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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선고 받았다´는 말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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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8-10-16

 

 

전문기자 칼럼] '암 선고 받았다'는 말 이제 그만…

김철중·의학전문기자·의사 doctor@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우리나라 암(癌) 환자의 생존율이 10년 전 41%였던 것이 요즘은 52%로 올라갔다고 한다. 의학적으로 '생존율'이란 암 치료를 받고 5년간 재발 없이 잘 지낼 수 있는 확률을 말한다. 암은 치료 후 5년 이내 재발하지 않으면 재발될 확률이 극히 낮기 때문에 그 상태는 완치된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현재 암 환자 두 명 중 한 명은 멀쩡히 자기 인생을 끝까지 채워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우리는 암 환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나. 누가 암에 걸렸다고 하면 우리는 무심코 "암 선고를 받았다"고 말한다. 이는 마치 사형 선고를 받은 뉘앙스를 풍긴다. 방송이나 신문에서도 암 환자를 다룰 때 이런 표현을 자주 쓴다. 암 진단을 받았다고 하면 될 것을 암에 대해서는 '선고'라는 말을 써서 애써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암 판정을 받았다'는 말도 왠지 '유죄'라는 느낌을 던져준다.

현실의 암 환자는 절반이 암을 극복하고 건강하게 잘 살아가지만 우리가 가지는 암에 대한 은유(隱喩)는 이처럼 예전의 것에 머물러 있다. 한국 드라마에서 암에 걸린 주인공을 매번 죽음으로 결말 짓는 것도, 흔히 사회적 문제에 '암적 존재'라는 표현을 갖다 붙이는 것도 암에 대한 절망과 부정의 은유를 확산시키고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암 환자들의 투병 의지가 위축되고 쉽게 절망감에 젖어 든다면 그건 우리 모두의 책임일 것이다. 암 환자가 희망을 갖고 투병 생활을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생존율이 훨씬 높다는 연구는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질병에 대한 부정적인 은유는 비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방송에서 비만을 다룰 때 보면 뚱뚱한 사람은 정말이지 게으르고 미련하게 많이 먹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으로 비친다. 그것이 의도됐건 안 됐건 비만을 그런 부정의 은유에 가둬 놓는다. 거기에 선천적으로 식욕 유전자 기능이 활성화된 사람은 비만이 될 확률이 높다거나 지방(脂肪)이 대사되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의학적 사실들은 끼어들지 못한다. 우리 주거 환경이 운동을 쉽게 할 수 있는 여건인지, 우리 생활이 그런 것들을 자주 이용할 만한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갖고 있는지, 체중 관리를 잘 할 수 있는 식사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지 등, 비만과 관련된 사회 전반적인 관리 시스템에 대한 지적은 구경하기 힘들다. 그저 비만은 개인의 잘못된 습관의 문제일 뿐이다.

질병에 대한 암울한 은유는 결핵에도 남아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결핵은 길거리 부랑자나 영양실조자, 노약자 등 취약계층에서 많이 걸리고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결핵 환자는 되레 조금씩 늘고 있으며 왕성한 경제활동을 하는 20~30대 젊은 사람들이 결핵에 가장 많이 걸리고 있다. 그럼에도 결핵에 대한 과거의 은유 때문에 결핵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예방하려는 노력은 외면받고 있는 듯하다.

동성애를 통한 에이즈 감염보다 이성 간 성행위로 에이즈에 걸리는 수가 많음에도 '에이즈 감염자=동성애자'라는 '낙인' 때문에 에이즈 감염 관리가 사회 전면에 나오지 못하는 것에도 에이즈에 깔린 어둠의 은유가 작동한다.

우리 사회가 정작 효과적인 질병 퇴치 문화를 만들려면 우리 내부에 있는 질병에 대한 부정의 은유부터 걷어내야 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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