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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수기> 우울증, 땅속 깊이 묻어둔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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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05-12-07
<투병수기> 우울증, 땅속 깊이 묻어둔 태양
<대한우울증학회가 개최한 우울증 수기 공모행사에서 대상을 차지한 글입니다. 많이 공감해 보세요. 운영자>
''극복’이라는 멋진 날개짓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글을 통해 나의 어깨에 새롭게 돋아난 극복의 날개짓을 활짝 펴보인다.
“헉, 헉, 헉...”
나는 무조건 달렸다. 맨발에 자갈이 박히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오직 엄마만 피하면 되니까. 혼미백산되어 뛰고 있던 여덟살 된 나를 지나가던 할머니가 붙잡아 주었다. 그것이 비극이었다. 할머니 뒤로 굶주린 사자처럼 이빨을 드러낸 엄마가 있었다.
“퍽”
“으악”
쥐죽은 듯 정적이 울렸다. 엄마의 둔탁한 주먹에 어느새 두 줄기 코피가 흘러내렸다. 그날 저녁까지 언니와 나는 숙제를 하지 않고 열심히 놀고 있었다. 퇴근 후 돌아온 엄마는 숙제하지 않은 두 딸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정전으로 깜깜해진 방안에선 엄마의 구타소리만 들려왔다. 나는 언니의 비명에 그만 집을 뛰쳐나가 버렸다.
언니와 나는 엄마가 너무 무서웠다. 어린 나이에 경험하기엔 무서운 형벌이었다. 엄마는 공부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이유로 두 딸을 태워 죽인다고까지 협박했다. 어김없이 우리 눈앞에 성냥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죽어, 죽어!”
숨죽이며 죽음을 기다렸다.
“그러니까 공부해서 엄마같이 살지 말란 말야.”
불은 엄마의 눈물 앞에 꺼져버리고 나의 오줌보엔 구멍이 난듯 오줌만이 질질 새어나올 뿐이었다.
점점 언니는 엄마를 닮아가고 있었다. 엄마의 모습 그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나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내내 언니는 여기저기 내 몸에 상처를 냈다. 내 영혼까지.......
“후~우!”
언젠가부터 잦은 한숨소리에 내 삶이 꺼져 들어갔다. 불면증에 시달리며 밤마다 죽은 영혼들이 나를 삼킬 듯 내 주위를 서성였다. 새벽녘 해가 뜰 쯤에야 비로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위도 고장난 듯, 위액이 입안 가득 고였다. 쓴 위액에 혓바닥이 타들어 갈 것만 같았다. 바닥에 늘어지듯 내 몸을 맡긴 지 몇 달째가 되어갔다. 어디 단단히 고장난 게 틀림없다는 느낌이었다. 병원에서 준 위장약을 삼키는 순간, 스쳐가듯 의사선생님이 한 말이 떠올랐다.
“고3이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 봅니다. 신경정신과에서 상담을 받아보세요.”
갑자기 쓴웃음이 나왔다. 나름대로 밝게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나에게 정신과라니.
조숙해 보였던 나에게는 생기발랄한 20대의 모습이 느껴지지 않았다. 늘 나이에 비해 성숙하고 완벽하게 보이려는 노력 탓에 친구들의 상담사 역할을 자초해왔다. 친구들은 그저 부모사랑 받으며 상처없이 자란 행운아들 같았다.
그때의 내 모습은 무엇이든 눈치껏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늘 부족한 듯 허기졌다. 갖은 모순된 모습으로 완벽하게 행복을 흉내내려 해도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혼자된 느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된 것인지 뼈 깊이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나에겐 가족과 친구들이 없었다. 있어도 없는 존재나 같았다. 그때까지 살면서 단 한번도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행복이 어떤 건지 의심만 솟구쳤다. 그래도 작은 바람이 있다면 깊은 밤에 죽은 영혼들을 등지고 깊은 잠을 자고 싶을 뿐이었다.
나의 모든 것은 신경질적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아무런 생각이 안 들고 집중이 안 되었다. 누군가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할 때면 악마의 마음을 품으며 공격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선 입술이 떨려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상황이 지난 다음에야 혼자서만 발 구르며 화를 품을 뿐이었다. 사람들의 모순되고 상처주는 행동을 일일이 기억하며 악을 품었다. 더욱 참을 수 없는 건 화를 내지 못하고 무조건 피하기만 하는 내 자신이었다. 간혹 상처 준 사람을 마음에 품고 죽이는 상상을 하면 왠지 모르는 짜릿함까지 느끼곤 했다.
우울증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사람들이 지긋지긋했다. 가족조차도 마음을 열 수가 없는데 그 누구에게 이 마음을 열 수 있을까. 친구들에게 이런 상태를 들키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만약 들키는 날이면 위로를 가장한 위선으로 다가올 것이 틀림없었다. 사람들 모두 한 꺼풀 벗겨지면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이 두려웠다.
대학을 졸업한 지 일년이 지났는데도 아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숨쉬고 있는 시간 시간을 저주했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살을 마음에 새기며 내일의 태양이 땅속 깊이 묻혀지길 기도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익숙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자살을 기도한 고3때를 떠올리곤 했다.
나른하다못해 종이 한 장 집을 힘도 없었다. 주변에선 소금에 절여진 상추잎 같은 나를 보고 게을러졌다고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남자친구의 간절한 부탁이 떠올랐다.
“너를 봐. 혼자서 해결 할 수 없잖아. 병원 가서 상담받고 함께 노력해보자.”
‘알약 몇 알로 수십년의 상처가 치료되겠어?’
병원을 가기 전 나는 우울증에 관련된 책을 사보기로 결정했다. 책 속에 써 있는 우울증 증상들은 마치 나를 보고 있는 듯 내 얘기를 하고 있었다. 책 속에서 약물치료, 상담치료의 문구가 불쑥 튀어나왔다. 한참을 그 문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였다.
처음 병원을 찾은 날, 상담을 기다리던 몇몇 사람들이 왠지 나를 미치광이로 보지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모자라도 쓰고 올 걸. 후회하고 있을 때 쯤 내 이름을 불렀다. 단단히 굳은 동태같은 나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의사선생님을 보자 긴장이 눈녹듯 풀어졌다.
“제 증상은......그러니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눈물을 토해냈다. 긴 시간을 얘기한 것 같은데 의사선생님은 끝까지 나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 주셨다.
“단시간에 치료되는 병이 아니에요. 꾸준한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받으시면 분명히 좋아집니다.”
“한두 달 정도 치료를 받으면 될까요?”
의사선생님의 공허한 웃음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한두 달 정도 치료하면 기분이 개선될 수 있지만 1년 정도 치료해야 완전히 우울 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분명히 치료되는 병입니다.”
확신 있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의 수십 년의 상처가 단 1년 만에 치료될 수 있다니. 간호사 언니에게 약을 건네받고 다음 상담날짜를 정하고 병원을 나섰다.
“제발 이약을 먹고 병이 낫게 도와주세요”
약을 먹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했다. 기도를 들어주신 듯 나는 변하고 있었다. 잡다한 생각으로 늘 복잡했던 나의 뇌가 차곡차곡 정리된 듯 편안해졌다. 늘 죽은 영혼에 시달렸던 으스스한 밤에 곤히 잘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늘 무거운 머리로 아침을 맞이했던 나는 맑은 이슬처럼 투명해졌다.
점점 뜨는 태양의 에너지를 받으며 가뿐하게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가 조금은 낯설지만 행복을 만끽하기엔 충분한 조건이었다.
약물치료와 상담치료가 분명 나를 변화시켜 갔다. 나의 상황은 드라마틱하게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치료가 언제까지 지속되야 하는지 벌써부터 두려움이 생겨났다. 나에게 또 그 어두운 그림자가 엄습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의사선생님은 1년 정도 꾸준한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꾸준한 인내가 나에겐 없을 것만 같았다.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통해서 변화되는 자신을 경험하고, 그 변하는 경험들이 자신의 인생이 되어간답니다. 좋은 경험이 분명 자신을 변화시킬 거예요.”
새로운 ‘경험’은 분명 나에게 중요한 씨앗이 되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나의 감정을 부모님께 조곤조곤 얘기한 것이었다. 나의 증상을 이해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약을 중단하고도 유지할 수 있는 생활의 변화가 그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산책같이 작은 운동으로 시작했다. 남자친구와 함께한 봉사활동은 나의 경험 중 최고의 치료제였다. 치료한 지 1년이 되어 갈쯤 나는 새로운 뇌를 기증받은 듯 새롭게 변해있었다. 예전에 느꼈던 불행한 감정들은 사라지고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입술을 바르르 떨며 악을 품었던 예전과는 달리 논리정연하게 나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상담 치료를 통해 무엇보다 우리 가족이 행복해진 것 같았다. 성공적인 결과로 치료는 끝이났다.
몸서리칠 정도로 나의 과거는 어둡고 검은 그림자로 드리워져 있었다. 그 어둠은 현재 아니 미래까지 덮칠 수 있을 정도로 그 파괴력은 대단하다. 어둠은 빛으로만 밝힐 수 있다. 내가 치료를 받았던 그 순간이 땅속 깊이 묻어 논 태양을 끄집어 내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우울증을 부끄럽게 여기는 편견으로 불행한 나날을 보냈던 그 시절이 안타깝기만 하다. 몇 년 전 우울증을 치료했던 그때를 기억하며 현재의 이 행복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더 이상 우울증은 부끄러움이 아니다. 몸이 아프듯 마음이 아픈 것이 우울증일 뿐이다. 몸 어딘가 아픈 사람처럼 떳떳하게 위로와 애정을 받아야만 빨리 일어날 수 있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모든 이들이 더 이상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지 않고 적절한 치료로 삶의 행복을 찾았으면 한다.
( 조선일보 기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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