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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그 갑작스러운 수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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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7-07-26
[Dr.황세희의몸&마음] 우울증, 그 갑작스러운 수렁 [중앙일보 황세희]  "인생엔 신나는 일도 많고, 또 나는 혜택받은 인생인데, 왜 한동안 ‘자살’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걸까?”  나와의 마지막 만남 이후 달포쯤 지난 어느날,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건 J의 일성이다. 놀랍고 기뻤다. J는 정직과 성실을 신념으로 작은 일탈 한번 안 하고 산 모범생이다. 주어진 일에만 충실하다 보니 재미있게 놀 줄도, 즐기는 취미 생활도 별로 없다. 언뜻 보면 재미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미소 띤 근면한 태도가 있기에 주변에선 환영받는 존재다.  그렇듯, 무던해 보이던 J도 대학 졸업 10년이 지나면서 얼굴에 수심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실 J는 명문대를 나왔지만 딱히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간 이성과의 만남에서도 씁쓸한 경험만 했다.  반면 J의 시각에선 늘 잔꾀만 부리던 동료 A나 B, 그리고 C 모두 자신보다 좋은 위치에서 뽐내며 산다. 또 이성에게 사탕발림 소리만 나열하던 D나 E, F 같은 친구들도 한결같이 부러운 배우자를 만났다. J의 푸념은 이처럼 주변을 돌아보면서 시작됐다. 처음엔 “나는 눈치 없는 곰인 데다 복도 없다”는 투로 시작하더니 차츰 “앞으로도 내게 좋은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더 살면 뭐하나”란 절망적 탄식을 내뱉었다. 노력에 비해 성취한 게 없다는 생각과 더불어 우울증이 찾아온 것이다.  우울증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심해 볼 수 있는 병이다. 이 상태가 되면 삶은 벅차고 귀찮을 뿐이며 일상은 위축된다. 업무 수행능력은 당연히 떨어지며, 자칫 방치하다간 ‘나는 무가치한 인간’이라는 생각에 젖어 자살로 이어지기도 쉽다. 실제 자살 배후의 70% 이상은 우울증이 도사리고 있다.  문제는 세계화와 더불어 고용 없는 성장과 취업난, 상시 구조조정 등이 겹치면서 자살 충동을 느끼고 실행하는 인구가 급증한다는 점이다. 실제 최근 20대 구직자 1082명에게 물어본 한 설문조사에서 47.3%가 ‘취업 스트레스로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국내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4.7명로 10년 전보다 2.5배 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 증가율 1위다. 20~30대 연령층에선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일 정도다.  불행히도 무한 경쟁이 강요되는 척박한 사회 분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따라서 누구라도 비관적인 생각이 든다 싶을 땐 즉시 지인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적극적인 ‘눈높이 조정’을 해야 한다. 뭇사람이 선망하는 재벌 가문이나 유명 연예인도 자신의 상황을 비관해 자살하듯, 스스로에 대한 평가에는 주관성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단 우울증에 빠진 사람에겐 “당신의 잘못된 생각을 고치라”는 식의 조언은 도움이 안 된다. 우울증 뇌는 우울·불안·의욕·흥미·민첩성 등 기분을 관장하는 신경전달물질이 감소돼 있기 때문이다. 이땐 이들의 균형을 되찾아주는 약물 치료만이 제대로 된 효험을 볼 수 있다.  J도 불면증 치료차 들른 병원에서 항우울제를 복용한 덕분에 한 달 후부턴, 주변 사람들이 당황스러울 정도의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신해 또다시 삶의 가치를 예찬하며 지낸다. 황세희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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