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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 증상과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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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08-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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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세계 갇혀 타인에게 완전 무관심
국내만 4만명… 원인 아직 몰라
자폐증(自閉症). 영화 ‘말아톤’이나 ‘레인맨’에서 보듯, 자폐증이란 자기 세계에 갇혀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함을 나타내는 증상이다.
1943년 미국의 소아정신과 의사인 카너(Leo Kanner) 박사가 신체적 발달이나 외모는 정상인데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말이 늦거나 말을 하더라도 제대로 의사소통을 못하며, 언어 사용에 있어서 혼란이 있고, 같은 놀이나 행동을 되풀이하며, 상상력은 부족하지만 기억력은 좋은 특이한 아이 11명의 사례를 ‘유아 자폐증(early infantile autism)’이라는 이름으로 의학 잡지에 보고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수많은 연구와 치료가 이뤄졌으나 근본 원인은 밝히지 못하고 있다.
1980년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자폐증에 대한 진단이 확립됐고, 이후 자폐증, 레트(Rett) 장애, 아동기 붕괴성 장애, 아스퍼거(Asperger) 장애, 비전형 자폐증 등을 모두 포함해 전반적(혹은 광범위성) 발달장애(pervasive developmental disorder·PDDs)로 부르게 됐다. 그동안 비전형 자폐장애, 유사자폐, 발달장애 등 용어와 그 범위가 혼란스럽게 쓰였으나 최근 학계에서는 ‘자폐성 장애’로 통일해 사용하고 있다.
어떤 질병인가
의사소통 안 되고 한 가지 물건에 집착하거나 자해 행동
유전·선천적 뇌 이상 추정… 발달성 언어장애와는 달라
자폐증 환자의 수는 지금까지 대략 1만명 중 4~5명 정도로 알려져 왔는데, 최근 그 수가 점점 늘고 있다. 1만명당 10~15명, 심지어 일부에서는 약 150명당 1명꼴이라는 보고도 나오고 있다. 국내 자폐증 환자는 3만~4만명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만 3세 이전에 발견된다.
5~6세 이후 발견됐다는 경우도 있는데 발달 과정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대부분 이전부터 문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자폐증의 원인에 대해 최근에는 유전적 요인과 함께 선천적 뇌 기능의 이상으로 보고 있다. 일부에서 예방접종 백신 주사에 의해 나타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자폐성 장애 아동은 공통적인 증상을 보인다. 대인관계에서는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존재에 대해 개의치 않고 △아프거나 다쳐도 별로 상관하지 않으며 △또래와 어울리는 등 사회적인 놀이를 하지 않는다. 의사소통 면에서는 △말을 하지 않고 △눈맞춤과 같은 말 이외의 의사소통에 장애가 있으며 △상상놀이를 못하고 △언어의 억양·빠르기·세기에 이상을 보이며 △앵무새처럼 남의 말이나 TV광고를 따라하거나 ‘나 과자 먹을래?’처럼 말을 잘못 쓰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상관 없이 자기 얘기만 하는 등 대화 불능 상태를 보인다. 행동이나 관심의 폭도 극도로 제한돼 △손을 흔들어대고 머리를 찧거나 몸을 비비 꼬는 등 반복되는 몸놀림을 보이고 △냄새를 맡고 바퀴를 돌려대고 물건의 겉을 만져대는 등 사소한 물건에 집착하거나 △작은 변화도 참지 못하고 △시장에 갈 때도 항상 똑같은 길을 고집하는 등 일상적인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지능 발달이 지연되거나 △자세(발 끝으로 걷거나 이상한 자세를 하고 앉기)나 행동(흥분해서 팔을 흔들고 겅중겅중 뛰거나 찡그리기)의 이상 △자극에 대해 무감각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어떤 소리에 귀를 막거나, 특정 빛이나 냄새를 이상하게 좋아하기도 하고, 음료수를 지나치게 마시거나 심한 편식 증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놀라면서 밤에 자주 깨는 경우도 있다. 기분이 수시로 바뀌기도 하는데, 이유 없이 웃거나 울고, 두려움이 없어 보이거나 별 것 아닌데 지나치게 두려움을 갖기도 한다. 머리찧기나 손톱·손 물어뜯기 등 자해 행동도 흔히 나타난다.
자폐증의 진단은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자폐아는 TV광고 소리가 들리면 다른 방에 있다가도 달려오기 때문에 청각장애아와는 구별할 수 있다. 흔히 “말이 늦되다”며 발달성 언어장애와 혼동하기도 하는데, 발달성 언어장애아들은 말 이외에 손짓이나 표정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대인 관계의 이상이나 변화에 대한 저항 같은 자폐 증상이 없다.
자폐는 정신지체나 과잉운동증, 모성결핍에 의한 반응성 애착장애, 뇌 손상, 아동기 정신분열증과도 구별돼야 한다. ‘유사 자폐증’이라 불리는 비전형적 자폐증은 위의 몇 가지 자폐 증세를 보이지만 심하지 않고 예후도 낫기 때문에 구별이 필요하다.
어떻게 치료하나
국내만 4만명… 원인 아직 몰라
자폐증(自閉症). 영화 ‘말아톤’이나 ‘레인맨’에서 보듯, 자폐증이란 자기 세계에 갇혀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함을 나타내는 증상이다.
1943년 미국의 소아정신과 의사인 카너(Leo Kanner) 박사가 신체적 발달이나 외모는 정상인데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말이 늦거나 말을 하더라도 제대로 의사소통을 못하며, 언어 사용에 있어서 혼란이 있고, 같은 놀이나 행동을 되풀이하며, 상상력은 부족하지만 기억력은 좋은 특이한 아이 11명의 사례를 ‘유아 자폐증(early infantile autism)’이라는 이름으로 의학 잡지에 보고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수많은 연구와 치료가 이뤄졌으나 근본 원인은 밝히지 못하고 있다.
1980년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자폐증에 대한 진단이 확립됐고, 이후 자폐증, 레트(Rett) 장애, 아동기 붕괴성 장애, 아스퍼거(Asperger) 장애, 비전형 자폐증 등을 모두 포함해 전반적(혹은 광범위성) 발달장애(pervasive developmental disorder·PDDs)로 부르게 됐다. 그동안 비전형 자폐장애, 유사자폐, 발달장애 등 용어와 그 범위가 혼란스럽게 쓰였으나 최근 학계에서는 ‘자폐성 장애’로 통일해 사용하고 있다.
어떤 질병인가
의사소통 안 되고 한 가지 물건에 집착하거나 자해 행동
유전·선천적 뇌 이상 추정… 발달성 언어장애와는 달라
자폐증 환자의 수는 지금까지 대략 1만명 중 4~5명 정도로 알려져 왔는데, 최근 그 수가 점점 늘고 있다. 1만명당 10~15명, 심지어 일부에서는 약 150명당 1명꼴이라는 보고도 나오고 있다. 국내 자폐증 환자는 3만~4만명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만 3세 이전에 발견된다.
5~6세 이후 발견됐다는 경우도 있는데 발달 과정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대부분 이전부터 문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자폐증의 원인에 대해 최근에는 유전적 요인과 함께 선천적 뇌 기능의 이상으로 보고 있다. 일부에서 예방접종 백신 주사에 의해 나타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자폐성 장애 아동은 공통적인 증상을 보인다. 대인관계에서는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존재에 대해 개의치 않고 △아프거나 다쳐도 별로 상관하지 않으며 △또래와 어울리는 등 사회적인 놀이를 하지 않는다. 의사소통 면에서는 △말을 하지 않고 △눈맞춤과 같은 말 이외의 의사소통에 장애가 있으며 △상상놀이를 못하고 △언어의 억양·빠르기·세기에 이상을 보이며 △앵무새처럼 남의 말이나 TV광고를 따라하거나 ‘나 과자 먹을래?’처럼 말을 잘못 쓰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상관 없이 자기 얘기만 하는 등 대화 불능 상태를 보인다. 행동이나 관심의 폭도 극도로 제한돼 △손을 흔들어대고 머리를 찧거나 몸을 비비 꼬는 등 반복되는 몸놀림을 보이고 △냄새를 맡고 바퀴를 돌려대고 물건의 겉을 만져대는 등 사소한 물건에 집착하거나 △작은 변화도 참지 못하고 △시장에 갈 때도 항상 똑같은 길을 고집하는 등 일상적인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지능 발달이 지연되거나 △자세(발 끝으로 걷거나 이상한 자세를 하고 앉기)나 행동(흥분해서 팔을 흔들고 겅중겅중 뛰거나 찡그리기)의 이상 △자극에 대해 무감각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어떤 소리에 귀를 막거나, 특정 빛이나 냄새를 이상하게 좋아하기도 하고, 음료수를 지나치게 마시거나 심한 편식 증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놀라면서 밤에 자주 깨는 경우도 있다. 기분이 수시로 바뀌기도 하는데, 이유 없이 웃거나 울고, 두려움이 없어 보이거나 별 것 아닌데 지나치게 두려움을 갖기도 한다. 머리찧기나 손톱·손 물어뜯기 등 자해 행동도 흔히 나타난다.
자폐증의 진단은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자폐아는 TV광고 소리가 들리면 다른 방에 있다가도 달려오기 때문에 청각장애아와는 구별할 수 있다. 흔히 “말이 늦되다”며 발달성 언어장애와 혼동하기도 하는데, 발달성 언어장애아들은 말 이외에 손짓이나 표정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대인 관계의 이상이나 변화에 대한 저항 같은 자폐 증상이 없다.
자폐는 정신지체나 과잉운동증, 모성결핍에 의한 반응성 애착장애, 뇌 손상, 아동기 정신분열증과도 구별돼야 한다. ‘유사 자폐증’이라 불리는 비전형적 자폐증은 위의 몇 가지 자폐 증세를 보이지만 심하지 않고 예후도 낫기 때문에 구별이 필요하다.
어떻게 치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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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언어·예술치료 등 조기 대처 중요, 완치는 어려워
만 5~6세·사춘기 때 인지 능력 향상 등 변화 보이기도
자폐 아동의 증상과 문제는 살아가는 동안 점진적으로 회복되기는 하지만 완전히 고쳐지지는 않는다. 완쾌시키는 특효약이나 수술 방법, 특수 교육, 놀이치료 방법은 현재까지는 없다. 평생 동안 남는 장애로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는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계발시켜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근접하도록 적응 능력을 높일 수는 있다.
자폐증 치료를 위해 처음 시도된 것은 정신분석적인 접근(주로 놀이치료)이었다. 1960년대 들어서는 지능과 언어능력과 같은 다른 요소들이 예후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후 행동치료가 다양하게 시도돼 다소간의 효과를 보기도 했지만 치료 현장에서 배운 행동을 일상생활에서 일반화하는 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는 다양한 치료법들과 함께 교육적 접근이 가장 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치료와 교육의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보면 △조기발견 △정확한 진단과 평가 △다방면 전문가의 협력 △정상행동의 증가 △적극적인 노력 △정상 아동과의 접촉 격려 △치료자로서 부모의 역할 △체계적으로 잘 짜여진 치료·교육 계획표가 꼽힌다.
교육과정에는 행동치료적 방법, 직업 훈련, 언어·물리치료, 미술·음악치료 같은 다양한 방법이 포함되므로 특수교사를 포함한 전문직들의 다학제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최근 서울시립아동병원에서 이런 원칙에 입각한 자폐행동 치료진료소가 문을 열었다.
치료교육적 방법도 무조건 시킨다고 모두 효과를 보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시기에 가장 효과적인 것을 골라 제공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부모들은 아이와 대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문제행동을 처리하는 데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가정에서 기본적인 기능 수행과 습관에 대한 교육을 하고 사회 경험을 키우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폐 아동들은 의사 표현이 부족해 아픈 것을 알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평소 행동을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부모들이 자폐 아동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갖다 보면 다른 자녀들은 방치되기 쉽다. 다른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이해도 필요하다. 부모 자신이 신이 아닌 이상 힘들고 좌절이 있을 수 있다. 경제적 여건이 허락된다면 집안일의 일부를 도와줄 일손을 구하는 것이 좋고, 하루 중 몇 시간만이라도 따로 시간을 갖고 쉴 수 있어야 한다. 부모의 노력에는 한도가 있으므로 좋다는 것이면 무작정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하겠다는 극단적인 생각은 피하는 것이 좋다.
자폐 아동들은 성장해서 어떻게 될 것인가? 지능(IQ)이 높고, 언어나 사회성의 발달이 좋은 아이들은 예후가 좋다. 만 5~6세 무렵 현저하게 호전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다. 자폐 아이들은 사춘기를 거치며 또 한 차례 변화를 겪게 된다. 호전되기도 하지만 인지 기능이나 사회성이 감퇴되고 공격적·반항적 행동이 나타나기도 한다. 조기에 적극적인 치료와 교육을 통해 장애와 문제를 가능한 최소화하고 정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정성과 노력을 다 기울였을 때 아이가 좋아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상태가 아주 나빠 요양원 같은 보호 환경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면 어느 정도 제한되지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음악을 전공한 자폐 아동이 클리닉에 있었는데, 일반 학생들과 당당히 겨뤄 서울 시내의 음악대학에 진학하기도 했다. “자폐증을 앓으며 극복한 음악가도 있을 수 있다”던 나의 얘기가 현실이 됐다. 합격통지서와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 자폐아 가족과의 행복한 한때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 안동현 한양대병원 정신과 교수·전 한국자폐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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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조영회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
자폐와 다운증후군 세상으로 나오다
자폐성 장애는 다른 여러 장애 중에서도 가장 재활이 어려워 ‘마지막 장애’라고 불린다. 1940년대 ‘유아 자폐증’으로 보고된 지 60여년이 지났지만 자폐의 근본 원인은 아직 밝혀내지 못한 상태다. 국내에서 추정되는 자폐인은 3만~4만명. 최근 들어 그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세상과 소통하는 문을 닫아버린 자폐성 장애 청년들이 지금 세상을 향해 작은 창 하나를 열고 있다. 자폐의 치유는 ‘평생 동안 정상(正常)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뛰어난 예술적 영감을 발휘하며 재능을 세상에 펼쳐 보이고 있는 현장을 찾았다. 장애의 그늘을 묵묵히 지켜온 부모들의 이야기도 함께 싣는다.
두툼하고 짧은 목, 둥그런 얼굴, 짧은 손가락…. 다운증후군의 특징이다. 국내 다운증후군 환자는 4만5000여명. 대부분이 선천성 심장질환을 동반해 고생하지만, 최근 의학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현격히 늘어났다. 주변의 시선은 여전히 곱잖지만 특유의 활달함으로 사회를 향해 한발 내딛고 있는 다운인들이 적지 않다. 미래를 향한 이들의 열정도 함께 들여다보자.
예술을 통해 세상과 통하다
흥보가·춘향가 완창 ‘판소리 말아톤’ 최준
5분도 못 앉아있던 아이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연습
피아노도 수준급…한 번 듣고 연주하는 ‘절대음감'
판소리 명창을 꿈꾸는 최준(18·동성고2)군이 북장단에 맞춰 판소리 수궁가(水宮歌) 연습에 푹 빠졌다. 5월 20일 오후 서울 삼청동. 준이 아버지 최정돈(50)씨의 디자인 사무실 한쪽이 준이의 작은 무대다. 옹골찬 소리가 방 안을 울린다.
“갑신년 중하월에 남해 광리왕(廣利王)이 영덕전(靈德殿) 높이 짓고 대연을 배설(排設)하야 삼해 용왕을 청하실제 군신빈객(君臣賓客)이 천승만기(千乘萬騎)요 강한지장(江漢之將)과 천택지군(川澤之君)이 일시에 모여들어….” 표정엔 자신감이 넘친다. 평소 조금은 불안해 보이던 자폐의 흔적은 싹 사라졌다. 느릿한 진양조 가락으로 넘어간다. “영덕전 높은 궁궐 벗 없이 홀로 누워 애통허여 울음운다.
천무열풍(天無熱風) 좋은 시절, 해불양파(海不揚波) 태평헌디, 괴이한 병을 얻어 누웠으니 날 구헐 이가 뉘 있으란 말인고. 애통허여 울음을 운다.” 아버지의 “얼씨구” 추임새가 곁들여지며 자진모리로 넘어간다. 준이의 손이 힘차게 북채를 휘두른다. 잔뜩 신이 난 얼굴이다. 이번에는 벌떡 일어서더니 쑥대머리를 구성지게 뽑아냈다. 부채를 척 펼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어릴 적부터 유독 소리에 민감했던 준이가 처음 판소리를 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사물놀이를 배우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주려는 요량으로 한 국악학원을 찾았는데, 마침 지도하던 대학생 교사의 전공이 판소리였던 것. 준이는 함께 지도 받던 아이들의 음정과 박자가 맞지 않을 때마다 “틀렸서, 아니지”를 되뇌었고, 판소리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어른도 힘든 판소리 사설을 진득하게 외우기 시작한 것이다. 5분을 제대로 못 앉아 있고 불안하게 돌아다니던 아이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1시간 넘게 목에 핏대를 세우고 소리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본 준이 엄마 모현선(46)씨는 “이거다” 싶었다고 했다. 연습을 해 나가면서 암기력은 물론 발음과 호흡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음악적 재능은 물꼬가 트인 것처럼 쑥쑥 커 나갔다. 중학교 때 나선 전국 청소년 국악경연대회에서는 비장애 학생들과 겨뤄 판소리 부문에서 우수상을 탔다. 2002년 4월에는 흥보가를, 2006년 4월에는 춘향가를 완창했다. 그때 얻은 별명이 ‘판소리 말아톤’이다. 모씨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다”고 했다. “아이가 공연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는 게 가장 큰 수확입니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가 세상에 눈을 뜨게 됐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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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허재성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
자폐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어려움은 만만치 않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준이에게 당시 담임선생님은 2주도 지나지 않아 전학을 종용했다고 한다. 다행히 전학간 뒤 새로 만난 담임선생님은 준이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였고, 엄마가 수업 시간에 준이 곁을 지킬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운동·놀이치료는 물론 기치료까지 받을 정도로 안 해본 게 없어요. 불교 신자였지만 교회에서 안수 기도 받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초등학교 때부터 특수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었어요. 다른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제대로 된 사회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준이는 지난 4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예술실기 연수과정)에 합격했다. 앞으로 1년 동안 토요일마다 4시간씩 판소리 이론과 실기 교육을 받게 된다. 판소리 연습을 마친 준이가 이리 와 보라며 기자를 디지털 피아노 앞으로 끌었다. “저 잘했죠. 피아노도 잘 치는데 한번 들어보실래요?” 비틀스의 ‘렛 잇 비’. 청아한 느낌이다. 악보를 보지 않고 귀로 들은 음악을 준이 식의 해석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보세요. 행복해 보이지 않나요? 남들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 걱정하지만, 전 딱 2~3년씩만 내다보고 살 거예요.” 준이 엄마 모현선씨의 얼굴에도 맑은 미소가 떠올랐다.
한 획 한 획… 붓으로 쓴 희망 우주영
할아버지 서책 뚫어져라 보더니 줄줄이 글씨 써 내려가
서예 전시회 열며 자신감… 백화점 매장정리도 나서
지난 4월 19일 일산 롯데아트갤러리에서는 ‘그 벽을 넘어서(Beyond the wall)’라는 서예 전시회가 열렸다. ‘천상의 묵향(墨香)으로 세상과 소통하다’는 부제가 붙은, 스물네 살 청년 우주영씨의 작품전이다. 60여점이 전시됐고, 수익금은 사단법인 한국자폐인사랑협회 경기지부에 기부됐다. 일산이라는 지역 사회에 우주영이란 자폐 청년이 함께 살고 있고, 자폐인도 뭔가 이웃에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5월 19일 오후 고양시 장항동 주영씨의 집을 찾았다. 두레장애인작업장에서 친환경 비누를 만드는 일을 마치고 퇴근한 우씨는 붓글씨 연습을 하고 있었다. 탁자 주변에는 행서와 전서체로 연습한 종이가 수북했다. 경쾌한 붓놀림으로 화선지 위에 써나간 글씨는 ‘항상희락(恒常喜樂), 불식기도(不息祈禱), 범사감사(凡事感謝)’. 성경 데살로니가 전서에 나오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글귀를 한자로 적은 것이라고 아버지 우효섭(55·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부장) 박사가 귀띔했다.
“주영이 외할아버지가 붓글씨를 즐겨 쓰셨는데, 이 녀석이 어느날인가 할아버지의 서책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는 거예요. 그리곤 손가락으로 허공에 뭔가를 끊임없이 써대더군요. 붓을 쥐어주니, 서책에 나온 글씨를 그대로 그려내는 거예요. 허공에 글을 쓴다고 할아버지가 붙여준 별명이 ‘필공(筆空)’이었죠. 그 뒤로 붓글씨는 주영이가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가 됐어요.”
주영씨는 1984년 미국 콜로라도주 푸드르밸리에서 태어났다. 엄마 김상용(48)씨는 난산 끝에 주영씨를 낳았는데, 당시 의료진이 무리하게 자연분만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뇌에 산소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아기는 성장과 발달이 늦었지만 부부는 자폐성 장애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미국에서도 자폐에 대한 연구 결과나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귀국한 뒤 우씨 부부는 장애인 복지관에 아이를 데리고 나가 언어와 운동 치료를 시켰지만 더디기만 했다. 1999년 우 박사의 안식년 기간 동안 미국에 다시 간 부부는 주영씨가 자폐성 장애라는 판정을 받았다.
미국식 장애인 맞춤 교육을 받은 주영씨는 서예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현지의 대학생 페스티벌에 참가해 외국인들의 이름을 붓글씨로 써 주는 행사를 벌였고, 지역 사회의 전시 행사에 출품하며 자폐성 장애인도 ‘뭔가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백화점 의류 매장에서 옷을 정돈하는 일도 시작했다. 사회보장제도에 따라 매달 생활보조금을 받았고, 함께 생활하며 작업치료를 도와주는 활동보조원의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주영씨 엄마의 인생도 달라졌다. 대학 때 불문학을 전공했지만, 미국에서 사회복지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콜로라도주립대에서 지역 사회에서 장애·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터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고, 박사 과정까지 공부했다. 지금은 가톨릭대에서 박사 논문을 쓰면서 천안 나사렛대 등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
“오죽했으면 제가 사회복지 분야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었겠습니까. 자폐인의 삶에 개입해서 그들의 삶이 제대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짜 중요한 일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최근에 마련한 전시회도 ‘비장애인들이 장애인과 함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궁극적인 장애인 복지의 한 방향’이라는 평소의 생각을 실천한 것이죠.”
주영씨는 작년 10월 귀국했다. 주중에는 장애인작업장에서 일하며 한 달에 30여만원을 벌고, 주말에는 교회에서 청소를 거들며 봉사활동을 한다. 고양시 주간보호센터에서 자원봉사 활동도 벌인다. 김씨는 “주영이는 그나마 혜택을 많이 본 경우”라면서 자폐 자녀와 함께 지금도 고통을 겪고 있는 사례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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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허재성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
협회에선 오는 8월 19일부터 2박3일 동안 천안에서 국제세미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자폐인과 가족 등 1000여명이 참석하는 행사가 될 겁니다. 지친 부모들에게 정보와 함께 휴식을 주고 싶어요. 자폐를 단지 내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아이, 지역 사회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도록 세상을 바꿔 나가겠습니다.”
‘한국의 피카소’를 꿈꾼다 김범진
그림 알면서 눈빛 진지해져, 하루 스케치북 10권 뚝딱
“사물 해석하는 시각 독특하고 색채감도 수준급” 평가
지난 1월 고양시 정발산동 아트센터 조이에서는 ‘범진이의 동화이야기’라는 개인전이 열렸다. 2006년 5월 롯데월드 화랑에서 열린 ‘범진이의 스케치북’ 작품전에 이은 두 번째 전시회이다. 그림에 특별한 소질을 보인 김범진(18·일산정보산업고1)군은 ‘한국의 피카소’를 꿈꾸는 자폐 청소년이다. 고양시 정발산동 김군의 집은 작은 아틀리에 같았다.
“이건 시골의 나무를 생각하며 그린 거예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 나뭇가지에 앉은 새가 보이세요? 그리고 이건 우리 동네 성당의 모습이죠.” 김군의 엄마 황진오(47)씨는 “범진이의 그림은 선이 남달랐다”고 했다. 대상의 핵심적 형태의 특성을 파악해 비례와 강조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드로잉한 형상미가 돋보인다는 것이 미술 관계자들의 평. 맑은 영혼을 담은 듯 알록달록 색채를 표현하는 능력도 찬사를 받았다.
“4살 때부터 미술에 관심을 보였죠. 하루 3~4시간씩 그림 그리기에 푹 빠졌는데, 아이의 눈빛이 달라지더라고요. 자동차 하나를 그려도 뻔한 사각형 모양이 아니라, 앞으로 돌진하는 모습 등 다양한 각도에서 본 그림이 나오는 거예요. 하루에 스케치북 10권을 뚝딱 해치우는 날도 있었죠.” 힘 없이 연필을 쥐어 글씨를 쓰면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했다던 범진이가 붓을 잡을 때면 손에 바짝 힘을 들이고 엄청난 집중력을 보였다는 것이다.
황씨는 자폐성 장애아 부모들의 모임인 ‘기쁨터’에서 활동하고 있다.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위로하자는 뜻에서 1998년 시작해, 지금은 장애아동의 방과후 교육을 담당하는 주간보호센터, 장애아와 형제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지역아동센터, 장애인들의 미술 작품을 전시·판매하는 아트센터 조이 등으로 이뤄져 있다. 그룹홈과 작업장을 만들어 아이들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뜻을 모으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설움 받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피카소가 되겠다는 범진이의 꿈이 언젠가는 이뤄질 수 있도록 해 줘야죠. 그런데 우리 아이만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요. 우리 모두의 자폐 아이를 서로 돌보는 열린 공간으로 나아가야겠죠. 우리 아이들이 사는 곳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거듭나 비장애인들이 오히려 찾아와주는 공간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 채성진 기자 dudmie@chosun.com
[자폐와 다운증후군] 자폐 부모와 교사들의 목소리
“부모가 무조건 돌보려 해선 안돼 마음 아파도 세상에 내놓아야”
고교 졸업 전 재활기초 다져야… 소규모 그룹 홈 많이 생기길
아들 재형(24)이는 파주 영어마을 근처의 장애인 작업장에 나간다. 기나긴 훈련 과정을 거친 뒤 올해 초 당당한 직장인이 됐다. 홍삼액 제품을 박스로 포장하는 일을 한다. 지난 3월에 첫 월급을 받아왔는데 4대 보험료를 뺀 실 수령액이 73만원 정도였다. 가족과 작업장 동료, 선생님의 내의를 샀다. 가슴이 벅찼다.
직업 재활 교육은 중고생 시절부터 시작해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기초를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재형이는 일산에 있는 특수학교인 경진학교를 2004년 2월 졸업한 뒤에도 직업 재활 훈련을 계속하며 차근차근 준비했다.
‘아이가 죽은 뒤 하루 뒤에 죽는 것’이 자폐아 부모들의 소망이라고 하지만 나는 생각이 약간 다르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려면 직업 재활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액수가 많지는 않지만 자기가 돈을 벌어 그룹 홈에서 생활한다면,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자활할 수 있다면, 비장애인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그게 이뤄지려면 부모에게 아이를 놓아주는 배짱이 필요하다. 안타까운 마음에 아이를 부여잡고 있는 것이 결국 아이의 자활을 늦추는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재형이가 생활하는 그룹홈인 ‘새꿈터’에는 13명의 식구가 있다. 취업자는 재형이를 포함해 9명이다. 금고 제작회사, 식품회사 등 3~4개 업체에 나간다. 한 업체에서 석 달, 1년을 버티던 자폐 청년은 지금은 월급 120만원을 받으며 회사에서 인정 받는 직원이 됐다.
물론 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뺀 두 명은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사실 취업한 장애인은 대부분 지체장애자들이다. 지체장애자는 휠체어를 타거나 말을 못하고 듣지는 못해도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의사소통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하지만 자폐는 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적잖은 기업이 장애인을 고용하는 대신 벌금을 내고 있다고 한다. 생산성이 떨어진다며 취업의 기회마저 박탈하는 것은, 이해는 하지만 억울하다. 대기업도 사회공헌기금을 얼마 낸다는 식으로 폼만 잡지 말고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작업장을 마련해주면 좋겠다.
자폐 친구들에겐 이 얘기를 꼭 해주고 싶다. 현실의 벽이 두껍다고 ‘안 된다’며 주저앉지 말라는 것이다. 하루를 버티면 한 달을 견딜 수 있고 그러다 보면 1년을 지낼 수 있다. 얼마를 벌든 스스로 살아가는 경제적 토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자폐 자녀를 둔 아버지들이 모이는 세미나 자리에서 ‘길게 보자, 조급증을 버리자’는 얘기를 자주 한다.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지켜보자고 한다.
또 한 가지. 아이들이 생활하는 소규모 그룹홈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함께 생활하는 인원은 20명을 넘지 않아야 한다. 그 이상이 되면 제대로 된 자활이 이뤄지지 못하고 단순한 관리나 수용 차원에 머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모에겐 아이를 대중 앞에 내놓는 용기도 필요하다.
이웃과 지역 사회가 우리 아이를 알아야 한다. 그동안 아이를 수없이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다. 수배 전단을 붙여 놓더라도 주변에서 아이를 알아야 쉽게 찾아줄 수 있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겁내선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열린 마음을 갖자. 우리가 아이들을 세상에 내놓지 않으면서 왜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아이에게 열린 마음을 달라고만 하는가.
/ 박성열 (53) 자폐인사랑협회 경기지부장
“자폐아는 24시간 긴장 못 늦춰 특화된 복지관·작업장 절실”
고교 졸업 후가 더 문제… 장애인과 기업 이어주는 전문 코디네이터 시급
보통 다른 장애에 비해 자폐는 더 배척 당한다. 장애인 복지의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자폐는 ‘마지막 남은 장애’라고 할 정도다. 그만큼 재활이 어렵다는 얘기다. 행동 문제가 정리되지 않고, 적응에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오랜 시간 관찰하고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자폐인과 의사소통 자체가 어렵다. 돌출 행동도 자극적이다. 학령기 아동이나 청소년을 위한 시설이 충분한 것은 아니지만 자폐 아동들에게는 고교 졸업 이후가 더 큰 문제다. 자폐인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화 복지관과 작업장이 세워져야 하는 이유다.
자폐는 다른 장애와 달라서 24시간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가족 중 누군가 한 사람이 종일 매달려야 한다는 얘기다. 가족 기능의 정상화를 위해서도 특화 복지관과 작업장은 필요하다. 아침에 출근해 일터에서 생활하고 저녁에 퇴근한 뒤에는 가족과 공동 생활을 하도록 해야 다른 가족 구성원도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자폐인에게는 우편 분류 업무, 마트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일, 포장 조립 같은 업무 등의 직업군이 적당하다.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취업 이후에도 추가 지도를 집중적으로 이어간다면 적잖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과 일반 기업체를 연결시키는 직업 코디네이터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장애인들에겐 좀더 다양한 작업 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실습의 기회가 너무 부족하다. 어떤 일터가 있는지, 어떤 능력을 요구하는지를 알아야 뭐라도 준비를 할 수 있지 않겠나.
기업에 장애인을 받아들여 달라고 무조건 떼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인 만큼, 장애인 일자리 사업에 동참하는 업주에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세제 혜택이나 우선 구매업체 지정 등 인센티브를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기관 평가 때 가점을 주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 한은주 (52) 육영학교 교감
“하루 8시간 일 시키고 인심쓰듯 푼돈 그거나마 고마워 하라니…”
정부 지원금도 아이에겐 실제 혜택 안 돌아와… ‘바우처 제도’ 도입을
아들 문영(25)이는 장애인종합복지관의 보호작업장에서 조립 같은 단순 노동 작업을 하고 있다. 작업량이 적지 않기 때문에 아침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까지 일을 해야 한다. 쉬는 시간, 간식 시간이 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지 못하는 아이를 볼 때 안타깝다. 작업장 환경이나 처우는 여전히 미흡하다.
최저임금제를 도입한다고 하지만 실제 장애인 작업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제도의 본래 취지와는 다르다. 작업장 인원이 30~40명인데 이 중 10여명에게 기본급을 몰아주고 나머지 아이들에겐 1만~2만원 정도의 푼돈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일을 시켜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기라는 처사가 아닌가. 이래저래 우리 자폐인 부모들은 약자다. 복지관을 상대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정부의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은 이런 기막힌 현실을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작업장에 들어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1년 안팎을 기다려야 하고 3~5년이 지나면 나가야 한다. 대책 없이 다른 작업장을 기웃거려야 한다. 5년 동안 같은 일을 해서 나름대로 베테랑이 된 아이들이 다른 곳으로 옮기는 순간 다시 초급으로 전락한다. 다시 처음 기초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3개월 동안은 수습으로 월급이 없다.
우리 아이들을 보호 작업장에 보내는 것은 단지 돈만 벌자고 하는 일이 아니다. 아이가 일을 하고 그것을 통해 무엇인가 보람도 느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 앞에서 가슴이 미어지곤 한다.
정부의 지원이 복지관 운영비로 빠져나가고 정작 아이들을 위해서는 얼마 쓰이지 않는 것 같다. 외국의 ‘바우처(voucher) 제도’처럼 장애인이 직접 원하는 시설과 서비스를 선택해 이용하고 정부가 비용을 지불하는 형식이 도입된다면 좀더 내실 있는 지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 박옥순 (46) 정문영군 어머니
고교 졸업 전 재활기초 다져야… 소규모 그룹 홈 많이 생기길
아들 재형(24)이는 파주 영어마을 근처의 장애인 작업장에 나간다. 기나긴 훈련 과정을 거친 뒤 올해 초 당당한 직장인이 됐다. 홍삼액 제품을 박스로 포장하는 일을 한다. 지난 3월에 첫 월급을 받아왔는데 4대 보험료를 뺀 실 수령액이 73만원 정도였다. 가족과 작업장 동료, 선생님의 내의를 샀다. 가슴이 벅찼다.
직업 재활 교육은 중고생 시절부터 시작해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기초를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재형이는 일산에 있는 특수학교인 경진학교를 2004년 2월 졸업한 뒤에도 직업 재활 훈련을 계속하며 차근차근 준비했다.
‘아이가 죽은 뒤 하루 뒤에 죽는 것’이 자폐아 부모들의 소망이라고 하지만 나는 생각이 약간 다르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려면 직업 재활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액수가 많지는 않지만 자기가 돈을 벌어 그룹 홈에서 생활한다면,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자활할 수 있다면, 비장애인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그게 이뤄지려면 부모에게 아이를 놓아주는 배짱이 필요하다. 안타까운 마음에 아이를 부여잡고 있는 것이 결국 아이의 자활을 늦추는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재형이가 생활하는 그룹홈인 ‘새꿈터’에는 13명의 식구가 있다. 취업자는 재형이를 포함해 9명이다. 금고 제작회사, 식품회사 등 3~4개 업체에 나간다. 한 업체에서 석 달, 1년을 버티던 자폐 청년은 지금은 월급 120만원을 받으며 회사에서 인정 받는 직원이 됐다.
물론 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뺀 두 명은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사실 취업한 장애인은 대부분 지체장애자들이다. 지체장애자는 휠체어를 타거나 말을 못하고 듣지는 못해도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의사소통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하지만 자폐는 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적잖은 기업이 장애인을 고용하는 대신 벌금을 내고 있다고 한다. 생산성이 떨어진다며 취업의 기회마저 박탈하는 것은, 이해는 하지만 억울하다. 대기업도 사회공헌기금을 얼마 낸다는 식으로 폼만 잡지 말고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작업장을 마련해주면 좋겠다.
자폐 친구들에겐 이 얘기를 꼭 해주고 싶다. 현실의 벽이 두껍다고 ‘안 된다’며 주저앉지 말라는 것이다. 하루를 버티면 한 달을 견딜 수 있고 그러다 보면 1년을 지낼 수 있다. 얼마를 벌든 스스로 살아가는 경제적 토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자폐 자녀를 둔 아버지들이 모이는 세미나 자리에서 ‘길게 보자, 조급증을 버리자’는 얘기를 자주 한다.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지켜보자고 한다.
또 한 가지. 아이들이 생활하는 소규모 그룹홈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함께 생활하는 인원은 20명을 넘지 않아야 한다. 그 이상이 되면 제대로 된 자활이 이뤄지지 못하고 단순한 관리나 수용 차원에 머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모에겐 아이를 대중 앞에 내놓는 용기도 필요하다.
이웃과 지역 사회가 우리 아이를 알아야 한다. 그동안 아이를 수없이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다. 수배 전단을 붙여 놓더라도 주변에서 아이를 알아야 쉽게 찾아줄 수 있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겁내선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열린 마음을 갖자. 우리가 아이들을 세상에 내놓지 않으면서 왜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아이에게 열린 마음을 달라고만 하는가.
/ 박성열 (53) 자폐인사랑협회 경기지부장
“자폐아는 24시간 긴장 못 늦춰 특화된 복지관·작업장 절실”
고교 졸업 후가 더 문제… 장애인과 기업 이어주는 전문 코디네이터 시급
보통 다른 장애에 비해 자폐는 더 배척 당한다. 장애인 복지의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자폐는 ‘마지막 남은 장애’라고 할 정도다. 그만큼 재활이 어렵다는 얘기다. 행동 문제가 정리되지 않고, 적응에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오랜 시간 관찰하고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자폐인과 의사소통 자체가 어렵다. 돌출 행동도 자극적이다. 학령기 아동이나 청소년을 위한 시설이 충분한 것은 아니지만 자폐 아동들에게는 고교 졸업 이후가 더 큰 문제다. 자폐인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화 복지관과 작업장이 세워져야 하는 이유다.
자폐는 다른 장애와 달라서 24시간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가족 중 누군가 한 사람이 종일 매달려야 한다는 얘기다. 가족 기능의 정상화를 위해서도 특화 복지관과 작업장은 필요하다. 아침에 출근해 일터에서 생활하고 저녁에 퇴근한 뒤에는 가족과 공동 생활을 하도록 해야 다른 가족 구성원도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자폐인에게는 우편 분류 업무, 마트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일, 포장 조립 같은 업무 등의 직업군이 적당하다.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취업 이후에도 추가 지도를 집중적으로 이어간다면 적잖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과 일반 기업체를 연결시키는 직업 코디네이터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장애인들에겐 좀더 다양한 작업 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실습의 기회가 너무 부족하다. 어떤 일터가 있는지, 어떤 능력을 요구하는지를 알아야 뭐라도 준비를 할 수 있지 않겠나.
기업에 장애인을 받아들여 달라고 무조건 떼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인 만큼, 장애인 일자리 사업에 동참하는 업주에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세제 혜택이나 우선 구매업체 지정 등 인센티브를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기관 평가 때 가점을 주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 한은주 (52) 육영학교 교감
“하루 8시간 일 시키고 인심쓰듯 푼돈 그거나마 고마워 하라니…”
정부 지원금도 아이에겐 실제 혜택 안 돌아와… ‘바우처 제도’ 도입을
아들 문영(25)이는 장애인종합복지관의 보호작업장에서 조립 같은 단순 노동 작업을 하고 있다. 작업량이 적지 않기 때문에 아침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까지 일을 해야 한다. 쉬는 시간, 간식 시간이 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지 못하는 아이를 볼 때 안타깝다. 작업장 환경이나 처우는 여전히 미흡하다.
최저임금제를 도입한다고 하지만 실제 장애인 작업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제도의 본래 취지와는 다르다. 작업장 인원이 30~40명인데 이 중 10여명에게 기본급을 몰아주고 나머지 아이들에겐 1만~2만원 정도의 푼돈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일을 시켜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기라는 처사가 아닌가. 이래저래 우리 자폐인 부모들은 약자다. 복지관을 상대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정부의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은 이런 기막힌 현실을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작업장에 들어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1년 안팎을 기다려야 하고 3~5년이 지나면 나가야 한다. 대책 없이 다른 작업장을 기웃거려야 한다. 5년 동안 같은 일을 해서 나름대로 베테랑이 된 아이들이 다른 곳으로 옮기는 순간 다시 초급으로 전락한다. 다시 처음 기초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3개월 동안은 수습으로 월급이 없다.
우리 아이들을 보호 작업장에 보내는 것은 단지 돈만 벌자고 하는 일이 아니다. 아이가 일을 하고 그것을 통해 무엇인가 보람도 느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 앞에서 가슴이 미어지곤 한다.
정부의 지원이 복지관 운영비로 빠져나가고 정작 아이들을 위해서는 얼마 쓰이지 않는 것 같다. 외국의 ‘바우처(voucher) 제도’처럼 장애인이 직접 원하는 시설과 서비스를 선택해 이용하고 정부가 비용을 지불하는 형식이 도입된다면 좀더 내실 있는 지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 박옥순 (46) 정문영군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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