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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동자 전용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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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6-07-30
죽음의 행렬 막아선 2년, 그러나... [오마이뉴스 기사 인용]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 기자] ▲ 서울 가리봉동에 위치한 외국인 노동자 전용의원. 지난 2년 동안 3만6000여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이 병원을 다녀갔다. ⓒ2006 이경태 취재 : 이경태·선대식·장지혜 인턴기자 지난 26일 오전 10시 무렵.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외국인 노동자 전용의원 5층 예배당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 병원의 개원 두 돌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이인영 국회의원도 모습을 드러냈고 언론사 취재진들도 예배당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러나 뒷자리에 조용히 자리한 중국 동포와 외국인 노동자들의 얼굴은 결코 밝지 않았다. 특히 그동안의 병원기록 영상이 상영될 때 그들의 눈동자에는 안타까움이 가득 배어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 몸과 마음 치유하는 곳 ▲ 26일 오후 10시 서울 가리봉동 외국인 노동자 전용 병원에서 개원 2주년 기념식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축사를 하고 있다. ⓒ2006 이경태 외국인 노동자 전용 의원은 2년 전 지금의 자리에 세워졌다. 빌딩 1층은 외국인노동자의 집 사무실로 쓰고 2층부터가 병원이다. 건립 당시에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정부의 지원도 받을 수 없었고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불이익 역시 `전용의원`의 태동을 쉽지 않게 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외국인 노동자들은 간단한 치료만으로도 금방 나을 수 있는 감기나 충수염으로 죽어갔다. 단순 맹장염을 방치해 복막염으로 죽고, 발바닥에 못이 박히고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 파상풍으로 숨을 거두기도 했다. 조금만 일찍 환부를 내보이고 하루라도 빨리 병원을 찾았다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사람들. 외국인 노동자들의 `대부` 김해성 목사와 이완주 원장 등이 뜻을 모았다. 더 이상 이들의 죽음 행렬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다. 그리고 2년, 어느덧 병원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안식처가 됐다. 외국인 노동자 전용의원의 일일 방문 환자수는 200여 명. 다섯 명의 의사 선생이 이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 지난 2년 동안 이곳을 거쳐 간 초재진 환자수는 3만6000여 명에 이른다. 방글라데시 아기 오심의 뜻깊은 돌잔치 개원 2주년 기념식 중에 뜻깊은 행사도 열렸다. 이 병원에서 처음 출생한 아기 오심(방글라데시)의 돌잔치가 그것이다. 오심의 어머니 소니아(23)는 4년 전 한국에 와서 남양주 한 열쇠 공장에 다녔다. 당시 그녀의 월급은 60만원. 혼자서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지만 오심을 임신하게 되자 당장 사정이 힘겨워졌다. 안심하고 병원에 찾아갈 처지가 아니었던 소니아는 수소문 끝에 외국인 노동자 전용의원에서 오심을 낳았다. ▲ 돌잡기에서 마우스를 잡은 오심. 오심은 외국인 전용의원에서 태어난 첫 아기다. ⓒ2006 이경태 외국인 노동자 전용의원이 없었다면 오심의 탄생도, 축복 속에 치러진 돌잔치도 없었을 지 모른다. 소니아는 능숙하지 못한 한국어로 "주위에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었는데 이 곳 의사들에게 너무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심의 돌잔치 상은 열대과일과 한국의 전통 떡으로 차려졌다. 한국 전통 색동옷을 입은 오심은 밝게 웃으며 외국인 노동자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마냥 축하해줄 수만은 없는 현실이다. 오심은 무국적자이기 때문에 의료나 교육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 병원 이사장인 김해성 목사는 "한 생명이 무사히 태어나 다행이긴 하지만 무국적자로서 그들이 겪을 앞으로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연단에서 눈물을 쏟은 중국동포 백정자(45)씨의 사연은 전용의원의 존재를 절실하게 했다. 백씨의 남편 유영택(47)씨는 2년 전 지붕수리를 하다가 추락해 반신불수가 됐다. 유씨의 딸은 학교를 그만 두고 식당일을 하며 아버지 병간호를 해야만 했다. 유씨의 근무업체는 "발을 헛디뎌서 떨어진 것이 우리의 과실은 아니지 않느냐"며 냉정히 돌아섰다. 그가 다니던 병원에서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밝혔다. 돈도 없던 그들이 찾아올 수 있는 곳은 이곳 뿐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유씨는 혼자서 걸음을 옮길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 백씨는 "이 병원이 없었다면 남편은 죽음의 길로 들어갔을 것"이라며 그동안 서러웠던 마음을 눈물로 나타냈다. 재정난 허덕, 지원 후원 절실 ▲ 목디스크로 입원한 방글라데시 노동자 압둘(43)씨에게 가족들이 찾아왔다. ⓒ2006 장지혜 이날 행사 분위기는 무거웠다. 축사에 나선 유시민 장관이 "3주년 기념식은 밝은 분위기에서 열릴 수 있도록 돕겠다"는 발언을 할 정도였다.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희망을 키워나가는 공간이지만 전망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앞으로 수십 수백 년간 지속해야 할 사업이지만 지나온 2년을 생각하면 몇 년을 지탱할 수 있을 지 불투명하다. 현재 외국인 노동자 전용의원이 지고 있는 빚은 3억이 넘는다. 운영이 어려워 당장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고정적인 정부의 지원 없이 한 해 7억원의 예산을 쓰면서도 2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자원봉사자들과 뜻있는 이들의 후원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원금마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병원 관계자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김해성 목사는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결코 문을 닫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개원한 지 1년이 지났을 때도 3억 가까운 빚이 있었지만 고마운 분들이 내준 1000원짜리 한 장 한 장이 모여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며 "이번에도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셨으니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희망을 내비쳤다. "외국인 노동자 위한 `종합병원`으로 성장시킬 것" [인터뷰] 외국인 노동자 전용의원 이완주 원장 ▲ - 하루 방문 환자는 얼마나 되나? "100~150명 정도 된다. 그런데 한 사람이 오면 내과·외과 등 모든 진료를 받으려 하니 실제로 진료받는 환자는 200~250여 명 되는 셈이다." - 의사, 간호사는 몇 명이나 되는가? "의사는 나를 포함해 5명이고 간호사는 7명이다. 내과·외과·정형외과·산부인과·소아과 의사들이 있다. 한의학과와 치과 등은 자원봉사 선생들이 방문진료를 해주고 있다. 그분들께 고마울 따름이다." - 2년 동안 원장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 "모든 환자들이 저마다 안타까운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올 1월 병원을 찾았던 한 중국 동포다. 길에 쓰러져 있던 그가 처음 병원에 왔을 때는 단순 감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검사를 해보니 간암 말기였고 이미 척추까지 퍼져 있었다." - 그 정도가 되도록 몰랐단 말인가? "그러니 얼마나 고통이 심했겠는가. 간이 안 좋으니 소화가 잘 안 됐을텐데 그냥 소화제와 진통제만 먹고 버틴 것 같다. 병원에 오기 한 달 전까지 일을 했다고 한다.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우리가 더 이상 손 쓸 수 없어서 고향으로 돌아가 죽음을 맞이하길 권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10년이나 일을 했지만 막상 돌아갈 배 삯이 없다고 했다. 중국에 부모와 처자식이 있어 그쪽에 생활비를 댔던 모양이다. 결국 가족을 보는 것을 포기하고 이곳으로 가족 한 명을 초청했다. 초청된 가족은 합법으로 이 곳에 있을 수 있으니 자기 대신 일자리를 마련해 주려는 모양이었다. 결국 그는 1월 말에 여기에 입원해있다가 죽었다. 그런 현실이 가장 안타깝다. 자식도 많이 보고 싶었을 텐데…." - 병원에서 진료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병원 운영이 어렵다. 나는 의사다. 아픈 모든 사람들을 치료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하지만 아픈 사람을 많이 보면서도 여건상 모두 치료해 줄 수 없는 부분이 제일 마음이 아프고 속상하다." -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이 병원이 잘 운영되어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쉽게 다치고 깊게 아프다. 우선 마음이 외롭다. 가족들과 떨어져 있으면서 술로 시름을 달래니 그 속이 말이 아닐 것이다. 일하는 환경도 굉장히 안 좋다. 이런 외국인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치료라도 받을 수 있도록 이 병원이 종합병원급으로 성장해야 한다. 어렵겠지만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 본다." 3억 빚 짓눌러도,국경넘은 인술… 외국인노동자 전용의원 개원 2돌 [국민일보 기사 인용] 재중 동포 김창준(가명·47)씨는 2004년 11월 충남 천안의 한 농장 축사 지붕에서 작업 도중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 오른쪽 두개골에 큰 손상을 입어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몸의 왼쪽은 마비 상태였다. 김씨의 근무 업체는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앞길이 캄캄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6월 주변의 도움으로 서울 가리봉동에 위치한 외국인노동자 전용의원(원장 이완주)을 찾았다. 1년 남짓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김씨는 이제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정도가 됐다. 26일 외국인노동자 전용의원 개원 2주년 기념식장에서 백정자(가명·45)씨는 남편 김씨의 이런 사연을 소개하며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1년 넘도록 단 한푼도 받지 않고 정성스럽게 치료해 준 의료진과 숙식을 제공해 준 외국인노동자의 집 관계자들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다. 이 의원에는 김씨와 같은 사연을 갖고 있는 외국인노동자 환자들이 부지기수다. 지난 2년 동안 초진환자 3만6000여명,입원환자 520여명,수술환자 100여명이 이곳을 거쳐갔다. 매일 150∼200명의 환자로 붐빈다. 외국인 노동자는 진료와 검사,수술,입원 등 모든 비용이 무료이기 때문이다. 개원 2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책 ‘Thanks(땡스)2’(발행인 김해성)에는 외국인노동자 전용의원에 대한 환자들의 진솔한 고백이 넘쳐난다. “한 사람의 생명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의 희망을 건져준 곳입니다(박광철·중국 동포). 이 곳이 마치 엄마의 무릎처럼 편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핫산·파키스탄).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고 일깨워준 곳입니다(미샤·우즈베키스탄).” 하지만 개원 2주년을 맞은 이 의원은 지금 운영의 어려움으로 진퇴의 기로에 서 있다. 3억원을 넘는 빚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 의원 측은 몇몇 독지가와 민간 후원금에 전적으로 의존해왔지만 근래 후원이 감소하면서 인건비와 의약품 구입비를 마련하는 데 애타고 있다. 병원 설립자이자 외국인노동자의 집 대표인 김해성 목사는 이런 상황에 안타까움 을 감추지 못한다. 외국인노동자 전용의원의 운영은 곧 선교이자 외교활동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돈 없고 집 없고 심신의 상처까지 입은 외국인노동자들이 이곳에서 회복한 뒤 본국으로 돌아갈 때면 어느 새 한국과 기독교를 홍보하는 민간외교사절단이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소중한 병원이기에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외국인노동자들의 벗으로 계속 남을 수 있기를 김 목사는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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