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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에서의 4일, 격리와 소외 그리고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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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6-08-29
소록도에서의 4일, 격리와 소외 그리고 차별 [프로메테우스 기사 인용] 행동하는의사회, 소록도 여름현장활동을 다녀오다 [프로메테우스 유나래 기자] 행동하는의사회 의사회원과 학생회원 32명은 지난 10일부터 13일까지 소록도 여름현장활동을 다녀왔다. 소록도에서 그들은 무엇을 했을까. 행동하는의사회 유나래 활동가를 통해 소록도에서의 이야기를 보내왔다. - 편집자 주 - 지금은 조금씩 사람들 사이에 잊혀지고 있지만, 소록도는 나병이라고 알려진 한센인들이 모여서 사는 섬입니다. 1916년 조선총독부령으로 100여명의 한센병 환자들이 강제로 격리 및 강제 노역으로 모여 살았고 해방 후에도 여러번의 학살사건과 인권유린으로 주민들의 삶은 비참함 그 자체였습니다. 한센병 환자들은 보기에도 흉하고 ‘천형’이라는 낙인 때문에 사회적 편견이 심한 병입니다. 집과 사회에서 버림받았기에 한곳에 몰려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재는 약 1600명의 주민들이 국립소록도 병원과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버스로 6시간의 긴 여정을 거쳐 도착한 섬은 아픔이 많은 주민들의 역사와는 다르게 관광객들이 찾아올 정도로 아름다운 소나무와 집들이 어우러진 곳이었습니다. 첫날 우리들은 국립소록도 병원에서 한센병과 주민들에 대해 교육을 받았습니다. 얼굴과 손, 발들이 많이 뭉개져서 흉한 모습과 그로 인한 편견으로 한센인이 얼마나 질병과 사회에서 이중으로 배제시켜 왔는지에 대한 교육이었습니다. 둘째 날, 우리들은 새벽 5시부터 소록도 병원에 입원한 주민들의 식사보조를 위해 각 병동으로 향했습니다. 혼자서도 잘 식사하는 분들도 있지만, 실명되거나 손이 불편한 분들은 옆에서 식사 보조를 해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저귀도 갈아드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랑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벗도 해드리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마을로 자원활동을 나간 학생들은 가가호호 주민 방문을 했습니다. 주민 대부분이 할머니 할아버지였는데 스스로 일상생활이 가능하신 분들도 계시지만 병으로 인해 실명되시거나 손, 발이 불편하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혼자서는 목욕조차 힘드셔서 더운 여름을 그냥 지내시는 분들을 위해 열심히 목욕봉사를 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분들을 위한 자원활동가의 도움이 절실했습니다. △ 국립소록도병원과 마을을 연결해주는 길 ⓒ 행동하는의사회 짧은 하루 동안의 봉사였지만, 각자기 느끼는 점은 달랐습니다. 열악한 병동 상황에 분노를 느끼는 학생들도 있었고, 한센병이 두려운 병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변에서 그냥 보통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랑 다르지 않은 마음이 따뜻한 시골 마을의 어르신들이였다면 자책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많으셔서 인지, 손자 손녀들 같은 학생들에게 마실 것 하나라도 주시려고 하는 따뜻한 마음에 어느덧 어르신들과 친숙해진 자신들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밤 시간동안 각자가 경험한 활동을 이야기 하느라 숙소는 시끄럽게 되어버리고 그렇게 우리들은 소록도에 조금씩 중독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셋째 날에도 어김없이 새벽 5시부터 활동이 시작됐습니다. 병동과 마을로 향한 우리들은 소록도에서의 일상을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일들도 익숙해지고,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들도 나누게 되었습니다. 일제 시대 때부터 강제 노역을 하면서 고생하면서 소록도를 지금과 같이 사람살기 좋은 곳으로 일군 것들, 부모가 한센인이면 같이 살 수 없어서 보육원에서 지내야만 했던 서러운 어린 시절, 그리고 자식들에게 소위 ‘나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릴 수 없어서 소록도에 숨어들어와 소식조차 끊어버린 할머니, 언제나 웃음을 짓고 마음이 따뜻한 그분들 뒤에는 서럽고 억울했던 한이 가슴 한 구석에 응어리져 있는 것을 알고 뒤돌아 나올 때는 아픔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가슴 아픈 것을 뒤로 하고 장기자원봉사자께서 우리를 ‘아기사슴성당’으로 데려가셨습니다. 예전에 소록도 주민들에게 거주의 자유가 없었을 때 성당 옆 조그마한 동물원이 세상을 보여주는 조그마한 통로였다는 것을 설명하면서요. 너무 아름다워서 눈부신 해변과 소록도의 길, 대조적인 주민들의 비참한 삶에 비춰봤을 때 그 아름다움은 더 슬프게 다가왔습니다. 마지막 날 아침이 오자 짧은 자원활동에 아쉬움을 느끼면서 며칠 안 되었지만 그 동안 정든 마을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하고 오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병동에서 가지 말라고 울면서 말하는 할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나와야 했던 학생은 우리들에게 아쉬움을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려야만 했습니다. 소록도에서 육지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이글거리는 태양아래에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각자가 느끼는 일상으로요…. 그러나 얼마나 많은 한센인이 질병이라는 고통과 그 보다 더한 버림과 멸시 속에서 살아야 했는지, 지금 우리는 장애인들과 기타 소수자들을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고 심지어 공포감에 사로잡혀 격리하고 소외시키고 차별하면서 집단적 광기를 보이고 있는지 이제는 압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이 과거와 현재가 맞닿아 있다는 것에 씁쓸하기만 합니다. 유나래 / 행동하는의사회 상근활동가,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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