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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수술결과는 의사의 평생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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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07-06-03
“환자의 수술결과는 의사의 평생 그림자”
조선일보 기사 인용
의사들이 쓰는 병원이야기… <2> 수술환자와 의사 남편이 옮긴 ‘몹쓸병’으로 관절염 걸린 주부 수술이후 8년… 씩씩한 그녀 모습 마음놓여
벌써 8∼9년 전 일이다. 갓 마흔 넘은 부인이 남편이 미는 휠체어를 타고 진료실을 찾았다. “어디가 아파요?”라고 묻자 그 부인은 대뜸 “선생님, 걸을 수 있게 해주세요”라며 내 손을 꼭 잡았다. 그 부인은 신경병성 관절염으로 2년 넘게 앉은뱅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부인의 무릎은 퉁퉁 부어 있었고, 다리가 마치 낙지처럼 흐느적거려 걷지 못했다. 엑스레이를 찍어보아도, 무릎 관절에 있는 뼈가 거의 다 녹아 무릎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신경병성 관절염’은 감각 신경이 마비돼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질병이다. 뒤늦게 심각성을 깨닫고 병원을 찾아 관절염 진단을 받는 시점이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라고 봐야 한다. 그 부인은 그래도 “선생님, 평생 이렇게 살 순 없어요. 제발 걸을 수 있게만 해주세요”라며 매달렸다.
하긴 멀쩡하게 걸어다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기어다니거나 휠체어를 타야만 하니 답답한 심정이 오죽할까. 더욱이 이 부인이 걸린 신경병성 관절염의 원인은 바로 매독균 때문이다. 매독균이 척수신경을 침범해 신경이 점차 마비됐고, 다리 감각조차 사라진 상태였다.
아마 그 부인은 자신에게 매독균을 옮긴 남편과 사생결단을 내고 싶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남편이 없으면 말 그대로 꼼짝도 못할 처지니 그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남편은 부인 병 간호에 지쳤는지 짜증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그도 처음엔 분명 미안한 마음이었을 텐데….
이 병은 수술하기도 힘들고 결과도 좋지 않아 가급적 수술하지 말라고 교과서에 나와 있다.
특히 인공관절술은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가능하면 관절유합술(관절을 굳혀서 뻗정다리를 만드는 수술)을 권장한다.
하지만 젊은 부인이 휠체어에만 의지한 채 평생을 지낼 것을 상상하니 너무 애처로웠다. 그렇다고 뻗정다리로 만들어 수술하면 겨우 어정어정 걸을 수 있을지 몰라도 환자의 불편은 여전할 것이었다. 결국 인공관절 수술을 감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일순 고민에 빠졌다. 환자가 원했더라도 수술이 잘못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부끄럽게도 수술받은 환자가 다리에 통증을 느껴 재수술한 경우도 있었고….
다행히 수술 후 경과는 매우 좋았다. 첫 걸음을 떼는 재활운동을 시작할 때 환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제가 정말 걸을 수 있을까요?” 비록 보행기에 의지하긴 했지만 2년 만에 자신의 다리로 걷는 그녀는 기쁨에 차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잘 걸을 수 있게 되자 환자는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지팡이 없이도 잘 걷게 된 환자를 지켜보는 기쁨. 조바심을 내며 했던 그런 수술을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아쉬운 대로 5∼6년, 조금 욕심을 내면 7∼8년 잘 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부인은 일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으러 온다. 지금은 수술을 한 지가 만 8년이 지났다. 애초에 목표로 삼은 기간은 지났지만 그녀의 무릎은 아직 정상이다. 걷는 모습도 남들과 다르지 않고, 내 눈에는 마치 병사의 걸음처럼 당당해 보인다. 지금까지 3000건의 수술을 하면서 실패도 많았던 점을 생각하면 정말 안도하게 된다.
그녀는 요즘 채소 장사를 하고 있다. 다시 걷게 된 이후 남편에 대한 원망도 사라졌고,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 바람은 의사들도 똑같이 갖는다. 한 번 환자는 의사에겐 영원한 환자이기 때문이다.
환자의 상태는 의사에게는 평생 그림자처럼 부담이 된다. 채소장사를 하는 그녀에게 그 무릎을 오래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위로했지만 워낙 예후가 좋지 않은 병이라 어느 날 갑자기 다시 주저앉을지도 모른다. 부디 내가 은퇴한 후에라도 잘 지탱해 주기를 바랄 수밖에….
[조우신·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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