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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수술 왜? 불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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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7-03-14
성형수술 왜? 불안해서! 민가영 홍익대 여성학 강사 ( 조선일보 기사 인용) 서울의 한 동네에서 가장 많은 병원은 단연 성형외과이다. 이 동네에 돌아다니는 뚱뚱한 아주머니들은 동네 주민이 아니라 죄다 일 해주러 온 가사도우미라는 ‘계급 차별적’ 농담도 있을 정도다. 이 같은 농담은 중산층의 모든 것이 ‘몸’에 스며들어 있다는, 그래서 ‘보이는 것이 곧 그 사람의 계급’이라는 의식을 대변한다. “너, 싸보인다”는 말은 오늘날 여성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말이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여성성을 계급과 연관시켜 구분짓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예전 ‘계집애가 왜 이렇게 여성스럽지 못하냐’라는 타박은 오늘날 그 생명력을 잃었다. ‘조신하지 못하다’는 낙인 대신‘싸구려 같아, 럭셔리 해, 시장스러워, 부티가 안 나, 고급스럽지 않아’ 같은 식으로 얘기하는 풍토가 여성들의 발목을 사로잡는다. 당연히 최근 성형 트렌드는 인형처럼 예쁜 얼굴이 아니라 럭셔리한 귀족 성형이다. 이제 여성들은 ‘정말로’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성형을 하지 않는다. 여성들은 ‘예쁘고 순종적인 여성으로 남성 눈에 들기’보다는 ‘고급스러운, 부티 나는, 럭셔리한 상품을 척척 구매할 수 있는’ 여성이 되고 싶어하거나 최소한 그렇게 보이고라도 싶어한다. 이들은 ‘자본’이 구별지어 놓은 여성들의 위계(位階) 속에서 자신을 읽고 이해한다. ‘비싼’ 여성으로 통과(passing)되고 싶은 욕망은 유례없는 짝퉁 산업을 부추긴다. 최근 한 연구에서는 20대 중·후반 여성 60%가 성형 수술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Bourdieu)는 역사적으로 새롭게 출현한 중산층이 사회 안에 자신의 정당성을 뿌리내리기 위해 다른 계급 사람들과의 ‘구별짓기’를 하고 그들만의 규범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한다. 짝퉁 산업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이건 필시 중산층의 구별짓기를 무화(無化)시키려고 하위 계급 저항이 만들어 낸 음모’일 거라고 마음대로 해석했던 적이 있다. 돈이 있건 없건 전염병처럼 퍼져나가는 성형 붐을 지켜보다가 문득 이와 비슷한 블랙 코미디 같은 생각이 스쳤다. 여성들의 대대적인 성형 붐은 그 동기야 어찌됐건, 결과적으로는 여성들 간 외모 차이를 없애버림으로써 외모에 따른 사회적 배제를 타파하려는 여성들의 집단적 저항이라는 음모가 그 뒤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현실적으로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성’이 되는 것은 ‘완료’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이 정도면 잘 됐어, 이젠 됐어!’라는 만족감을 절대 갖지 못한다. 반복적인 수행 속에서만 잠깐씩 확인할 뿐이다. 역사적으로 식민 지배를 가능케 했던 심리적 동인은 불안이었다. 혁명가이자 철학자인 프란츠 파농(Fanon)은 그의 저작 ‘검은 얼굴, 하얀 가면’에서 흑인이지만 자신을 감추고 백인의 가면을 쓴 채 연기하듯 살아가야 하는 생존 전략을 지닌 인간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여기에서 ‘하얀 가면’은 도달 불가능한 이상(理想)을 뜻함과 동시에 차이 때문에 차별받는 사람들의 ‘무기’이기도 하다. 제국주의를 등에 업고 자본의 증식을 꾀하던 시대가 지나고, 이제 자본이 이윤 추구를 위해 새로운 ‘피식민지’로 삼은 것 중 하나는 불안과 의심, 공포와 열등감을 한껏 불어 넣은 여성들의 내면이 되었다. 신자유주의 버전의 식민주의는 사람들의 불안을 먹고 산다. 많은 경우 여성들은 ‘무엇이 되고 싶다’고 말하기보다는 ‘무엇처럼 되고 싶지 않다’, ‘무엇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라고 말한다. 자기 신뢰가 부재한 여성들을 끊임없이 발명해 내는 후기 자본의 빠른 속도 안에서 여성들이 멈출 수 없는 것은 성형에 대한 욕망이 아니다. 여성들이 멈출 수 없는 것은 자신에 대한 불필요한 의심과 확실성의 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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