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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 어디 아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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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6-12-07
연개소문 스트레스 과잉? `역사 속 인물, 어디 아팠을까` 【서울=메디컬투데이/뉴시스】 과거 역사 속 인물들의 사망 원인을 살펴보면,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에 다소 어처구니 없이 죽음에 이른 경우가 있다. 현대의학이 발달하기 이전, 고통속에 죽을 수 밖에 없던 많은 인물들. 과연 이들은 어떤 병에 시달리며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을까?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 최근 드라마를 통해 소개된 연개소문의 죽음은 역사적으로 정확한 묘사는 아니다. 사실상 원인은 뚜렷하지 않다. 하지만 60세는 못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노환으로 별세했다기 보다는, 병에 걸려 사망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더 많다. 역사학자들은 그 근거로 사망추정시기인 660년대 중반 직전인 662년에도 연개소문이 군대를 직접 지휘해, 당나라 군대를 몰살시켰을 정도로 기력이 왕성했다는 사실을 꼽는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백제의 구원이 어려워지는 것에 대한 정신적 압박과 과로가 건강상 문제를 일으켰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아주대병원 정신과측은 "스트레스가 해소될 여유가 없이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육체가 늘 긴장돼, 저장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며 "이는 외부의 자극과 싸울 힘이 없어지게 되고 면역력이 떨어져 결국 병이 생기게 된다"고 전했다. 이러한 스트레스와 관련된 증상이나 병으로는, 본체성 고혈압, 긴장성 두통, 관절염, 성인성 당뇨병, 심장관련질환, 천식, 기억장애, 우울증, 비만증, 수면장애, 소화기 장애, 콜레스테롤 증가, 면역성 감소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의 경우 역시, 9일간의 폭염 속에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로 고통스럽게 굶어 죽어갔다. 이는 특정 공간에 갇혀있다는 정신적인 공포와 스트레스가 엄청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불어 물이나 음식의 섭취를 전혀 할수 없는 것은 더욱 빨리 죽음을 재촉했다. 사람은 물만 마셔도 얼마간은 살아남을 수 있다. 얼마전 지율스님도 물과 소금만으로 100일간의 단식을 버텼고, 삼풍백화점 사고 당시, 최후 생존자는 27일간을 버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희의료원 가정의학과 김병성 교수는, 우리 인체 구성성분 중에서 물이 3분의2를 차지할 정도로 근육이나 세포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고 전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인체는 물을 하루 2리터 정도 충분히 섭취해야만 원활한 신진대사가 이뤄져 활동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왕들은 운동부족? 또 특별히 주목할 만한 사실은 조선시대 총 27명 왕들의 평균 수명이 47세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당대 최고의 의료혜택을 누리고 풍요로운 의식주 생활을 했을 왕들에게 대체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이는 당시 의학기술의 한계와 잘못된 보건개념, 더불어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과도한 주색, 기름진 음식 섭취에 비한 운동부족 등을 꼽는다. 서울대 대학원 의학과 의사학을 전공한 김정선 박사는 지난해 ‘조선시대 왕들의 질병치료를 통해 본 의학의 변천’이라는 주제의 논문을 통해 이 같이 밝혔다. 특히 김 박사는 태조, 정종, 태종을 중풍으로 인한 뇌출혈로 사인을 분석했다. 또한 세종과 숙종은 당뇨병으로 고생하다 죽은 것으로 추정했다. 세균성 감염증 역시 빈번했는데, 문종과 성종을 비롯한 효종, 정조, 순조는 `종기`로 인한 패혈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남대의료원 피부과 신동훈 교수는 “종기는 박테리아균이 피부의 모낭과 모낭주변에 염증을 일으키는 병”이라며 “예전같이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는 면역기능이 매우 떨어진 경우 패혈증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신 교수는 “종기가 만성적으로 몸의 여러 곳을 옮겨 다니는 경우, 요즘 같으면 항생제로 치료하지만 당시는 불가능해, 치료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도 만성적인 종기의 경우 치료가 됐다 하더라도 2주~3주정도 항생제를 사용해 예후를 지켜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전염병은 역신(疫神)의 소행? 한편 김정선 박사는 연산군과 현종, 경종이 전염병으로 죽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17세기에서 19세기 중반에 유행한 전염병은 국가 인구를 급감시킨 원인이 되기도 했다. 한 예로 19세기초 순조임금 이후 18년이 지난 헌종 원년에 인구 100만명이 갑자기 줄어든 것은 전염병이 큰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조선후기에는 많은 역병이 퍼져나갔다. 종류로는 바이러스감염에 해당하는 두창,수두, 홍역 등이 있고, 미생물학적인 수인성 전염병인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등이 있다. 이중 가장 큰 피해를 낸 것은 두창과 콜레라다. 두창은 지금 말로 ‘천연두’며, 속칭으로 ‘마마’라고도 한다. 주요 증세는 고열과 전신에 발진을 동반한다. 콜레라는 콜레라균에 의해 일어나는 소화기계의 전염병이다. 따라서 현재도 법정전염병으로 구분돼있다. 전형적인 증세로는 과다한 설사가 동반되며 구토, 발열이나 배가 아프기도 한다. 또한 대개 심한 설사로 탈수현상을 일으키고 제때 치료 하지 않는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전염병이 돌면 그저 도망가기 급급했고, 과학적 접근보다는 역귀(疫鬼)가 붙어 생긴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도움말- 한국역사연구회, 의학박사 김정선, 아주대의료원, 영남대의료원, 경희대의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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