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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다시 움트는 곳' 행려병동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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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6-02-04
''삶이 다시 움트는 곳'' 행려병동에서 만난 사람들 덜 아픈 환자가 더 아픈 환자 돌보며 재활의지 다져…간호사,자원봉사자 한겨울 ''비지땀'' 서울 시립병원 3층 22병실. 간호사들의 손길이 유난히 바쁘다. 복도처럼 뻥뚫려 휑한 병동에는 보호자가 한사람도 없다. ''행려병동''이라고 흔히 불리는 ''복지병동''에는 돌봐줄 사람없는 무연고 환자나 노숙자 등이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복도처럼 휑한 22인 대형병실에서 삶에 지친 육신과 영혼까지 치료 정영자 복지병동 수간호사는 22인 대형병실을 ‘가족병실’이라고 부른다. 정 수간호사는 “복지병동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가치는 서로를 한 가족처럼 생각하는 것”이라며 “서로 불편한 부분을 돕고, 아픔까지 함께 나누자는 뜻으로 22인 대형병실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복지병동 간호사들은 환자들에게 때로는 무서운 어머니, 때로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다. 정 수간호사는 “여기 환자들은 마음에 상처와 한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며 “몸의 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까지 어루만져 주고 싶다”고 말했다. 간호사들에게도 이곳 생활이 처음부터 쉽지만은 않다. 정 수간호사는 “처음 복지병동으로 배정된 신참 간호사들은 견뎌내지 못하고 얼마 못 가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는 “나를 의지하며 점점 마음의 문을 여는 환자들을 볼 때마다 이 복지병동 일이 나의 천직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환자들이 동전 몇 개씩을 모아 사 준 음료수 한 병에서, 오히려 내가 사랑을 배운다”고 말했다. 정영자 수간호사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복지병동 간호사실 옆에는 귤 두 상자가 놓여 있다.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는 퇴원 환자가 그동안 일한 돈을 모아 병동 식구들에게 보낸 설 선물이라고 했다. “병동 식구들이 모두 함께 ''귤 파티''를 벌였다“며, 정 간호사는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적십자병원 복지병동의 이진숙 수간호사. 그녀 앞에서는 환자들이 모두 아이가 된다. 옛 병실 동료와 술 한 잔 하겠다고 찾아온 퇴원한 환자도, 병실에서 몰래 담배와 술을 꺼내는 환자도 이 간호사의 따끔한 꾸지람에는 고분고분하다. 그는 “환자들이 밖에서의 자유로운 생활 습관이 몸에 익어 병원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하기도 한다”며 얼마 전 의료진의 만류를 뿌리치고 퇴원한 동상 환자 이야기를 꺼냈다. 심각한 상태면서도 ‘멀쩡하다’고 우기며 병원을 나가겠다는 이런 환자들은 대부분 ‘술’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경우라고 한다. 가끔 완치돼서 퇴원한 뒤 다시 술을 마시고 병이 재발해 실려오는 환자들도 있다. 이런 환자들을 볼 때 가장 안타깝다는 이 간호사는 “여기에서 건강을 찾은 만큼, 삶에 대한 의지도 꼭 다시 찾길 바란다”고 말한다. 일반 간호 업무 외에 가족, 보호자의 역할까지 해야 하는 복지병동 근무가 힘들기는 하지만 “여기 환자들에게 특별히 정이 간다”고. 이진숙 수간호사는 “앞으로도 ‘당연히’ 복지병동에 쭉 있겠다”고 망설임없이 답하며, “마음은 처음 일을 시작한 19년 전과 똑같다”고 미소지었다. "덜 아픈 환자가 더 아픈 환자 돌봐주는 동병상련 애잔" 유난히 추웠던 지난 1월 2일. 술에 취해 서울역 앞 광장에서 잠들어 있던 안모씨(61)는 119구조대에 실려 복지병동으로 들어왔다. “평생 거리에서 한뎃잠만 자다가 갑자기 따뜻한 병실에서 생활하다 보니 불에 덴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짓는 안씨는 “매 끼니 먹는 밥과 김치가 너무 맛있다”고 한다. 23년간 혼자 떠돌며 살아왔다는 안씨의 비쩍 마른 몸 구석구석에는 그간의 힘든 세월을 보여주듯, 상처와 수술 자국이 선명하다. 안씨는 사업 실패 후 술을 가까이 하게 되면서 가족들과 멀어졌고, 외로움과 상처는 그를 더욱 술 담배에 의지하게 했다. 안씨는 “힘들게 살다 보니 자꾸 마음이 약해져 인생을 술로 다 허비했다“고 허탈하게 이야기하며 “나처럼 술 때문에 인생을 망가트리는 젊은이들은 제발 없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안씨는 입원 뒤 지금까지 1달 넘게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있다. 이번 기회에 반드시 술을 끊겠다고 결심한 안씨는 간호사들, 간병인들, 여러 자원봉사자들의 진심어린 격려가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안씨는 “아침마다 세수시켜주고, 목욕시켜주고, 대소변까지 받아내 주는 일이 어디 보통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냐”며 거듭 고마워했다. 2주 전, 비뇨기과 질환으로 입원한 이동진씨(50)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병실 주변을 청소한다. 환자들이 자발적으로 청소는 물론, 동료 환자의 면도, 식사, 용변까지 돕는 것은 3층 복지병동이 다른 병동과 확실히 다른 점 중의 하나다. 이씨는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작은 도움이라도 주려고 한다”고 복지병동의 분위기를 전했다. 모두 보호자가 없는 환자들이다 보니 서로의 처지를 잘 알기 때문인 것 같다고. 이동진씨는 버스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다 IMF로 일자리를 잃었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고, 술을 입에 대게 됐다. 속상해서 한 잔 두 잔 하던 술이 어느새 그를 알콜중독자로 만들었다. 알콜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입원하기도 하고, 1년 동안 공공근로를 하는 등 재기를 위해 노력했지만 새 직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씨는 다시 술에 의존하게 됐고, 5년전 이혼하면서 가정마저 해체됐다. 계약직으로 버스 운전을 하며 친척집을 전전하던 그는 쉼터 입소, 노숙생활을 거쳐 인천에서 버스 운전기사 자리를 구했으나, 이번에도 1년이 지나자 회사는 재계약을 해주지 않았다. 이동진씨는 “노숙 생활=술”이라며 “따뜻한 곳에서 밥도 제때 챙겨먹고, 아픈 곳을 치료받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는 “무엇보다 도와 주시는 여러 분들에게 감사하다”며 “한창 일할 나이”라는 말로 퇴원 후 계획에 대한 답변을 대신했다. 이 병원에서만 3년째 근무하고 있는 간병인 황성래씨(56). 환자들은 그를 ‘형님’이라고 부른다. 40명의 환자를 모두 챙기려면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지만, 늘 웃는 얼굴로 쾌활하게 움직이는 황성래씨는 “베푸는 사랑이 받는 사랑보다 10배는 더 기쁘다”며 미소를 짓는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에게 밥을 먹여주고, 대소변을 받아내고,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친구 역할까지 하다 보면 그의 하루는 너무도 짧다. 그는 작년 여름의 103호실을 잊지 못한다. 온몸이 썩어들어가고 있는, 욕창 환자에게 가족들이 면회를 왔다. 지체장애인 아내와 7살, 8살 아들은 아버지를 무서워하며 바라보기만 했다. 아버지는 ‘자기 정신이 아닌’ 상태였지만 자식들만은 똑똑히 알아보겠다는 눈빛으로 역시 바라보기만 했다. 한마디 말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기만 하다, 가족들은 이내 돌아갔고 52살 아버지는 며칠 후 숨을 거뒀다. 황성래씨는 복지병동에서 일하면서 “드라마를 볼 때도 눈물을 흘릴 만큼 감정이 풍부해졌다”고 한다. 그는 “여생을 여기 바치려 한다”고 힘주어 말하며 이내 일어나 병실을 향했다. 퇴원환자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일자리…재활의지 북돋는 일 시급 이 시립병원에서는 매주 180여명이 자원봉사를 한다. 목욕, 이발부터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에게 밥을 먹여주는 일까지,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처음에는 환자들과 봉사자들이 서로 서먹해 하지만 차차 마음을 열고 정을 나누게 된다. 이 병원 원무팀의 이현주 사회복지사는 “3층에 입원하고 계신 할아버지 한 분은, 병원에 폐가 된다고 점심을 먹지 않고 떠나는 봉사자들에게 식사를 반드시 대접하고 싶다고 1층까지 따라내려오기도 한다”고 전한다. 병이 다 나아 퇴원하는 환자들의 대부분이 가장 원하는 것은 일자리다. 퇴원한 환자들의 자립을 돕는 일도 사회복지사가 담당하고 있다. 얼마 전 무릎관절을 수술한 한 환자는 퇴원 후에도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치료를 계속할 수 있도록 의료보호 1종을 신청하려 했지만, 진단서 발급 비용 1만2천원이 없었다. 이현주 사회복지사는 그 환자에게 돈을 빌려 주었고, 20일 뒤 1만2천원이 들어 있는 봉투를 전달받았다고 한다. “일용직으로 일하며 돈을 마련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며 그는 “스스로 열심히 살아가시려는 의지를 보여주시는, 이런 분을 볼 때 가장 보람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를 하실 분은 이현주 사회복지사(전화: 02-920-9338)에게 연락하시면 됩니다. 노컷뉴스 김승휘/이다람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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