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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자살 ①>급증하는 노인자살…조각난 무병장수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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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08-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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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게 참 힘들고 지루해' |
【서울=뉴시스】
"불미스럽게 생애를 마감할 수 밖에 없는 내 처지를 이해해 주게. 늙고 병들고 재산도 날려버린 초라한 독거 생활을 더이상 지속 할수가 없었네. 지금의 생활을 계속한다면 머지않아 정신병자나 치매환자가 되고 말 것만 같네. 그런 지경에서 시중을 받으며 연명한다는 것은 너무도 끔찍한 비극이야. 세상사 모든 부분에서 뒤떨어진 낙오자인 나는 더이상 우매한 삶을 이어갈 의욕을 상실한지 오래됐네."
올초 경기도에서 자살한 70대 독거노인이 남긴 유서다. 10여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 홀몸으로 살아온 이 노인은 담담하게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며 이 세상과 작별했다.
'무병장수'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열망이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최고의 노인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무병장수는 어느덧 조각난 꿈이 되어가고 있다. "1초라도 더 살고 싶다"는 불치병 환자의 외침보다 남은 생에 대한 체념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리고 있다.
◇황혼자살 10년새 2.5배 급증
보건복지가족부가 최근 발표한 '응급실 손상환자 표본심층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1996년 28.6명에서 2006년 72.1명으로 약 2.5배가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동안 65세 미만이 11.7명에서 16.8명으로 늘어난 것에 비해 두드러진 수치이다.
나이가 많을수록 자살하는 빈도도 높다. 2005년에 한정시켜보면 60∼64세 노인의 경우는 10만명당 48.0명, 65∼69세는 62.6명, 80∼85세는 무려 127.1명에 달한다. 우리 국민의 평균 자살률이 26.1명인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노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지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노인자살이 고령화 사회의 숙명이라고 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은 2005년의 경우 총 인구의 9.1%이다. 한국이 2018년(14.3%) 고령 사회, 2026년(20.8%)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는 만큼 노인자살은 더욱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은 뻔한 일이다.
◇살고싶은 의욕을 잃은 노인들
서울 송파구에 사는 92세의 김모 할머니는 지난달 말 집안에서 소파에 앉다가 넓적다리뼈가 골절됐다. 아들이 부축해 병원으로 옮기던 도중 할머니는 다시 한번 쓰러져 복합골절이 됐다.
의사는 "할머니의 뼈가 꼭 분필굵기만하다"고 혀를 찼다. 뼈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받고 한달만에 퇴원한 할머니는 그러나 보행기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한걸음도 떼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100살은 너끈히 살 수 있다"고 말하던 할머니는 "세상 사는 게 참 지루하다"고 고개를 숙여 자식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27일 탑골공원에서 만난 김모 할아버지(86)는 뇌병변 장애를 안고 있다. 지난해 10살 연하의 강모 할아버지와 송화가루장사를 시작했다. 강 할아버지가 약재상에서 물건을 떼 오면 김 할아버지는 장애인등록증이 인쇄된 전단지를 돌리며 송화가루를 팔았다. 김 할아버지는 최근 강 할아버지에게 "장사를 제대로 못한다"고 얻어맞아 송곳니 하나가 빠졌다. 김 할아버지는 "경찰서를 찾아가도 노인네들 일이라고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서울 종로의 노인복지센터를 자주 찾는 김모 할머니(74)는 자식내외와 함께 살며 비교적 편안한 노후생활을 보내고 있단다. 그러나 할머니는 최근 자신이 수저를 댄 음식을 중학생 손녀가 외면하는 것을 견디기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이같은 노인들이 무심결에 내뱉는 "늙으면 죽어야돼"라는 말은 단순한 넋두리로만 들리지는 않는 상황이다.
◇노인자살 예방하는 사회안전망은 걸음마단계
노인들의 자살성공률은 매우 높다. 2006년 65세 이상 자살 시도 노인 중 31.8%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성공했다. 65세 미만보다는 4배 이상이 높은 성공률이다.
그렇다면 노인자살을 예방하는 우리의 사회안전망의 현황은 어떠한가.
미국 등 선진국에서 '노인자살예방센터'는 가장 일반적인 시설중에 하나다. 그러나 국내에는 지난해 서대문노인종합복지관 내에 설치된 노인전용자살예방센터가 유일하다. 노인자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아직 걸음마 단계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에서 노인문제를 사실상 전담하고 있는 곳은 노인복지관이다. 그러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06년 현재 노인복지관은 183개소에 불과하다. 그나마 서울 경기 부산에 71개소가 몰려 있다.
사회복지관이 노인복지관의 업무를 일부 수행하기도 하지만 노인업무에 전념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서대문노인종합복지관 오성희 사회복지사는 "다른 복지사도 마찬가지지만 솔직히 나에게 노인들의 고민을 제대로 해결해줄 수 있는 전문성이 있는지 스스로 반문할 때도 많다"고 털어놓았다.
◇황혼자살에는 뚜렷한 징후가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최근 발표한 노인자살의 원인을 살펴보면 크게 본인의 질병(35.9%) 우울증(19.6%) 자녀와의 갈등(9.8) 등으로 나뉜다. 얼핏 지병에 의한 자살이 많은 것 같지만 이는 단순히 발생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일 뿐, 구체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 서울노인복지센터 임태리 사회복지사는 "노인자살은 역할상실, 건강악화, 핵가족화, 경제적요인, 배우자 및 친지 사망, 사회관계축소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잡하게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노인들의 경우 이른바 '자살징후'가 젊은이들에 비해 뚜렷하다고 설명한다. 가장 큰 징후는 우울증이다. 나이가 들면 우울증 유발 호르몬 분비가 많아진다. 이때문에 쉽게 섭섭한 마음이 들고, 같은 상황이라도 젊은이에 비해 더 큰 상처를 받는다. 서대문정신보건센터 관계자는 "자녀들로부터 받는 소외감과 배우자 사망에 의한 절망감이 겹칠 경우 우울증이 생기기 쉬우며 이것이 자살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약 500만명으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노인들의 사회활동을 활성화하고 경제적 지원책을 강화하는 등 노인복지정책에 일대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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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곳없는 어르신들' |
【서울=뉴시스】
초고령화 사회를 맞고 있는 일본에서도 황혼자살은 골치아픈 사회문제이다. 실제로 일본은 최근 수년전까지만해도 세계최고의 노인자살률을 기록한 적도 있다.
일본 아키타대학 모토하시 유타카 교수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인의 16%가 "최근 한달 동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응답했다. 이 조사는 아키타현 아이가와마치에서 2002년 60세 이상 노인 192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이다.
조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자기평가우울척도에서 동거가족이 있는 경우(40.15%)가 독거노인(37.77%)보다 높게 나왔다는 점이다. 가족과 함께 살면 행복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 동떨어진 조사결과다.
모토하시 교수는 가족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그에 대한 대응능력 부족이 노인의 우울증과 높은 자살률에 영향을 미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또 "노인들은 '오래 살아 가족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폐를 끼친다는 마음'은 '가족에 대한 눈치'라고 분석했다.
일본에서 가장 높은 노인자살률로 고민해온 아키타 현은 모토하시 교수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노인자살을 막기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지역별로 우울증 노인을 위한 상담원을 배치하고, 상담전화를 개설하며, '마음의 건강 만들기 모임' 등 다양한 자살 캠페인을 벌여 가시적인 성과를 얻고 있다.
모토하시 교수의 연구 내용을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2004년)이란 책에서 전한 김동선씨는 나름대로 고령화에 대처해온 일본에서 노인자살문제가 심화된 것은 '가족신화'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와 가족구조의 변화에 맞춰 합리적인 노인부양책을 마련해 온 서구사회와는 달리 일본은 '효'이데올로기에 기대어, 사회차원에서 대안을 마련할 적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일본과 한국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고 있다. 고령화가 빠른 점, 노부모 부양을 자녀가 온전히 떠맡아 온 점,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고령화 문제가 폭발했다는 점 등이 그렇다.
◇노인자살 막는 민·관공조 절실
우리 정부와 기초자치단체는 최근 미흡하지만 노인자살 예방에 영향을 미칠 만한 몇가지 주목할 만한 시책을 내놓았다. 우선 정부가 올해 안에 시행을 예고하고 있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및 기초노령연금제도는 노인복지의 큰 밑그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제도실행에 대한 회의적 시선이 적지 않아 아직까지 신청률은 저조하다. 그러나 경제적 여건악화와 건강악화가 노인자살의 큰 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제도의 활성화는 노인자살문제 해결의 중요한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최근 TV를 통해 노인자살을 막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올해부터 노인성 질병인 치매예방 센터를 최소 각 구마다 한곳씩 설치하고 노인종합복지관 점진적으로 늘릴 방침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관련 예산의 대폭적인 증액이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어려움도 예상된다.
노인전용자살예방센터를 운영하는 서대문노인종합복지관은 기초지자체 단체로서는 이례적으로 지난해 복지관 이용노인을 중심으로 전문노인자원봉사단인 '프렌즈(friends)를 구성했다. '프렌즈' 활동원은 자원봉사활동을 위한 기초·전문교육을 받은 후 관내 경로당을 순회방문하며 노인우울 및 자살 예방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동년배로서 상담자와 피상담자가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복지관측은 활동원을 통해 자살 위험에 처한 노인을 조기 발견하고 자살 상황을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마찬가지로 복지관도 관련예산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민간이 노인자살을 막는 유기적인 협의체를 구성해, 사안별로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노인들에 대한 작은 배려가 자살 막을 수 있다
한국사회의 전통에 비춰볼 때 노인들 앞에서 자살얘기를 꺼내는 것은 어색한 일이다. 상대적으로 젊은 사회복지사들이 노인들과 자살에 관한 상담을 하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노인자살예방에 대한 사회적 인프라가 미흡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노인자살예방을 위해서는 주변인들의 역할이 클 수밖에 이유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노인자살의 증후를 크게 4가지로 나눠 설명한다. 주변인들, 특히 가족들과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해주길 주문하기도 한다.
먼저 "죽고싶다.",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 "내가 없으면 네가 더 편해질 것이다"와 같은 말들은 언어성 자살 증후에 해당한다. 주변 사람들은 이 같은 말을 들으면 각별하게 주의할 필요가 있다.
행동성 증후는 갑작스럽게 신앙에 대한 관심이 늘거나 반대로 감소하는 것 등이다. 의과대학에 신체기증을 하는 노인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젊은이들의 신체기증과 노인들의 신체기증의 의미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평소 온순한 성격을 가진 노인이 친지나 가까운 벗에게 사소한 일에도 크게 화를 낼 때에는 상황적 증후로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배우자의 상실과, 말기 질환 진단때 이 같은 증후가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후기 우울증 증후는 특별한 이유가 없음에도 공포와 불안을 호소하는 노인들에게서 나타난다. 또한 자존심이 상할만한 상황에서도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는 것도 후기 우울증 증후에 속한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자살에 대해 '공격성이 자신을 대상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사람은 공격성을 가진다. 그 공격성이 가까운 사람을 향해서는 안된다는 강한 억제가 반대로 자신을 해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사랑하는 사람을 해쳐서는 안된다'는 감정이 자살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노인생명의 존엄성이 경제적 계산이나 이성적 판단을 넘어서는 무게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사회적 공감 조성이 그 무엇보다도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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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대선기자 sds1105@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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