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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 의사의 불만이 사르코지를 당선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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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 의사의 불만이 사르코지를 당선시켰다
응급실 이야기 (원제 Histoire d’urgences)
파트릭 펠루 지음|르 셰르시 미디|332쪽|17유로
한희진 콜레쥬 드 프랑스 생명과학철학·의철학 연구교수
( 조선일보 기사 인용)
▲ 한희진 콜레쥬 드 프랑스 연구교수 2003년 여름 폭염 때 유럽에서는 7만 명 이상의 노인이 사망했다. 프랑스에서도 정부의 무관심과 낙후된 노인보호시설 때문에 일주일 동안 1만 명 이상의 노인이 사망했다.
저자 파트릭 펠루(Patrick Pelloux)는 이 사실을 처음 폭로해서 유명해진 응급실 의사다. 펠루는 기상변화와 건강의 관계에 대한 논문으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1995년부터 이미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현재 프랑스 응급실의사협회(AMUF) 회장으로 병원의 공공기능을 보호하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은 펠루가 2004년 11월부터 매주 ‘챨리 헵도’(Charlie Hebdo)라는 사회풍자 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모은 것이다. 이 신문은 2005년 이슬람 권에서 격렬한 시위를 불러 일으킨, 모하메드를 풍자한 덴마크 신문의 만평을 지면에 실었다가 프랑스의 이슬람 단체로부터 소송을 당한 적이 있다.
펠루는 자신이 근무하는 생 앙투안 종합병원 응급실을 숨김없이 그린다. 파리 동부에 있는 이 병원은 사설 종합병원과 달리 의사와 간호사 채용, 의료시설 설립과 운영 등 모든 것을 국가가 관장하는 공공 종합병원(AP-HP)이다.
공공 종합병원은 프랑스 의료체계와 사회보장제도의 근간을 이룬다. 싼 값에 비교적 질 좋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프면 공공 병원을 먼저 찾는다. 따라서 공공 병원 응급실에는 남녀노소, 부자에서 빈자까지 모든 계층과 직종의 환자들이 모여든다.
펠루는 이 책에서 세 부류의 환자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인다. 먼저 자살을 시도한 청소년들, 다음으로 가정폭력이나 성폭행에 시달린 여성 환자들, 끝으로 가족과 사회가 방치하는, 가난한 독거 노인들이다.
아흔 살 모리셋 할머니는 벌써 10년째 엘리베이터 없는 6층 아파트에 갇혀서 산다. 자원 봉사자 한 명이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을 봐주고 살림을 돕지만, 할머니를 외출시키기엔 역부족이다. 노인 숫자보다 자원 봉사자 수가 턱없이 적기 때문에 자원 봉사자 여러 명이 한번에 할머니 집에 찾아올 수가 없다. 자식들도 이젠 늙어 할머니를 돌볼 기력과 경제력이 없다. 국민연금은 수년간 물가 상승률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최소한의 생계비 밖에 안 된다. 하루 종일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텔레비전 시청뿐이다. 그렇게 방치되다 응급실에 실려 오는 노인들에게 병원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유일한 벗이었던 고양이나 개와 함께 임종을 맞게 해 주는 것뿐이다.
펠루는 “‘질병은 신체와 정신의 병리현상’이라는 식으로 간단하게 정의할 수 없다”며, 환자들이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차원에서 다각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가족·직장·사회로부터 버림 받고 알코올 중독자나 노숙자가 된 중년의 암 환자가 늘고 있다고 주장한다. 펠루는 이런 사람들이 제대로 항암치료를 받으려면 경제력, 거주지, 무엇보다 가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다차원적 치료엔 국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문제는 프랑스가 이 문제에 대해 아직 완벽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좌파 사회당은 법정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창출하고 실업난을 해결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주당 35시간 노동제를 모든 직종에 적용했지만, 역설적으로 이 제도 때문에 근로자 수입이 줄어들었다. 특히 노동시간이 줄어든 것 만큼 공공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를 충원하지 못하자 기존 의료 인력의 근무환경이 악화됐고 진료의 질도 떨어졌다.
갓 마흔을 넘긴 펠루는 자신의 의대 동기들이 이런 의료환경 속에서 잘 버티고 있는지 알아봤다. 대부분은 공공 병원이나 사설 병원에서 진료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직업이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몸을 돌보지 못해 병이 들거나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도 많았다. 이런 사실은 의사들 사이에서 ‘터부’이다. 의사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지 못하면 환자들의 신뢰를 잃기 때문이다.
응급실 간호사들은 정부의 의료예산 감축 때문에 생긴 만성적인 병실 부족에 골머리를 앓는다. 환자의 보호자는 간호사가 공공병원에서 빈 병상을 하나 찾아내려면 얼마나 여러 곳에 연락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 “간호사가 환자는 돌보지 않고 전화만 하고 있다”고 항의한다. 특히 국가가 진료비 전액을 부담하는 극빈자 의료보험(CMU) 수혜자를 공공 병원에서 사설병원으로 보내야 할 경우, 빈 병상을 알아보는 것이 훨씬 힘들어진다. 사설병원은 진료비 환급 절차가 번거롭고 추가 진료비를 청구하기도 어려운 가난한 환자를 꺼리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환자, 보호자, 의사, 간호사 모두의 불만이 올해 대통령 선거에서 우파 대중운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가 당선되는데 일조했다”고 풀이한다.
그러나 펠루는 이런 해석에 반발한다. 그는 국가 의료보험의 재정 적자는 정부와 병원이 제약회사들의 로비에 휘둘려 예산을 방만하게 지출했기 때문이지, 지난 두 세기 동안 프랑스 국민 전체가 싸워서 이룩한 사회보장의 이념과 제도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본다.
지난 15년 간 프랑스에서는 전국적으로 병상 10만 개가 줄었다. 병원의 유지·보수 업무를 민간기업에 하청주거나, 아예 병원 전체를 민영화하려는 시도도 많아졌다. 펠루는 이런 현상이 ‘신자유주의 경제논리’라며 거부한다. 어린이, 여성, 노인, 빈곤층을 국가 의료제도의 핵심 수혜 대상으로 봤던 프랑스 대혁명 시대의 종합병원 설립 이념에도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환자는 돈벌이 대상이 아니고, 의학은 인본주의에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랑스는 의료제도를 놓고 지난 200년간 논쟁을 하고도 여전히 해결책을 모색중이다. 과거와 현재의 프랑스의 경험은 여러 측면에서 우리 의료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희진(36) 교수는?
성균관대 철학과를 거쳐 프랑스 파리 1 대학(팡테옹 소르본)에서 안느 파고-라조 교수 지도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젊은 학자다. 2004년 위고 재단 학술상을 탄 뒤 콜레쥬 드 프랑스 연구 교수로 근무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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