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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도 환자가 믿어줄 때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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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07-06-30
의사도 환자가 믿어줄 때 힘이 난다
( 조선일보 기사 인용)
[의사들이 쓰는 병원이야기] <7> 위험한 수술 앞둔 의사
암수술 거부했던 환자 고통 심해지자 찾아와
2년뒤 암 번져 사망하자 유족들 다짜고짜 소송 무죄판결까지 몇년 고생
전호경·삼성서울병원 외과 교수
20여년 전의 일이다. 저녁 8시가 조금 넘어 교통사고를 당한 40대의 남자가 응급실에 들어왔다. 외상은 심하지 않았으나 안색이 창백했고 혈압이 너무 떨어져 측정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당시만 해도 CT(컴퓨터단층촬영장치)가 보편화되지 않아 분초를 다투는 위급한 상황에서 급하게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당황한 환자의 아내에게 환자의 상태를 간략히 설명했다. “복강(뱃속)내 출혈이 매우 심한 것 같습니다. 지금 즉시 수술을 하더라도 회복 가능성이 매우 낮지만 현재로서는 수술이 최선입니다.” 환자의 아내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실에서 칼을 대니, 아니나 다를까 복부에선 피가 뿜어져 나왔다. 고인 피를 걷어낸 뒤 살펴본 결과 대정맥과 간정맥이 대동맥으로 들어가는 부위에 심한 손상이 있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환자는 건강을 빠르게 되찾아 갔다. 만일 이와 비슷한 상황이 지금 발생하면 어떨까? 환자의 보호자는 쉽게 수술에 동의할까? 또 의사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선뜻 위험한 수술을 하려고 할까? 의사들이 이 질문에 답하기 힘든 것은 의사들이 환자를 살리려다 만약 잘못되면 의사가 책임을 뒤집어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자는 몇 년 전 이 같은 경험을 겪었다. 직장암 환자가 찾아왔다. 암이 항문에 너무 인접해 있어 완치는 될 수 있지만, 항문을 살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환자는 수술 받기를 거부했다. 인공항문을 평생 달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1년 후 이 환자가 응급실을 다시 찾아왔다. 이미 항문 주위가 썩고 고름으로 심한 악취와 통증을 호소했다. 환자는 제발 통증만이라도 줄여달라고 부탁했다. 고름을 뽑자 환자는 인공항문이라도 달아 달라고 요청했다. 안타깝게도 수술 시기를 놓쳐 이젠 암이 완치될 가능성이 크게 낮아진 상태였다. 하지만 수술진들은 환자가 남은 시간이라도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환자는 골반에 암이 재발되었고, 2년여 지나 결국 사망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환자가 사망한 뒤 환자의 아들이 찾아왔다. 다짜고짜 수술이 잘못되어 암이 재발했다며 보상하라는 것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거부했더니 아들은 필자를 형사고발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가서 무혐의로 끝났다. 하지만 아들은 또다시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에서 필자에게 배상책임이 없다는 결론이 났다. 그간 수년이 흘렀다. 그 사이 환자의 아들도 소송을 하면서 시간적·경제적·정신적 손실을 겪었고, 의사인 필자도 정신적인 고통은 물론 변호사비용 등 경제적 손실이 컸다. 만약 이 환자가 처음에 수술을 받고 인공항문을 받아들였다면, 지금쯤 약간의 불편은 있었겠지만 건강했을 것이고 불필요한 소송까지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 전호경(52)·삼성서울병원 외과 교수 물론 의료사고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일어난다. 의사들도 의료 사고를 두려워한다. 수술해도 사람을 살리기 힘들다는 판단이 서면 선뜻 수술에 나서고 싶어하지 않는 의사도 있다. 수술 성공 확률이 90%라고 해도, 10%의 실패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의사에 대한 신뢰다. 때로는 의사에 대한 신뢰가 효능 좋은 약보다 더 좋은 명약이 될 수 있다. 믿고 따르는 환자를 의사가 더 열심히 돌보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희귀병 아이들 치료비 정부가 책임질수 없나
의사들이 쓰는 병원이야기 <4> 난치병 가족의 고통
대부분 형편 어렵고 보험 안되는 질병 많아
과중한 치료비로 무너지는 가정도
최중언 신촌세브란스병원 소아신경외과 교수
생후 한 달도 채 안 된 아기가 허리에 덩어리 같은 혹을 매달고 부모 품에 안겨 진료실에 들어섰다. 태어날 때부터 신경이 피부 밖으로 튀어나오고 혹 안에는 물이 차는 희귀난치병(요추부 척수수막류)이었다. 시각 장애를 가진 아기의 부모는 무조건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수술이 성공해도 후유증이 클 것이라고 말하자, 부부는 “아기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했다. 걸음을 똑바로 걷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해도, “뒤뚱거리며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다. “살려 보자”는 말 대신 수술 후유증부터 설명해준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기는 이후 다섯 달 동안 세 차례나 수술을 받았지만, 안마사로 일하는 이들은 아기 치료비 대기가 벅차 보였다. 1차 수술 땐 사회복지재단 등에서 수술비를 일부 지원받도록 도와주었다. 하지만 2·3차 수술할 때는 독지가를 구할 수 없어 부부가 전액을 부담해야 했다.
심장병이나 백혈병 환자의 경우 도와주는 단체들이 있으나, 이처럼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지원하는 이들은 좀처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6개월 만에 아기는 끝내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 “치료비 대기 힘든 상황에서 아기가 빨리 죽어 효도했다고 해야 되나요?” 부부는 그날 진료실에서 서럽게 울었다.
소아신경외과에서 아이들을 진료한 30년 동안 가장 안타깝게 느껴지는 환자들은 희귀난치병을 앓는 아이들이다. 희귀병 환자들은 왜 이리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지…. 그래서 의사는 치료뿐만 아니라 치료비까지 신경을 써주어야 할 때가 많다. 희귀난치병은 치료해도 낫는다는 보장이 없고, 병명조차 낯설어 후원자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정부도 희귀난치병(125종) 환자 2만여명에게는 병원비(보험 적용분)를 일부 지원하고 있지만,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가 많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실제로 허리뼈에 구멍이 나 염증이 생기는 희귀병에 걸린 아기를 데려왔다가 결국 이혼한 부부도 본 적이 있다. 아기를 돌보기 위해 한 명은 생업을 포기하고 매달릴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돈 문제로 부부 사이가 멀어진 것이다. 집안에 희귀병에 걸린 아이가 하나 있으면 과중한 치료비에 가정이 파괴되기 일쑤다.
20년 전 캐나다 토론토의 병원에 연수 갔을 때 희귀난치병 아동들의 ‘요양시설’을 보고 부러워한 적이 있다. 그곳은 희귀병 아이들을 한곳에 모아 전액 무료로 치료해주고 있었다. 우리와 경제사정이 비슷한 대만 역시 정부가 치료비를 전부 책임진다. 하지만 우리는 희귀병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에게 엄청난 짐이 된다. 캐나다가 이미 20년 전부터 한 일을 우린 아직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최중언 신촌세브란스병원 소아신경외과 교수 심지어 지방에서 찾아온 희귀병 환자들 중에는 “수술비용이 많이 들고 수술해도 계속 장애를 갖고 살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치료를 포기하는 이들이 많다. 수술을 받지 않으면 아이가 더 빨리 죽을 것을 알면서도 돈 때문에 돌아서는 것이다. 형편이 어려운 어떤 부모는 “아이를 (연구용으로) 병원에 드릴 테니 아이에게 다양한 치료법을 실험해 주면 안될까요”라고 하소연도 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내 마음도 답답하고 막막해진다. 우리는 언제 희귀난치병 환자들에게 안심하고 치료 받으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암 도려낼 땐 보험… 가슴 재건수술은 비보험
의사들이 쓰는 병원이야기… <5> 유방암 환자의 이중고통
20代후반 여성 환자 돈 때문에 성형 포기
효과좋은 신약 나와도 기존약 다 써보기전엔 건강보험 혜택 못받아
한원식·서울대병원 외과 교수
20대 후반의 여성 정모씨가 진료실 문을 두드린 것은 작년 이맘 때쯤이다.
6개월 전부터 왼쪽 유두(乳頭)에서 핏빛 분비물이 나왔다고 했다. ‘괜찮아지겠지’ 하고 버티다가, 유두 밑에 꽤 큰 덩어리가 만져지자 병원을 찾은 것이었다. 불안해하는 환자에게 “조직검사 결과를 봐야만 알 수 있다”며 안심시키려 했지만, 그녀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조직검사 결과, 유방암이었다. 한쪽 유방을 완전히 도려내야 하는 상태였다. “가슴을 완전히 없앤다구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는 울었다. 복부의 근육을 떼어다 새로 유방을 만들어 주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안도하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숙였다. “병원비가 2000만원 정도 들 것”이라는 추가 설명 때문이었다. 그녀는 작은 회사에 다니며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어 그럴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유방을 잘라내는 암 수술은 보험이 되지만, 새로 유방을 만들어 주는(재건) 수술은 보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치료가 아니라 ‘성형’으로 여겨지는 탓이다. 매년 발생하는 1만여명 정도의 유방암 환자 중 절반 이상은 가슴을 잃는다. 이 중 많은 이들이 비싼 수술비 때문에 젊은 나이에도 한 쪽 가슴 없이 살아간다. 이들의 좌절감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정씨는 결국 유방 재건수술은 포기한 채 가슴 한쪽을 도려냈다. 수술 후 그녀는 “어차피 작은 가슴이라 별로 아깝지도 않아요”라며 담담하게 농담까지 던졌다. 수술 이후 머리카락이 다 빠지는 힘든 항암치료를 겪으면서도 그녀는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
그런데 또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HER-2’라는 암유전자가 그녀의 암 조직에서 많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유방암이 재발할 위험이 높다는 뜻이다. 이 유전자를 억제할 신약은 이미 개발돼 있다. 그리고 신약을 쓰면 완치는 아니더라도 재발 위험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약을 권하고 싶었지만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한 다국적 제약회사가 개발한 이 약을 쓰려면 1년간 치료비로 수천만원을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기존의 다른 치료법을 써서 모두 실패해야 비로소 이 약에 대한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약이 있다고 환자에게 알리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자칫 의사가 비싼 약만 권하는 것처럼 오해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외제 고급차가 좋다고 우리 모두 외제차를 타라고 권유할 순 없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은 다르지 않은가?
최근 새로운 항암제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지만, 약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추세다. 나중에는 정말 돈 많은 사람만 제대로 된 암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다.
▲한원식·서울대병원 외과 교수 결국 정씨는 돈 때문에 신약 치료를 받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암은 재발되지 않았고, 직장에도 복귀했다. 하지만 그녀는 앞으로 그 흔한 대중탕에도 못 갈 것이다. 결혼 문제, 항암치료로 인한 불임 문제 같은 더 복잡한 문제에도 부딪히게 될 것이다. 실제로 젊은 나이에 유방암을 앓은 여성들은 대인 관계나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정신적으로 더 큰 상처를 입는다는 보고도 있다.
우리나라 유방암 환자는 전체 여성 암 환자 6명 중 1명꼴이다. 암으로 가슴을 잃고 마음의 상처마저 끌어안은 채 살아가야 하는 이 많은 여성들의 아픔을 달랠 길이 없는지 국가차원의 고민이 필요한 때다.
“의사에게 ‘생명 포기’는 허락되지 않는다”
[의사들이 쓰는 병원이야기] <6> 어린 ‘不明熱’ 환자가 준 교훈
40도 넘는 고열로 사경 한달 넘게 원인 못찾아
의사로서 깊은 좌절감 “그래도 치료” 다짐하자 기적처럼 되살아나…
김동수·신촌세브란스병원 소아과 교수
한 살 된 남자 아기가 다른 병원에서 이송돼 왔다. ‘불명열(不明熱)’이라는 진단을 받은 어린 환자는 하루 두 번 이상 섭씨 40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렸다. 열이 날 때면 아기는 보채기도 하고 기운 없이 축 늘어지며 잘 먹지도 못했다. 하지만 열 이외엔 특별한 증상이 없었다. 진찰을 해 봐도 간이 약간 커져 있을 뿐 다른 이상은 찾을 수 없었다.
불명열이란 이처럼 원인불명의 열이 계속되는 경우를 말하는데, 의학적으로는 일주일 이상 열이 나고 여러 검사를 해도 그 원인을 밝힐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입원 후 여러 검사를 두루 해봤지만 이 아기가 왜 열이 나는지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전공의들도 나서 외국의 최신 논문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기의 열이 한 달간 계속되면서 환자 보호자는 물론 의료진도 모두 지쳤다.
주치의인 나는 병의 원인조차 밝힐 수 없어 환자 부모의 얼굴 보기조차 두려웠다. 진단조차 못하는 의사라고 생각하니 무력감과 좌절감에 우울증이라도 걸릴 지경이었다.
그 사이 아기의 상태는 악화되기만 했다. 황달이 오더니 위출혈까지 생겼다. 급하게 위내시경을 통해 출혈 부위를 확인하고 조직검사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의사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했다고 생각했다. 점점 상태가 악화되고 있는 아이의 창백한 얼굴엔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 같았다. 부모의 얼굴에도 체념의 빛이 역력했다. 아기는 급기야 호흡 곤란이 오더니 심장마비가 발생했다. 긴급 처치로 일단 정상으로 돌아왔으나 의식은 회복되지 않았다. 열은 계속 됐고, 다시 호흡마비와 심장마비가 뒤따랐다. 응급처치로 겨우 소생했지만, 원인도 모른 채 아기는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다음날, 또 호흡마비와 심장마비가 왔다. 나는 전공의에게 더 이상 환자를 괴롭히는 소생술은 그만두고 편안하게 생을 마치게 해주라고 했다. 아기의 팔·다리는 벌써 파랗게 변했고 몸도 싸늘하게 식은 듯했다.
아기의 조그만 가슴팍은 이미 여러 번 계속된 심장 마사지로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더 이상 소생술을 시도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의미가 없었다.
그날 저녁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어린 환자가 고통 없이 삶을 마감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다 문득 ‘생명이란 것이 과연 내가 포기할 수 있는 것인가’란 생각이 들었다. 한 인간의 생명이 온전히 의사의 손에 달린 것은 아니지만, 얄팍한 의학 지식과 경험에 기대어 쉽게 포기하려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다시 중환자실로 내려가 아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끝까지 아기 곁에 달라붙어 다시 한 번 치료를 해 보기로 했다.
잠시 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환자의 열이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의식이 없었지만 열은 떨어졌다.
▲김동수·신촌세브란스병원 소아과 교수 처음에는 심장 정지와 호흡마비가 세 번이나 이어졌기 때문에 열 조절 기능을 가진 뇌 중추가 손상돼 열이 잠시 떨어진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자 정상으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고열이 계속된 지 두 달 만의 일이었다.
1년 뒤 감기 때문에 다시 부모의 품에 안겨 온 아이는 너무나 건강했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아기가 왜 불명열을 앓았는지, 또 어떻게 회복됐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의사에게 생명에 대한 포기란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밖에는….
보험수가 낮아 환자 줄면 운영 안돼
의사들이 쓰는 병원이야기 <8>‘짧은 진료’ 없어지지 않는 이유
여유있게 진료하면 병원 도산할 수밖에…
환자들 대학병원에만 너무 몰려드는 것도‘5분 진료’ 강요해
박인숙·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과 교수
최근 우연히 유방암 수술을 받은 40대 후반의 여성을 만났는데, 화를 풀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의 모 병원에서 지난달 암 수술을 받은 그녀는 수술 경과를 들으려고 병원을 다시 찾았다가 의사로부터 딱 세 마디만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괜찮아요?” “며칠 후에 오세요.” “나가세요.” 진료실에 들어서서 나오기까지 3분도 채 안 걸렸다고 했다. 항암치료는 어떻게 하고, 방사선치료는 언제 받는지에 관해 의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 관한 설명은 대신 간호사로부터 들었다. 그녀는 “비싼 선택진료비를 내고 진찰받는데, 왜 내가 간호사에게 설명을 들어야 해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궁근종 수술을 받은 30대 초반의 여성도 같은 얘기를 했다. “왕복 10시간 걸려서 병원에 왔는데 고작 5분도 의사를 못 만나요”라고 했다. 김해에서 부산으로 가 KTX를 타고 서울까지 오가며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이런 환자들의 하소연을 들을 때마다 나도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우리의 의료 현실이 어쩔 수 없다고 답변해 주지만 그런 말로 위안이 될까?
사실 내가 진료하는 어린이 심장병 환자도 5분 간격으로 예약이 차 있다. 의사가 심장병이나 암 같은 중대한 질병을 5분 내에 환자나 보호자에게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사들은 그러기를 강요받는다.
의사생활 33년 가운데, 미국 텍사스의 아동병원에서 14년간 의사생활을 할 때는 30분이나 1시간마다 환자를 진료했다. 아이들의 심리상태, 학교생활, 가정생활까지 요모조모 물어보며 상담하고 치료를 하는 것이다.
1987년 귀국한 뒤 처음에는 나도 미국에서 하던 식으로 했다. 심장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던 여중생 심장병 환자의 어머니를 상담하던 일이 생각난다. 딸과 함께 진료실에 들어오면서 딸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어머니를 붙잡고 함께 울었다. 그러다 10여 분을 넘기자, 진료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환자들이 “왜 진료시간을 안 지키느냐”고 항의하는 소리였다. 나도 불안해지고 그 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 황급히 일어섰다. 환자가 묻는 대로 자세히 설명해주고 하소연도 듣고 싶지만, 우리의 상황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른 쪽에서는 왜 진료 예약시간을 지키지 않느냐고 항의하니 답답했다.
나와 함께 일하는 의사 중 한 명은 그래도 고집스럽게 환자를 10여 분 이상 진료를 한다. 환자들의 말을 일일이 들어준다. 이 때문에 그는 진료를 마치는 시간이 다른 의사들보다 2시간 이상씩 긴 오후 7시다. 환자들 사이에선 친절한 의사로 손꼽히는 그 의사는 병원에선 오히려 ‘이해 못할 의사’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고 한다.
이같이 5분짜리 진료가 되는 이유는 한마디로 환자 수가 많아야 병원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주는 보험수가는 환자 1명당 고작 1만5580원(초진)이다. 이처럼 적은 금액으로 여유 있게 환자를 받다가는 병원은 도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환자가 대학병원에만 몰리는 것인데, 설령 환자가 아무리 대학병원으로만 몰려도 의사 수가 많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어느 병원도 의사를 그렇게 채용할 여력은 없다. 비영리기관인 우리나라 병원들은 외국과 달리 기부금도 못 받고 정부가 지정해준 건강보험 수가로만 운영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진료환자 수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는 병원들도 나온다. 의사들을 5분 진료로 내모는 것이다. 대학병원의 ‘5분 진료’ 같은 의료의 질을 개선하려면 사소한 질병으로 환자들이 대학병원에 오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 정부는 대학 병원의 진료비를 차등화해 ‘5분 진료’가 아니라 환자와 의사가 여유 있게 인간적으로 만나도록 해야 한다.
수술중 조는 후배의사 야단은 쳤지만…
의사들이 쓰는 병원이야기 <10> 혹독한 훈련·잦은 당직 시달리는 외과
의료사고도 많아 전문의 지망생 줄어들어…
음식 맛 따라 가격 다르듯 수술 기술·난이도 따라‘보상’달리해주길
수술 도중에 무언가 내 어깨를 툭 쳤다. 깜짝 놀라 보니 내 옆의 레지던트가 졸다가 내 어깨를 머리로 친 것이었다. “수술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 레지던트는 이번뿐 아니라 상습적으로 수술실에서 졸곤 했다. 나는 이번에 단단히 버릇을 고쳐 놓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K선생, 여기가 어디라고 졸고 있는 거야.” 내 호통 소리에 놀란 레지던트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어제 당직하느라 잠을 못 자서요.” “자네가 버스를 타고 있는데 자네 목숨을 책임지고 있는 버스기사가 졸음운전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의 호통에 레지던트는 연방 “잘못했습니다”를 연발했다.
작은 수술은 집도의가 혼자서 한다. 하지만 보통 전신마취를 하는 수술에는 서너 명의 의사와 간호사 2~3명, 마취과 의사 한두 명이 따라붙는다. 한 명을 수술하는 데 필요한 의료진은 최소 6~10명이 된다. 집도의는 수술의 중요 부분인 장기를 잘라내고 꿰매고 잇는 중요 과정을 책임진다. 다른 의사들은 경험과 연륜에 따라 1조수, 2조수, 3조수가 된다. 1조수는 조수들 중 가장 경험이 많은 이로, 집도의를 도와 지혈을 거들거나 마무리를 도맡는다. 2조수와 3조수는 수술할 때 수술부위가 잘 보이도록 견인기(조직을 잡아당기는 갈고리같이 생긴 기구)를 잡고 있거나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배에 선장을 비롯한 항해사, 갑판장 등이 있어야 하듯이 의사들도 역할분담을 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인 수술실에서 의사가 어떻게 졸 수 있나 하고 걱정할지 모른다. 수술을 집도하는 선장인 의사가 존다면 위험하다. 하지만 집도의나 1조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술에 대한 부담으로 초긴장상태여서 졸래야 졸 수 없다. 그러기에 2조수나 3조수 한 명이 잠깐 조는 것은 사실 큰 문제는 아니다. 사흘이 멀다 하고 당직을 하는 레지던트 입장에선 수술 내내 장시간 견인구만 잡고 있는 단순한 일에 긴장이 풀릴 수도 있다. 이렇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혹독한 훈련을 거쳐 탄생하는 것이 바로 외과 의사다.
한때 의사들 사이에 외과의사가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요즘은 인기 없는 분야로 변했다. 의료사고도 많고, 당직도 많고, 보수도 다른 인기 분야에 비해 높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학병원마다 외과 전문의를 뽑을 때 정원 미달이 되는 곳이 많아지고, 힘든 수련과정을 못 이겨 포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 자체로는 이를 해소할 뾰족한 대책이 없다. 정부도 인기 없는 과목의 전문의들에 대해 보수를 보조하고 있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
▲ 양정현 삼성서울병원 외과 교수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이 수술에 대한 보상 시스템이다. 호텔도 별 다섯 개까지 등급에 따라 이용료가 다르듯 수술의 난이도와 수술자의 경력, 기술 수준을 고려해서 보상해야 한다. 음식도 맛과 재료에 따라 특제와 보통의 가격이 다르듯이 수술료도 의사의 경험, 숙련도 그리고 병의 경중에 따라 수가(진료행위의 가격)에 차등을 두어야 한다.
이 같은 인센티브라도 있어야 외과나 흉부외과를 지망했다가 포기하는 이들을 그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사흘이 멀다 하고 당직을 하고 수술실에서 졸아 교수에게 혼이 나는 레지던트들. 획기적인 대책이 없다면 ‘외과 의사를 외국에서 수입해와야 할지 모른다’는 푸념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수술 부위 바뀔까 걱정하는 환자 심정 이해
의사들이 쓰는 병원이야기
<11> 배에 ‘이쪽이 아닙니다’라고 쓴 환자
“나를 못믿나” 야속했지만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
요즘은 수술실로 옮기기전 수술 부위 반드시 표시
수술을 앞둔 환자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여러가지 걱정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병의 치료 경과보다는 당장 내일로 닥친 수술 자체에 대한 걱정이 더 많다.
나를 수술할 의사는 실력 있는 사람인가? 수술 후 내가 마취에서 잘 깨어날 수 있을까? 의사가 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수술할 의사가 수술 전날 과음하지는 않았을까…. 이런 걱정은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나 갖기 마련이고, 환자가 이런 우려를 한다고 싫어하는 내색을 하는 의사가 있다면 수양이 덜 된 의사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간혹 언론에는 의사들의 실수가 보도된다. 수년 전에 위(위장)를 수술해야 할 환자에게 갑상선을 수술하고, 갑상선을 수술할 환자의 위를 수술한 사건이 있었다. 환자 본인이 황당할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담당 의사 역시 일생을 두고 스스로를 원망하며 살아갈 것이다.
이렇게 장기를 완전히 바꾸어서 수술을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문 일이기는 해도 의과대학 교육과정에서조차 이를 경계하라고 교육시킨다. 특히 필자처럼 비뇨기 계통의 암을 수술하는 의사들은 좌우 대칭인 신장(콩팥)암을 수술하는 경우 좌우가 바뀌지 않도록 항상 조심한다.
필자도 환자들이 그렇게 될까봐 얼마나 걱정하는지를 경험한 적이 있다. 왼쪽 신장암으로 수술을 받아야 될 50대 중반의 여성 환자의 경우였다. 전신 마취를 하고 수술에 들어가려다 환자의 오른쪽 옆구리 피부에 무엇인가 써있는 것을 보게 됐다. 자세히 보니 매직펜으로 선명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선생님 이쪽이 아닙니다.’ 수술 부위가 왼쪽이니까 오른쪽을 수술하지 말라고 표시한 것이었다. ‘나를 이렇게 못 믿었단 말인가?’ 하는 야속함이 머리를 스쳐 갔다. 한편으로는 ‘환자들이 이토록 두려워한다는 것을 예전엔 내가 미처 몰랐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오히려 미안했다.
환자는 수술 후 경과가 좋았다. 퇴원할 때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미안하다고 했고, 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악수를 하며 헤어졌다. 그 환자는 지금도 건강한 모습으로 1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있다.
사실 환자들이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병원 자체에서, 또 의사들 스스로가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병실에서 수술실로 환자를 옮기기 전에 수술 부위를 반드시 펜으로 표시하게 돼 있다. 또 수술 시작 전에 수술에 참여하는 의사들이 서로 한 번씩 돌아가며 확인한다.
환자를 진찰하고 치료할 때 예방할 수 있는 실수는 최대한 막아야 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이다. 신뢰는 병의 치료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하지만 요즘 사회적 분위기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단순히 사회적 계약의 관계로만 몰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의료에서 변하지 않는 윤리는 의사와 환자가 ‘인간적 관계’에 의해 맺어진다는 사실이다.
▲ 장성구 경희의료원 비뇨기과 교수
물론 냉랭해진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의사들 스스로가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환자와 의사 사이에 불신이 생기고, 불신을 조장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생기면 오히려 환자들에게 피해가 간다. 환자의 권리와 의사의 의무를 차분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부비동… 결찰…"의사 선생님, 대체 무슨뜻인가요"
[의사들이 쓰는 병원이야기] <12> 의사소통 안되는 의학용어
의사들이 쓰는 의학용어 이해하기 쉽도록 바꿔야
한글로 진료기록지 쓰면 환자 상태 더 알기 쉬워
“환자는 뇌지주막하 출혈이 발생했습니다. 뇌동맥류가 파열돼 생겼지요. 개두술 후 동맥류를 결찰하는 수술이 필요합니다. 수술 후 뇌부종, 뇌혈관연축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응급실에서 당황하는 환자나 보호자를 앞에 놓고 의사가 열심히 설명한다. 그러나 보호자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까? 달리 말하면 이렇다. “뇌를 싸고 있는 막과 뇌 사이에서 출혈이 발생했어요. 원인은 뇌동맥에서 꽈리처럼 부풀어 오른 것이 터졌기 때문이지요. 머리를 열고 꽈리의 목 부위를 클립으로 묶어 더 이상 피가 꽈리로 들어가서 다시 출혈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술을 해야 합니다. 수술 후에는 뇌가 부을 수 있습니다. 또 뇌동맥이 좁아져 혈액 순환이 안 될 수 있죠.”
물론 환자나 보호자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이보다 더 자세히 풀어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의학 용어는 거의 한자어로 돼 있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선 사용할 일도 거의 없는 용어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사들은 일본식 한자로 된 어려운 의학 용어를 쓰거나 영어로 된 의학 용어로 의사 소통한다.
“ESR(적혈구 침강속도) 수치가 상승되어 있으나, chest(가슴) PA(X-레이 뒤에서 앞으로 찍는 것)상에서 TB lesion(결핵병변)은 inactive(비활동적인)한 상태여서 sputum exam(가래 검사)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사실 이렇게 의사들이 영어로 말한다고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의학 용어만 나열하면 대충 알아듣기 때문이다. 물론 진료 기록부에도 영어로 기록한다. 어떻게 하면 환자들이 잘 알아듣도록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한글로 진료 기록지를 쓰는 것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한글로 쓴 진료 기록을 보면 환자의 증상을 더 쉽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두통만 해도 “머리가 휑하고, 멍하고, 칼로 후벼내고, 때론 망치로 두들기듯 아파요”라는 다양한 표현이 이해하기 쉽다.
그렇다고 억지로 만든 한글로 쓰면 이해하기 더 어렵다. ‘두개골-머리뼈’ ‘농양-고름집’ ‘수두증-물뇌증’ ‘부비동-코주위 동굴’ ‘경막하수종-경질막 밑 물주머니’ 이런 말을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날 정도이다. 한글로 풀어 쓰면 이해가 쉽지만, 말도 길어지고 무슨 내용인지 감이 안 잡힐 때가 더 많다.
서로가 잘 통하는 말로 의사 소통하는 것이 서로의 생각을 전달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의학 단체에서는 인체의 명칭과 병명, 수술명 등을 우리말 식으로 바꾸어 의학 용어집을 만들었다. 현재 모든 의과대학에서는 이 용어집의 우리말 용어와 기존의 한자식 용어를 바탕으로 의대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 허필우 의정부성모병원 신경외과 교수 때문에 의대생들은 바쁘다. 영어, 한자어, 우리말식 용어를 모두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용어의 혼돈과 혼란이 오는 과도기 시대인 셈이다. 앞으로 10여 년 뒤면 우리말로 무장한 의사들이 대거 나오게 될 것이다. 아직 나이 든 의사들에겐 한글 용어는 오히려 사용하기에 어색한 면이 있지만, 대세는 한글이다. 환자에게 가까이 가려고 하는 노력은 알기 쉬운 우리말 의학 용어 사용에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 세대 의사들도 의학 용어를 다시 배워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생소한 우리말 용어를 외우는 것이 더 어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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