문에 교육과 치료를 포기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눈물겹고 힘들지만 엄마들의 노력이 자폐아 치료에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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