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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진기록 없는 에이즈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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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CBS 장규석 기자/ 김혜경 기자] 부산의 한 에이즈 환자가 관리와 치료를 제대로 받지도 못한 채 사망한 사실이 취재결과 확인됐다. 부산CBS는 고인이 된 에이즈 환자의 사례를 토대로 국가의 후천성면역결핍증 관리체계의 실태와 문제점을 고발하는 기획보도를 마련했다. 그 첫 번째로 국가의 에이즈 관리체계에서 소외돼 숨져간 한 환자의 사연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변변한 직업도 없이 일용노동 등으로 부산역 인근 여관을 전전하며 십 여년 넘게 살아온 김모(45)씨.
김 씨는 지난해 3월 초 생일을 앞두고 느닷없이 지인들에게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김 씨와 10년 넘게 알고 지내왔다는 지인 J씨는 "생일을 앞두고 김 씨가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라고 하더라"면서 "'그래서 어디가 아프냐, 암이냐 식도암이냐' 묻다가 갑자기 이상한 예감이 들어서 '에이즈냐'고 물어보니 갑자기 김 씨가 '응'하면서 울더라"고 말했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것일까. 그동안 꼭꼭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놨던 김 씨는 갈수록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했고, 5개월 뒤인 지난해 8월초 부산 모 보건소를 찾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상한 것은 김 씨가 보건소를 찾기 전 이미 자신은 검진을 받아 감염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보건소에는 김 씨가 HIV바이러스 감염인이라는 기록이 전혀 없었다는 것.
◈ 감염사실 알고 있었지만, 보건당국 기록엔 없어
보건소 측에서는 김 씨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 '익명검진'을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8조 4항, 5항)에 따르면 익명검진을 받으면 검진을 받은 사람의 모든 정보가 익명으로 처리되며, 보건소에서는 감염인으로 등록하고 체계적인 치료를 받을 것을 권고하지만 이를 거부할 경우 검진기록을 익명으로 남겨둘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또 김씨의 또 다른 지인인 Y씨는 "김 씨가 10년 전 위장결혼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려 하다가 혼자 출국하지 못한 적이 있다"며, "출국 전 건강검진에서 감염판정을 받아 출국하지 못한 것 같고, 이 때 감염사실을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감염사실을 안 것이 10년이 넘는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김 씨의 HIV감염진단 기록은 국가의 에이즈/HIV 관리체계 안에 남지 않았고, 때문에 그동안 아무런 치료나 상담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처음 찾아간 보건소에서도 일단 감염인으로 등록만 됐을 뿐 대학병원에 가보라는 말만 듣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보건소에 함께 갔었다는 J씨는 "보건소에서 병원에 가보라는 말만 했지, 다른 아무런 조치가 없었고 이후로도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역을 전전하며 생활을 이어가던 김 씨는 병원치료를 차일피일 미루다 병세가 극도로 심각해져, 제대로 일어날 수도 없게되자 지난해 12월 말 결국 부산에서 에이즈 치료가 가능한 모 대학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김 씨는 의사와 상담한 뒤 응급실에서 기다리다 도로 병원에서 나왔다. 남아있는 병실이 없어 3일을 기다려야 하고, 1종 의료보험 대상자였지만 입원 후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돈도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 병세악화..병원입원도 못하고 되돌아와
현행법상 감염인은 일단 치료를 받은 뒤 치료비를 보건소에 청구하면 돈을 나중에 환급받을 수 있지만, 변변한 직업이 없는 김 씨는 당장 수중에 돈이 없어 그날밤 도망치듯 자신이 사는 여관방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돈이 없으면 일단 치료를 받은 뒤 나중에 본인 부담금만큼의 치료비를 후불로 보건소에서 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있었지만 김 씨는 이를 알지 못했다.
형편이 어려웠던 김 씨의 경우 적극적인 상담이 필요했지만, 관할 보건소는 김 씨와 제대로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담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사실상 이름만 관리대상에 등록됐을 뿐 이렇다할 치료를 받지 못한 셈이다.
각 보건소마다 에이즈 담당자는 단 한 사람 뿐, 이 보건소에서 담당하는 감염인 수가 40명이 넘어 깊이 있는 관리가 힘든 상황이다.
보건소 담당자는 "감염인 관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업무도 맡고 있어, 일일이 감염인들을 상담하고 관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1명이 40명 넘는 감염인 관리, 허술한 관리체계
이런 사정으로 병원에서 다시 여관으로 돌아온 김 씨는 결국 다시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지난달 5일 보다못한 지인들이 김 씨를 차에 태워 고향인 경남의 가족들에게 보냈다.
김 씨가 사망했다는 연락이 온 건 그 뒤로 11일 뒤인 지난달 16일, 고향 가족들은 사람들 몰래 장례도 없이 김 씨를 바로 다음날 화장했다.
HIV바이러스는 성관계가 아니면 거의 전염되지 않으므로 감염인도 일반인과의 일상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또 최근에는 각종 치료요법이 개발돼 감염돼도 치료만 제대로 하면 20년 이상 정상인처럼 생활할 수 있다.
김 씨의 경우도 진단초기부터 관리를 받았다면 좀 더 오래 생존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김 씨는 단 한 번도 보건당국의 에이즈 관리체계 안에 들지 못한 채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 감염인 사망 후에도 남아있는 문제, '2차 감염'
그리고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지인들에 따르면 김 씨가 감염인으로 살았던 최소 10년 동안 대,여섯명의 여성들과 동거를 해왔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함께 살았던 여성을 빼고 김 씨와 살았던 여성들이 누군지 모두 밝혀지지 않은 상태고, 보건당국도 이들의 소재에 대해서는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이 누군지 밝혀지지 않는 이상 이들 여성들도 자신이 증상을 자각하고 보건소에서 검진을 받지 않는 이상, 김 씨처럼 국가의 에이즈 관리체계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게 됐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2008년 말 현재 생존하고 있는 HIV감염자 수는 5,036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김 씨나 김 씨의 동거녀들 처럼 기록이 없거나 관리체계 안에 들지 못한 감염인이 국가에 등록된 감염인 숫자보다 최소 2배에서 많게는 9배나 더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hahoi@cbs.co.kr/ hkkim@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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