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비 1180px 이상
너비 768px - 1179px
너비 767px 이하

고객참여

의학서적 뒤지며 자폐 아들 뒷바라지한 유현경

  • 담당부서 :
  • 전화번호 :02-2204-0301
  • 등록일 :2005-11-22

의학서적 뒤지며 자폐 아들 뒷바라지한 유현경

“엄마 없이도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아들로 키우는 게 바람이죠”


장애인 수영선수 김진호가 체코에서 열린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서 금·은·동메달을 모두 목에 걸고 돌아왔다. 오늘의 김진호 선수가 있기까지는 혼자서 의학 서적을 뒤져가며 20년 동안 뒷바라지한 어머니 유현경씨가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자폐아 판정을 받고 함께 죽을 결심을 했다는 그녀의 한 맺힌 지난 이야기를 들어본다.

“자폐 판정을 받은 후, 이런 날이 올 줄 상상도 못 했어요”

지난 13일, 인천국제공항에는 체코 리베렉에서 열린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서 자폐(발달장애)를 딛고 금·은·동메달을 휩쓴 김진호 선수(19·부산체고 2학년)를 만나기 위해 많은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오후 12시 30분 도착 예정이던 그가 1시간 늦게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졌다. 그는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플래시가 터지자 약간 놀란 듯하면서도 금메달을 번쩍 들어올렸다. 자랑스러운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 유현경씨(45)는 기쁜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웃음을 지었다.

“입국 하루 전에 임정아 PD(MBC-TV ‘진호야 사랑해’ 연출)에게 국내에서 진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공항에서 기다릴 줄은 몰랐어요. 진호가 자폐 판정을 받은 뒤 하루하루가 죽음 같았는데… 이런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김진호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배영 200m 금메달, 자유형 200m 은메달, 배영 100m 동메달을 획득했다. 특히 배영 200m 최종 결선에는 2분 24초 08로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자유형을 주 종목으로 훈련하던 김진호 선수는 7개월 전부터 배영으로 전환했다. 이번 대회에서 배영 200m 금메달과 100m 동메달을 획득한 것은 어쩌면 기적이나 다름없는 성과다.

“수영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지구력, 순발력, 유연성이 필요하죠. 진호는 지구력과 순발력은 비장애인 못지않은데, 신경 계통 이상으로 인해 유연성과 집중력이 부족해요. 또 인지 능력과 언어 능력이 떨어져 비장애인들보다 많은 반복 훈련을 했어요.”

유연성과 집중력을 보완하기 위해 후천적으로 많은 노력을 한 덕분에 현재 그는 지구력과 순발력에 있어서만큼은 누구 못지않은 기량을 얻었다.

눈앞에서 아들이 자기보다 덩치 큰 외국 선수들을 제치고 당당히 단상 가장 높은 곳에서 메달을 목에 걸 때, 유현경씨는 기쁨과 회한으로 소리 내어 울었다고. 그녀는 체코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부터 자신있었다고 말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언론에 알리지는 않았지만, 과거 경기 기록과 진호의 최근 기록을 비교해봤을 때 어느 정도 확신은 있었어요. 하지만 체코에 도착하고도 한동안 선수 등록이 안 됐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하네요.”

김진호 선수 일행은 체코에 도착하고도 한동안 선수 등록이 안 돼 애를 먹었다. 조직위원회에서 규정 사항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해 선수등록증을 챙기지 못한 게 실수였다. 다행히 과거 인연을 맺은 홍콩 수영 감독이 조직위를 설득해 대회 전날 출전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연습 시간도 제대로 갖지 못하고 바로 시합에 임해야 했다. 또 매일 빵으로만 끼니를 때우는 것은 김진호 선수에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김과 고추장을 준비해갔지만 밥을 구할 수 없어서 식사 때마다 진호가 많이 힘들어했어요. 연습할 시간도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시합에 임했는데 좋은 성과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자폐아란 소릴 처음 들었을 때는 눈물도 안 나오더라구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유현경씨는 남편 김기복씨(47)와 대학 시절부터 4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했지만 별다른 점은 없었다. 보통 아이들과 똑같이 40주를 채우고 태어난 김진호 선수는 누가 봐도 건강한 사내아이였다. 첫돌이 지나기 전, 아이가 조금 늦은 성장을 보였지만 그저 ‘다른 아이보다 조금 늦구나’ 생각했을 뿐 자폐라는 것은 꿈에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속절없이 두 해가 흐른 뒤에도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아들은 엄마, 아빠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서울대병원을 찾은 유씨는 자신의 아이가 ‘자폐’라는 통보를 받았다.
의사선생님이 자폐 성향이 강하다고 했을 때 잠깐 동안 제 귀를 의심했어요. 처음에는 눈물도 안 나오더라구요. 멍한 상태로 집에 돌아와서는 한 달 동안 매일 울기만 했죠. 자식이 자폐라는 말을 듣고 어떤 어미가 살고 싶은 마음이 있겠어요. 하루하루 죽고만 싶었어요. 같이 죽자고 아파트 아래로 떨어질 생각도 했죠. 하지만 제가 죽으면 우리 진호는 누가 돌보나 생각하니 울고 있을 수만은 없었어요.”

정신을 차린 유씨가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자폐아를 위한 특수교육기관이었다. 하지만 특수학교는 기대만큼 아들에게 좋은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진호 아버지가 의사여서 경제적으로 비교적 풍족한 편이었지만 특수학교에 들어가는 학비를 감당하기는 버거웠어요. 진호가 일반학교에 입학하기까지 2년 동안 거의 파산 직전에 이르렀죠. 하지만 특수학교를 그만둔 건 돈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진호에게 비장애인과 생활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였죠.”

“진호가 엄마 없이도 살아가는 게 제 바람입니다”

유현경씨는 아들이 비장애인과 함께 어울리며 생활하는 게 꿈이었다. 2년 넘게 특수학교에서 교육받은 후, 아들이 어느 정도 또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겠다고 판단한 유씨는 김진호 선수가 아홉 살 되던 해 일반학교에 진학시켰다. 하지만 입학한 지 42일 만에 학교 측은 ‘도저히 안 되겠다’며 자퇴를 권유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두 살이나 늦게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는데도 학교 측에서는 한 달이 지나자 ‘힘들다’며 자퇴를 권유했어요. 처음에는 학교를 원망했지만 ‘그래, 내 아들은 내가 가르친다’고 다짐했죠.”

그날부터 유현경씨는 자폐 관련 전문 서적을 뒤지며 공부했다. 매일같이 어떻게 하면 아들이 조금이라도 비장애인처럼 생활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악기를 가르치며 대화를 하고, 그림을 그려가며 사물에 대한 이해력을 높여갔다. 수영 역시 그녀가 시도한 학습법 중 하나다.

“‘가장 훌륭한 선생님은 어머니’란 말을 가슴에 새기고 제가 직접 선생님이 되기로 마음먹었죠. 갖가지 전문 서적을 찾아가며 도움이 될 만한 학습 프로그램을 스스로 짜서 실행에 옮겼어요. 수영도 그 프로그램 중 하나였구요.”

유현경씨가 스스로 만든 교육 프로그램 중 수영은 가장 성과가 좋았다. 처음에 물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던 아들이 차츰 물과 친해져 수영을 즐겼으며,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들었다. 또 수영을 하면서 폐쇄적이던 성격도 많이 밝아졌다.

“처음에는 물 근처만 가도 기겁을 했어요. 몇 번을 품에 안고 물속에 들어갔더니 어느새 물속에서 장난을 칠 정도로 수영을 좋아하더라구요. 악기도 가르쳐보고 그림도 가르쳐봤지만, 수영이 가장 효과적이었어요.”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김진호 선수는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5학년이 되던 해, 본격적으로 수영을 배웠다. 당시 유현경씨는 아들을 수영선수로 키울 생각은 없었다고. 그저 보통 사람과 같이 사회에 적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수영을 가르쳤다. 하지만 점차 수영에 재미를 붙인 김진호 선수는 비장애인 못지않은 수영 실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중학교까지 일반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 시점이 되자 일반학교에서는 그의 입학을 허락하지 않았다. 유씨는 또다시 아들을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일반학교 입학은 그녀와 김진호 선수에게 있어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진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거예요. 중학교까지 보통 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는데 다시 특수학교에 보낼 수는 없었어요. 진호를 받아줄 만한 고등학교를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어요. 다행히 부산체육고등학교에서 진호의 수영 실력을 인정해줘서 보통 아이들과 함께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죠.”

부산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한 아들을 따라 유현경씨는 남편과 떨어져 혼자 부산으로 갔다. 그녀는 10년 넘게 돈, 시간, 열정 등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아들만을 위해 살았다. 주위에서 둘째 아이를 갖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지만, 부부는 “진호 하나 제대로 키우기도 벅차다”며 동생 갖기를 포기했다.

그런 부모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김진호 선수의 수영 실력은 날로 향상됐다. 붙임성도 좋아지고 성격도 점차 밝아져, 최근에는 엄마 없이 혼자서 3일간 친구 집에 머물기도 했다.
“진호가 세계 무대에서 인정을 받고 돌아오자 벌써부터 실업팀 얘기가 들려와요. 하지만 진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수영선수로 성장하는 것 못지않게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거예요. 엄마 없이도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아들 모습을 보는 게 제 바람입니다.”

-조선일보기사인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가 적용되지 않는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