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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현명하게 풀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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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황세희의몸&마음] 화를 현명하게 풀려면 …
[중앙일보 황세희]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 ‘참을 인(忍)이 3개면 살인도 막는다’.
인내는 수많은 선현들이 강조한 인간의 덕목이며, 교양 수준을 볼 수 있는 척도다. 그렇다면 억울하고 화나는 감정을 마냥 참고 억누르기만 하면 복된 삶을 살 수 있을까. 일단 종교· 철학적 해답은 현자들의 몫으로 돌려놓자. 하지만 의학적 측면에서 보면 지나친 인내심은 병을 초래할 수 있다.
‘벙어리 3년, 장님 3년, 귀머거리 3년’. 갓 시집온 새댁에게 무한의 인내심을 강조한 이 조언은 수많은 한국 어머니를 화병(Hwabyung) 환자로 만들었다. 화가 나는데도 참기만 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길어질 때 생기는 화병은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억제하는 게 미덕인 문화에서 빈발한다. 서양보다는 동양에서, 남자보다는 여자 환자가 흔한 이유다. 병 초기엔 화기(火氣)가 왕성해 불면·불안·초조 증상에 시달리지만 차츰 체념 단계로 접어들면 매사 의욕을 잃고 멍해지는 우울 증상이 나타난다. 물론 이후에도 마음속 남은 응어리는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 아픈 증상을 초래한다.
장기간 감정을 억누를 때 병이 생기기는 서양인도 마찬가지다. 정신신체 의학(Psychosomatic Medicine) 최신호는 40~50대 남녀 3682명을 대상으로 10년간 조사한 결과, 부부 싸움 때 침묵하는 여성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여성에 비해 사망 위험이 4배나 높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부부 싸움을 할 때도 활발한 의견 교환을 통해 갈등과 긴장 상태를 줄이는 게 천수를 누리고 해로하는 길인 셈이다.
심신 건강을 위해선 속상한 일을 벙어리 냉가슴 앓듯 혼자 삭이지 말고, 그때그때 표출해 털어버려야 한다. 실제 정신과에선 환자가 자신의 고민이나 감정을 모두 털어놓음으로써 ‘막힌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드는 ‘환기요법(ventilation therapy)’을 사용한다. 이는 고해성사를 통해 심신의 평화를 찾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단, 화는 자유롭고 이성적인 대화를 통해 해소해야 한다. 만일 분함을 고성·욕설·막말 등 본능적인 감정으로 풀다간 극단 상황을 초래할 위험이 높다. 부부 싸움 중 고성이 오가다 쓰러져 응급실을 찾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따라서 타인과는 물론 부부·친구 등 누구와 다투더라도 내 감정과 생각을 상대방에게 충분히 전달하되 험악한 상황은 피하는 대화법을 찾아 실천해야 한다.
우선 나와 상대방의 성격과 스타일, 장단점 등을 파악한 뒤 차이점을 인정하고 존중하자. 내 마음에 안 든다고 상대방을 고치려 들거나 섣부른 충고를 하는 것은 금물이다. 개인의 타고난 성격과 오랜 세월 형성된 스타일은 몇 마디 조언으로 결코 변하지 않으며 단지 상대방의 화만 돋울 뿐이다.
대화의 주된 목적은 내 의견과 감정을 상대방에게 정확히 전달하고, 또 상대방의 느낌과 주장도 내가 정확히 파악하는 데 있다. 이때 내 말을 들었으니 ‘이제 상대가 내 입장을 이해하려니’ 란 기대도 버려야 한다. 이견은 장기간 반복적 대화를 통해 조금씩 조율될 뿐이다. 대화 중 한 사람이라도 감정이 격앙될 땐 즉시 대화를 끝내는 지혜도 발휘해야 한다.
황세희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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