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참여
건강차이 개인탓일까… 경제위기 뒤 벌어졌는데
- 담당부서 :
- 전화번호 :02-2204-0104
- 등록일 :2006-01-17
건강차이 개인탓일까… 경제위기 뒤 벌어졌는데…
[2006 연중기획 함께 넘자, 양극화]
① 동네 따라 수명 다르다
② 부모의 지위는 아이의 건강지수
③ 흡연이 계층을 가른다
④ 정신건강의 굴레, 비정규직
⑤ 의료 이용의 양극화
⑥ 미국의 건강 불평등
⑦ 블랙리포트의 나라, 영국
⑧ 건강 불평등 정책이 없다
왜 ‘건강 불평등’ 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건강 불평등 문제가 본격적인 의제로 등장한 적이 없다. 이종구 보건복지부 보건정책관은 “지난해 건강에서의 형평성 제고 방안에 대해 고민했지만 아직 형평성 측정 잣대라든지, 형평성 달성을 위한 근본적인 계획은 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정부의 의지 부족에도 있지만 건강에 대한 우리의 ‘시각’에 기인한 탓도 크다. 흔히 건강은 개인 또는 개인이 하기에 달렸다고 믿는다. 얼마나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했고, 부모한테 얼마나 좋은 유전자나 체력을 타고 났는가, 얼마나 좋은 생활습관을 지니고 있는가 등 개인적 조건으로 인해 건강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이런 시각은 왜 어떤 사회는 다른 사회보다 더 전체적으로 건강한가, 왜 영아를 비롯한 어린이 사망은 가난한 지역에서 더 많을까? 왜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건강하지 못한가 등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사실 영·미 등 서구 학계에서는 이미 한 사회 구성원들의 건강을 결정하는 또다른 ‘보이지 않는 많은 손’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보고를 숱하게 내놓았다. 소득수준, 재산, 직업계층, 지역, 성, 인종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사회·경제적’ 요인들이 개인의 태생적 조건 못지 않게 사람들의 건강에 깊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연구는 수없이 많다.
국내에서도 근년에 들어 적잖은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30~69살 남녀 8414명을 대상으로 4년 동안 사망 여부를 추적해, 교육 수준이 고졸 미만인 사람은 고졸 이상인 사람보다 사망할 위험이 1.9배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바도 있다. 또, 소득에 따라, 지역에 따라 건강 불평등 현상을 설명하려는 연구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지역별 여성의 비만율 차이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울산대 의대 예방의학교실은 경제위기 이후 사망률 불평등 추이를 주목해 분석한 결과, “사망률에서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남녀 두루 모든 연령대에서 경제위기 전후에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한 바 있다.
기실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이런 구조적 요인들 때문에 누구는 건강하게 살아가고, 누구는 건강하지 못하게 살아간다면 ‘공평’하지 않다. 국가는 부유하지만 국민은 건강하지 못하거나 불행한 것도 이런 불평등에 기인한다.
전문가들은 살만한 사회라면 건강은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적 인권이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세계인권선언 25조는 “모든 사람은 의식주, 의료 및 필요한 사회복지를 포함해 자기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적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모든 이에게 건강을!”이란 구호를 내세우며 건강 불평등 문제를 정책 목표로 세우기도 했다. 대한민국 헌법도 35조에서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조홍준 건강형평성학회 회장(울산대 의대 교수)은 “적어도 개인적 수준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사회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건강 불평등이 악화하는 상황을 줄이려는 사회적 노력은 사회발전은 물론, 인권적 차원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3인 사례 보면…검진기회도 소득순… 발병 알땐 늦다
어떻게 조사했나
우리가 사는 동네가 우리의 삶과 죽음, 그리고 건강에 어떤 영향을 줄까?
거주지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단지 우리가 사는 지역이란 의미를 넘어선다. 소득수준 등 우리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사회적 불평등을 드러내는 하나의 ‘코드’가 됐다. <한겨레> 특별취재팀은 지난해 말 서울 서초구와 중랑구, 전남 진도군 등 세 지역을 뽑아 최근 사망자의 삶의 이력과 조건을 역추적했다. 이들 세 지역은 노인 인구 비율이 거의 비슷한 점이 감안됐다.
취재팀은 이들 지역의 2005년 사망자 가운데 각 지역 사망자 평균연령에 해당되는 사망자 10여명씩을 표본으로 삼아 지역별로 4~5명씩 그 유족들을 인터뷰했다. 사망원인, 흡연·음주 등의 건강행태, 의료자원의 접근성, 빈곤에의 노출 등을 중심으로 고인들의 생애를 되살려 살펴봤다. 이렇게 고인들의 삶을 역추적한 결과를 비교·분석해 최종적으로 각 지역의 대표성을 지닌 사망자 3명을 선정했다.
집에 운동기구·종합병원 10분거리
정기검진서 암 발견 직후 치료나서
지난해 3월 췌장암으로 숨진 김옥희(가명·69)씨는 서초구에서 20년 이상을 살았다. 서울의 대표적인 ‘부자마을’ 가운데 하나인 서초구 서래마을에서 살다가 2001년 서초동 삼풍아파트로 이사했다. 고향인 전남 영암에서 중학교를 마친 김씨는 전업주부였고, 남편은 검사 출신의 변호사다. 2003년 7월 췌장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 김씨는 안락한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 예순을 넘어서면서 디스크 수술을 두 차례 받은 것 외에는 특별한 지병은 없었다. 2~3년에 한 차례씩 강남성모병원에서 수십만원이 드는 정기 건강검진을 받아왔다. 김씨가 암을 발견한 것도 건강검진 결과를 통해서였다.
김씨가 살던 서래마을에서는 종합병원인 강남성모병원이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말년을 보낸 삼풍아파트에서도 걸어서 40분이면 병원에 닿을 수 있고, 자동차로 가면 10분이면 충분하다.
남편과 둘이 살던 60여평짜리 아파트에는 러닝머신을 비롯해 스트레칭 기구, 허리 운동을 위한 벨트 마사지기 등 운동기구들을 갖춰두고 운동을 해왔다. 김씨는 다니던 교회까지 20여분 거리를 매일 규칙적으로 걸어다녔다. 술·담배는 전혀 하지 않았다. 김씨는 166㎝의 키에 몸무게 65㎏으로, 평소 68㎏을 유지해 왔다. 김씨는 어려서부터 수영을 곧잘 했고, 서래마을에 살 때는 근처 수영장에서 꾸준히 수영을 했다. 예순을 넘어 허리가 아프기 전까지 근처 헬스장에서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자녀들이 출가하기 전에는 집에 가정부를 고용했기 때문에 집안일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김씨의 남편(72)은 그가 암 진단을 받고 숨지기까지 1년8개월 동안 매일 아내의 간병기를 썼다. 그는 현재 간병기를 책으로 내려고 원고를 정리하고 있다. 남편이 “우리는 천생연분이었다”고 말할 만큼 두 사람은 금실 좋은 부부였다.
그의 간병기를 보면, 김씨는 암 진단을 받은 뒤 곧바로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해서 항암치료를 받았다. 병원의 병실 사정에 따라 2인 병실과 7인 병실을 번갈아 이용했다. 남편을 비롯한 아들딸들이 돌아가면서 간호를 했고, 간호사 출신의 조카가 거의 매일 병실을 지켰다. 숨지기 열흘 전부터는 전문 간병인이 24시간 그를 간호했다. 그의 지인들 가운데 사위를 포함해 의학적인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의사가 적어도 5명은 있다.
김씨가 암 치료를 받는 동안 병원비로 7천만~8천만원이 들었다. 몸이 항암치료를 잘 견디도록 한 달분에 60만~130만원인 홍삼제품, 아가리쿠스버섯 등을 꾸준히 먹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 가족들이 병원 식사 대신 죽이나 과일주스 등을 만들어서 챙겨줬다.
운동 안하고 담배로 스트레스 해소
감기로 알고 약먹다 폐암말기 판정
서울 중랑구에서 20년을 넘게 산 조길자(가명·62)씨는 지난해 5월 말 폐암으로 숨졌다. 2004년 9월 몸이 아프기 시작했지만 감기에 걸린 줄 알고 동네에 있는 내과에서 감기 치료를 받았다. 감기가 잦은데다 나이가 들어 아픈 줄 알고 감기약만 먹으며 지냈다. 그러다 지난해 1월 머리가 너무 심하게 아파 원자력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시티 촬영 결과 뇌에 종양이 생겼다는 진단이 나왔다. 폐암 말기로 이미 암세포는 뇌로 전이돼 있었다. 조씨의 딸은 “평소 다니던 내과에서는 별거 아니라고 해서 노환으로만 생각했는데 머리가 자주 아프다고 하고 구토를 해서 종합병원을 찾았다”고 회상했다.
몸이 아플 때마다 3~4년에 한 차례씩 건강검진을 받았지만 근년 들어서는 검진을 받지 않아서 암을 초기에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젊을 때는 하루에 소주 2~3잔씩을 마셨고, 하루에 반 갑 정도 꾸준히 담배를 피웠다. 사실 그의 흡연 이력은 30대 후반부터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담배를 피워보라’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에서 시작했다. 그게 20년이 넘었다. 영세한 건축사업을 한 남편이 건축 공사를 시작할 때마다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조씨의 몫이었다. 돈을 융통하지 못할 때가 허다했다. 남편과 갈등도 잦게 됐고, 그때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딸은 “흡연은 (엄마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고 말했다. 몸에 해롭다는 생각에 그도 몇 차례 금연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며칠 못 가서 다시 피우곤 했다.
게다가 조씨는 몸을 움직이기 싫어해서 주로 집에서 지냈다. 집을 나서면 걸어서 30분 거리에 아차산이 있고, 망우산도 가까이 있지만 등산을 해 본 적이 없다. 3년 전 가족들의 권유에 떠밀려 수영장을 6개월 정도 다녔을 뿐이다. 집에서 1.5㎞ 정도 거리에 종합병원, 가까운 거리에 대학병원이 있다. 조씨는 평소 한약을 자주 먹진 않았지만 콜라겐과 칼슘제 등을 먹었다. 지난해 1월부터 5월까지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원자력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하루 10만원씩 치료비를 썼다. 병실은 병원 사정에 따라 2인, 4인, 6인실을 번갈아 가면서 썼다. 낮시간은 간병인을 뒀고, 밤에는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간호를 했다.
초기 검사 비용 1천만원에 치료비 등을 모두 합하면 4천여만원이 들었다. 건축업을 해서 한 달에 200만원쯤 버는 조씨 남편 벌이로는 꽤 큰 부담이었다. 함경도가 고향인 조씨는 초등학교를 중퇴했고 여느 주부들처럼 1남1녀를 키우며 집안일을 했다. 조씨는 숨지기 전 남편과 딸 부부, 손자와 함께 지은 지 오래된 단독주택에서 살았다.
20여년 ‘깡소주’…종합검진 경험 전무
갑자기 쓰러져 병원 옮기자마자 숨져
백만길(가명·65)씨는 전남 진도군 의신면에서 평생을 살다 지난해 10월 숨졌다. 백씨의 사망 원인에 대해 가족들과 이웃들은 “술 마시다가 죽었다”고 입을 모았다. 의학적으로 알코올 중독에 의한 후유증으로 사망했다는 판정을 받은 적은 없지만, 주변 사람들은 지나치게 술을 많이 마시다가 숨졌다고 믿고 있다.
백씨는 철들면서부터 술을 즐겼고, 20년넘게 거의 매일 소주 2병씩을 마셨다. 술을 마실 때 안주는 거의 먹지 않고 ‘깡소주’를 마셨다. 숨지기 1년 전부터는 거의 식사를 하지 않고 술에만 의존했다. 담배는 하루 한 갑에서 한 갑 반 정도를 피웠는데 많이 피우는 날에는 3~4갑씩을 피우기도 했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인 백씨는 젊은 시절 면소재지에서 식육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현재 부인 이아무개(65)씨가 4평 남짓한 구멍가게를 운영해서 어렵사리 살고 있다. 허름한 슬레이트 지붕으로 덮인 이 가게에는 부엌까지 합해서 5평을 넘지 않는 살림집이 딸려 있다. 3남1녀는 모두 외지에 살고 백씨는 이 집에서 부인과 둘이 살았다.
가게에선 담배와 술, 과자, 간장 등을 팔고 있는데, 한 달 수입은 50만원을 넘지 않는다. 마을 주변에는 바닷가를 끼고 산책로가 있고 동산도 있지만, 백씨는 좀처럼 운동을 하지 않았다. 가끔 동네 사람들의 권유로 마지못해 바닷가에 나가거나 동네 사람들과 둘러앉아 화투를 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 집안에서 술을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부인 이씨는 “촌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운동은 무슨 운동이냐”며 “촌사람들은 일거리가 있으면 일하고 없을 때는 술이나 마시면서 보낸다”고 말했다.
180㎝의 큰 키에 몸무게가 75~80㎏이던 백씨는 종합건강검진을 받은 적이 한 차례도 없었다. 지난해 목이 아파서 부분적으로 검진을 했다가 간과 목이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백씨는 술을 줄이지 않았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약을 먹지도 않았다. 관절염으로 고생을 했으면서도 따로 치료를 받은 적은 없다. 백씨의 집에서 걸어서 10분 안에 보건지소와 면에 하나 있는 의원에 갈 수 있다. 인구 4천여명인 이 면의 보건지소는 하루 평균 20여명의 주민들이 고혈압이나 관절염, 감기 등으로 찾고 있다. 백씨의 집에서 4~5㎞ 떨어진 진도읍에 중소형 병원 2곳이 있다.
백씨는 지난 추석날 아침에 집에서 쓰러져 진도읍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진 뒤 곧바로 숨졌다. 이씨는 “남편은 밥 대신 술 힘으로 버텨왔다”고 말했지만, 백씨는 알코올 중독 검사를 받거나 치료를 받은 적은 없다.
먹고사는데 급급… 폐암·간질환 사망
저소득층 ‘웰빙’ 은 남 얘기… 부유층은 배려 속 임종
사회계층별로 사망 원인이 다르다. 췌장암은 사회경제적 수준에 따른 사망률의 차이가 크지 않은 질병인 데 반해, 폐암과 알코올 관련 사망은 낮은 사회계층에 집중된다.
서울 중랑구 조길자씨의 경우
중랑구 조길자씨의 사망 원인은 흡연으로 보인다. 폐암 원인의 80~90%가 흡연이고, 20년 넘은 조씨의 흡연력을 고려할 때 그러하다. 담배를 피울 동안만이라도 조씨는 현실의 경제적 어려움과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니코틴이 그러한 신경자극 효과를 제공했을 것이다.
조씨는 흡연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주변에서도 금연 캠페인을 접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그의 흡연 습관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담배를 끊을 절실한 동기가 없었을 수 있다. ‘오래 산다’는 가치는 정말로 낮은 사회계층과 높은 사회계층에게 동일한 가치를 갖는가? 아니다. 오래 산다는 것의 가치는 높은 사회계층에게 더 큰 가치를 갖는다. 그들에게 세상은 살아볼 만한 곳이다. 만약 조씨가 생전에 로또에 당첨됐다고 상상해 보라. 그는 금연에 대한 매우 큰 동기가 생겼을 것이다. 조씨에게 이제 세상은 ‘힘겹게 버텨야 하는 곳’에서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전남 진도군 백만길씨의 경우
백만길씨의 의학적 사망 원인은 가족들의 말을 들으면 “명확하지 않다.” 불명확한 사망 원인은 대체로 낮은 사회계층에게 집중된다. 정확한 진단을 받아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마도 가족들은 백만길씨의 건강에 큰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매일 술을 마신 백씨는 의학적으로 간경화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간과 목이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이는 간경화로 간정맥이 막혀 식도 쪽의 정맥이 부풀어 오르는 식도류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식도류가 터져 사망했을 수도 있고, 간성혼수로 숨졌을 수도 있다.
간질환으로 인한 사망은 우리나라에서 낮은 사회계층에 집중된다. 애초 백씨가 우리나라에 흔한 B형 간염을 앓고 있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만약 B형 간염도 갖고 있었다면, 매일 마시던 술과 함께 죽음을 더욱 재촉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간경화인지 간염인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당장 먹고살기에도 바쁜 가족들에게 당장 중요한 것은 백씨의 건강이 아니라, 백씨가 가족들에게 얼마나 경제적으로 기여하느냐다. 알코올 중독 프로그램이나 금연 클리닉이라는 것이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백씨는 왜 술과 담배로 살았을까? 백만길씨의 키는 180㎝로 아마도 어릴 적의 가정환경은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키는 어릴 적의 영양상태를 반영한다. 하지만 백씨의 청·장년기는 그리 좋은 삶이 아니었다. 백씨는 장사도 잘 되지 않는 구멍가게를 지키고 있으면서, 술과 담배를 친구 삼았다. 담배와 술은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중독성은 일상 삶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도록 만든다. 특히 백씨에게 술은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는 도구였다.
세상사람들이 ‘웰빙’을 부르짖으며 와인을 찾고 금연을 하고 운동을 할 때, 그는 소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집안에 갇혀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웰빙은 낮은 사회계층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씨나 백씨에게 웰빙은 중요한 가치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현실의 어려움을 해소해줄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의 개선이었을 것이다.
서울 서초구 김옥희씨의 경우
서초구의 김옥희씨는 인생의 마지막을 가족의 따뜻한 배려 속에 보냈다. 그들 가족에게는 사랑이 넘쳤고 한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인간적인 애절함과 진정한 슬픔이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김씨의 삶의 가치는 그만큼 종말기에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우리는 죽음을 논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삶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정말 모든 사람들의 삶의 가치, 삶의 질을 존중하고 있는가? 우리가 이야기하는 삶의 가치, 삶의 질은 부유한 계층의 것은 아닌가? 부유한 계층이 누리는 삶의 질을 시기하거나 그들의 삶의 질을 끌어내리자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의 가치를 가능한 한 최대한 누리는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즉, 낮은 사회계층들도 그들의 삶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세상을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세 분의 명복을 빈다.
강영호 울산대 의대 교수
--------------------------------------------------------------------------------
1만명당 의사수 서울 강남 47명…부산 강서 2.8명
보건의료자원 지역 불평등
우리나라 시·군·구 사이에 의사·병상·의료기기 등 보건의료자원의 불평등이 매우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1만명당 의원 수를 보면 서울 강남구는 28.26곳인데 강북구는 10.29곳에 그쳤다. 똑같은 서울 지역인데도 두 곳의 격차는 2.7배에 이르렀다. 지방과 비교하면 이 차이는 더욱 크다. 서울 강남구와 충북 청원군(6.95)는 무려 4배의 차이를 나타냈다. 병상, 의사, 의료기기 등 보건의료 자원의 불균형은 지역별 건강불평등 나타내는 또 하나의 주요 지표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센터(센터장 이상이 제주대 교수)는 16일 <한겨레>의 의뢰를 받아 2004년말 전국 234개 시·군·구별 보건의료자원을 비교 분석한 결과 이렇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조사에서 전국 시·군·구 가운데 의원 수가 가장 많은 구는 서울 강남구로 1492곳에 이르는데 반해 가장 적은 경북 울릉군은 단 7곳에 그쳤다. 거주 인구 수를 감안해 만명당 의원 수로 이를 다시 분석해봐도 서울 강남구의 경우 28.26곳으로 전국에서 최고였다.
서울 강남구의 경우, 병상 수와 의사 수 등에서도 다른 구를 압도했다. 병상 수에서도 4256곳으로 가장 많았고, 가장 적은 부산시 강서구의 7곳에 견줘 무려 608배에 이르렀다. 강서구가 인구 5만3천명(80%가 농민)에 그린벨트 지역이 많이 포함돼 있다는 지역적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그 차이는 매우 극심하다. 서울 강남구와 부산시 강서구는 만명당 병상 수에서도 강남구 28.26, 부산 강서구 4.30을 보였고, 만명당 의사 수에서도 강남구가 28.26명에 이르는데 부산 강서구는 2.81명으로 많은 차이를 보였다.
씨티(CT)와 엠아르아이(MRI) 등 의료기기 측면에서도 이런 지역별 차이는 뚜렷했다. 서울 강남구의 경우 씨티 31개(만명당 0.59), 엠아르아이 23개(만명당 0.44)가 분포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부산시 강서구는 단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소득차 원인…운동 인프라도 영향
지역적 차이 왜
강남구의 건강수준은 강북구보다 높다. 연령의 차이를 보정한 후에도 서울시의 건강수준은 다른 시·도보다 높다. 이러한 차이가 왜 발생하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지역간 건강수준의 차이는 크게 두 가지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구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강남구에 사는 사람들은 교육수준이 높고 좋은 직업을 가지고 높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교육수준, 직업계층, 소득수준은 모두 건강수준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강남구의 건강수준은 높게 된다.
둘째, 지역 자체의 효과이다. 예컨대 인구당 담배 소매점수가 강남보다 강북지역에 많을 수 있다. 또한 강북보다 강남지역에 인구당 운동시설이 더 많을 수 있고, 이는 지역간 운동실천율의 차이로 귀결될 수 있다.
미국이나 서구 유럽처럼 사회계층에 따른 주거지 분리가 오랫동안 진행된 나라에서는 지역 자체의 효과가 명확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이루어진 연구결과들을 보면, 아직 지역 자체의 효과보다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구성적 효과가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지역 자체의 특성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한국건강형평성학회는
한국건강형평성학회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건강 형평성 문제를 본격적인 연구 대상으로 삼아 2003년 창립된 학회다.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실태조사와 정책대안 제시 등 강력한 실천적 지향이 눈에 띈다. 현재 학계와 보건의료 단체 등에서 110여명이 참가하고 있으며, 초대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에 이어 지난 5월부터 조홍준 울산의대 교수가 회장을 맡고 있다. 학회 홈페이지 www.healthequity.or.kr
( 한겨레 기사 인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가 적용되지 않는 자료입니다.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