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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 심리치료 어디쯤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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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9-08-06

[건강한 당신 커버스토리] 암환자 심리치료 어디쯤 왔나



[중앙일보 고종관.신인섭2] 유방암으로 8년여를 투병한 김모(55·여)씨. 지난달 정기검진에서 반대편 유방과 간에 암덩어리가 발견돼 입원을 했다. 그녀는 암이 재발하자 심한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그동안 엄마와 아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되뇌던 그녀는 간병을 하는 남편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스스로 세상과의 인연을 끊었다. 그녀가 남긴 것은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유서 한 장이 전부였다. '선진 의료와 어깨를 겨루는 암 치료 성적, 환자 중심의 병원 서비스'. 우리나라 병원들이 구호처럼 외치는 임상과 서비스 수준이다. 하지만 암환자 마음치료법(정신종양학)의 현주소는 어디쯤 왔을까.

우울증 발병 일반인의 5.6배

정신종양학은 이름 그대로 암환자를 정신적으로 도와주는 학문. 정신과 전문의뿐 아니라 심리학·간호학·사회사업 전문가들이 참여해 암 치료 과정에서 겪는 환자의 정서적 고통을 상담하고 치료한다.

최근 국립암센터는 지난 1년여간 국내 암환자 375명의 디스트레스(정서적 고통) 유병률을 조사해 발표했다. 자료에 따르면 암환자의 우울증 발병률은 41%였다. 이는 일반인(5.6%)의 5.6배 수준. 특히 '죽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의 자살 성향을 보인 사람'은 20.6%, 자살 시도 또는 계획한 사람도 5%나 됐다. 일반인보다 6.8배 높은 수치다.

국립암센터 정신건강클리닉 김종흔 박사는 “암 진단 후 환자들은 절망감과 고립무원에 빠져 정신적으로 취약해진다”며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치료를 거부하거나 이혼으로 가족이 해체되고, 자살까지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암환자가 우울증에 쉽게 빠지는 것은 절망적 상황 때문. 하지만 암 자체가 우울증을 촉발하기도 한다. 김 박사는 “염증성 물질인 사이토카인이 우울증을 유발한다는 이론이 있고, 여기에다 암 치료제가 우울증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우울증이 암 치료 효과를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환자를 극도로 나약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함봉진 교수는 “우울증 환자는 통증 조절이 안 되고, 부작용이 더 심하게 나타나며, 신경이 예민해진다”며 “사소한 것에도 서운해하고, 화를 잘 내는 등 주변 사람과 마찰을 빚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자기 조절 능력 상실이나 죄책감·무력감·신체 손상에 대한 두려움 등도 암환자라면 통과의례처럼 겪는 정서적 변화들이다.

긴 투병에 소외감 느끼기 쉬워

더욱 심각한 것은 정서적 지지를 필요로 하는 암환자가 급격히 늘어난다는 점이다. 암 치료술이 좋아지면서 암환자의 투병 기간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암센터 임상심리 전문가 유은승씨는 “암 발병 초기에는 가족 모두 당황하고 치료에 몰두하느라 정신이 없지만 오히려 안정기에 들어서면서 우울증이 심각하게 대두된다”고 말했다. 실제 조사 결과에서도 자살 건수와 시도가 암 진단 2년 이내보다 이후에 2.8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 환자에 대한 정신과의 개입은 삶의 행로를 바꿔놓는다. 유방암 2기로 불면증 때문에 정신과를 찾은 박모(47)씨. 어머니를 유방암으로 떠나보낸 그녀는 밤마다 어머니의 환영이 자신을 짓누른다고 했다. 의사는 정신분석을 통해 그녀가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임을 밝혀냈다. 치열하게 살아온 자신에게 암이 찾아온 사실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 그녀는 병원에서 인지행동 치료를 받고 우울·불안증에서 벗어난 것은 물론 느긋하게 사는 인생관을 터득했다. 현실을 부정하는 태도와 집착을 버리니 잠도 잘 왔고, 가족과의 관계도 원만해졌다.

암환자의 삶의 질에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진 나라는 미국이다.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는 1950년대 초 센터 내에 정신과를 설립했고, 현재 정신종양학팀엔 정신과 의사·임상심리사 20여 명이 암 종류별로 나뉘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삶의 질 높이도록 정신과 치료도 필요

우리나라는 암센터가 많지만 암환자를 위해 정신과 의사가 배치된 곳은 국립암센터와 원자력병원(각 1명)이 전부다. 나머지 병원은 암센터에서 환자를 보내주면 진료를 하는 수준이다.

함 교수는 “암에 걸리면 가족 전체의 삶에 위기가 온다”며 “지금까진 생명을 연장하는 양적 진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앞으로는 암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인식 하에 84년 설립된 국제정신종양학회는 27개국 학회와 연계돼 세계보건기구(WHO)의 비정부기구(NGO)로 활동하며, 심리사회적 지원 서비스 지침을 개발하고 있다.

김 박사는 “우울증 조기 발견을 위한 선별 검사 도구 개발, 의료진에 대한 교육, 상황별 대처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암환자의 스트레스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주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글=고종관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건강한 당신] 내 안의 암 끌어안기 ‘10’


[중앙일보 고종관.신인섭2] 매주 화요일이면 어김없이 국립암센터를 찾아 봉사활동을 하는 이연숙(65·서울 노원구)씨. 암환자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조언도 하고 외래에서 궂은 일을 돕는다. 하지만 그도 2000년 직장암 3기 판정을 받아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두 차례의 대수술과 인공항문을 달아야 했던 고통도 힘들었지만 간병을 하던 남편과의 사별은 그녀를 사지에 내몰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녀는 암을 극복했을 뿐 아니라 남을 돕는 새로운 삶으로 재기했다. 그녀의 버팀목이 됐던 것은 바로 모든 일에 감사하는 '긍정적인 생각'. 다음은 국립암센터 정신건강클리닉 김종흔 박사와 유은승 임상심리 전문가가 권하는 '암과 행복하게 동행하는 10가지 지침'이다.

1.'잘 될거야'라며 긍정적 생각을 갖기

누구나 우울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우울감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곧 떨쳐 버리고 일어선다. 그 차이는 '생각'에 있다. 예컨대 의사가 치료제를 바꾼다 하면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다른 약도 효과가 없을 텐데”라며 절망한다. 반면 “이 약이 나랑 안 맞나 보네. 다른 약은 잘 듣겠지”라며 자신을 안심시키는 사람이 있다. 미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예측하는 환자들은 치료에 적극적이고, 결과도 좋다. 그렇다고 긍정적이 되려고 애쓰면 부담이 된다. 이제껏 어려움을 잘 헤쳐 왔듯 앞으로도 잘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사실만 잊지 않으면 된다.

2. 통증 잊고 몰입할 일 찾기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자주 하자.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게 빠져드는 일, 하면서도 즐거운 일이 있다면 그 일에 몰입하고 있다는 증거다. 무언가를 통해 즐거움·편안함·행복감을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은 암에 대한 생각과 걱정, 통증에 대한 민감함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3. 식사·운동·수면 … 규칙적 생활하기

암에 걸리면 평소처럼 일상생활을 하며 식사·운동·취침 시간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평소처럼 '적절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암 치료에 좋다는 식품이나 활동에 집중하기보다 식사·운동·수면을 적당하고, 적절히, 균형 있게 해야 한다. '과유불급'이 화를 부른다.

4. 언제 스트레스 받나 알아두기

자신이 어떨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예컨대 말수가 적어진다, 사람 만나기가 싫어진다, 부정적 생각이 꼬리를 문다, 가슴이 뛰거나 어깨가 결린다 등)를 평소에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 이 같은 스트레스 신호등에 적신호가 켜진 것을 빨리 알아차리고, 스트레스를 제때 풀어 줘야 한다.

5.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만들기

가장 좋은 것은 몸과 마음을 이완하는 것이다. 스트레스에 의해 누적된 긴장감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다. 평소 이완법을 배우고, 꾸준한 연습을 통해 나만의 무기로 만든다. 복식호흡·근육이완훈련·명상·태극권 등이 도움이 되며, 음악을 듣거나 정서적으로 위안이 되는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6. 말과 글로 감정 적극 표현하기

도움 요청하기, 감정 드러내기, 물어 보기, 주장하기, 부탁하기, 감사하기…. 가족이나 의료진과의 적극적인 의사소통은 암을 이겨 내도록 도와 주는 지지자를 얻는 것이다. 힘들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면 오히려 상대방과 거리를 갖게 되고, 자신을 고립시킨다.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면 글을 써 본다. 또 상대의 행동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 감사함을 느껴 보자. 주변 사람들이 더없이 고맙고 소중해질 것이다.

7. 환우 모임, 환자 교육에 꼭 가기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환우 모임이나, 환자를 위한 교육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의료진에게 들을 수 없는 암 투병과 관련한 실질적이고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공감대를 통해 정서적인 위안과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암과의 싸움에서 수많은 원군을 얻는 것이다.

8. 보람 느낄 만한 일 마음에 새기기

내 인생에서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암 투병 과정에서 한 번쯤은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았나'라는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이때 남은 인생에서 내가 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일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보람을 느끼는 일이 무엇인지를 다시 돌아본다. 인생에서 쓸데없이 자란 잔가지를 쳐 내는 것은 건강한 사람에게도 중요하다.

9. 마음 보듬어줄 전문가 찾아가기

“암환자인 것도 끔찍한데 정신과 환자까지 되기 싫다.” 이런 생각을 하는 암환자가 많다. 그러나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듯 마음이 아프면 정신과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 힘들고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 주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 현명하다.

10 어려움 이겨내 남에게 모범 되기

병들고 아픈 모습이 보잘것없이 느껴지거나, 남에게 폐가 된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생각은 잠시 접어 두자. 지금 고통과 두려움을 잘 이겨 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가족 또는 자녀에게 교훈이 된다. 폐가 된다며 자책하고, 괴로워하기보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웃음을 잃지 않으며, 작은 것에 감사하고 행복해하는 당신을 주변 사람은 가치 있고 소중하게 받아들인다.

정리=고종관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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