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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중풍] 요양시설·병원 정원 3만4000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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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08-06-03
[중앙일보 김창규.김은하.백일현.김진경.김민상] 서울에 사는 조모(64)씨는 올 초 어머니(88)가 길을 잃는 사례가 많아진 이후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는 치매였다. 조씨는 어머니를 돌볼 방안을 찾았으나 마땅한 시설이 없었다. 치매 환자를 낮 동안 보호해 주는 주간보호센터를 찾아갔지만 “이미 대기자가 많아 언제 차례가 올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결국 아내와 맞벌이를 하던 조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한국의 치매·뇌졸중(중풍) 환자를 돌보는 제도나 시설은 걸음마 단계다. 일본이나 독일처럼 환자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거의 없다. 치매 노인을 위한 주간보호시설이 있지만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도 대소변을 스스로 가릴 수 있는 경증 환자 위주로 받고 있어 중증 치매환자는 이용을 꿈도 못 꾼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집계한 것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치매나 중풍 환자가 갈 수 있는 노인전문요양시설이나 노인전문병원의 정원은 3만4000여 명이다. 환자를 낮 동안 맡길 수 있는 주간보호시설과 최대 6개월까지 맡길 수 있는 단기보호시설의 정원은 9800여 명에 불과하다. 국내 치매·중풍 환자가 100만 명에 달하는 것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시설 부족 현상은 조금 개선될 전망이다. 최근 들어 지방자치단체에서 치매 환자를 위한 각종 시설을 마련하고 있고, 고령이나 치매·중풍과 같은 노인성 질병으로 혼자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노인에게 간병·수발·목욕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이 7월에 실시되기 때문이다.
서울시 마포구 보건소는 망원1동 주민센터에 치매환자를 위한 건강마을센터를 지난달 29일 열었다. 낮 동안 노인을 맡아 주는 주간보호 기능을 할 뿐 아니라 간호사가 상주하며 치매 상담 등도 하고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7월에 시행되면 올해에만 17만 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거동이 불편한 65세 이상 노인이나 65세 미만이더라도 중증 치매·중풍과 같은 노인성 질병에 걸린 사람에게 요양시설 이용료의 80%, 재가 서비스(요양보호사가 가정을 방문해 가사활동·목욕·간호 등을 제공하는 것) 이용료의 85%를 지원해 주는 제도다. 노인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는 중증환자는 그러나 의사가 상주하는 노인병원에는 입원할 수 없다.
이 제도가 실시돼도 보험 적용 대상(1~3등급)이 아닌 상당수 환자와 가족은 어려움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혼자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환자가 대상이다. 따라서 '몸은 멀쩡하지만 뇌에 이상이 있는' 상당수 치매 환자는 보험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재혁 복지부 요양보험제도과장은 “장기요양보험 신청자 8만여 명에 대해 방문조사를 해보니 치매 환자의 90% 이상이 보험적용 대상인 3등급 안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7년째 치매 아내를 수발하고 있는 이병래(80)씨는 “이 제도는 요양시설 입소 환자 위주로 만들어진 것 같다”며 “요양시설은 병원이 아니어서 치매환자가 감기 같은 질병에 걸렸을 때 적절한 치료를 받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은아 서울시립 서북병원 신경과장은 “치매 환자 가족이 원하는 것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격리시설이 아니라 환자가 쉽게 갈 수 있는 집 주변 시설”이라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측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수급대상자에게 신체활동과 일상 가사지원과 같은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보험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건강보험과는 다르다”며 “ 계속 보완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치매·뇌졸중(중풍) 환자를 돌보는 제도나 시설은 걸음마 단계다. 일본이나 독일처럼 환자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거의 없다. 치매 노인을 위한 주간보호시설이 있지만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도 대소변을 스스로 가릴 수 있는 경증 환자 위주로 받고 있어 중증 치매환자는 이용을 꿈도 못 꾼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집계한 것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치매나 중풍 환자가 갈 수 있는 노인전문요양시설이나 노인전문병원의 정원은 3만4000여 명이다. 환자를 낮 동안 맡길 수 있는 주간보호시설과 최대 6개월까지 맡길 수 있는 단기보호시설의 정원은 9800여 명에 불과하다. 국내 치매·중풍 환자가 100만 명에 달하는 것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시설 부족 현상은 조금 개선될 전망이다. 최근 들어 지방자치단체에서 치매 환자를 위한 각종 시설을 마련하고 있고, 고령이나 치매·중풍과 같은 노인성 질병으로 혼자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노인에게 간병·수발·목욕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이 7월에 실시되기 때문이다.
서울시 마포구 보건소는 망원1동 주민센터에 치매환자를 위한 건강마을센터를 지난달 29일 열었다. 낮 동안 노인을 맡아 주는 주간보호 기능을 할 뿐 아니라 간호사가 상주하며 치매 상담 등도 하고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7월에 시행되면 올해에만 17만 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거동이 불편한 65세 이상 노인이나 65세 미만이더라도 중증 치매·중풍과 같은 노인성 질병에 걸린 사람에게 요양시설 이용료의 80%, 재가 서비스(요양보호사가 가정을 방문해 가사활동·목욕·간호 등을 제공하는 것) 이용료의 85%를 지원해 주는 제도다. 노인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는 중증환자는 그러나 의사가 상주하는 노인병원에는 입원할 수 없다.
이 제도가 실시돼도 보험 적용 대상(1~3등급)이 아닌 상당수 환자와 가족은 어려움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혼자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환자가 대상이다. 따라서 '몸은 멀쩡하지만 뇌에 이상이 있는' 상당수 치매 환자는 보험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재혁 복지부 요양보험제도과장은 “장기요양보험 신청자 8만여 명에 대해 방문조사를 해보니 치매 환자의 90% 이상이 보험적용 대상인 3등급 안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7년째 치매 아내를 수발하고 있는 이병래(80)씨는 “이 제도는 요양시설 입소 환자 위주로 만들어진 것 같다”며 “요양시설은 병원이 아니어서 치매환자가 감기 같은 질병에 걸렸을 때 적절한 치료를 받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은아 서울시립 서북병원 신경과장은 “치매 환자 가족이 원하는 것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격리시설이 아니라 환자가 쉽게 갈 수 있는 집 주변 시설”이라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측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수급대상자에게 신체활동과 일상 가사지원과 같은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보험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건강보험과는 다르다”며 “ 계속 보완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중앙일보 김창규.김은하.백일현.김진경.김민상] 한국에서 치매나 뇌졸중(중풍) 환자는 가족의 헌신적인 사랑이 없으면 사람답게 살기가 어렵다. 이들을 위한 시설이나 제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치매나 중풍 환자가 생기면 환자를 보살피는 일은 고스란히 가족의 몫이다. 고통과 경제적인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는 가족에게 외면당하는 환자도 적지 않다. 실제로 7월 시행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신청한 치매·중풍 노인 10명 중 2명이 홀로 살고 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재활에 힘쓰는 치매·중풍 환자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중풍 남편 위해 16년간 전국 곳곳 누벼”=울산에 사는 송경한(56)씨는 중풍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벌써 16년째다. 송씨는 1992년 10월 방에서 쓰러졌다. 방바닥에 침을 흘리고 있는 송씨를 아내 김태숙(52)씨가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3일 만에 깨어난 송씨는 오른쪽 뇌혈관이 경색돼 말을 잃어버렸다. 후유증으로 송씨는 어린아이가 돼 버렸다. 병원에서 진단한 송씨의 정신 연령은 7세. 그가 쓰러질 당시 둘째 딸(3세)보다는 높았지만 첫째 딸(당시 8세)보다도 어린아이가 된 것이다.
아내 김씨는 처음에는 “우에 살아야 하노”라고 울부짖으며 여러 날을 지냈다. 김씨가 마음을 다잡은 것은 “사람(남편)은 살리고 봐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부터다. 그는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결혼 전 경험을 살려 의류 수선집을 차렸다. 매달 60만원씩 나가는 남편의 약값과 아이 교육비를 혼자 감당하기 위해선 다른 수가 없었다.
김씨가 일을 마치고 녹초가 돼 집으로 돌아오면 집안은 늘 난장판이었다. 아이가 돼 버린 남편은 딸을 때리고 욕을 해댔다. 우뇌가 손상된 남편은 언어 능력이 떨어져 쉽고 간단한 욕만 반복했다. 아이들도 아빠의 거친 행동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김씨는 “아이들이 어렸기 때문에 아빠가 아픈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흔들릴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이들을 다독이며 남편의 재활에 온 힘을 쏟았다. 남편을 데리고 전국의 '용하다'는 병원은 다 찾아다녔다. 약도 꼬박꼬박 먹였다. 집 근처에 중풍 환자를 위한 물리치료소 같은 곳을 찾아봤지만 허사였다.
김씨는 “쉽게 갈 수 있는 물리치료소가 없어서 산을 오르내리며 재활 운동을 했다”고 말했다.
가족의 노력 앞에 송씨를 짖누른 병마도 힘을 잃기 시작했다. 김씨는 “남편이 1년에 한 번씩은 발작을 일으켜 '송장'(의식을 잃고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이 돼서 병원에 실려 갔었다”며 “6년 전부터 이런 일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제는 남편은 두 딸들을 때리지도 않는 '조용한 신사'가 됐다. 송씨는 아직 말을 제대로 못하지만 매일 산을 오르며 삶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할머니 목욕 날은 가족 단합대회”=남아름(19·대학생·서울 영등포동)·다운(19·대학생) 쌍둥이 자매네 가족은 매주 일요일 가족 단합대회를 연다. 단합대회는 중풍에 걸린 외할머니 김양순(77)씨를 목욕시키는 행사다. 오빠 경원(20·대학생)씨는 할머니를 바로 옆 화장실로 옮기고 아름·다운 자매는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고 기다린다. 그 사이 어머니 김경숙(53)씨는 일주일 동안 바닥에 깔렸던 이불을 걷어내고 청소를 한다.
아버지 남상천(50)씨는 “장모님 덕분에 가족의 구심점이 생기고 '가족이란 게 이런 거구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5년 전 중풍으로 쓰러졌다. 왼쪽 뇌에 출혈이 생겨 오른쪽 근육을 쓸 수 없게 됐다. 쌍둥이 자매 부모는 당시 식당을 운영했다. 할머니를 돌보는 일은 자연스럽게 아이들 몫이 됐다. 아름·다운 자매는 그때나 지금이나 새벽 5시30분에 일어난다.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할머니 기저귀 확인이다.
어머니 김씨는 “(할머니 변을 보면) 애들이 냄새도 나고 비위도 상할 텐데 다 받아준다”고 말했다. 자매는 군말 없이 할머니 기저귀를 갈아 낀 뒤 아침상을 차리고 한 숟가락씩 음식을 할머니 입에 넣어 줬다. 다운양은 “할머니가 아침에 내 이름 불러주고 쓰다듬어 주기 때문에 편안하게 하루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지난 주 할머니가 의식불명에 빠졌다. 동공이 풀리고 말해도 대답이 없었다. 5년 동안 서서히 진행된 중풍은 이제 왼쪽 손도 못 쓰게 만들었다. 그래도 쌍둥이 자매는 포기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손을 주물러 드리고 말을 계속 걸었다. 며칠 후 기적같이 할머니의 의식이 다시 돌아왔다. 김씨는 “임종을 준비하고 있었다”며 “자식들이 어머니께 생명을 다시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보건소에서 약과 기저귀를 무료로 받고 있다”며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병원에 가려면 환자 이동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비용은 왕복 10만원에 달한다.
김씨는 “치매·중풍 환자를 위한 복지 서비스가 어떤 것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며 “이런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주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김창규.김은하.백일현.김진경.김민상]
치매에 걸린 당신에게
당신이 이 편지를 읽을 수 없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걸 알고 있소.
하나님께서 나의 심정을 당신의 심령(心靈)에 전해 주실 것을 기원하면서 이 글을 쓰오.
당신과 결혼한 50년 전은 내가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때였소.
당신은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불평 없이 내조를 잘해 주었어.
1남 2녀를 낳아 잘 길러줘 내가 사회 생활하는 데 큰 힘이 돼 주었소.
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새 날을 주셨으니 건강도 주셔서 당신을 잘 돌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오. 내가 오래 살아서 당신을 끝까지 돌보기를 소망하오.
무엇보다 가장 간절한 소망은 당신이 사는 날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오.
만일 내가 먼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떠나더라도 너무 염려 마시오.
당신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요양원에 입소할 수 있도록 자식들에게 당부해 놨소.
이번 기회에 당신에게 용서를 구할 것이 있소. 그동안 당신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하루에도 5~6차례 몸을 더럽히고 옷을 버릴 때나, 감기·몸살로 열이 많아 고생하거나,
항문 주변에 습진이 심해서 몹시 고생할 때는
차라리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을 마감해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여러 차례 있었소.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오. 용서해 주시오.
당신은 과거의 기억은 물론 조금 전에 있었던 일조차 기억하지 못한 지가 제법 됐소.
이제는 말도 잊어버렸소. 복받은 인생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
그래도 근심 없는 당신의 밝은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오.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 것 같소.
당신이 인생을 평안하게 마감하기를 기도하오. 나의 뜻이
당신의 심령에 전달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소.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항상 옆에서 지켜주겠소.
당신을 사랑하는 남편으로부터.
“내가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아내를 돌볼 테지만 불행히도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된다. 내가 지금까지 조사해 놓은 요양원이 몇 군데 있는데 그곳을 너희가 좀 더 알아보고 어머니를 그곳에 모시도록 해라. 비용은 우리 부부가 살아온 이 집을 처분하든, 너희가 나눠 부담하든 알아서 해라. 마지막 부탁이 하나 있다. 내 평생 너희 3남매가 화목하게 잘 살기를 바라 왔다. 내가 떠난 뒤 너희 어머니만 남아 부담이 되더라도 끝까지 너희 3남매가 화목한 가정을 지키길 바란다.” 이씨는 아내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것을 우려해 자식(1남2녀)에게 남기는 유언장을 작성해 뒀다
서울 광장동에 사는 이병래(80)씨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 한국화이자 부사장을 지냈다. 은퇴 후에는 한국생산성본부 경영세미나 강사 등을 하며 72세까지 활동을 했다. 현재 치매에 걸린 아내 조숙자(78)씨와 둘이 살고 있다. 아내 조씨는 2002년 치매 진단을 받았으며 현재 알아보는 사람은 오직 남편인 이씨뿐이라고 한다.
# 지난달 19일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 중풍치매노인 시설인 솔베르야. 중증 치매 환자인 아르네(85) 할아버지는 이날도 옛날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이 배급표를 들고 우유를 사러 갔어. 어머니가 한 장씩 잘라주면 버터도 사고 고기도 사곤 했지….” 할아버지의 손에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한 식료품 배급표가 들려 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그저 나이 드신 분의 회상이 아니다. 기억의 끈을 이어가는 치매 치료를 받고 있는 것이다. 배급표도 운동치료사 제니(27)가 준비한 상자에서 꺼낸 것이다. 그 상자에는 1940년대의 물건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제니는 물건을 하나둘씩 꺼내며 할아버지를 시간 여행으로 이어 가고 있었다.
이번엔 옆에서 묵묵히 할아버지를 지켜보던 다르마(90) 할머니가 나섰다. 할머니 역시 중증 치매 환자다. 할머니는 상자 속의 구두와 잡지를 들추며 거들기 시작했다.
제니는 털모자를 집으며 “어건 어때요. 이 털모자 기억나세요. 아가씨들은 이런 드레스를 입었다면서요”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기억을 유도하는 제니의 표정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아르네 할아버지와 다르마 할머니는 2년 전 이곳에 올 때 이미 가족을 알아보지 못했다. 최근에는 상태가 나빠져 말하는 것은 물론 먹는 법도 잊어가고 있다.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들도 옛일을 상기시키면 기억과 감정이 살아난다.
3층 건물인 솔베르야의 복도와 거실 곳곳에는 인형·담뱃갑과 같은 추억의 물건이 놓여 있다. 응접실의 가구도 옛날식이다. 지하의 40여㎡ 공간은 1940~50년대의 놀이공원을 재현했다. 치매 노인에게 가장 평안하게 느껴지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매일 오전에는 요리·음악감상·무도회 같이 노인들이 추억을 되살릴 만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과자를 만들면서 예전의 입맛을 회상하고 지나간 유행가를 들으며 잠자는 청각을 일깨우는 식이다.
오감을 자극하면서 과거 기억을 일깨우는 치료법은 2001년 이곳에서 처음 시작됐다. 오감 치료는 이 시설의 책임자인 아케 크로난데의 아이디어다. 그는 이유없이 불안해하고 난동을 부리던 치매노인도 과거 속에서 안정을 찾는다는 점을 주목했다.
크로난데는 “기억을 잃었다고 벽만 보고 남은 인생을 보내게 해서는 안 된다”며 “치료할 수는 없어도 치매노인을 소중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질 높은 삶을 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혼자 살아가기 연습”
#지난달 22일 스웨덴 우메오 대학병원의 노인전문병동. 다니엘(85) 할아버지는 물 끓이는 법, 가스 사용법을 배우고 있었다. '혼자 살아가기' 연습이었다. 지난 3월 할아버지는 갑자기 머리와 다리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20년 전 부인을 먼저 보낸 뒤 쭉 혼자 살았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버튼을 누르면 구급차가 출동하는 손목시계 형태의 경보기를 이용했다. 할아버지는 우메오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필요한 처치를 받고 노인전문병동에 입원했다. 바이러스성 감염에 중풍 초기라는 진단이었다.
수술을 받은 뒤부터는 연일 재활훈련이 반복됐다. 의사와 간호사뿐 아니라 물리치료사·사회복지사·심리치료사·영양사가 한 팀이 돼 치료를 맡았다. 목표는 '집으로 돌아가 혼자 힘으로 생활하는 것'이었다. 치료실은 할아버지의 집과 똑같은 환경으로 꾸몄다.
물리치료사는 먹고, 걷고, 화장실에 가는 기본 활동을 훈련하는 일을 맡았다. 할아버지의 키와 팔길이에 딱 맞는 보조 도구도 주문했다. 직접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식사 후 반드시 커피를 마시는 할아버지를 위해 안전한 가스 사용법과 물 끓이는 법도 훈련에 포함시켰다.
심리 치료사는 할아버지가 몸의 병으로 마음마저 병들지 않도록 격려하는 일을 한다. 일주일에 두 번 할아버지와 만나 즐거운 생각을 유도하고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영양사는 심장과 폐기능이 떨어진 할아버지를 위한 식단을 짠다. 간단한 조리법도 가르친다. 사회복지사는 할아버지의 집 근처 복지센터와 의논해 퇴원하면 재가복지사가 일주일에 두 번 집으로 가 장을 봐주고 목욕과 청소를 도와주도록 했다. 병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할아버지가 인터넷으로 의료진과 대화하는 방법도 가르쳤다.
한 달 후 치료가 마무리되면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퇴원할 때는 치료팀이 한자리에 모여 할아버지의 퇴원 후 생활을 위한 회의를 연다. 필요한 기록을 지역의 주치의와 복지센터에 전달한다.
우메오 대학병원 노인질환센터의 요스타 부흐트 박사는 “노령화가 일찍 진행된 스웨덴은 노인을 돌보는 데 있어 가족보다 사회의 책임을 늘리고 가능한 한 혼자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며 “퇴원 후 건강까지 책임지는 맞춤 케어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추가 질병과 부상을 예방하므로 결국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중풍 걸려도 혼자가 편해”=한석환(70·일본명 미나미 게이코) 할머니는 도쿄 가나메초의 소형 아파트에서 5년째 혼자 살고 있다. 경주에서 태어난 한 할머니는 3세 때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교포다.
한 할머니에게 중풍이 찾아온 것은 12년 전이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얼마 안 돼 중풍으로 쓰러진 것이다. 할머니는 이후 의식을 찾았지만 왼손이 마비되고 왼쪽 다리를 절게 됐다. 3남 1녀를 둔 그는 7년간 딸과 함께 살다가 딸이 출가한 뒤부터 혼자 살고 있다.
“며느리가 집안일 다 해주면 운동이 안 되니 오히려 몸이 나빠지잖아. 눈치보는 것도 싫더라고.” 할머니는 아들 집에서 걸어서 6, 7분 거리에서 혼자 사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할머니의 한국말은 어눌했지만 활기가 있었다.
“'헬퍼'(도우미)가 매일 집에 와 요리도 해주고, 빨래도 널어주니 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어.”
할머니가 '독립 선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각종 복지서비스를 이용할 때 비용의 10%만 부담하는 '개호 보험' 덕분이다. 그의 생활 시간표는 분 단위로 설정돼 있다. 시간표는 주간보호센터를 가기 위해 집에서 출발하는 시간과 집에 도착하는 시간을 고려해 구청 소속 '케어 매니저'(복지 서비스 전반에 대한 상담자)가 확인해 만들어준 것이다. 월요일에는 오전 8시56분에 집에서 나와 집에는 오후 3시58분에 돌아오고, 화요일에는 8시50분에 나가 오후 2시57분에 귀가하는 식이다.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간보호센터에서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일주일이 금세 지나간다. 센터에서는 치매나 중풍의 진행을 더디게 하기 위해 노인의 적극적인 활동을 유도한다. 할머니도 그 프로그램에 따라 다른 노인과 마작도 하고, 도예를 배워 그릇도 만든다.
집에 있을 때는 3명의 도우미가 번갈아 가며 방문한다. 아침·저녁 식사 요리는 물론이고 세탁과 청소 등을 해준다. 2주에 한 번은 의사가 와서 진찰도 해준다. 마비를 풀려는 재활의 일환으로 일주일에 서너 번씩 마사지도 받는다.
이처럼 잘 짜인 독립 생활에 드는 비용은 월 3만5000엔(약 35만원). 그리 큰 부담은 아니어서 아들에게 덜 미안하다고 했다.
할머니는 “밤에 혼자 있을 때도 벨을 누르면 24시간 도우미가 출동하는 서비스를 받고 있어 걱정 없다”며 “주말이면 찾아오는 아들·며느리·손자·손녀도 떳떳하게 만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집에서 재활 서비스 받아”=독일 쾰른에 사는 우르술라(74) 할머니의 아침은 간호사인 잉게르보르크의 방문과 함께 시작된다. 지난달 24일 오전 8시. 잉게르보르크가 2층 집 현관문을 열쇠로 열면 할머니도 침대에서 일어날 채비를 한다. 4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할머니는 몸의 오른쪽을 잘 쓰지 못한다. 간호사는 침실로 올라가 할머니를 일으키고 함께 입을 옷을 고른다. 이날은 오랜만에 미장원으로 나들이하는 날이라 할머니도 설레는 눈치다.
할머니는 지난해 생애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 불편한 몸에 혈액암까지 겹친 것이다. 항암치료를 받자 체력은 바닥을 드러냈다. 몸의 마비 증상도 악화됐다. 그래도 요양원 대신 집을 택했다. 평생 살아온 곳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누워만 있던 할머니는 간호사와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했다. 1년이 지난 지금은 부축하면 외출이 가능할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다.
같은 시간 1층에서는 남편 슈톨트레거(78) 할아버지가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손놀림이 힘든 할머니의 식사를 돕는 것은 언제나 할아버지의 몫이다.
간호사 잉게르보르크는 “건강이 악화돼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두 분의 그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그 모습이 참 보기가 좋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집에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기까지는 독일 정부가 1995년 도입한 간호보험(우리나라의 장기요양보험)이 큰 힘이 됐다. 매일 찾아와 한 시간씩 할머니의 이동을 돕고, 목욕을 시켜주며, 재활운동을 도와주는 방문간호 서비스에는 월 700유로(약 114만원)가 들지만 모두 보험에서 부담한다. 할머니를 보살피는 할아버지에게도 매달 280유로(약 46만원)가 지급된다.
할머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휠체어에 앉아서 지내지만 생활에 불편은 없다. 간호보험의 규정에 따라 할머니가 혼자서도 생활할 수 있게 집을 무료로 개조했기 때문이다. 방마다 문턱을 없앴고, 거실에서 화장실·계단을 따라 2층 침실까지 전동 휠체어 레일이 연결돼 있다. 욕실에는 적은 힘으로도 할머니를 씻길 수 있는 장비가 설치돼 있다. 할머니가 매일 20분씩 운동을 위해 사용하는 특수자전거도 보험에서 무료로 대여해 준 보조도구다. 할아버지는 “돌보는 일이 쉽지 않지만 평생 살아온 집에서 지낼 수 있으니 만족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김창규.김은하.백일현.김진경.김민상] '복지 천국'으로 불리는 스웨덴은 한국보다 반세기 먼저 고령화 사회에 들어섰다. 노인 간병을 위한 간호보험을 운영하고 있는 독일도 고령화 1세대 국가다. 2007년 현재 한국의 노인인구 비율이 9.9%인 데 비해 스웨덴과 독일은 이미 1950년대 초반 10%를 넘겼다. 이들은 이때부터 노인과 질병에 관한 문제를 고민해 왔다.
스웨덴의 노인간호는 젊은 노동력을 일터로 유인하는 과정에서 성장했다. 직장에 나가는 부부 대신 사회가 노인을 책임졌다. 스웨덴은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8%를 노인(65세 이상 노인은 전체 인구의 17.3%)을 돌보는 데 투자하고 있다. 노인 돌보기에 들어가는 비용(803억 크로네, 약 14조800억원)은 국가가 부담한다. 노인의 94%는 일반 가정에서 거주하면서 필요하면 간호, 식사 배달, 청소, 장보기, 이동 도우미 서비스를 받는다. 스웨덴은 노인 요양을 위한 별도의 보험은 없다. 노인에게 제공하는 대부분의 서비스는 사회보장제도로 추가 비용 부담이 없다.
독일은 1995년 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모델이 된 간호보험을 도입했다. 간호보험은 장기 요양이 필요한 노인에게 목욕·배변·식사·이동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가족이 돌보면 가족에게 현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공보험사나 사보험사의 상품을 선택할 수 있지만 보험금과 보장 내용은 균일하다. 두 나라 모두 중증치매나 중풍으로 혼자 사는 것이 불가능한 노인은 인근의 특수 시설에 거주하거나 밤에만 집으로 가는 '데이케어'(주간보호)를 이용한다. 정부도 노인 시설보다는 집에서 생활하도록 유도한다. 시설 운영으로 인한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익숙한 환경이 노인의 건강에도 좋다는 취지에서다. 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인은 '환자'가 아닌 '입주자'로 불린다. 크기와 설비가 법으로 규정된 원룸 형태의 독방을 사용하고 개인이 받는 연금에서 월세와 식비를 낸다.
간호보험을 운영하고 있는 독일 알리안츠생명 협력센터의 자비네 슈막스 박사는 “전체 노동인구의 1.4%가 노인을 돌보는 일을 할 정도로 노인 간호는 복지뿐 아니라 경제·산업 측면에서도 중요한 주제”라며 “노인의 존엄성이 상업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국가가 객관적인 평가기관을 통해 엄격한 질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급속한 고령화를 겪은 일본에서도 2000년 독일 간호보험과 유사한 '개호(介護)보험'을 시작했다. 노인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선 일본은 40세 이상 전 국민에게 소득에 따라 보험료를 징수하고 65세 이상을 제1호 피보험자, 40~64세를 제2호 피보험자로 구분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거동을 못 하거나 치매로 간호가 필요한 노인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병의 경중에 따라 7등급으로 나뉘며 서비스 시간도 달라진다. 이용액의 10%만 부담하고 나머지는 보험료와 국고에서 부담한다. 가사 도우미를 보내거나 방문 간호 등을 제공하는 재택 서비스, 야간에 통보가 오면 수시로 방문하는 야간 대응형 간호 등이 있다. 진료소·특별양호노인홈·홈헬퍼 파견센터 등 10여 개 시설이 몰려 있는 대형 복합복지시설부터 동네 몇몇 노인이 모여 사는 치매노인 그룹홈까지 시설의 종류도 다양하다.
마스다 마사노부 조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간호를 사회가 맡으면서 보험을 통해 고령자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 개호보험의 가장 큰 성과”라며 “수혜자가 늘면서 생긴 재정부족 문제 등을 해결하려면 국가별로 다양한 대안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스웨덴의 노인간호는 젊은 노동력을 일터로 유인하는 과정에서 성장했다. 직장에 나가는 부부 대신 사회가 노인을 책임졌다. 스웨덴은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8%를 노인(65세 이상 노인은 전체 인구의 17.3%)을 돌보는 데 투자하고 있다. 노인 돌보기에 들어가는 비용(803억 크로네, 약 14조800억원)은 국가가 부담한다. 노인의 94%는 일반 가정에서 거주하면서 필요하면 간호, 식사 배달, 청소, 장보기, 이동 도우미 서비스를 받는다. 스웨덴은 노인 요양을 위한 별도의 보험은 없다. 노인에게 제공하는 대부분의 서비스는 사회보장제도로 추가 비용 부담이 없다.
독일은 1995년 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모델이 된 간호보험을 도입했다. 간호보험은 장기 요양이 필요한 노인에게 목욕·배변·식사·이동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가족이 돌보면 가족에게 현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공보험사나 사보험사의 상품을 선택할 수 있지만 보험금과 보장 내용은 균일하다. 두 나라 모두 중증치매나 중풍으로 혼자 사는 것이 불가능한 노인은 인근의 특수 시설에 거주하거나 밤에만 집으로 가는 '데이케어'(주간보호)를 이용한다. 정부도 노인 시설보다는 집에서 생활하도록 유도한다. 시설 운영으로 인한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익숙한 환경이 노인의 건강에도 좋다는 취지에서다. 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인은 '환자'가 아닌 '입주자'로 불린다. 크기와 설비가 법으로 규정된 원룸 형태의 독방을 사용하고 개인이 받는 연금에서 월세와 식비를 낸다.
간호보험을 운영하고 있는 독일 알리안츠생명 협력센터의 자비네 슈막스 박사는 “전체 노동인구의 1.4%가 노인을 돌보는 일을 할 정도로 노인 간호는 복지뿐 아니라 경제·산업 측면에서도 중요한 주제”라며 “노인의 존엄성이 상업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국가가 객관적인 평가기관을 통해 엄격한 질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급속한 고령화를 겪은 일본에서도 2000년 독일 간호보험과 유사한 '개호(介護)보험'을 시작했다. 노인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선 일본은 40세 이상 전 국민에게 소득에 따라 보험료를 징수하고 65세 이상을 제1호 피보험자, 40~64세를 제2호 피보험자로 구분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거동을 못 하거나 치매로 간호가 필요한 노인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병의 경중에 따라 7등급으로 나뉘며 서비스 시간도 달라진다. 이용액의 10%만 부담하고 나머지는 보험료와 국고에서 부담한다. 가사 도우미를 보내거나 방문 간호 등을 제공하는 재택 서비스, 야간에 통보가 오면 수시로 방문하는 야간 대응형 간호 등이 있다. 진료소·특별양호노인홈·홈헬퍼 파견센터 등 10여 개 시설이 몰려 있는 대형 복합복지시설부터 동네 몇몇 노인이 모여 사는 치매노인 그룹홈까지 시설의 종류도 다양하다.
마스다 마사노부 조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간호를 사회가 맡으면서 보험을 통해 고령자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 개호보험의 가장 큰 성과”라며 “수혜자가 늘면서 생긴 재정부족 문제 등을 해결하려면 국가별로 다양한 대안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치매·중풍] 밤낮 없는 일본의 서비스 … 주택가 어디에든 복지 시설
◇“24시간 책임집니다”=지난달 13일 저녁 도쿄 오타구 오모리산노에 있는 야간대응형 방문개호센터. 70㎡(20여 평)의 좁은 공간이지만 노인들의 긴급한 필요를 24시간 해결하는 만능센터다.
이날은 헬퍼(도우미) 사토노 도우진·후쿠이 에이진이 근무 중이었다. 정직원 4명, 아르바이트생 6명, 전화상담자 1명이 3교대(낮 12시30분~오후 9시, 오후 9시~오전 6시30분, 오전 6시30분~오후 3시30분)로 서비스를 한다.
이곳은 인근 25개 가정과 '너스콜'(nurse call)이라는 벨로 연결돼 있다. 각 가정에 사는 노인이 한밤 중에 몸에 이상이 생겨 벨을 누르면, 센터 중앙컴퓨터에서는 “긴급 통보가 발생했습니다”란 음성이 나온다. 이 순간 팩스에서는 해당 가정의 노인에 대한 정보가 인쇄돼 나오고, 근무자는 각 가정을 표기해 놓은 지도를 확인한 뒤 뛰어나가 20분 안에 해당 가정에 출동한다.
긴박한 '너스콜'이 없어도 쉴 새는 없다. 미리 서비스를 약속한 가정을 방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은 오전 1시·4시 등 3시간에 한 번씩 기저귀를 교환해주는 서비스, 잘 때 몸 위치를 바꿔주는 서비스, 물 마실 때 돕는 서비스 등 6건의 서비스를 해야 했다. 서비스를 신청한 이들은 치매와 중풍으로 기본 생활이 불편한 독거노인과 노부부가 대부분이다.
센터 서비스 가입비는 한달에 1072엔(1만720원). 한 번 출동 시 621엔(6210원)이 추가된다. 헬퍼 후쿠이는 “노인과 가족들이 밤에 편하게 잘 수 있고, 누군가 와줄 사람이 있다는 점에 안심이 된다고 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동네 골목 속 주간보호센터=지난달 12일 도쿄 도시마구의 한 소형 주간보호센터. 집 같은 구조에 125㎡의 아담한 시설에서 노인 6명이 둘러앉아 일본 전통 민요를 흥얼거렸다. 책상을 두드리면서 장단을 맞추는 이들의 상당수는 치매환자. 7년 동안 치매를 앓고 있는 마사코(78·가명)도 옆에 앉은 손자 같은 헬퍼 도쿠나가(30)와 대화하며 즐거워했다.
케어매니저 후지이 요코(70)는 “이곳은 큰 시설은 아니지만 주택 골목에 있기 때문에 누구든 부담없이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비용은 하루 6시간 이용에 1000엔(1만원)만 내면 된다. 아침에 직접 차로 데리고 온 뒤 목욕 서비스나 외식·쇼핑 장소까지 데려다 주는 외출 서비스가 있다. 이곳에서 만난 유노키 요시코(91)는 “3년 반 전부터 이 시설에 다니는데 컴퓨터도 배우고 수묵화 그리기 등 취미생활도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시내 중심에 들어선 시설=지난달 14일 오전 도쿄 중심가 시부야구의 한 빌딩에 있는 개호사업소. 인근 빌딩 시가가 수십억원에 이르는 금싸라기 땅 위에 있다. 이곳의 케어매니저 고모리 게이코(57)는 “빌딩 주인이 사회사업에 관심이 많아 싼 값에 입주해 있다”며 “어떤 곳에서든 개호사업소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곳과 연결된 노인들 중에는 부유층이 많은 편이다. 한 달에 50만~60만 엔(500만~600만원)씩 부담하며 24시간 가정부를 고용할 능력이 있는 부자도 있다. 그러나 이들도 저소득층과 같은 개호사업소를 이용한다. 고모리는 “개호사업소에 소속된 케어매니저와 서비스가 좋아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곳에 소속된 케어매니저는 상담을 통해 필요한 서비스와 헬퍼 등을 연결해주고 생활 시간표를 만들어준다. 케어매니저 고오게쓰 에비코(57)는 “다양한 취미생활과 건강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웃 주민들과의 만남도 주선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김창규·김은하·백일현·김진경·김민상·이진주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편집=안충기·이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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