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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기업 8곳 ‘심리상담’…아직 걸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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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6-11-09
30대기업 8곳 ‘심리상담’…아직 걸음마 [한겨레기사 인용] 우리나라 기업들의 직원 정신건강 챙기기는 이제 막 발걸음을 뗀 단계다. 2000년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자들이 근로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장애를 예방하도록 의무를 부여했지만, 구체적인 시행령과 규칙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여전히 선언적 규정을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그러다 보니 현재 도입된 상담 프로그램은 대기업 임원이나 정규직 노동자들에 국한돼 있는 실정이다. ‘우울증’ 가장 심한 비정규직엔 ‘그림의 떡’ 미국 상장사 절반 ‘스트레스관리’ 큰 효과 2년 전부터 기업과 계약을 맺고 시이오나 임원 후보 등 ‘핵심인력’들을 대상으로 6개월 과정의 심층 심리분석을 해주고 있는 정신과 의사 정혜신씨는 현재 30대 기업 가운데 8곳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소장은 “신체적인 건강검진을 늘 하는 것처럼 고도의 정신노동을 수행하는 이들이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업들이 심리적 투자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직장인 정신건강 문제는 정규직이나 임원들보다는 비정규직에서 더 심각하다. 한림의대 성심병원 조정진 교수팀이 지난해 329곳 사업자의 직장인 8522명을 대상으로 한 우울증 조사 결과를 보면, 우울증 유병률은 일용직이 22.7%로 가장 많았고 파견근로와 계약직이 각각 16.3%였다. 반면 정규직은 15.7%였다. 근무형태별로는 2·3교대 근무자(17.2%)가 주간 근무자(15.5%)보다 높았다. 직업별로도 비숙련 판매서비스 직종이 18.2%로 가장 높고, 숙련기술 생산직이 17.9%, 단순노무 생산직이 17.3%였다. 기업주 및 임원관리직은 13%로 가장 낮았다. 한인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교육센터 연구원은 “영미권의 노동자들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태업을 하거나 무단 결근을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견디고 견디다 과로사하고 만다”며 “정부도 의지가 별로 없고 노동자들도 크게 쟁점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소홀하게 취급됐다”고 말했다. 가톨릭대 의과대학 채정호 교수는 “미국에선 90년대부터 직원들의 스트레스 관리가 활성화해, 상장회사 중 절반 가량이 다양한 형태로 정신건강 상담 프로그램을 채택하고 있다”며 “생산성 하락, 스트레스성 뇌심혈관 질환에 대한 요양비 지출, 인명사고, 산업재해, 기업 이미지 실추 등 정신건강 문제로 인한 손실을 따져보면 미국 기업들은 투자 대비 5배 가량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회사가 준 ‘마음의 병’ 회사가 치료 나선다 컨설팅 기업에서 7년째 일하고 있는 회사원 박진철(34·가명)씨는 운전을 하면서 혼잣말을 계속 중얼거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누구에겐가 말하고 싶은데 고객이나 회사 동료 모두 항상 일로 엮여 사니까 속마음을 털어놓을 만한 이들이 없다. 프레젠테이션이든 보고서든 성과가 유리알처럼 드러나고 비교되니 삶이 늘 숫자로 기록된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정신건강 상담 서비스에 이메일로 예약신청을 했다고 털어놨다. “상담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동료들끼리 서로 알까봐 겁나니까 이메일로 각자 예약을 하는 것이다. 솔직히 인사부에서 알게 되면 혹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그는 1년 전 업무에 짓눌려 있던 동료 컨설턴트가 자살한 기억이 떠올랐다며 치료가 필요할 때가 있다고 했다. 1997년 대학 졸업 뒤 아이티 업계에서 일해온 김승민(35·가명)씨도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주기적으로 ‘위태로움’을 느낀다. “일에 매달릴 때는 괜찮지만 마감을 넘기고 나면 공허함이 밀려들어 한없이 우울해진다. 뒤를 돌아볼 때마다 회의가 들고 일상이 무의미해진다.” 그도 곧 사내 상담실을 찾을 계획이다. 직원들이 업무 과정에서 얻은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데 회사가 나서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직접 심리상담사를 채용해 업무시간에 상담을 받게 하거나, 외부 전문 상담기업에 아웃소싱을 맡기는 것이다. 2001년부터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현재 9개의 사업장에서 15명의 심리상담사가 일하며 한 해 700건 정도의 상담을 받고 있다. 엘지씨엔에스도 지난달 ‘마음쉼터’라는 상담소를 사내에 열었다. 메신저, 이메일, 방문상담 등 한달새 140건 정도의 상담이 이뤄졌으니, 꽤 인기가 높은 셈이다. 엘지씨엔에스 입사 2년차인 강지민(26·가명)씨는 한달 전 이곳에서 적성·성격검사를 받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적성에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업무 속성상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고 분석적·논리적 사고를 해야 하는데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내 성격 때문인지 의욕이 없고 재미가 없었다.” 그는 상담을 통해 자신이 느끼는 불만의 원인과 문제를 개선할 방법을 발견했다고 했다. 주일정 심리상담사는 “직원들은 남에게 털어놓기 힘든 문제들을 마음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곳을 매우 원했다”며 “외근하는 직원들은 메신저를 통해서라도 상담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정신건강 관리를 전문적으로 대행하는 회사도 생기고 있다. 사내 상담센터는 일상적인 심리상담을 주로 맡고 있어 직원들이 심각한 처지에 놓였을 때 대처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는데다, 사내에 위치하고 있어 ‘비밀보장’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설립된 다인시앤엠은 기업의 직원지원프로그램(EAP)을 전문으로 대행하는 회사다. 하나은행,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구글코리아, 매쿼리은행, 수자원공사 등과 계약을 맺고 직원들의 정신건강 상담을 맡고 있다. 이 회사의 강민재 컨설턴트는 “상담 범위, 이용률에 따라 다르지만 직원 1명마다 연간 3만~3만5천원꼴로 계약을 맺고 있다”고 말했다. 다인시앤엠의 심리상담사 양경연씨는 “상사와 안 맞는다거나 까다로운 고객 때문에 괴롭다는 등의 직무 스트레스도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심리적 바탕과 관련이 깊기 때문에 인지치료를 통해 내적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우종민 교수는 “직원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집중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비행기 추락사고나 화학공장 폭발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고, 회사 시이오(CEO)가 정서적 안정이 안 돼 판단을 잘못하는 바람에 회사 존립이 흔들릴 수도 있다”며 “이제는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사람을 갈아치우는 식으로 넘어갈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의 스트레스 또한 회사 위기관리 요소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얼마나 우울할까? 가장 최근에 이뤄진 현장조사는 지난해 4~10월 한림의대 성심병원 가정의학과 조정진 교수팀의 조사인데, 이 조사를 보면 직장인 10명 중 1명은 우울증을 앓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별로 살펴보면 우울증은 고객을 상대하는 서비스업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오락·문화·운동 관련 서비스업에서 우울증군이 31.1%로 가장 높았고 숙박·음식점업이 28.8%, 보건 및 사회복지사업이 24.1% 순서였다. 이런 결과에 대해, 가톨릭대 의과대학 채정호 교수는 “(이 조사는) 실제로 병적인 수준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경우를 따진 것으로, 우울에 시달리는 수치는 훨씬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직무스트레스학회가 2001년 조사한 우리나라 직장인의 스트레스 보유율은 95%로, 미국(40%)이나 일본(61%)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우울증과 적응 장애 등 정신질환으로 인한 산재 승인 건수는 2000년 27건에서 지난해 104건으로 늘어났다.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인 뇌졸중·심장병 등 뇌심혈관계 질환의 산재 승인 건수도 2000년 1950건에서 지난해 2285건으로 증가했다. 그만큼 회사가 정신건강을 챙겨주기를 바라는 수요도 높다.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최수찬 교수팀이 지난해 6월 직장인 7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더니, 87.7%가 정신건강 상담 서비스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답했다. 우종민 인제대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일반인이 정신병원을 찾기는 쉽지 않으므로 상담서비스 등을 통해 정신건강의 위험신호를 미리 살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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