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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욕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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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08-01-04
[하지현의 ’성질 연구’] 의욕상실 (18)
사는 게 심드렁합니다. 학교 다닐 때도 전공을 여러 번 바꿔 봤지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없었습니다. 결국 나이가 차서 취직을 한 후 회사도 옮겨 다녀 봤지만 흥이 나서 일할 곳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조직 생활은 안 맞는 것 같아 고시를 보거나 유학을 가고 싶지만 집안 형편과 나이가 걸립니다. 요즘 들어 동료들과 관계가 틀어져 회사 다니는 것이 불편하고, 일도 늘어 매일 야근인데 사는 낙이 없습니다. 답이 안 나옵니다. 다 때려치우고 모르는 곳에서 새 인생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너무 늦은 걸까요? (이민가고 싶은 H)
사는 게 힘드시죠? 지금도 힘들지만 앞으로도 희망적이라는 근거도 별로 없으니 더 답답하겠죠.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이 난국에서 벗어날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지금 심정은 당신이란 컴퓨터의 ‘리셋’ 버튼을 눌러 버리고 싶은 마음 아닐까요? 프로그램이 잘 돌아가지 않거나, 인터넷 브라우저마저 닫히지 않을 때에는 그저 리셋 버튼이 최고잖아요. 재부팅을 하면 웬만한 문제는 해결되니까요.
지금 당신은 이런 식으로 인생의 리셋을 누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환상을 갖고 실행에 옮기기도 하지요. H씨가 전에 학교와 회사를 옮겨 다닌 것도 비슷한 경험이겠죠.
하지만 근본원인을 찾지 않고 리셋 버튼만 자꾸 누르면 시스템이 결국 망가지고 맙니다. 지금 H씨의 답답한 마음은 공감하지만 행여 대책 없는 리셋 충동이 아닐지 걱정이 됩니다.
p.s. 먼저 문제의 핵심을 외면해 온 건 아닌지 냉정하게 돌이켜보세요.
그리고, 정말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걸 하면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을 해보세요. 그런 다음 그래도 저질러야만 한다면 그때는 리셋이 아니라 시간 걸리고 귀찮더라도 포맷을 하고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깔 각오를 하십시오.
대강 비슷한 곳을 메뚜기 날뛰듯이 이리저리 옮겨가는 수준으로는 안됩니다. 주춧돌부터 놓고 새 건축설계도로 집을 짓는 마음으로 인생의 설계도를 다시 그려야합니다. 그때 기준점은 당신 마음 안의 자유로운 욕망입니다.
그간 가족과 사회적 의무라는 족쇄로 채워놓았던 당신의 욕구와 꿈을 풀어놓아 맘껏 움직이게 하고 따라가세요. 인생 한 번 사는 것이니 안 하면 후회할 것 같던 그 일을 저지르세요. 그래야 행여 실패해도 여한이 없는 법입니다. 그럴 각오가 없다면? 괜히 리셋 남용말고 하던 일이나 묵묵히 하며 보람을 찾으라는 말 밖에요.
/ 건국대의대 신경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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