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도 새벽에 갑자기 지수 씨 이름을 부르며 "고양이를 갖다 버리라"는 말을 반복하더니 금방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꿈을 꾸면서 말을 하거나 욕을 하는 것은 양반이다. 언니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앉아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누울 때면 정씨는 등골이 오싹해져 잠을 설치기 일쑤다.
병이라고 하기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 같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심한 잠버릇. '피곤해서…'라고 넘기기에는 가족에게 공포감을 주는 수위가 높다. 본인도 힘들다.
꿈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렘(REM)수면 행동장애'가 있으면 자신이나 배우자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히기도 해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 잠을 자는 동안 일어나는 각종 '수면장애', 그 정체는 무엇일까.
수면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렘수면기와 비-렘수면기가 있다. 대개 우리가 꿈을 꾸는 단계가 렘수면기다. 보통 잠든 지 80~100분 후 나타난다. 무언가를 보는 것처럼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인다(Rapid Eye Movement)'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악몽'은 렘수면일 때 발생되므로 새벽에 많이 나타난다. 성인 남녀의 약 50%가 경험할 정도로 빈도수가 잦다. 쉽게 깨어나고 꿈 내용을 생생히 기억한다. 반면 '잠꼬대'는 수면의 모든 단계에서 나타날 수 있다. 의미 없는 신음소리에서 중얼거림, 대화나 명령까지 다양하다. 악몽과 잠꼬대는 심리적 스트레스가 주원인으로 꼽힌다. 그 자체가 건강을 해치는 것은 아니지만 반복되고 심하다면 그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얘기다. 상담치료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도록 돕거나 진정제 또는 수면제 등을 이용한 약물치료를 할 수 있다.
흔히 귀신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가위눌림. 정확한 명칭은 '수면마비'다. 주로 잠들거나 깨려고 할 때 또는 '렘수면'의 시작 단계에서 발생한다. 목소리를 내거나 움직일 수 없고, 무거운 물체가 가슴에 앉아 있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에 심한 불안과 공포에 빠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뇌와 몸 근육의 엇박자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이며 누구나 자라면서 한 번쯤 겪을 수 있다. 뇌파는 먼저 깨어나 이미 각성 상태로 돌아왔는데 근육은 아직 완전히 깨지 않고 마비된 상태로 남아 있어 생긴다. 걷다가 갑자기 다리가 엇박자로 꼬여 휘청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큰 문제가 없다.
수면마비는 수면 질이 떨어지거나 수면이 부족할 때, 꿈을 꾸는 렘수면 상태에서 깰 때 흔히 발생한다. 스트레스나 야근 등으로 수면이 불규칙해도 잘 나타난다. 청각적, 시각적 혹은 감각적 환각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10대에서 흔하고 20대 중반 이후에는 드물다. 가위눌림이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다른 수면장애 질환이나 잘못된 수면습관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수면마비 자체는 괜찮지만 이로 인해 '자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면 치료해야 한다. 인지행동 치료와 같은 교정치료나 렘수면 억제 약물로 치료할 수 있다.
가장 위험한 수면장애는 '렘 행동장애'다. 꿈꾸는 내용을 행동으로 옮기는 명백한 '병'이다. 꿈꾸는 사람은 뇌파가 깨어 있고 근육은 풀리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렘수면 행동장애가 있는 사람은 뇌에서 근육을 담당하는 스위치(뇌간의 세로토닌 등 구조물)가 망가져 근육이 덜 풀린다. 약물 복용이나 퇴행성 질환, 외상, 뇌혈관 질환에 의해서도 발생한다. 달아나는 꿈을 꾸다가 벽에 부딪혀 코뼈가 부러지기도 하고, 싸우는 꿈 때문에 부인을 때려 부상을 입히기도 한다. 실제로 서울대학병원에서 렘수면 행동장애 치료를 받았던 한 고등학생은 번지점프하는 꿈을 실행에 옮겨 아파트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근육을 이완시키는 약물로 치료하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공포스럽고 때로는 위험한 각종 수면장애를 치료하는 첫 단추는 '정확한 진단'이다. 수면장애를 간질로 오인해 경련성 질환 치료를 받는 사례도 많다. 또 보통 수면장애는 두세 가지가 동시에 나타나는데 정확한 진단 없이 치료해 문제가 될 수 있다. 가령 수면 무호흡증이 있는 사람이 악몽을 없애려고 진정제를 쓰면 무호흡증이 더욱 심해질 수 있는 것. 따라서 문진을 한 뒤 필요하다면 '수면다원검사'를 받아 다양한 수면 패턴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수면다원검사는 하룻밤을 검사실에서 자면서 이뤄진다. 뇌파와 안구 운동, 심전도, 호흡, 코골이 등 수면에 영향을 주는 모든 현상을 관찰하고 측정ㆍ판독하는 검사다. 센서를 얼굴과 머리, 다리 등 신체 곳곳에 붙이고 잠들게 된다. 센서를 붙이는 데 30분, 떼는 데 15분 정도 걸린다. 수면을 취하는 8시간 동안 의료진이 대기하며 환자의 모습을 녹화ㆍ녹음하고 결과는 일주일 후 나온다.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대학병원 수면장애센터에서 받을 수 있다. 검사비용은 60만~80만원 선.
※도움말=정도언 서울대병원 수면의학센터 소장, 김주한 한양대병원 신경과 교수
[MK헬스 = 김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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