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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요양원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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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08-12-10
- Why] 인생 마지막 간이역… 노인요양원의 두 얼굴
- '동부노인요양센터' 이인묵 기자의 1박2일
◆요양센터의 하루
요양센터의 일과는 오전 6시에 시작된다. 방에 일제히 불이 켜지며 요양보호사(요양센터에서 노인들을 돌보는 도우미)들이 노인들을 깨운다. 방마다 딸린 화장실에서 노인들을 씻긴다. 입소 노인의 70% 정도가 기저귀를 사용하기에 밤새 흘린 대소변도 처리한다. 오전 6시20분쯤에는 몸을 못 쓰는 이를 빼고 대부분이 중앙 식당으로 모인다. 아침식사가 나오는 7시까지 노인들끼리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대부분 노인은 식사도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는다. 건강 상태에 따라 일반식과 유동식이 배급된다. 노인들은 턱받이를 하고 식사를 한다. 분홍색 턱받이를 한 모습이 아이들처럼 보인다. 한미순 간호사는 "겉보기만이 아니라 어르신들이 실제로 아이 같은 면이 많다"며 "식사 도와드리는 것도 한 분만 해드리면 옆에 분들이 삐치고 샘을 낸다"고 했다.
식사가 끝나면 각자 일과를 한다. 기계 욕조를 이용해 전신 목욕을 하기도 하고, 신체 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물리치료도 받는다. 두뇌 기능을 활발하게 하기 위한 인지작업치료도 있다. 플라스틱 블록이나 나무 조각을 맞추는 것이다. 유치원 아이들이 두뇌 발달을 위해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 ▲ 김광호(74·오른쪽) 할아버지가 서울 홍익동 시립 동부노인전문요양센터 1층 물리치료실에서 고정식 자전거를 타고 있다. /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요양센터의 일과는 일찍 끝난다. 오후 5시에 저녁식사를 하고, 8시가 되면 복도에 불이 꺼진다. 하지만 3분의 1 정도는 취침시간 이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기력이 쇠한 듯 숟가락을 놓자마자 곯아떨어지는 모습이었다. 요양보호사와 간호사의 일은 8시 이후로도 계속된다.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2시간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자세를 바꿔줘야 하기 때문이다.
◆치매와 중풍
동부노인전문요양센터에 노인 296명이 살고 있다. 이 중 절반 정도가 치매를 앓고 있고, 치매에 걸린 이들 중 3분의 1은 중풍도 함께 앓고 있다. 치매에 걸려 실내를 하염없이 돌아다니는 배회 증상을 가진 노인도 50명이 넘는다.
요양센터 안은 밝고 조용하고 깨끗하다. 요양보호사 124명이 4조 3교대로 24시간 일을 하기 때문이다. 낮에는 자원봉사자 30여명까지 일을 돕는다. 노인 3명당 1명 이상이 붙어 있는 셈이다.
노인들은 건물 안을 마음대로 다닌다. 조항건 요양센터 원장은 "인원이 충분하고 건물이 넓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집에선 안전을 위해 가둬놓을 수밖에 없는 일도 있지만, 센터에는 위험 요소가 없기 때문에 노인들이 마음껏 다닐 수 있다"고 했다.
가족들도 자유롭게 건물 안에 들어온다. 일산에 사는 구경미(48)씨는 2일 정오쯤 어머니를 찾아왔다. 그는 "들어오시기 전에 비해 정신이 더 맑아지신 것 같다"고 했다. 한정수(74) 할머니의 남편인 정용관(74) 할아버지는 아예 자원봉사자로 센터에 다니고 있다.
◆노인들의 세계
노인들끼리 다툼도 있다. 김모(80) 할머니는 기자에게 다가와 "누가 내 물건을 다 훔쳐 갔으니 제발 좀 찾아달라"고 말했다. 실제로 물건이 없어진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가 '의심' 증세를 앓는 것이다. 하지만 이 증세 탓에 같은 방의 할머니와 종종 다툼을 벌인다고 한다.
'벽에 똥칠하는' 노인들도 있었다. 방에 변을 보고 모른 척하는 노인도 있었고 항문에서 대변을 꺼내서 벽에 바르는 노인도 있었다. 그때마다 요양보호사 2~3명이 달라붙어 기저귀를 갈고 몸을 씻겼다. 대변을 닦아낸 자리에서는 희미한 변 냄새와 강한 소독약 냄새가 났다.
가족도 아닌 노인의 치매 증상을 지켜보는 것이 힘들지 않을까. 이곳에서 2년째 일하고 있는 백승희 간호사는 "가족이 아닌 것이 되레 낫다"며 "가족은 감정적이 되기 십상이지만, 간호사는 문제 행동을 증상으로 본다. 개인사를 들어도 자신이 개입돼 있지 않으니 행동을 이해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밤에는 백모(88) 할머니의 흐느끼는 소리가 흘렀다. 할머니는 아들이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정신에 이상이 왔다. 한꺼번에 우울증과 치매에 걸렸다. 김문숙 간호사는 "이곳에 온 후로 우울증 증세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할머니가 아들을 부르는 낮은 목소리가 어두운 복도를 울렸다.
◆언젠가는 가야 할 길
2일 오전 입소한 부인을 찾아온 한 할아버지는 "완벽하진 않지만 이게 가장 나은 대안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2006년 요양센터에 들어왔다. 센터에 들어올 때까지 5년 동안 할아버지와 가족들이 할머니에게 달라붙었지만 할머니의 증세는 나빠지기만 했다. 그는 "그때(집에서 돌봐주던 때)는 차라리 암이 낫단 생각이 들었다"며 "여기 들어오니 나는 내 몸 건사하고 이 사람은 여기서 돌봐주고 해서 50년 같이 산 아내를 버리지 않게 됐다"고 했다.
김창례(72) 할머니는 3년 전부터 이곳에 자원봉사를 나오고 있다. 처음에는 유급(월 20만원 수준) 자원봉사자였지만 지금은 돈이 나오지 않아도 센터에 나온다. 그는 이곳에 다니면서 치매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처음에 왔을 때는 나도 저런 모습이 될 수 있단 생각에 며칠 잠을 못 잤어요. 무섭기만 했죠. 하지만 계속 보다 보니 익숙해지더라고요. 이젠 할머니들과 이런 저런 대화도 해요. '이것도 피해갈 수 없는 늙는 과정이구나'란 생각이 들어요. 무서워할 필요 없는, 자연스러운 거구나 하고요."
- [Why] '오래산 죄'를 괴로워하다 외로움에 지치는 곳
- 김수영 시인이 다녀온 가평의 한 요양원
11월 14일 가평의 한 요양원에 갔다. 남편의 93세 된 외할머니가 거기 있다. 열여덟에 결혼해 자식을 여덟 둔 외할머니는 첩에게 할아버지를 뺏긴 채 광복, 6·25전쟁을 맞았고 세상의 풍파를 견뎌냈다. 외할머니는 2년 전 골반 뼈를 다쳤고 얼마 전부터 요양원에서 머물고 있다.
문을 열자 개미굴 같은 방들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거실을 중심으로 노인들이 머무는 방이 있었다. 노인들은 새싹반, 개나리반 유치원생 같아 보였다. 남자는 연두, 여자는 노란색 티셔츠에 흰색 바지 차림이다. 그곳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비현실적이었다. 욕창 때문에 반듯하게 에어매트에 누워 있든, 베개를 벤 것처럼 목을 든 채 뻣뻣하게 모로 누워 있든, 꼬꾸라질 듯이 앉아 있든 모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구석에 홑이불을 덮고 웅크리고 있었다. 원장님 무릎을 베고 누운 할머니는 아비에게 응석부리는 아이 같은, 신랑에게 애교를 부리는 새색시 자태였다. 오른쪽 목에는 계란만한 혹이 나 있었고 예전에 머리카락 한 올 흘러내리지 않게 쪽진 머리는 쑹덩 잘려 있었다.
할머니는 고장 난 녹음기처럼 "아파, 아파 죽겠어" "추워, 추워 죽겠어"라고 했다. 뼈를 감싸던 살 대신 가죽만 남았으니 더욱 추울 터였다.
"할머니 외증손녀도 왔어. 둘이나. 할머니 외증손녀 예쁘네."
아이들의 손을 양손에 하나씩 꼭 잡은 할머니는 이번에는 "밥 좀 먹어, 밥 좀 먹어"라고 읊조렸다. 아이들은 어느 새 소리 없이 뚝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표정 없던 할머니의 눈에도 물기가 번졌다.
그 방에는 8명의 할머니들이 더 있었다. 보라색 털모자를 쓴 채 두 다리를 가슴에 모으고 앉아 있던 할머니는 큰 언니로 97세였다. 그는 자기 이름, 자식·며느리·손자의 이름을 다 외우고 있었다.
문을 열자 개미굴 같은 방들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거실을 중심으로 노인들이 머무는 방이 있었다. 노인들은 새싹반, 개나리반 유치원생 같아 보였다. 남자는 연두, 여자는 노란색 티셔츠에 흰색 바지 차림이다. 그곳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비현실적이었다. 욕창 때문에 반듯하게 에어매트에 누워 있든, 베개를 벤 것처럼 목을 든 채 뻣뻣하게 모로 누워 있든, 꼬꾸라질 듯이 앉아 있든 모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구석에 홑이불을 덮고 웅크리고 있었다. 원장님 무릎을 베고 누운 할머니는 아비에게 응석부리는 아이 같은, 신랑에게 애교를 부리는 새색시 자태였다. 오른쪽 목에는 계란만한 혹이 나 있었고 예전에 머리카락 한 올 흘러내리지 않게 쪽진 머리는 쑹덩 잘려 있었다.
할머니는 고장 난 녹음기처럼 "아파, 아파 죽겠어" "추워, 추워 죽겠어"라고 했다. 뼈를 감싸던 살 대신 가죽만 남았으니 더욱 추울 터였다.
"할머니 외증손녀도 왔어. 둘이나. 할머니 외증손녀 예쁘네."
아이들의 손을 양손에 하나씩 꼭 잡은 할머니는 이번에는 "밥 좀 먹어, 밥 좀 먹어"라고 읊조렸다. 아이들은 어느 새 소리 없이 뚝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표정 없던 할머니의 눈에도 물기가 번졌다.
그 방에는 8명의 할머니들이 더 있었다. 보라색 털모자를 쓴 채 두 다리를 가슴에 모으고 앉아 있던 할머니는 큰 언니로 97세였다. 그는 자기 이름, 자식·며느리·손자의 이름을 다 외우고 있었다.
- ▲ 사진작가 박병혁씨 제공
뻣뻣하게 누워 있던 할머니들이 일어나 앉아서 달그락거리며 숟가락질을 하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할머니 말아?" "국에 마는 것 싫어?" "싫어? 그럼 바꿔서 맨밥 드릴게!" 산송장처럼 보여도 할머니들의 취향은 까다로웠다.
"콩이 딱딱해요?" "김치 매워요?" "국이 뜨겁지 않지?" 대답은 못해도 누군가 옆에서 성가시게 하는 것을 좋아했다. 눈 뜰 기력도 없어 보이던 할머니도 젓가락으로 콩을 집어 먹었다. 버섯볶음이 입맛에 맞는지 숟가락을 부닥쳐가며 모두들 밥그릇으로 퍼갔다. 숟가락질 못하는 할머니들은 도우미들이 떠먹여주었다. 숟가락이 얼굴 가까이 가면 새 **들처럼 한껏 입을 벌렸다. 10분 만에 식사가 끝나자 할머니들은 다시 고꾸라지듯 바닥에 누웠다.
사흘 뒤 다시 갔을 때 할머니는 목욕을 한 뒤였다. "또 왔어?" "밥은 먹었어?" 이제 제법 대화가 됐다. "누가 가장 보고 싶으세요?" "다 보고 싶지, 뭐." 할머니는 노염을 푼 모양이었다. 첫날 할머니는 아들은 보고 싶지 않지만 손자와 손녀가 보고 싶다고 했다.
할머니들의 어법은 독특한 반어법이다. 손자와 손녀는 아들이 데리고 와야 볼 수 있다. 자신을 요양원에 버린 아들도 사실은 사무치게 보고 싶은 것이다. 할머니는 도우미 총각을 볼 때마다 손자 이름을 부르며 고추를 만지려고 했다.
"처음 오면 내가 왜 이런 데까지 왔나 싶어 괴롭지. 있다 보면 여기가 더 좋아."
요양원에 오면 누구나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왜 이런 데까지 왔나 싶고"라는 말 속에는 일찍 죽지 않은 한탄이 깔려 있었다. 요양원에 가면 누구나 '너무 오래 산 죄'에 대해 괴로워하고 그 다음은 외로움에 지친다.
세 번째 할머니를 찾아간 날 할머니는 전날부터 곡기를 완전히 끊어 버린 상태였다. 할머니의 입은 끈끈한 침으로 봉합엽서마냥 붙어 있었다. 휴지에 물을 적셔가며 한참을 닦아내자 입술이 열렸다.
"물 좀 줘."
아침 점심을 굶은 할머니는 물조차 마시지 못한 모양이었다. 한 잔의 물을 벌벌 떨면서 두 모금씩 나눠 마시느라 여섯 번을 누웠다 일어났다. 5시부터 7시 사이 할머니는 물 두 잔, 두유 한 개를 먹었다. 그동안 어떻게 갈증을 참았을까 싶었다.
곡기를 끊는 건 죽음을 준비하는 것과 같다. 목에 있던 종양은 젖무덤 중간까지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만들어버렸다. 10일 전만 해도 목 주변만 딱딱한 정도였다. 노인들에게 찾아오는 암은 어찌 보면 축복이다. 질긴 목숨을 끊게 해줄 칼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날따라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모두 박수치며 즐거워했지만 할머니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잠자코 있었다.
"내일 아침도 식사를 안 하시면 가족에게 연락을 하려고 했어요."
원장님은 할머니가 요양원을 떠날 시간이 임박했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날 저녁도 완강히 거부해 두유 하나와 과자 한 개를 먹었다. 나는 치매로 온몸이 굳은 할머니 옆에 할머니를 뉘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낮 동안 서로 부딪치기만 하면 꼬집는 두 사람은 밤이 되면 꼭 끌어안고 잤다. 삶의 결승점에 가장 가까이 다다른 사람은 할머니였고 이변이 없는 한 끌어안고 자는 그 할머니가 두 번째일 듯싶었다.
할머니는 일요일 아침 전문요양원으로, 월요일 오전에는 다시 응급실로 옮겨졌다. 25일 새벽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수선스러운 긴 여정을 마치고 혼자서 종착역에 닿았다. 죽음은 산 사람의 편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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