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황세희]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건강보험 수가는 의사들의 '필수 진료 기피, 비보험 진료 분야의 기형적 확대'란 대한민국 특유의 의료 문화를 양산했다.
30분짜리 쌍꺼풀 수술 비용이 10시간 이상 고난도 시술인 손가락 절단 수술비보다 비싸고, 콧속 기형 수술비가 콧대 높이는 미용 시술비의 5분의 1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자연히 의대 졸업생은 필수 진료과(내과·외과·소아과·산부인과 등)를 기피한다. 생사를 오가는 환자를 밤샘 치료해도 수입이 적은 것은 물론 유명 대학병원 교수로 봉직해도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20년 가까이 명문 의대 필수 진료과 교수로 재직하다 끝내 개업 의사의 길을 택한 A씨의 하소연을 들어보자.
“평생의 꿈이던 의대 교수가 돼 제자를 육성하고 치료 결과를 발표하면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학과장이 되자 상황이 달라졌어요. 매달 지난달 진료과별 경영 결과를 공개하는 병원장 주재 진료과장 회의에 참석해야 했거든요. 현행 의료제도에선 우리 과는 아무리 환자를 열심히, 많이 진료해도 병원 경영에 보탬이 안 돼요. 그런데도 매번 원장님으로부터 '○○과도 분발해 보세요'란 말을 들어야 하는 상황은 고문이었습니다.”
이런 문제점이 가장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분야는 중환자실 치료다.
생명이 촌각에 달린 중환자는 의료진의 적극적인 집중 치료를 받아야 한다. 조금의 실수나 방심도 사망으로 직결될 수 있기에 고도의 전문성도 필요하다. 하지만 전문성을 갖춘 의료진이 제대로 치료하려면 병원은 만성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 실제 초일류 병원 중환자실은 한 병상을 유지하기 위해 1년에 5000만~8000만원의 적자를 감수한다. 운영할수록 손해인 것이다. 그래도 운영하는 이유는 중환자는 언제라도 발생하는 데다 병원의 명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상황이 열악한 만큼 문제는 상존한다. 일례로 중환자실에 꼭 필요한 '중환자실 전문의'조차 없는 병원이 태반이다. 실제 의료법 시행규칙 제28조도 신생아 중환자실을 제외한 성인 중환자실 등에는 '전담 전문의를 둘 수 있다'고 표시돼 있다. 없어도 무방하다는 뜻이다.
그 결과 국내 중환자실 입원 환자의 입원 중 사망률은 11.9%, 퇴원 1개월 이내 누적 사망률은 44.9%나 된다. '가격 대비 품질' 면에서 세계 최고로 자랑하고 미래의 신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대한민국 의료의 부끄러운 단면이다(물론 교과서적인 중환자실 운영으로 매년 수십억원의 적자를 내는 초일류 병원 중엔 사망률이 5% 미만인 곳도 있다).
우리는 누구나 중환자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정책 입안자는 중환자 관련 의료비 지출에 대해 획기적인 제도적 지원과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나와 내 가족이 중환자실 환자가 됐을 때 안심하고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기 위해서다.
현재 우리나라의 GDP 대비 의료비 지출은 6.8%로 미국(15% 이상), 프랑스(11%), 독일(10.6%), 스위스(10.9%) 등의 선진국은 물론 OECD 평균치인 8.9%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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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 중병’ 걸린 중환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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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09-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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