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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 부모, 그림자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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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06-05-29
[아침논단] 헬리콥터 부모, 그림자 부모
( 조선일보 기사 인용)
지성의 상징 대학 안에도 몸만 어른인 청년 수두룩
부모가 과잉보호 계속땐 자녀들에 비극적 후유증
▲ 신의진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최근 ‘자녀를 독립적으로 키우는 12가지 방법’을 소개해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일반적으로 미국 부모들은 한국 부모에 비해 아이들의 정신적 독립을 강조하면서 키우는 편이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도 성인이 된 자녀의 주변을 맴돌며 간섭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나 보다. ‘헬리콥터 부모’(helicopter parents)라는 신조어까지 유행하는 걸 보면.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그렇게 따지면 대한민국 부모들은 대부분 헬리콥터 부모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림자 부모’라는 말이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최근 급식문제로 교사를 찾아가 무릎 꿇게 한 부모들은 그 자녀들이 아직 초등학생이란 점에서 배려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성의 상아탑’이라는 대학 캠퍼스에서도 극성 부모와 자녀들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얼마 전 이른바 명문대에 다니는 대학생과 그 어머니가 찾아왔다. 외아들인 이 청년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강의 스케줄은 물론 자신의 생활 계획을 세우지 못해 어머니가 도와준다고 했다. “어머니가 스케줄 표를 일일이 관리해주면 불편하지 않냐?”고 묻자, 이 남학생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가 잘못되는 게 두렵고 무섭다”고 말했다. 부모가 대신 선택해준 전공 과목과도 적성이 거의 맞지 않는 듯 보였지만, 어머니 아버지를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아 속으로만 앓고 있었다. 신체적 성숙은 이뤘지만 부모로부터 정신적 독립은 이루지 못한 채 완벽주의의 덫에 걸린 ‘우울한 키덜트’였다.
이 경우는 조금 심각한 케이스이긴 하지만, 다른 대학생들이라고 해서 큰 차이가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내가 가르치는 의과대학 학생들만 해도, 어떤 환자의 증세에 대해 논해 보자고 토론을 제안하면 책에 나와 있는 모범답안들만을 얘기하지, 자신의 독창적인 의견(설령 틀리더라도)이나 새로운 문제 제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머리는 좋은데 자기만의 생각이 없고, 책임감은 더더욱 부족하다는 게 동료 교수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미래 교육에 관한 전문가인 프랑스의 에드가 모랭 교수는 “미래 사회의 유능한 인재는 불확실한 현실에 대처하는 유연한 사고력, 인간 본성에 대한 폭넓은 이해, 지구인으로서의 정체성 확립, 건전한 윤리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의 교육 현실에 비추어 보면 참으로 멀고 먼 이야기이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청년들이 우리 사회에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우울한가. 글로벌 시대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며 너도나도 교육 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우리 대학에게 맡겨진 첫째 과제는 대학입시라는 비인간적 관문을 뚫느라 정신적 성장은 유년기에서 멈춘 학생들의 인격 교육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대학마저도 취업 준비 교육기관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학생들은 죄다 ‘취업고시생’으로 밤잠을 설치고, 가시적 연구 성과물을 요구받는 교수들은 ‘논문제조기’로 전락해가고 있다. ‘경쟁이 최선’인 신자유주의 시대이니 할 수 없다고? 그렇다면 세계 유수의 대학들은 어떤가. 대부분 기숙 생활을 하면서 부모로부터 독립돼 있을 뿐만 아니라, 세속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자기들만의 독특한 캠퍼스 문화를 즐기며 학문에 몰두한다. 내가 아는 한 우리처럼 도서관에 앉아 취업 준비에만 몰두했다가는 학점 ‘빵점’을 각오해야 한다.
‘한국 대학은 고등학교의 연장’ ‘상아탑이 아니라 우골탑’이라는 비아냥을 듣지 않기 위해 정부와 대학당국, 부모들이 해야 할 일은 참으로 많다. 아무리 경쟁이 미덕인 사회라지만 대학 고유의 가치를 저버릴 순 없지 않은가. 부모들 또한 인생의 모든 목표를 대학입시에 두고 아이를 과잉보호하며 양육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전문가로서 감히 단언하건대, 그 후유증이 자녀의 인생에 미치는 여파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비극적이다.
신의진 연세대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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