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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애 도시의 의미와 최근의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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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6-02-13
무장애 도시의 의미와 최근의 경향 [프로메테우스 기사 인용] △ 무장애 도시 만들기 운동 관련 책자 ⓒ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무장애 도시 만들기 운동을 고민한다 ① [편의연대 배융호 정책실장] 무장애 운동의 시작과 의미 무장애 도시의 태동은 무장애 운동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무장애 운동은 무장애 공간 만들기, 무장애 학교 만들기, 무장애 주거환경 만들기 등으로 발전하며, 무장애 도시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무장애의 개념은 Barrier Free라는 개념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Barrier Free를 문자 그래도 옮기면 ‘장벽이 없는’ 또는 ‘장애물이 없는’이라는 의미가 된다. 건축환경에서 이 용어는 ‘장애인과 노인 등도 이용하거나 접근할 수 있는’(accessible)이라는 의미로 사용이 된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 환경을 개선하는 운동이라는 관점에서 사용될 때는 이 용어는 단순히 물리적 장벽이나 장애물이 없는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때의 장벽(Barrier)은 물리적인 계단이나 이용할 수 없는 화장실 등만을 의미하지 않고 사회적 태도와 문화적 장벽 등 우리 사회가 장애인과 노인 등에 대해 갖게 되는 모든 편견과 거부, 의도적 배제, 제한과 같은 차별을 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무장애 운동은 단순히 물리적 장벽의 개선 뿐 아니라 사회의 인식이나 차별도 함께 개선해 나가는 운동인 것이다. 현재 이 운동은 일본에서는 ‘복지마을만들기 운동’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무장애운동’ 또는 ‘무장벽운동’으로 진행이 되고 있다. 무장애 도시의 기본 이념 첫째, 무장애 운동은 디자인의 개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도시 환경에 대한 디자인이 보편화되면서 우리 사회의 건축 환경의 디자인에 대한 반성이 일기 시작했다. 기존의 디자인은 젊고 건강하며 절대 다치거나 병에 걸리지도 않는 남성만을 기준으로 한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편의시설 디자인(Barrier Free Design)이다. 이 디자인은 장애인과 노인 등 신체적인 약자들을 위한 디자인으로서 접근 가능한 디자인(Accessible Design)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이 디자인은 철저히 이분법적인 디자인 개념이었다. 이러한 편의시설 디자인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분리하는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으며, 또한 여전히 장애인 등을 함께 그 건축 환경을 사용하는 구성원으로 생각하기보다는 특별한 구성원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은 곧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지 않고, 젊은이와 노인을 구분하지 않는 디자인, 즉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에 대한 요구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다. 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유니버설 디자인 운동은 일반 건축 환경 디자인과 편의시설 디자인 등으로 구분하지 말고 처음부터 모든 사람이 이용하고 접근할 수 있는 건축 환경과 제품을 디자인하자는 운동이다. 둘째, 무장애 운동은 기존의 우리 사회의 구성원 및 사용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요구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구성원은 다수와 힘있는 사람이 주류(mainstream)이며, 이러한 주류 계층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디자인되고 계획되었다. 그리고 장애인, 노인 등 소외계층이나 비주류 계층에 대해서는 배려라는 차원에서 디자인과 설계에 약간의 반영을 한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인권 운동이 활발해지고, 사회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장애인 등 소외계층이나 비주류 계층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진 자, 힘 있는 자로서의 배려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로 인식이 달라진 것이다. 장애인이나 노인이 접근하고 이용하기 쉬운 건축 환경이나 도시환경의 계획과 디자인은 이제 장애인 등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사회의 의무이며, 같은 사회구성원에 대한 당연한 도리인 것이다. 무장애 도시 운동은 바로 이러한 배려에서 의무로 전환하는 운동이며, 장애인 등을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는 운동이다. 셋째, 최근에 대두되는 무장애 운동의 방향은 설치에서 제거로의 운동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무장애 운동이 편의시설 등 시설물의 설치와 접근할 수 있는 건축 환경의 조성 중심이었다면, 최근의 무장애 운동은 장벽들을 제거해 나간다는 개념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유니버설 디자인 운동과는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즉, 기존의 편의시설 디자인 운동이 경사로를 설치하는 운동이었다면, 유니버설 디자인은 불필요한 계단을 제거하는 운동이며, 최근의 무장애 운동 역시 이러한 불필요한 시설들을 제거함으로써 그 공간 안에서는 어떤 구성원이든 장애를 느끼지 않고 생활하며 활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의 삶과 무장애 도시 무장애라는 개념이 물리적 장벽과 인식ㆍ태도ㆍ문화의 장벽이 제거되며 장애인도 장애를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의미한다면, 무장애 도시는 그러한 도시환경을 갖추고 그러한 인식을 갖춘 사회를 의미한다. 즉, 무장애 도시는 단순히 물리적 도시환경을 의미하지 않으며, 편견과 차별을 제거한 성숙한 인식을 가진 사회구성원이 함께 하는 도시를 의미하는 것이다. 첫째, 무장애 도시의 가장 큰 관건은 물리적 장벽의 제거가 아닌 편견과 차별의 제거이다. 물리적 장벽이 제거된 도시환경을 무장벽 도시는 될 수 있어도 무장애 도시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견과 차별의 제거는 인식ㆍ태도ㆍ문화의 장벽을 제거함으로써 출발한다. 인식은 장애인에 대해 갖게 되는 모든 잘못된 부정적 생각을 의미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은 여전히 장애인의 사회참여를 가로막거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어울림을 가로막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 인식은 부정적 태도로 이어진다. 장애인을 만나기 꺼리게 되거나, 함께 일하고 공부하고 생활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게 한다. 더 나아가 장애인에 대한 무시, 경시, 소외, 거부, 제한, 폭력에 이르는 태도로 전환되거나 이어지게 된다. 반대로 장애인에 대한 동정, 시혜, 과잉보호, 과잉친절 등과 같은 부정적 태도로 나타나기도 한다. 전자든지 후자든지 장애인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태도들은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중시키며, 그렇게 강화된 부정적 인식은 다시 부정적 태도들을 가중시킴으로써 악순환을 가져오게 된다. 이것이 바로 태도의 장벽이다. 부정적 인식과 부정적 태도를 궁극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문화를 만들어낸다. 장애인을 소외시키는 문화, 장애인을 무능하게 만드는 문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문화, 장애인이 특이하고 특별한 사람이 되는 문화, 장애인은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 문화, 장애인은 배우지 못하고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지 못하는 문화, 장애인은 리더가 될 수 없는 문화, 장애인은 배려와 동정의 대상일 뿐 동등한 관계가 될 수 없는 문화 등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문화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처럼 인식ㆍ태도ㆍ문화의 장벽들은 궁극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낳으며, 이러한 차별은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남아 있는 한, 그 도시는 무장애 도시가 될 수 없으며, 그 사회는 무장애 사회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무장애 도시는 결코 장애인만의 도시도 아니며 장애인을 위한 도시도 아니다. 무장애 도시는 도시이며, 시민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무장애 도시가 장애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장애인의 편의를 위해서 추진되어 간다면, 그 도시는 머지않아 또 다른 장벽을 만들게 되고, 또 다른 소외계층이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최근에 무장애 도시가 붐을 이루듯 곳곳에서 이야기되는 것이 바람직하면서도 한편으로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바로 이점이다. 무장애 도시는 결코 장애인의 도시가 아니라는 점이다. 무장애 도시에서 그 모든 장애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사람들은 장애인만이 아니다. 진정한 무장애 도시는 장애의 개념을 포괄적으로 규정하여 그 안에 많은 사람들이 포함된 장애 개념이 보편화되는 도시이다. 장애 개념에 가장 먼저 포함되어야 할 사람들은 장애인과 노인과 교통약자이다. 일시적인 부상자나 각종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도 포함이 된다. 이처럼 넓어진 장애 개념은 장애를 보편화시키며, 보편화된 장애는 더 이상 특별한 것도 특이한 것도 아닌 일상적인 것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편견과 차별의 제거는 물론 더 나아가 장애에 대한 친숙함을 가져온다. 물리적 장벽의 제거는 의무가 아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며, 인식ㆍ태도ㆍ문화의 장벽들은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셋째, 우리가 물리적 장벽의 제거와 함께 기억해야할 것은 우리 사회, 우리 도시의 모든 물리적 장벽이 단시간에, 그리고 한번에 제거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장애인에게뿐 아니라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에게 어느 정도의 물리적 장벽은 남아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인간의 한계이기도 하다. 다만 우리가 제거해야 할 것은 편견과 차별을 가져오는 물리적 장벽의 제거이다. 또한 편견과 차별에 기초해 만들어진 물리적 장벽의 제거이다. 그리고 이러한 물리적 장벽의 제거는 좁은 의미의 장애인에게 걸림돌이 되는 장벽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화된 포괄적 의미의 모든 장애인에게 걸림돌이 되는 장벽의 제거여야 한다. 최근의 무장애 도시 운동을 바라보며 올해 들어 많은 단체들이 무장애 도시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청계천이용권확보를 위한 연대는 무장애도시만들기공동행동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장애인권포럼에서는 무장애 도시에대한 세미나를 두 차례에 걸쳐 개최했다. 행정복합중심도시 건설과 관련해서도 그 도시를 무장애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무장애 운동 또는 무장애 도시에 대한 갑작스런 관심은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 한편으로는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 1999년 무장애도시만들기 운동, 2001년 무장애대학만들기 운동, 2002년 무장애마을만들기 운동 등을 펼쳐온 편의연대지만, 아직도 진정한 무장애 운동의 의미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1998년부터 편의연대와 무장애 운동을 함께 펼쳐온 도시연대 역시 마찬가지로 이 고민을 하고 있다. 편의연대나 도시연대가 무장애 도시 만들기 또는 무장애 운동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는 무장애의 개념을 어떻게 정립하느냐에 따라 무장애 도시는 진정한 장애 없는 도시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수많은 장애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장애 도시를 장애인에게 편리한 도시로 만들어 간다면, 결국 그 도시는 장애인에게만 편리한 도시가 될 수 있으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분리된 도시일 수 있다. 결국 무장애 도시는 장애인도 편리하게 살 수 있는 도시, 장애인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도시여야 하며, 그것은 도시 안에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사운데 장애인이 자연스럽게 포함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종종 새로운 건물을 짓거나 공사를 할 때, 장애인이 고려되지 않은 것을 발견한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건축가가 설계할 때 고려하지 않았거나, 시공을 맡은 담당자가 시공을 할 때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공담당자는 도면에 의지해 시설을 설치하므로 꼼꼼하고 자세한 도면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베를린을 비롯해 몇몇 도시에서는 이 모든 일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공사 중인 도로에서도 장애인을 비롯한 보행자를 위한 임시 보행로를 마련해두고 있었고,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경사로까지 설치하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설계에 의한 것이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설계가 필요 없다고 답변했다. 당연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자연스럽게 고려되는 사회,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어울려 살 수 있는 도시, 그것이 바로 무장애 도시가 아닐까? 그러나 올해 움직인 무장애 도시 만들기 운동들은 아쉽게도 장애인의 시각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시작된 것이었고,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결국 편의연대가 꿈꾸고 진행해 오던 무장애 도시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고, 이제 무장애 도시는 장애인이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는 도시로 만들어져가고 있다. 편의연대와 도시연대는 무장애 도시를 휠체어와 유모차가 함께 다닐 수 있는 도시로 그렸었다. 하지만 지금의 무장애 도시 운동에는 오직 휠체어만 보일 뿐이다. 무장애 도시 운동이 어쩌면 다시 장애인을 분리하는 운동, 장애인을 특화시키는 도시로 만들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 글은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http://www.accessrights.or.kr/)에서 발행하는 자유공간 96호(2005년 12월)에 실려 있습니다. 편의연대 배융호 정책실장( 무장애 도시 운동, 참여와 소통이 중심 되어야 무장애 도시 만들기 운동을 고민한다 ② [이영범 교수] 도시 안에서 우리들의 생존법 지금은 건널목이 생겼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복궁역 앞 자하문로에서 사직로의 정부종합청사방면으로 건너올 수 있는 길은 지하도가 유일했다. 언젠가 아침 출근길에 정부종합청사 인근의 오피스빌딩을 찾아 나선 야쿠르트 아줌마의 수레가 빨간 신호등을 틈타 잽싸게 건너오는 모습을 본 적 있다. 높은 양반들의 통행이 잦은 이 길을 지키는 교통순경 아저씨도 매일 아침 야쿠르트 아줌마의 생존이 걸린 무단 횡단을 애교로 보아 넘기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만들어 놓은 도시의 계단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건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폭력이다. 도시정의는 도시를 구현하는 절차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도시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모든 이들의 공존을 이야기한다. 나를 위해 네가 희생되어야 하는 나만의 천국이나 나를 짓밟고 이루는 당신들의 천국으로 가득 찬 도시는 때로는 나를, 때로는 너마저도 당연히 서야할 땅에서 매몰차게 내몬다. 도시에서 사는 삶이 축복이 아니라 목숨을 내 건 모험이라는 생각이 자주 드는 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도시적 삶의 한 부분으로 마주하게 되는 다른 이들의 삶의 양식이 공유할 수 있는 상식을 넘어서서 거의 폭력의 수준에 이르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큰 아이에게 건널목에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어도 절대 함부로 건너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친절을 베푸는 낯선 사람은 무조건 나쁜 사람일 수 있으니 절대로 믿지 말라고 가르치는 현실이 아마도 도시가 우리에게 준 달콤한 복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도시를 우리들의 천국으로 만들 수 있을까 살고 싶지 않은 도시에서 살 맛 나는 도시를 꿈꾼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른다. 화려하게 장식되어 우리의 욕망을 유혹하지만 정작 아이와 함께 나서려면 마땅히 갈 곳이 없는 곳, 그 곳이 바로 도시이다. 주차를 걱정해야 하고 차가 막히면 겪어야 할 짜증에 미리 질려버려 도시로의 외출을 두려워하는 도시민들은 어느 새 도시 안에 갇혀버린 셈이다. 경향이 반드시 운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경향의 변화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으며 그 변화의 주체는 결국 우리 각자일 수밖에 없다. 도시는 결국 도시 안에서 삶을 영위하며 도시의 구석구석을 만들고 가꾸는 우리 자신의 삶에 내재된 가치와 철학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사는 서울은 이 땅에서 ‘당신들의 천국’이 아닌 ‘우리들의 천국’이 과연 가능할 수 있는지 자꾸만 되묻는다. 우리들의 천국을 만드는 작은 작업들이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그 길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와 그 산하의 전문가 조직인 커뮤니티디자인센터에서 진행하는 한편공원사업은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진행하는 주민참여형 생활공간만들기 사업이다. 진정한 의미가 실종되어 버린 형식적인 민주참여 참여와 소통이 강조되는 요즈음 주민참여형으로 진행되는 사업 중에는 여전히 무늬만 참여인 경우도 많고 참여가 오히려 소통의 장애가 되는 경우도 많다. 지자체의 사업도 이제는 주민참여를 의무조항으로 집어넣어 진행되는 사례가 많지만 참여를 통해 알찬 수확을 거둔 예는 그리 많지 않다.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사업은 대체로 정해진 일정, 주어진 예산과 도달해야만 하는 사업목적으로 인해, 주민참여를 ‘다양한 목소리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개인적 이해관계와 갈등을 한 올 한 올 풀어내는 소통의 언어’보다는 ‘사업을 더디게 하는 장애와 장벽’으로 여기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참여가 문제를 더 크게 확대하고 주민간의 갈등을 키우고 이것저것 요구사항만 많이 만들어낸 애물단지가 되어 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니 참여한 주민들이 제시한 수많은 의견과 요구사항 중 수용하기 쉬운 것들만 추려서 서둘러 사업을 봉합하여 참여가 형식적인 수준에서 다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사동 골목길과 주민 협의체, 그리고 갈등 인사동의 길마당이 있는 골목길이 있다. 흔히 섬진강 골목길이라고 불리는 이 골목길에 상업주의와 가게마다의 이기주의가 급속히 불어 닥쳐오면서 암묵 속에서 유지되어온 골목길의 질서가 깨지기 시작했다. 길이 막히다 보니 사람들의 발걸음이 그 만큼 줄어들게 되고 그 줄어든 발걸음을 붙잡기 위해 서로들 골목길 밖으로 영업공간을 확장하고 간판을 줄지어 세워 놓게 되었다. 앞이 막히니 자연히 안으로 향한 발걸음은 더 끊기기 마련이고 골목길로 들어서서 가운데 난 큼직한 길마당도 어수선한 입간판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내 코가 석자라는 생각이 골목길이 유지해 온 가게들 사이의 질서와 관계를 깨뜨리게 되자, 가게 상인들 중에서 몇 명을 중심으로 골목길의 공간 갈등을 풀어내기 위해서 난립한 개별간판을 정비하고 골목길의 정취를 살릴 수 있는 공동간판을 만들기 위한 상인들 간의 모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삼년 전에 시작된 상인들 모임은 모임이 진행될수록 갈등은 커지고 감정의 골은 깊어만 갔다. 문제를 풀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주민들의 협의체가 오히려 서로의 감정을 건드려서 더 이상 논의도 불가능한 상태까지 이르렀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가 다시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시간은 6개월이 되기도 하고 1년이 되기도 했다. 모두의 갈등을 해결한 후에 공동간판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이제는 생각을 같이 하는 가제들이 먼저 골목길을 담은 공동간판을 만들어 갈등을 푸는 실마리로 활용하자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디자인안으로 주민참여를 통한 골목길 공동간판 만들기 사업을 이어나가게 되는 데 지금까지 3년이 걸렸다. 장애와 장벽이 없는 공간과 사회를 만드는 일에는 그 주체인 주민의 참여와 이들 간의 소통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주민참여가 오히려 사업의 장애가 되고 주민들 서로간의 장벽을 더 높게 쌓을 때 사업은 막막해지기만 한다. 마음이 급하면 오히려 발걸음은 더 무거워지기 마련이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는 어리석은 지혜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주민들의 참여나 시민단체간의 협력을 통해 사업을 진행하면서 얻은 깨달음이 있다면 그건 ‘참여란 인내와 시간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열매 맺기가 어려운 과실나무와 같다’는 사실이다. 이영범 /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교수,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 이사 이 글은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http://www.accessrights.or.kr/)에서 발행하는 자유공간 96호(2005년 12월)에 실려 있습니다. 이영범 교수(ybreigh@hanmail.net) 독일의 건축적 무장애 생활환경 무장애 도시 만들기 운동을 고민한다 ③ [성기창 교수] 장애인을 고려한 건축 환경의 창출에 있어서 장애인들은 그 어떤 특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환경 창출은 모든 인간에 적합한 계획이며, 또한 법이나 규정 이전에 인간 삶의 질에 대한 건축의 사회의식과 환경 창출에 대한 신념 그리고 이동 및 활동 제한으로 인한 인간적인 삶의 제한에 대한 건축의 감정이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애인을 고려한 환경 창출은 일반적인 일상생활을 고려한 환경 창출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이점에서 건축가는 모든 사람에 대한, 특히 사회의 주변그룹을 형성하는 어린이, 임산부, 유모차를 사용하는 사람, 노인, 지체장애인, 시각 및 청각장애인, 그리고 정신지체인 및 휠체어 사용자 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지닌 것이다. 따라서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현시점에서 장애인을 고려한 무장애 생활환경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양이 아니다. 이는 반드시 해야 하는 전제조건이며, 필요충분조건이다. 이러한 점에서 건축적 무장애 생활환경의 시대적 정당성이 있다 하겠다. 모든 인간과 공간 간의 적합성을 탐구하여 조성하는 무장애 생활환경의 개념이 일반적 건축 계획 및 설계의 보편적 개념으로써 적극적으로 실현된 사례를 베를린을 중심으로 한 독일의 경우에서 살펴보고, 이를 통해 무장애 생활환경 창출을 위한 몇 가지 기본 원칙들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무장애 생활환경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코 삶의 질, 즉 자신에게 적합한 주거공간에서의 삶을 배제한 채 주택보급률의 양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공공자금으로 공급되는 주거에서는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활동에 장애가 있는 노인 및 장애인들을 위해 무장애 주거환경의 개념이 기본원칙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둘째, 법적 구속력을 갖는 무장애 생활환경을 위한 건축계획 및 설계기준 등이 마련되어야 하며, 이에 대한 기본방향은 특정 장애유형을 위한 특별한 시설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회 통합적인 개념으로 모든 거주자를 위한 보편적 디자인의 개념으로 접근하여야 한다. 즉, 노인만을 위한 혹은 장애인만을 위한 특별 주거형태나 단지 혹은 시설 등과 같은 사회로부터의 격리 개념이 더 이상 일반화되는 것이 아니라, 노인 및 장애인들도 다른 일반인들처럼 가족이나 친구들을 방문할 수 있고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통합적 개념이 기본원칙이다. 셋째, 무장애 생활환경계획은 미래지향적인 건축계획이어야 한다. 즉, 한 인간의 전 생애를 고려한 건축개념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다. 나이 혹은 신체적 장애가 자신의 선택에 따라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삶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물리적 건축 환경의 부적합함이 특수시설의 필요성을 정당화하는 빌미를 제공한다. 따라서 무장애 생활환경의 창출은 사회학적 관점에서, 가족 간의 여러 세대를 통합하도록 유도하는 주거정책의 본질적 부분을 차지한다. 넷째, 무장애 생활환경계획은 거주자의 변화 및 개별적 필요에 대한 적응력이 높은 가변성을 기본원칙으로 한다. 즉, 승강기 등과 같은 편의시설의 추후 설치 등을 미리 고려해 충분한 여유공간 등을 계획 초반부터 통합적으로 계획한다면, 필요에 의해 설치할 경우 약간의 비용으로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변성의 개념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을 경우 필요에 의해 무장애 생활환경으로 변경하였을 때 소요되는 비용은 매우 높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무장애 건축은 결코 높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비경제적인 개념이 아닌 것이다. 다섯째, 모두를 위한 무장애 생활환경 창출로써의 편의시설 설치 원칙은 특정 장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대안 중심이다. 따라서 편의시설의 설치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장애물이 될 수 있는 대안은 배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추가 혹은 부수적인 시설의 설치 개념이 아니라 접근과 안전 그리고 식별성에 대한 편의시설의 기본 특성을 건축 설계 및 환경디자인의 기본개념으로서 접근하여, 각각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장애물을 제거하거나 적극적인 디자인으로 모두에게 최선의 대안을 창출하는 것이다. 즉,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가, 안전하게 이동 및 사용할 수 있는가, 주위환경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의 해답을 찾는 것이다. 성기창/한국재활복지대학교 생활환경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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