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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따돌림의 폭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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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4-08-11
집단 따돌림의 폭력성 한성희 국립서울병원 소아청소년 재활치료과장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새 학기가 시작된지도 두 달이 되어간다. 이맘 때 즈음이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새 학년에 적응하며 새로운 또래집단을 만들게 된다. 끼리끼리 어울리는 그룹이 생기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아이 또한 생겨나게 마련이다. 문제는 특정 학생을 두고 일어나는 집단따돌림이란 심각한 왕따 현상이다. 왕따는 이제 너무 흔한 주제가 되어버렸다. 그만큼 우리 일상속에 깊숙히 침투해 있다는 반증이다. 자녀를 가진 어느 가정이건 우리 아이가 혹시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서든 인간소외의 현상은 항상 있어왔다. 현재 우리 사회에도 도처에 끼리끼리 편가르기의 병리현상이 만연하고 있음을 보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같은 편끼리의 편가르기는 결국 배타적 집단화를 이루게 된다. 배타적 집단화는 근원적으로 반사회적이다. 왜냐하면 ‘나’, ‘우리’가 아니면 모두가 적이 되는 이분법적 사고가 잉태되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하여는 모든 허물이 용서되는 반면 타 집단에 대하여는 아주 가혹해지고 냉혹해 지는 이중적이고도 모순된 잣대를 만들어 내게된다. 배타적 집단이 가지는 또 다른 병폐는 집단의 이름 속에 개인의 정체가 은폐될 때 인간은 쉽게 퇴행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인격의 퇴행이란 다름아닌 합리적 자아기능의 붕괴이며 죄의식의 마비를 말한다. 작게는 지연, 학연의 패거리 특권의식으로 부터, 극심한 예로 2차 세계대전 나찌의 광기에 이르기까지 집단의 이름으로 우월적이고 배타적 지위를 누리며 반사회적 파워를 행사하려는 퇴행된 욕구를 볼 수 있다. 아이들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집단따돌림 역시 같은 맥락의 공격적 행동이요 집단폭력이다. 어느 한 학생을 소외시켜 반복적으로 인격적 모멸과 언어적, 신체적 가해를 가하게 되는데, 흔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가 순환되면서 따돌림의 대상이 무차별화 한다. 가학과 피학은 동전의 양면일 수 있고, ‘최대의 방어는 공격’이란 말처럼 때로는 따돌림을 받지 않으려 일부러 가해집단에 합류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 가해 학생을 일대일로 만나보면 큰 문제가 없는 경우들도 상당 수 있다. 혼자서는 못하지만 집단이 되면 쉽게 퇴행이 일어나 스스럼없이 폭력화되는 것인데, 이때 공격성은 집단안에서 확대 재생산되면서 외부 대상에로 투사된다. 왜 이러한 집단 따돌림은 청소년기에 증폭되는 것인가? 아마도 그 원인은 청소년이라는 독특한 시기가 가지는 문제와 직결될 것이다. 청소년 개인이 가지는 취약한 정체성과 불안정한 자존감은 집단의 정체성 속에 안주하고자 하며, 그 속에서 강력한 소속감과 심리적 안정을 꾀하려 한다. 더욱이 집단따돌림의 경우 집단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속에서 정작 자기 자신의 공격성은 감출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이 시대의 청소년에게서 이런 집단따돌림이 유독 문제가 되고 있는가? 집단따돌림을 소외와 공격성의 표현으로 보았을 때 아마도 그 이유는 이전 세대에 비해 요즘의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상대적 좌절의 크기가 더 크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흔히 좌절의 열매는 증오와 공격성이다. 그러면 우리의 아이들은 왜 더 좌절하는가? 가장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현재 우리의 가정이 아이들을 제대로 보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버려지는 아이들이 하루 28명이라는 보도에서 보듯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부모의 역할이 실종되고 있다. 부모역할의 실종은 비단 이러한 정서적 박탈이나 방임만이 아니다. 소자녀 가족에서 흔히 마주치는 부모의 과잉간섭 역시 아이들을 무력하게 한다. 어떤 형태이던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고 성장하는 아이들은 타인의 결함이나 어려움, 고통에 대해 무감각해지며 자신의 좌절에 따른 공격성을 외부로 행동화하려는 특성을 보이게 된다. 요즘 소아정신과 진료실에서는 집단따돌림을 견디다 못해 정신장애를 보이거나 심지어 자살기도에 이르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올 봄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지난 2월 현직교장을 자살로 이끈 최근의 왕따 동영상 사건에서 보듯 학교 내 집단따돌림은 그 폐해가 아주 심각하고 나날이 빈도가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피해학생과 가해학생간의 합의나 일과적 사건 정도로 처리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아이들을 멍들게 하고 있는 집단따돌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각도에서의 접근법이 있겠으나 현실적이며 구체적 대응을 위해서 학교정신보건의 체계가 확립되어야 함을 지적하고 싶다. 학교에 기반한 학교폭력 및 따돌림 예방프로그램이 널리 보급되어 집단따돌림에 대한 예방교육이 적극 활성화 되어야 할것이다. 가해 및 피해 학생 모두를 위한 집단치료 프로그램의 개발과 치료기관과의 연계망 확보도 시급하다. 또한 집단따돌림의 조기발견과 조기개입을 위해서는 일선 학교, 학부모, 소아청소년 전문가가 협력하여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 구축이 마련되어야 할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증오와 공격성의 싹이 자라날 토양을 제공해서는 안되겠다. 신뢰받는 부모자녀 관계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관심과 존중을 받으며 성장한 아이들은 자신에 대해 긍정적이며 건강한 자존감을 지닐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만이 진정 나 아닌 남을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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