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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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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이 쓰는 우리 시대의 중독] (6) `디테일` 중독
( 조선일보기사 인용)
돋보기로 좁쌀 세기는 이제 그만
사소한데 신경쓰다 중요한 것 놓치기 쉬워
후배가 기획서를 가져왔습니다. 어럽쇼? 영문 서체는 보기 좋게 타호마로 하라고 했는데 성의 없이 바탕체 그대로 가져왔네요. 반항하겠다는 건지, 센스가 없는 건지 열이 확 받습니다. 줄 간격이 눈에 확 들어오지 않네요. 편집이 엉망입니다.
장사 한 두 번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발전이 없는 것인지. 여기에 한 번 꽂히니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붙잡고 앉아서 이리저리 편집을 하다 보니 회의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정작 중요한 결론은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일이 제대로 안 풀리면 책임은 내가 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무책임한 후배가 얄밉습니다.
보고서, 제품시안을 보다가 폰트, 디자인이 눈에 거슬리는 순간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들어 버리는 당신은 디테일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본질을 봐야지 그런 소소한 것에 왜 그리 신경 쓰냐고 핀잔을 주면 이렇게 말하죠. ‘하나를 알면 다른 건 볼 필요가 없다’고요.
1990년대 중반 이런 실험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3명으로 구성된 두 팀이 서로 농구공을 주고받는 테이프를 보여줬죠. 각 팀이 서로 패스를 한 횟수를 세게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고릴라나 우산을 든 여자가 그들 사이를 걸어가는 상황을 최소 5초쯤 내보냈습니다.
테이프 상영이 끝난 후 ‘뭔가 다른 걸 본 적 있는가’라고 물었더니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의 50%가 고릴라와 여자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는군요. 한 군데 너무 신경을 쓰고 있다 보니 다른 곳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 분명한 변화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는 결론입니다.
이처럼 디테일이란 형식에 집중하다 보면 핵심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꾸만 디테일이 신경 쓰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이유는 당신의 책임감이죠. 내가 뚫리고 나면 골을 먹고 말 것이라는 최종수비수의 심리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디테일을 걸고 넘어지면, 내용에 상관없이 비판하기 쉽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본인의 전문영역이 아니라면 세세한 내용까지 다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뭐라 한 마디 해야 밥값을 한다는 의무감이 엄습합니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형식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죠. 이 초식의 장점은 언제 어떤 영역이라 해도 막힘 없이 지적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성공의 경험은 반복과 습관을 불러옵니다.
매번 끙끙거리며 뒷감당을 하게 만드는 칠칠 맞은 인간들은 어차피 바퀴벌레처럼 영원히 박멸되지 않을 겁니다. 아무튼 디테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당신, 이 참에서 한 번 돌아보시지요.
처음엔 당황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나중에는 자신의 개인적 꼼꼼함 때문에 시작된 디테일에 대한 관심이 어느새 강박과 집착으로 양질전환 돼 당신을 장님으로 만들어버리지는 않았나 말입니다. 더 나아가 세세한 형식적 장식이 마음에 안 들면 다 헛것이고 내용도 신뢰할 수 없다는 망상적 믿음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나 말이지요.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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