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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참사 3년, 후유증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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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6-02-16
지하철참사 3년, 후유증 아직도 [한겨레 기사 인용] 2003년 2월 18일 절에 간다며 ‘죽음의 전동차’ 대구지하철 1호선 1080호에 올랐던 신아무개(58·여·대구시 동구 방촌동)씨는 사고 발생 3년여 동안 심한 후유증에 시달려왔다. 그는 사고 후 호흡기 부상과 정신 질환으로 병원치료를 마친 뒤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행동을 보여왔다. 그는 보상금으로 받은 돈을 길에다 쌓아두고 제사를 지내기도 했고 자동차 헤드라이트나 가로등을 볼 때면 불을 꺼야 한다며 물을 뿌리거나 집안의 전기 코드를 모조리 뽑아버리는 이상한 행동을 보여 지난해 또 다시 6개월 가량 병원 신세를 졌다. 신씨의 상태는 더욱 악화돼 지금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참사 후 직장을 그만 둔 남편이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내와 소아마비 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을 돌보며 힘들게 살아간다고 이웃 주민들이 전했다. 사고 전동차 1079호에 올랐던 김아무개(43·여·대구시 서구 평리동)씨는 보상금 수령 문제 등으로 남편과 사이가 나빠져 끝내 이혼했다. 이후 김씨는 다단계 판매에 얽혀 보상금을 모두 사기당했고 2004년말 대구역 앞에서 노숙자 신세로 전락해 구걸하고 있는 것을 부상자 가족 대책위 회원들이 발견했다. 부상자대책위는 김씨를 데려다 월세방을 얻어 준 뒤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시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는데, 이따금 인근 무료급식소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고 한다. 대구시 동구에 사는 한 부상자도 참사 당시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를 하던 건실한 청년이었지만 화재 사고를 겪은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지금도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고 후 초기에 그는 한밤중 잠을 자다가 밖으로 나와 거실이나 공원 벤치 등 다른 곳에서 자고 들어오기 일쑤였고 때로는 침대 밑에 물을 갖다 붓거나 화가 나면 자해를 하기도 했다고 가족들이 말했다. 사고를 당한 전체 부상자 151명 중 지금까지 4명이 사고 후유증에 시달리다 끝내 세상을 뜨기도 했다. 이동우 부상자대책위 위원장은 “부상자들을 위해 조성된 만성후유증 기금 35억5천만원이 마련돼 있지만 부상자들이 필요로 할 때마다 제때 지급되지 않고 있다”며 대책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지하철참사 부상자들의 `끝이 없는 악몽''''> [연합뉴스 기사 인용] 사고 후유증으로 고통, 가정 파탄에 이르기도 (대구=연합뉴스) 한무선 기자 = 2003년 2월 18일 절에 간다며 `죽음의 전동차'''' 대구지하철 1호선 1080호에 올랐던 신모(58.여.대구시 동구 방촌동)씨는 사고발생 3년을 맞았으나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신씨는 사고 후 호흡기 부상과 정신질환으로 병원치료를 마친 뒤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행동을 보여왔기 때문. 신씨는 참사 후 받은 보상금을 길에다 쌓아두고 제를 지내기도 했고 자동차 헤드라이트나 가로등을 볼 때면 불을 꺼야 한다며 물을 뿌리거나 집안의 전기 코드를 모조리 뽑아버리는 특이한 행태를 보여 지난 해 또다시 6개월가량 병원 신세를 졌다. 그러나 신씨의 상태는 더욱 악화돼 지금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참사 후 직장을 관둔 남편이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내와 소아마비를 앓고 있는 아들을 돌보면서 가정이 파탄 났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사고 전동차 1079호에 올랐던 김모(43.여.대구시 서구 평리동)씨는 부상참사 후 보상금 수령 문제 등으로 남편과 사이가 나빠져 끝내 이혼했다. 이후 김씨는 다단계 판매에 개입돼 갖고 있던 보상금을 모두 사기당했고 2004년말 대구역 앞에서 노숙자 신세로 전락해 구걸하고 있는 것을 부상자가족대책위원회 회원들이 발견했다. 이후 부상자대책위는 김씨를 데려다 월세방을 얻어 준 뒤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시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는데 이따금 인근 무료급식소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고 한다. 대구시 동구에 사는 A씨(24)는 참사 당시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를 하던 건실한 청년이었지만 화재사고를 겪은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지금도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고 후 초창기에 그는 한밤중 잠을 자다가 밖으로 나와 거실이나 공원 벤치 등 다른 곳에서 자고 들어오기 일쑤였고 때로는 침대 밑에 물을 갖다 붓거나 화가 나면 자해를 하기도 했다. A씨의 어머니(46)는 "불안해하던 증상이 많이 완화됐지만 지금도 계속 약을 복용하고 있고 공부를 관두고 정상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는 아들이 안쓰럽다"며 "누가 아들을 평생 보살펴 줄 것인가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구지하철참사 후 부상자들은 사고가 남긴 여러 가지 후유증으로 극단적으로는 인격 또는 가정 파탄을 겪거나 정상생활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부상자대책위는 밝혔다. 사고로 인한 전체 부상자 151명 중 지금까지 4명이 사고 후유증에 시달리다 끝내 세상을 뜨기도 했다. 부상자대책위 관계자는 "대구시는 부상자들을 위해 조성된 만성후유증기금 35억5천만원으로 부상자들이 필요로 할 때마다 즉각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비인후과 질환을 보이고 있는 90여명에 대한 추가 보상을 통해 이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하철참사 부상자들의 `끝이 없는 악몽'', 정신질환 후유증> 사고 후유증으로 고통, 가정 파탄에 이르기도 2003년 2월 18일 절에 간다며 `죽음의 전동차'' 대구지하철 1호선 1080호에 올랐던 신모(58.여.대구시 동구 방촌동)씨는 사고발생 3년을 맞았으나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신씨는 사고 후 호흡기 부상과 정신질환으로 병원치료를 마친 뒤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행동을 보여왔기 때문. 신씨는 참사 후 받은 보상금을 길에다 쌓아두고 제를 지내기도 했고 자동차 헤드라이트나 가로등을 볼 때면 불을 꺼야 한다며 물을 뿌리거나 집안의 전기 코드를 모조리 뽑아버리는 특이한 행태를 보여 지난 해 또다시 6개월가량 병원 신세를 졌다. 그러나 신씨의 상태는 더욱 악화돼 지금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참사 후 직장을 관둔 남편이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내와 소아마비를 앓고 있는 아들을 돌보면서 가정이 파탄 났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사고 전동차 1079호에 올랐던 김모(43.여.대구시 서구 평리동)씨는 부상참사 후 보상금 수령 문제 등으로 남편과 사이가 나빠져 끝내 이혼했다. 이후 김씨는 다단계 판매에 개입돼 갖고 있던 보상금을 모두 사기당했고 2004년말 대구역 앞에서 노숙자 신세로 전락해 구걸하고 있는 것을 부상자가족대책위원회 회원들이 발견했다. 이후 부상자대책위는 김씨를 데려다 월세방을 얻어 준 뒤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시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는데 이따금 인근 무료급식소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고 한다. 대구시 동구에 사는 A씨(24)는 참사 당시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를 하던 건실한 청년이었지만 화재사고를 겪은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지금도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고 후 초창기에 그는 한밤중 잠을 자다가 밖으로 나와 거실이나 공원 벤치 등 다른 곳에서 자고 들어오기 일쑤였고 때로는 침대 밑에 물을 갖다 붓거나 화가 나면 자해를 하기도 했다. A씨의 어머니(46)는 "불안해하던 증상이 많이 완화됐지만 지금도 계속 약을 복용하고 있고 공부를 관두고 정상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는 아들이 안쓰럽다"며 "누가 아들을 평생 보살펴 줄 것인가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구지하철참사 후 부상자들은 사고가 남긴 여러 가지 후유증으로 극단적으로는 인격 또는 가정 파탄을 겪거나 정상생활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부상자대책위는 밝혔다. 사고로 인한 전체 부상자 151명 중 지금까지 4명이 사고 후유증에 시달리다 끝내 세상을 뜨기도 했다. 부상자대책위 관계자는 "대구시는 부상자들을 위해 조성된 만성후유증기금 35억5천만원으로 부상자들이 필요로 할 때마다 즉각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비인후과 질환을 보이고 있는 90여명에 대한 추가 보상을 통해 이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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