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의 금메달, 내 일처럼 기뻤습니다. 함께 TV를 보던 엄마가 이런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요. “아유, 저런 아들 둔 엄마는 얼마나 행복할까? 잘 생겼지, 듬직하지, 돈도 잘 벌지…, 에휴.” 그리고 흘겨보는 시선, ‘올림픽 엄친아’의 등장입니다.
연예인 뺨치는 외모에 공부 잘하고 부모 말씀에는 무조건 순종한다는 무시무시한 존재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 이제는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갖춘 사람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쓰인다죠. 둘러보면 엄친아는 왜 그렇게도 많은지요. ‘올림픽 엄친아’에 대기업 사장 아들이라는 ‘연예인 엄친아’…. 그뿐인가요. 요즘 미스코리아대회에 나가려면 명문대 다니는 ‘엄친딸(엄마 친구 딸)’이어야 하나 봅니다. 멀리 있는 이들은 그렇다 치죠. 주변에 바글대는 엄친아들은 어떡하나요. 얼굴이 예쁜 데다 성격도 좋고 일까지 똑부러지게 해내는 ‘엄친아 동기’, 고속 승진에 부하 직원들에게 인기도 많은 ‘엄친아 팀장’까지, 서른·마흔이 되어도 새로운 장점으로 무장한 엄친아는 지칠 줄 모르고 나타납니다.
그렇다고 탄식만 할 수는 없지요. 그래서 week&이 찾아봤습니다. 엄친아들의 틈바구니에서 내 식대로 행복해지는 방법 말입니다. 그런데, 엄친아들은 정말 행복할까요?
글=이영희·이도은 기자
‘엄친아쯤은…’하고 무시할 만한 사람이 얼마가 될까. 또래의 완벽한 인간상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게 마련이다. ‘부럽다’하는 수준에 그치면 좋지만 일부는 심한 열등감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엄친아 스트레스’는 왜 생기고, 어떻게 이겨 내면 좋을까. 도움말=문요한·이나미 정신과 전문의, 최윤희 행복 전도사
그들도 열등감 있다
일단 열등감은 병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해 두자. 그것은 인간이라면 갖는 보편적 감정이다. 어른이 되면 스스로를 객관화해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에 오히려 열등감이 없다는 게 비정상적이다. 그래서 성인은 ‘어떤 부분에선’ 남보다 부족하다고 여기게 된다. 문제는 열등감이 부분적이냐 전체적이냐 하는 것. ‘엄친아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일수록 ‘나는 무엇이 부족해’라고 하기보다 스스로를 ‘결함투성이’라고 생각하는 전체적 열등감이 크다.
남들 눈엔 빠질 것 없는 엄친아도 열등감이 있는 건 마찬가지다. 똑똑한 연예인으로 알려진 가수 겸 배우 김정훈은 한 인터뷰에서 “천재 소리를 들을 만큼 뛰어난 형과 6촌 친척 등이 나에겐 엄친아”라며 “나도 그들 때문에 열등감이 많았다”고 밝혔다. 의대생 미스코리아였던 금나나도 최근 방송에 나와 비슷한 경험을 토로했다. 학창 시절 아이큐 콤플렉스에 시달렸고, 과학고에 진학한 뒤엔 성적 스트레스로 폭식증을 겪었다고 한다.
열등감 때문에 병원을 찾는 이들 중엔 정말 객관적 조건이 떨어지는 사람보다 기업체 임원, 전문직 종사자, 우등생 등이 많다. 다른 사람들은 친구도 잘 사귀고 운동도 잘하는 데 자신만 친구가 없다며 ‘나만 못났다’고 생각하는 고등학생, 우유부단하고 리더십이 부족해 팀장으로서 제대로 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회사 간부도 있다. 이들 모두 주관적 기준이 너무 엄격한 경우다.
나도 애정 결핍?
‘엄친아’ 얘기만 나오면 유달리 민감해지는 사람, 그때마다 궁금하다. 왜 난 이렇게 열등감이 많을까. 정신학적으로는 부모로부터의 애정 결핍을 원인으로 꼽는다. 아이들은 언제나 자신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원한다. 하지만 자녀의 주문을 모두 들어주는 부모는 없다. 대신 ‘이러면 이렇게 해줄게’라는 조건적 사랑과 균형을 맞춘다. 하지만 조건적 사랑이 너무 큰 경우가 문제다. 아이가 어떤 기준을 충족하면 사랑을 베풀고, 그렇지 않을 땐 무관심·냉담·비난을 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애정 결핍과 더불어 ‘내가 부족해서 부모가 날 사랑하지 않아’라는 열등감을 갖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누군가를 만족시키려고 계속 비현실적인 자아상에 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외에도 기질적으로 낯가림이 심하고, 자의식이 지나치게 높고, 완벽주의 성향이 높은 사람도 열등감에 시달리게 된다.
스트레스 없애려다 더 스트레스
인생의 단계마다 등장하는 ‘엄친아’를 일부러 외면할 필요는 없다. 열등감을 없애려는 노력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부른다. 비교 본능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난 이건 잘하고 이건 못해’라고 구분 지은 뒤 마음의 칸막이를 단호하게 치는 것이 낫다. 또 열등한 부분은 아주 구체적으로 다뤄야 한다. 가령 키가 작은 남자라면 ‘키 작은 나를 아무도 좋아할 리 없어’라고 하기보다 ‘난 보통보다 작은 1m62㎝야’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일단 바꿀 수 있는 건 바꿔 보자. 노래를 못하면 딱 두 곡만 열심히 배워 놓는 식이다. 단 스스로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무리 노력해도 평균을 넘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땐 에너지를 약점보다 장점에 투자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난 왜 이걸 못할까’라고 생각하면 해답이 없다. 상황을 더 심각하게 만들어 놓을 뿐이다. 이보다는 해결 중심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난 왜 친구가 없을까’보다는 ‘어떻게 하면 친구가 생길까’라고 고민하는 것. 이 또한 노력과 훈련이 필요한 마인드 컨트롤이다.
주변 비교엔 확실한 의사 표시를
부모나 배우자가 ‘누구 집 누구는 이런데…’, 혹은 자녀가 ‘누구네 엄마는 이런데…’라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이럴 땐 두 가지를 확실히 전달하자. 우선 비교로 인해 기분이 상했다고 확실히 표현하고, 그 다음엔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고 부탁하는 것. 예를 들어 ‘엄마 친구 딸은 OO대학에 들어갔는데 넌 성적이 그게 뭐냐’라고 할 땐 순간 화가 나더라도 이렇게 얘기해 보자. “엄마, 비교하면 난 더 힘들어. 엄마가 그럴 땐 공부할 마음이 더 사라져. 그냥 엄마가 ‘뭘 더 도와줄까’ 라고 지지해 주면 더 열심히 할 것 같아” 라고 말하는 식이다.
실전 극복법
예쁘고 학벌 좋은 직장 동료와 한 부서일 때 원망스럽다. 그의 인기에 주눅 드는 건 기본이고 부장의 ‘무조건적인 이해’도 원망스럽다. 이럴 때 비관은 독이다. 스스로에게 표창장을 줘라. ‘너 아까 상사의 차별대우에도 잘 참아냈어, 극기상’ 같은 식이다. 기죽지 말고 먼저 그 동료를 칭찬해 버리는 것도 방법이다. “OOO씨, 여자인 내가 봐도 참 멋져요.” 이렇게 말하며 열등감을 부숴 버린 자신을 기특해 해라. 외모가 전부인 시대는 지났다. 시대의 엄친아 강동원· 김정훈만큼 유재석·강호동도 뜨고 있다는 것을 명심할 것. 부잣집 며느리로 사는 동창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시댁에서 받는 게 있으면 의무도 많다. 친구 남편이 잘나간다지만 정작 아내는 외로울 수 있다. 해외 출장 못 가는 남편 구박하지 말고 ‘항상 함께해서 좋다’고 생각을 바꿔 보자. 매번 ‘내 팔자야~’하는 주부라면 남편에 의한, 남편을 위한 인생을 헌납하고 스스로의 인생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자.
‘엄친아 스트레스’는 남들과 같아지려는 집단화에서 비롯된다. 유행을 좇아 경매·와인을 공부하는 일도 한 예다. 남들이 안 하는 걸 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누려 보자. 나이 들수록 그림·음악 등 혼자 즐기는 취미생활에 관심을 갖는 것도 방법이다.

퇴근길, 몰고온 자동차를 탈 때 선생님들은 겁이 난다. 학생들이 뱉어 놓은 가래침 때문이다. 꾸중하는 선생님들에게 욕을 하거나 침을 뱉고, 심지어 의자를 집어던지는 아이들도 있다. 학부모에게 전화 거는 것도 고역이다. 아이 문제를 의논하려 한 것뿐인데, “촌지 바라느냐”며 퉁명스럽게 끊어버리는 것은 물론, 언제 찾아 와 행패를 부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이렇게 학생들의 생활지도에 무력감을 느끼며 손을 놓아버린 사이 아이들의 범죄는 갈수록 무섭게 변하고 있다. 포르노를 보고 집단으로 성폭력을 하는 초등학생에, 열 예닐곱 살 아이들이 포주가 되어 폭력으로 매춘을 강요하지 않나, 이유 없이 친구를 땅에 묻고 살해 위협까지 한다. 음란물을 본다든지, 학교를 멋대로 빠지거나 다른 아이를 괴롭히는 것쯤으로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학생도 적지 않다. 우리 아이, 우리 동네는 괜찮겠지 생각하지만, 심층면담을 하다 보면 아이들의 도덕적 아노미는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현상이다.
이렇게 청소년의 문제 행동이 단순한 ‘비행(非行)’이 아니라 ‘범죄’로 치닫고 있는 데는 폭력 비디오와 게임 영화 등 매체의 영향도 있지만, 윤리교육 부재가 그 근본 원인이다. 사건이 터지면 담당 교육청과 학교의 감독 부재를 지적하곤 하는데, 담임교사가 자기 과목을 가르치면서 40명이 넘는 학생의 정신건강과 윤리교육까지 혼자 어떻게 책임지겠는가.
발달심리학적 입장에서 보면 아이들의 도덕관념은 학교에 들어갈 나이 이전, 양육자의 태도에 따라 결정된다. 공공장소에서 소리 지르고 뛰어서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 때리거나 욕하는 폭력적 행동, 약한 자를 괴롭히는 비열한 태도, 절도나 거짓말 등의 비도덕적 행동에 대한 죄의식은 유치원 이전에 형성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똑똑하고 경쟁적인 부모 중에는 “기죽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라(설령 네가 잘못해도 꼭 사과할 필요는 없다)”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남을 이겨라(커닝이나 폭력 정도는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 “남 신경 쓰지 말고 내 것만 챙겨라(약하고 아픈 사람 도와줄 필요 없다)” 같은 메시지를 아이들에게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보내 자녀들을 냉혹하고 지능적인 범죄자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권위적인 대가족 제도와 봉건사회에서는 답답하고 싫어도 어른들 앞에서 나를 죽여야 했다. 위선일망정 남에게 손가락질받지 않는 삶의 방식을 선택해야 했다는 뜻이다. 이제 젊은 세대는 그런 이중적 삶의 방식을 거부한다. 순전히 내 가치관대로 살겠다는 젊은이들이 양심과 배려의 덕목을 갖출 수 있도록 학부모·학교·사회의 도덕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눈속임과 위선에 공분해 촛불집회를 하는 10대들에게 거짓말하지 말고 바르게 살라는 주문이 과연 얼마나 잘 먹혀들 것인가.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위정자와 무책임하고 파괴적인 정보를 쏟아내는 대중매체가 사과라도 제대로 할 줄 안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좀 나아질까.
이나미 정신과 전문의
자녀 독립 방해하는 한국 부모들 [조인스]

필자가 미국과 한국에서 상담한 이들 중에는 자녀에게 원하지 않는 전공과 공부를 억지로 강요하다가 무기력감에 빠진 자녀 뒷바라지하느라 골치를 썩이는 부모가 적지 않았다. 노동의 즐거움과 경제개념, 독립심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서양식 가치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한국적 현상이다. 일찌감치 자녀들을 분가시키는 일본 역시 자녀들에게 지나친 투자는 하지 않는다. 공들여봐야 되돌아 올 것도 없다는 것을 경험상 알게 된 것이다. 외국의 교사나 교수들은 한인 학생들이 동기와 자발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자주 지적한다.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제도와 환경이 달라도 한국식 교육의 병폐는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벌써부터 기업체에서는 부모의 재산이 많고 강남 출신이거나, 그 전적이 불확실한 유학생들은 채용을 꺼리는 분위기다. 매뉴얼 달라면서 과외 받으러 온 줄 착각해 시키는 일이나 간신히 하는, 학벌은 좋은데 추진력이 부족한 부잣집 자제들 때문에 상사들은 골치가 아프다. 상류층일수록 집 마련은 물론 손자 교육까지 부모 몫이라서, 부자들만 간다는 소위 명문 유치원에서는 조부모 경제력부터 물어본다고 한다. 시부모친정 장학금이라며 부끄럼 없이 자랑하는, 학벌은 좋은데 혼자 설 생각은 애초에 없는 젊은이가 너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좋은 대학에 입학시킨 부모들을 성공적 인물로 미화하는 매스컴도 우습다.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낸 어머니들에 대한 찬사 뒤에는, 학벌이 앞으로의 자녀 인생을 좌우할 것이고 자녀 인생은 어머니가 결정한다는 집단 최면이 숨어 있다. 곱게 자라 좋은 간판 딴 자녀들이 사회에 적응 못하고 부모를 함부로 대하는 뒷얘기들을 정말 그리 모르는지.
물론 교육에 대한 투자가 모두 병적인 것은 아니지만, 교육철학의 부재는 꼭 짚어 보아야 한다. 대입제도 고치고 자립형 사립고 만든다 해도, 땀 흘리기는 싫고 부동산이나 부모 유산만 바라보는 퇴폐적 물신주의에 빠진 젊은이만 양산한다면 곤란하다. 공무원시험, 자격증, 로스쿨, 의학대학원 준비하는 백수들은 넘쳐나지만, 기업은 인력이 모자라 이주노동자에게 매달려야 한다. 번듯한 직장 아니면 아예 다니지 말라는 부모도 있다. 부모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무능력하고 의존적인 허깨비들만 가득한 사회는 끔찍하다.
자식에게 먹고살 만큼만 남겨주겠다는 한 기업인의 발언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으나, 부모가 다 큰 자녀 먹을 것을 왜 걱정하는가. 제 힘으로는 먹을 것도 못 찾는 금치산자 자식들인가? 자녀가 일하는 습관을 익혀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해 주면 그만이다. 물려받은 큰돈을 한순간에 날린 이들의 상담도 가끔 한다. 뭐든 부모에게 의존했으니 경제 개념과 판단력이 있을 리 없다. 자녀를 죽을 때까지 책임지겠다는 부모는 실상 자녀를 망치는 나쁜 부모일 뿐이다.
이나미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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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티브’공세를 펼치는 후보에게 주는 정신과 의사의 충고 [조인스]

원시부족 중에는 새 부족장을 선출하고 나면 이전의 무능한 부족장을 잔인하게 죽여 희생제물로 삼거나, 패배한 이들의 머리 가죽을 벗기는 관습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희생제물은 현대심리학의 눈으로 보면 방어기제 중 하나인 ‘투사(投射·Projection)’의 대상인 셈이다. 투사란 상대방에게 자신의 심리적 갈등을 덮어씌우고 자신의 문제는 덮어 버린 채 모든 잘못과 책임을 상대방 탓으로 돌리는 낮은 수준의 심리적 자기방어기제다.
일단 투사의 방어기제가 작동되면 내적 성찰보다 외부에서 문제를 찾기에 혈안이 되어 문제 해결을 사사건건 방해하게 된다. 남편은 아내 탓, 아내는 남편 탓. 사장은 노조 탓, 노조는 사장 탓, 여당은 야당 탓, 야당은 여당 탓을 한다. 서로 남의 잘못만 찾으니 잔인한 적의 공격에 개죽음당하지 않으려면 일단 자기 죄와 잘못은 감추는 것이 상책이다. 비난하고 방어하는 데만 모든 열성을 다 쏟기에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할 여력이 없다.
오랫동안 독재정권이나 권위적인 문화에 길들여져 있으면 민주적 시스템을 갖추어도 독립심과 책임감을 갖고 살기보다 우선 다른 이에게 손가락질부터 하고 본다. 어쩜 우리가 그리 생존해 왔는지도 모른다. 냉철한 이성과 합리적인 분석 대신 그저 눈치 보고 줄 잘 서서 내 편 네 편 뚜렷이 갈라 상대방 비난만 잘하면 성공하는 사회, 그 냄새 나고 답답한 공간이 21세기 한국이 아닌가 싶다.
구미에서도 한국의 국회방송처럼 의회의 풍경을 거의 하루 종일 TV에서 보여준다. 어려서부터 이성적인 토론문화를 잘 배운 덕인지 의원들은 위트 있는 유머와 실속 있는 정보를 서로 주고받기 때문에 어느 프로그램보다 재미있고 유익하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황색신문’들이 아무리 비속한 싸움을 부추겨도 이긴 사람은 진 사람의 장점을 추어 주고 진 쪽은 이긴 편의 리더십을 칭찬하니 관전하는 마음도 시원해진다. 그들이라고 질투와 음모에 가득한 파워게임이 왜 없겠는가. 다만 추한 감정을 날것으로 드러내면서 서로를 물어뜯는다면 짐승 같은 야만인에 다름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무서워 우리보다 더 잔인한 사냥꾼의 본래 성정을 꽁꽁 숨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선거철이다. 이긴 사람들은 우쭐한 마음에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나르시시즘으로 상대방을 가혹하게 밟으려는 유혹에 빠질지도 모른다. 진 쪽 역시 상대방에 대한 증오로 호시탐탐 원한 풀 기회만 노릴 수 있다. 양쪽 모두 심각하게 병든 사람들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복은 화를 부르며, 지나친 승부욕은 인간을 황폐하게 한다. 이긴 쪽은 조만간 자신들이 부정적인 투사의 대상이 되어 잔인하게 살해되는 부족장처럼 될 가능성을 두려워해야 한다. 진 쪽 역시 모든 잘못을 힘 있는 자에게 전가하는 습관을 거두자. 무능하고 치사한 데다 용렬하기까지 하다는 비난은 적어도 듣지 말아야 되지 않겠는가. 상대방의 잘못만 들추는 원시적 방어기제를 쓰는 사람 수와 합리적 근거로 자기 분석과 성찰을 하는 사람 수를 비교하면 그 사회가 얼마나 야만적인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나미 신경정신과 전문의
분노표출 위한 방화?… 문화재 모방방화 우려 [연합]
숭례문 방화범의 유력한 용의자 채모(70)씨는 자신의 불만과 분노를 표출하고 사회적 관심을 끌기 위해 방화를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정신과전문의와 범죄심리 전문가들은 방화 범죄의 특성을 고려할 때 문화재에 대한 모방범죄 발생 가능성에 우려를 나타냈다.
◇사회에 대한 분노 표출 = 경찰에 따르면 채씨는 자신이 갖고 있던 토지 보상문제가 잘못돼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본인 소유의 경기도 일산 땅이 개발됐으나 보상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땅을 팔지 않고 있으며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끌기 위해 불을 질렀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편지가 경찰에 의해 압수됐다.
일본 범죄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방화 동기로는 원한이나 분노가 가장 많으며 범행 은폐, 보험사기, 치정, 보험사기 등이 흔하다.
보험사기나 증거인멸 등 특수한 목적이 있는 경우를 제외한 방화범죄는 쓰레기장이나 폐가 등 목격자가 없고 인명.재산 피해가 적은 곳에서 많이 일어난다.
이번 화재와 같이 세인의 관심이 집중되는 구조물이나 공공건물 방화는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표창원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거나 사회에 대한 불만이 크면서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관심을 끌 수 있는 구조물에 방화를 함으로써 자신에게도 힘이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나미 분석심리연구원 신경정신과전문의(심리분석가)도 "불은 분노, 자기과시 욕구를 드러내며 방화범 가운데는 분노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분노와 방화의 관련성을 지적했다.
그러나 '국보 1호' 숭례문에 방화를 하고 지난 2006년 4월 창경궁 문정전에도 불을 지르는 등 극단적인 행동으로 볼 때 알코올중독, 충동조절이 안 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 등 다른 질병이 있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남궁 기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는 "정상적인 경우라면 분노가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나 창경궁에 불을 지르지는 않는다"며 "반사회적 인격장애 가능성이 보인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최상섭 국립법무병원장은 "알코올중독 금단현상으로 사찰에 불을 지른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정신질환과 관련성 단정은 어려워 = 그러나 방화범이 특정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신.심리분석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른 판단'을 경계했다.
방화와 대부분의 정신질환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증거가 없으며 실제로 정신질환자들의 방화범 비율이 높은 것도 아니라는 것.
특정 정신과질환 가운데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불을 내는 질환을 '방화광(pyromania)'이라고 한다. 그러나 방화광은 불을 질러야 긴장이 완화되는 질환으로 매우 드물며 이들은 계속해서 방화를 저지르는 특성이 있다. 김동인의 단편소설 '광염소나타'의 주인공이 방화광의 대표적인 사례.
그러나 이번 방화는 방화광의 범죄로 보기 어렵다. 경찰에 따르면 채씨는 자신의 불만 때문에 불을 지른 것이지 정신적 안정감이나 긴장 완화를 위해 불을 지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현 건국대병원 정신과 교수는 "방화광이 드문 질환이고 최근에는 습관적으로 방화가 발생하지 않았던 점으로 볼 때 방화광의 범죄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방 방화 발생 가능성 경계해야 =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특정질환과 연결시키기보다는 모방범죄 발생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나미 신경정신과전문의는 "자살과 마찬가지로 방화범죄도 모방성이 있기 때문에 유사한 문화재에 대한 방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범용 신경정신과 원장도 "방화는 특정 질환의 증상이 아니다"며 "방화범에 대한 억측보다는 모방방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