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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제도적 장치 마련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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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8-05-21
[시론] '존엄사' 제도적 장치 마련할 때
 
사전의사 결정제도 도입 등 국회가 적극 해결에 나서야

( 조선일보 기사 인용)

윤영호·국립암센터 기획조정실장·가정의학과 전문의
입력 : 2008.05.20 22:05
▲ 윤영호· 국립암센터 기획조정실장·가정의학과 전문의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 인공호흡기로 연명(延命)하는 75세 할머니의 자녀들이 법원에 어머니의 연명치료를 중단해 달라는 가처분신청을 해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 어머니가 자연스럽게 죽게 해달라는 요구이다. 이들의 변호사는 또 헌법재판소에 "소극적 안락사(安樂死)에 대한 법률이 없고 국민건강보험법에도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막는 규정이 없는 것은 행복추구권과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위헌을 확인해 달라는 헌법소원을 냈다. 정부가 '소극적 안락사'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지 않은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위해 필요한 것은 사전의사결정제도이다. 환자가 미리 자신의 의사를 결정해 놓자는 것이다. 이는 의료윤리의 기본 원칙인 '자율성 존중의 원칙'과도 일치한다. 이 법이 있었다면, 최근에 타계하신 '토지'의 작가 박경리씨도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기 전에 사전의사결정서를 작성했을 것이다. 항암치료마저 거부했던 그가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면서 생명을 연장하기를 희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를 도입하기에 앞서 '존엄사(尊嚴死)'와 '소극적 안락사'는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소극적 안락사'란 환자나 가족의 요청에 따라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영양공급, 약물 투여 등을 중단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환자의 생명을 단축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시아보 사건이 논란이 되었던 이유는 바로 식물인간상태에서 생명 유지에 필요한 영양공급을 중단했기 때문이며 이는 소극적 안락사에 해당한다. 반면 '존엄사', 즉 품위 있는 죽음은 말기 환자가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다. 이때의 죽음은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에 의한 자연적인 결과이지 이러한 치료의 중단으로 결코 죽음이 앞당겨지는 것이 아니다. 의료계나 종교계는 소극적 안락사에 대해서는 명확히 반대하나 존엄사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찬성하는 입장이다.

존엄사를 뒷받침해 주는 사전의사결정제도의 핵심은 기대 여명(餘命)에 대한 정확한 판단 절차와 환자의 자율성 존중 범위이다. '기대 여명'이란 환자에게 '남아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생명 기간'을 말한다. 회복이 불가능한 죽음의 과정으로 접어들었는지 아니면 영양공급이나 인공호흡을 통해 생명 연장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학적 판단이 중요하다.

설사 회복 불가능하다는 의학적 판단이 되었다 하더라도 환자가 자의(自意)에 의해서 중단할 수 있는 치료의 범위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뿐만 아니라 항생제, 수혈, 투석, 강심제, 항암치료 등도 말기 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의 대상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전의사결정에는 이러한 치료에 대해서도 환자가 구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오랜 기간 치료비 부담을 하다 보면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힘들게 되므로 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안전장치도 필요하다. 개인 혹은 가정이 환자 간병 부담을 감당할 수 없을 한계상황에 이르렀을 때 경제적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개인의 부채를 해결하고 신용을 회복해 주는 개인파산신청이나 신용회복위원회 제도를 거울삼을 필요가 있다.

현재 이 사건은 법원의 판단만으로는 될 수 없다. 법 제정과 예산 편성 등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민생을 책임진 국회가 나서야 한다. 얼마 전 국민 여론조사에 따르면,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과 '사전의사결정'에 대해 80% 이상의 국민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죽음에 대한 공포만큼이나 기계에 의존한 비참한 죽음을 맞고 싶지 않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본다. 국회의 노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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