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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통 출발점은 진실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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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Dr.황세희의몸&마음] 의사소통 출발점은 진실된 마음

기사입력 2008-05-19 01:14 기사원문보기
[중앙일보 황세희] 초일류병원 교수로 재직하며 ‘신의 솜씨’라는 격찬을 받던 교수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에겐 생명을 대하는 의사의 기본 덕목인 겸허함이 없었다.

불손한 말투로 환자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일은 예사였다. 물론 그의 태도가 문제되진 않았다. 병 치료를 원하는 환자의 갈망과 훌륭한 수술 결과 덕분이었다.

하지만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 위험을 감수해야 되는 수술도 있게 마련이다. 실제 그에게도 수술 도중 환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보호자들은 분노에 차 연구실 앞에서 집요하게 시위를 했고, 급기야 그는 출퇴근도 힘든 상황에 처했다. 난이도 높은 수술의 위험성과 현대의학의 한계를 설명했지만 보호자의 화를 풀기엔 역부족이었다.

병원에선 일단 설득을 포기하고 보호자의 요구 조건부터 듣기로 했다. 예상했던 답변은 병원비 면제나 보상금 등이었다. 하지만 내용은 뜻밖에도 이랬다.

“수술 도중에 환자가 사망한 사실은 슬프고 화나지만 사망 위험이 있는 수술이라는 점은 이해한다.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는 유명세와 권위를 등에 업고 진료 첫날부터 환자가 죽는 순간까지 계속된 의사의 오만한 태도다. 그의 ‘공개적’이고 ‘진심’어린 사과를 받지 않고선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 이후 병원에는 그가 자존심(?)을 굽히며 보호자에게 거듭 사과했다는 후문이 돌았다.

본능적 이기심에 손익계산까지 밝은 현대인에겐 명분보다 실리가 힘을 얻기 쉽다. 현 정부도 경제를 살리겠다는 실용주의를 인정받아 탄생했다.

하지만 복잡 미묘한 게 인간 심리다. 실로 세상에는 논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불합리한 일도 적지않게 일어난다. 인간의 대뇌에는 이성적 판단을 관장하는 부위만큼이나 감성을 조절하는 부분도 크기 때문이다.

정신의학계에선 이런 현상을 무의식·콤플렉스·타고난 품성 등을 동원해 설명한다. 매사 관대한 사람이 어떨 땐 사소한 일로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하고, 악마 같은 사람이 하찮은 일에 눈물을 보이기도 하는 이유다.

지금 대한민국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국민의 공포와 분노로 들끓고 있다. 정부에선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인간 광우병이 발생하는 확률은 1억분의 1도 안 된다는 식의 설명을 하며 합리적 이해를 구하지만 목적 달성은 요원해 보인다. 손쓸 길 없는 낯선 위험을 회피하고 싶은 반사적 본능이 위험 가능성을 계산하고 인식하는 대뇌의 기능보다 우선하는 데다 수입 결정 과정이 수많은 국민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준 탓이다.

특히 저렴한 미국 쇠고기는 안 먹을 듯싶은 ‘강부자’ 각료가 “미국산 쇠고기는 값싸고 질 좋으니 맘껏 드시라” 는 식의 권유를 하니 구겨진 국민적 자존심은 분노로 폭발한 것이다.

‘소통 과정’에서 국민의 콤플렉스를 실컷 자극한 정부는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까. 정신의학자들은 이제라도 정부가 치졸한 변명 대신 국민과 공감하는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받은 상처가 조금씩이나마 회복될 수 있다.

지진 참사를 접한 이웃 나라 중국인의 공포와 분노를 덜어주는 묘약은 논리적인 대응책이 아니라 운동화를 신고 지진 현장에 달려가 피해자와 함께 눈물로 공감하는 지체 높은 원자바오 총리의 모습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원자바오 총리 식의 진실된 감성 정치가 절실해 보인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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