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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은 또 다른 치유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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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6-04-23
‘예술작품은 또 다른 치유 수단’ [한경비즈니스 기사 인용] ‘여기가 병원 맞나요?’ 서울 영등포구 대림성모병원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그리고 이내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병원이 온통 미술작품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마치 갤러리에 들른 듯한 착각이 들게 할 정도다. 1층 로비에는 이종상 화백의 동판 ‘부활’과 임영선 화백의 ‘치유의 성모상’이라는 작품이 눈에 띈다. 13층 빌딩 복도와 병실에는 그림 30여점이 환자들 곁을 지키고 있다. “15년 만에 약속을 지킨 셈이지요.” 김광태 대림성모병원 이사장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흘렸다. 무슨 사연일까. 그러니까 37년 전이다. 1968년 군의관으로 전역한 김이사장은 69년 11월 대림성모병원을 개원했다. 영등포를 택한 이유는 하나다. 의료서비스의 사각지대였기 때문이다. 여기라면 병원설립의 의미가 남다를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병원을 경영하면서 한 가지 아쉬움이 생겼다. 그 아쉬움은 세월이 흐르고, 병원규모가 커져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환자가 의사를 100%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반드시 수술을 해야 하는 환자에게 수술을 권유해도 이를 거절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것은 서로간의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럴까 생각했어요. 사실 환자가 의료 질을 평가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까. 의심하게 되니 신뢰가 깨어지는 것이지요. 어쩌면 좋을까 하고 방법을 찾아봤어요. 곰곰이 따져보니 의료서비스 이외의 영역에서 신뢰를 쌓는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메세나’다. 작품을 구입하면 병원 복도에 걸었다. 하지만 15년 전에 기증받은 이화백의 작품은 미루고 미뤘다. 이화백이 워낙 유명한 화가였기 때문이다. 작품 또한 대작이었다. 좁은 공간에 걸기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보다 큰 병원을 세워 전시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그러다가 2년 전 병원 리노베이션에 들어가면서 이화백의 허락을 얻어 4월10일 동판제막식을 가진 것이다. 환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치료 이외에도 돈을 들인다는 데 감격하는 분위기다. 직원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좋은 환경에서 근무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병원을 지역문화공간으로 꾸밀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학생들의 그림 그리기 대회를 연다든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젊은 화가들의 작품전시회를 갖는 등의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그림뿐만 아니라 기회가 되면 음악회 등도 직접 주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역에 필요한 문화가 무엇인지를 꾸준하게 찾아볼 것”이라며 병원 메세나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가 병원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병상수는 20개에 불과했다. 지금은 405개로 약 20배가 늘어났다. 31개의 진료과와 100개의 외래진료실은 운영하고 있다. 그는 “병원을 시작할 때는 이렇게 커질 줄 미처 몰랐다”고 한다. 비결은 “신뢰”라고 요약한다.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 환자를 속이면 10년도 가기 어렵지요. 그래서 의료윤리가 중요한 겁니다. 또 하나 이야기하면 절대 포기하지 않았어요. 남들이 포기한 환자도 받아들였어요. 이렇게 한 번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영원토록 이어지는 법입니다.” 그는 앞으로 전문병원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주변에 종합병원이 생긴데다 병원을 하다 보니 그 어느 곳보다 강한 분야가 생기더라는 것이다. 특히 갑상선과 유방 관련 질병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 3대뿐인 자기공명영상장비(MRI), 최첨단 갑상선 열치료기, 최신 X선 유방 촬영기 등 최신장비를 갖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약력:1937년생. 61년 가톨릭대 의학과 졸업. 69년 대림성모병원 개원. 2002년 대한병원협회 회장. 2005년 국제로타리 이사. 2007년 아시아병원협회 차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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