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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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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이 쓰는 우리 시대의 중독] ① 관계중독 ( 조서닝릴보 기사 인용) 날 싫어할까봐… 안 된다는 말도 못하고 무리한 부탁이라는 것, 내가 지금 해줄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사리 거절하기 어렵다고요? 한창 일을 마감하는 중인데 친구가 메신저로 “지금 바빠?”라고 쪽지를 보내면 “아…괜찮아”라며 상대를 해주다 정작 해야 할 일은 못하죠. 모임에는 늦게라도 꼭 나가야 하고, 회식자리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하지요. 그래야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니까요. 당신은 너무나 친절한 금자씨 군요.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당신의 모습은 아름다워요. 사람들은 당신을 모임의 감초라고 하지요. 하지만 한 번 둘러보세요. 행여 어떤 일을 거절하면 그가 나를 싫어할까봐 노심초사해요. 약속이 없는 날은 좀 쉬면 좋으련만 누구라도 만나야 할 것 같아 오후가 되면 전화를 돌리게 되지요. 왜 그런지 알아요? 당신은 이미 관계 자체에 중독됐기 때문이랍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숨을 거둘 때까지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혼자서는 외롭고 불안한 존재지만, ‘우리’ 안에서는 안정을 느끼는 거지요. 내게 모자라는 것을 외부와의 관계에서 구하면서, 그만큼 내가 커지고 강해진 것 같은 경험을 합니다. 그러나 외부와의 관계에 관심을 쏟는 만큼 ‘내 안의 나’는 자라지 못하고 쪼그라들게 됩니다. 관계가 없으면 나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의존 상태가 될 수도 있는 거지요. 누군가와 함께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공허한 기분이 들고, 이젠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삶에서 더 중요한 일이 되어버립니다. 행여 내가 부탁을 거절하거나, 바쁜 내색을 비치거나, 모임에 나가지 않으면, 뭔가 일이 벌어질까 두렵습니다. ‘힘들면서 왜 하냐’고 물으면 ‘걔네가 간절히 원하니까’라고 항변합니다. 이때부터는 ‘다른 사람이 내게 기대하는 일’이 우선이고, 정작 하고 싶은 일은 뒷전입니다. 그러니 뭘 해도 만족스럽지 않죠. 그 부족함을 외부에서 다시 얻어다 메우려 합니다. 모임의 감초라고요? 감초는 감초일 뿐 녹용이나 인삼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나요? ‘너 없어서 하나도 재미 없었어’라는 말은 그저 인사치레 일 뿐. 당신을 그리워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당신은 곧 잊혀지고 맙니다. 그들이 나를 다시는 찾지 않을까봐 두렵습니까? 이렇게 애를 쓰는데도 아무도 내 헌신을 진심으로 고마워하지 않는다고요? 야속합니까? 야속해도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어느새 원래 그 정도로 해주는 사람으로 찍혀버렸습니다. 원래 잘 퍼주는 사람한테는 고마운 마음이 안 드는 법입니다. 내 에너지를, 돌아오는 것 없이 퍼주다 보니, 정작 내 마음은 바닥납니다. 우물 바닥 득득 긁는 소리가 들립니다. 관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먼저 “싫어”, “난 바빠”라는 말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과감하게, 잠시 관계의 코드를 뽑는 겁니다. 내가 거절을 해도 그와 나의 관계가 끝이 나는 것은 아니랍니다. 이제는 살짝 튕기고, 모임에 늦게 가는 신비주의 전략을 구사하십시오. 그러다 보면 말라있던 감정의 우물에 물이 조금씩 고이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거꾸로 당신을 소중히 여기게 될 겁니다. 여기에 관계중독의 패러독스가 숨어있답니다. 내가 튕길수록 도리어 관계는 탄탄해질 수 있다는 것 말이죠. (하지현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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