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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가 추천한 명의] 배상철 한양대 류머티스 병원장→나덕렬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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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09-08-19
명의가 추천한 명의] 배상철 한양대 류머티스 병원장→나덕렬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중앙일보 황세희.강정현] 100억 개에 달하는 뇌세포를 연구하는 일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 신비롭다.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뇌를 연구하는 뇌과학은 매력적인 고차원적 연구다. 하지만 정작 뇌 연구를 하겠다는 의사는 많지 않다. 21세기 현대의학도 뇌만큼은 모르는 게 훨씬 많다. 그래서 전문가들도 뇌 연구는 '뇌에 쥐나는 일'로 간주한다. 학생 때부터 뇌 연구에 일편단심인 의사가 있다.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나덕렬 교수다. 그는 뇌 연구를 통해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하나씩 설명될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

어릴 때부터 뇌에 관심이 깊었던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뇌덕렬'로 불렸다.

햇병아리 의사인 인턴 시절 그는 작은 지방 병원에 파견 나갔다. “주말에 밥보다 술을 좋아했던 50대 남성이 의식불명으로 동네 사람 등에 업혀 응급실로 왔어요. 환자를 찬찬히 진찰해 보니 책에서 본 '베르니케 뇌증'이 의심되더라고요. 비타민B1(Thiamine)이 부족한 알코올중독자에게서 나타나는 병인데 처음엔 근육이 마비되고 횡설수설하다가 얼마 안 가 혼수상태에 빠지죠. 다행히 부족한 비타민을 정맥 주사하면 놀랄 만큼 빨리 회복됩니다.”

실제 비타민 주사를 맞은 환자는 다음 날 의식이 돌아왔고, 3일 후엔 걷기 시작했다. 환자 상태는 좋아졌지만 나 교수 외의 의료진 모두가 그를 기피했다. 그는 담당 간호사를 통해 “그 환자는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나서 꺼리게 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즉시 그는 환자를 병실 샤워장으로 데려가 깨끗하게 목욕을 시켰고 그날 이후 환자는 간호사들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다.

몇 달 걸쳐 비디오 촬영 연구, 학계서 호평

1986년 신경과 전공의로 입문한 나 교수는 본격적인 뇌 공부를 시작했다. “알면 알수록 신기한 게 뇌 질환”이라는 그는 기자에게 이런저런 사례를 들어준다.

“오른쪽 뇌가 손상된 사람은 시계를 그릴 때 오른쪽 반만 그려요. 언어중추에 뇌졸중이 온 환자라도 말하는 부위가 손상되면 남의 말은 이해해도 정작 자신은 하고 싶은 말을 못하죠. 반면 이해를 담당하는 뇌 부위가 손상되면 본인은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만 남의 말은 전혀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는 전공의 1년차부터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행동 신경학에 관심을 집중했고, 결국 국내에선 이 분야 선구자가 됐다.

뇌의 신비를 알리기 위해 그는 이상 행동을 보이는 환자를 몇 달씩 비디오로 촬영해 학회에 발표함으로써 동료의 감탄을 자아냈다.

“좌우 뇌가 서로 협조하며 작용하려면 소통을 담당하는 뇌량(腦梁)이라는 부위가 건강해야 해요. 만일 이 부위가 병들면 좌우 뇌가 각각 딴 기능을 합니다. 예컨대 오른손으로는 라이터를 켜는데 왼손은 이 라이터를 뺏으려는 식이죠. 이런 상태는 아무리 교과서에서 봤더라도 환자의 동영상을 통해서만 가장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연구 분야가 무궁무진한 뇌를 연구하려면 국제적인 학술적 교류가 필수다. 이를 위해 그는 1993년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대학에서 실어증의 대가인 앤드루 커테즈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미국 의사면허 자격증이 있어 직접 환자 진료도 했던 나 교수는 다음 해엔 플로리다 주립대학의 케네스 헤일먼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오른쪽 뇌를 연구했다.

“행동 잘 보면 첫 만남서 진단 척 나오죠”

나 교수의 지도교수가 된 두 교수의 환자 진료 분야는 치매다. 나 교수 역시 귀국 후 자연스레 치매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가 됐다.

“환자의 행동을 잘 관찰하면 첫 대면에서 진단이 내려집니다. 예컨대 초기에 기억력을 담당하는 뇌가 파괴되는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는 인사도 잘하고 수치심도 느껴요. 기억력 검사에서 틀리면 얼굴도 붉히죠. 반면 앞쪽 뇌가 망가지는 전두엽 치매 환자는 진료실에 빵을 먹으면서 들어와 책상 위에 발을 올려놓는 식으로 수치심을 못 느끼고 충동적인 행동을 합니다.”

나 교수의 업적 중엔 한국형 실어증 진단 도구(1997년)와 한국형 치매진단 검사(2000년) 개발을 빼놓을 수 없다.

“문화가 달라서 언어 관련 진단 기준은 외국 것을 그대로 국내에 적용할 수가 없어요. 일례로 우리나라 사람은 대부분 '주판(abacus)'을 알지만 서양인은 고학력자만 알거든요.”

한국형 진단도구를 정착시키는 전제조건은 노인층의 평균적인 인지 기능 수준을 파악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나 교수는 몇 년에 걸쳐 연구원과 함께 노인정을 돌아다니며 노인들의 인지기능을 검사했다. 나 교수 연구 목적의 종착역은 양질의 환자 진료. 그래서 그는 실험실 연구보단 환자를 통한 임상연구를 주로 한다.

“환자는 병이 들면서 자존심을 잃기 쉽습니다. 특히 치매 환자와 보호자는 더 그래요. 좋은 의사란 환자를 질병 자체가 아닌, '질병에 걸린 귀한 존재'로 대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합니다.”

임상연구를 통해 환자를 좀 더 잘 파악하는 만큼 양질의 진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나덕렬 교수. 그 생각의 뿌리엔 환자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자리 잡고 있었다.

글=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사진=강정현 기자

나덕렬 교수는

1956년 출생

1982~1983년: 서울대 의대 졸업, 서울대병원 인턴

1986~1990년: 서울대병원 신경과 전공의 및 전임의

1991~1992년: 서울대병원 임상교수 요원

1993년: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대학 신경과 연수

1994년: 미국 플로리다대학 신경과 연수

1994년 12월~현재: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2005년 'Brain'에 실린 '초로기 치매와 노년기 치매의

대사장애 차이' 등 SCI 논문 98편 게재

배상철 교수는 이래서 추천했다

“연구팀 한 명 한 명 파악하고 운영하더라고요”


“3년 전, 보건복지부에서 주관하는 임상연구 과제 심사위원으로 위촉받아 나덕렬 교수가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는 치매 임상연구를 심사한 적이 있어요. 그때 나 교수가 연구원 한 명, 한 명의 연구 업적을 파악하고, 적절한 연구 과제를 할당하는 설명을 들으면서 '저렇게 조직적이고, 효율적으로 연구팀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구나'라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전공 분야가 전혀 달라 그전에는 대면한 적이 없었거든요. 그날 이후 주변 평가를 들어 보니 한결같이 '환자를 무한한 성실성과 진지함으로 진료하는 의사'로 알려져 있더라고요. 사실 그래서가 아니라 저도 의료계에 발을 담근 지 30년은 됐잖아요? 굳이 주변 평가가 아니더라도 연구팀을 그 정도 잘 운영하는 분이라면 진료실에서 환자를 어떻게 대할지 짐작이 가지요.”

배상철(사진) 교수의 머릿속에 나 교수가 명의로 각인된 계기다.

이후 배 교수도 보건복지가족부가 주관하는 류머티스 임상연구 책임연구원으로 발탁돼 나 교수와 간혹 개인적으로 대면할 일이 생겼다. “처음 만날 때나 3년이 지난 지금이나, 또 회의장에서건 차 한 잔 마실 때건, 나 교수의 환자와 임상 연구에 대한 열정과 진지함은 그의 잔잔한 미소처럼 한결같아요. 아마 그의 모습만 봐도 환자들은 큰 위로를 얻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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