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사항
정은기원장님 병원현대화 관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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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08-06-13
“병원 이전 요구는 시대에 반하는 경제논리”
[국립서울병원 정은기 병원장 인터뷰]
“행정소송? 언론에서 잘못 적은 것 같은데요.”
국립서울병원 정은기(56) 원장은 오히려 기자에게 반문했다. 1962년 개원한 이 병원이 건물 노후화로 재건축 의사를 내비치자 병원이 위치한 중곡동 지역 주민 일부가 이전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지역 발전을 막는다는 이유였다. 재건축을 위해서는 광진구청장의 승인이 필요한데 구청측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최근 모 월간지가 ‘병원측이 구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낸 상태’라고 기사화했는데, 이를 염두에 둔 기자의 질문에 오히려 정 원장이 ‘정정 보도’를 하는 셈이다.
“행정소송은 안했어요. 국가기관끼리는 허가가 아니라 협의로 일을 추진합니다. 지자체와 협의가 안 되면 그땐 (소송이) 불가피하겠지요.” 정 원장은 그러나 “지자체와 협의해서 소송 없이 잘 추진하려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국립서울병원은 이미 1989년 재건축 논의에 들어간 바 있다.
“당시 WHO(세계보건기구) 동남아 지부나 관련 국제기구 임원들이 병원을 방문하면 국가 위상에 걸맞지 않게 낡아서 좀 부끄럽더군요. 건물이 낡아 열 손실도 심했고 쿨러(냉각기)가 안 돌아 난방이 잘 안 돼 입원 환자들의 건강에도 좋지 않았어요.”
병원측은 1995년 한때 입장을 선회해 병원을 이전하려 했다. 그러나 4~5만 평 부지를 기준으로 수도권 지역을 물색했지만 모두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환자의 접근성이 어려운데다가 산골짜기 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일부 지자체는 자기 지역으로 병원이 들어오는 데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명했다. 당시 국립서울병원 의사로 있던 그의 기분은 어땠을까?
“섭섭했죠. 혐오시설로 인식되는 자체가 스티그마(낙인)니까요. 편견으로 낙인찍히는 데 대한 서운함.”
2003년, 병원측은 재건축으로 다시 돌아섰다. 환자와 그 가족의 접근성. 그리고 격리와 수용 대신 지역 사회와 공존하는 세계적 정신의료 추세를 반영한 선택이었다.
일부 지역 주민은 병원이 지역 뉴타운 건설을 가로막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지자체 대표들도 주민 편에 가세했다. ‘병원 때문에 땅값이 수십 년 전 그대로다.’ ‘병원 때문에 지역 이미지가 부정적’이라는 목소리가 그렇게 흘러나왔다.
2007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지역 주민의 38.7%가 국립서울병원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사회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정신과 전문병원’이라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국립서울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들은 퇴원 후에도 외래를 통해 약을 타가는 만성질환자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교통이 불편한 먼 거리까지 외래를 다녀야 할 정도로 이전 요구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공적 논리’와 ‘경제적 논리’가 상충할 경우 의료 선진국은 어떻게 이를 해결하는 지 물었다.
“의료 선진국에서는 지역 발전이라는 경제적 논리로 (병원) 이전이 합리화되지는 않아요. 미국 맨하탄 중심가의 뉴욕 대학 옆에 정신병원이 있어도 지역 개발을 이유로 이전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정 원장의 답변에 이어 자리에 배석했던 양춘석 기획홍보 팀장이 답변을 보충했다.
“한국사회의 특수한 현상 같습니다. 선진국은 땅값으로 졸부가 되는 게 아니니까 개발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공존하는 방향을 찾죠. 한국 사회처럼 병원이 나쁜 시설로 인식돼 집값이 폭락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아요.”
그렇다면 갈등이 불거진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양 팀장이 말했다. “이 지역 오피니언 리더(여론주도층)들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이슈화된 거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일반 주민들의 관심은 약한 편이죠.”
병원측은 재건축이 진행되면 기존 병원 부지 1만4천여 평 중 5천 평을 할애해 지역 사회를 위한 문화·체육 시설을 조성할 방침이다. 이 부지 제공은 소송에 들어갈 경우 판결에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고 양 팀장이 전했다. 타협안일까?
“타협이자 절충입니다.” 정 원장의 말이다. “지역에 그냥 주는 게 아니고 문화·체육 시설을 건립해 지역민과 환우들의 공동생활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니까요. 광진구청에서 협력을 해줘야 하는데”
광진구청측은 그러나 아직까지 재건축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병원에서 ‘병원 현대화 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했어요. 광진구청까지 포괄한다는 취지로 구청측이 위촉하는 위원을 선정하려 했어요. 2월에 공문을 보냈는데 구청 답변이 이래요. ‘병원 이전이 목표기 때문에 재건축에 협조할 수 없다’가 전부였습니다.”
구청측의 우이독경(牛耳讀經)에 섭섭하지 않았을까?
“그렇죠.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 하는데 답을 안주니까.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지만.”
지자체의 맹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주민의 님비 현상이 강해지면 다음 선거를 생각해야 하는 지자체 의원, 단체장들로서는 지역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 원장 전임 당시에도 구청측과 협조 체계를 구축하려고 노력을 했다. 그러나
“(구청측에) 면담을 요청해도 협조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연락하겠다고 해놓고 연락도 없고. 만나도 입장이 갈려 있어서.”
병원측은 그러나 4월 기본설계안이 나오면 토론회를 거쳐 늦어도 내년 하반기에 착공한다는 방침이다.
재건축이 되면 기존 960병상이 700병상으로 줄어든다. 사설 병원들이 대형화되는 추세에 견줘 볼 때 병상 수의 축소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지금은 여유 병상이 전국적으로 많이 남는 게 현실입니다. 지역보건센터를 중심으로 지역 사회의 관심을 늘이고 줄어드는 병상은 타 기능으로 전환할 계획입니다. 재원일수(입원일수)가 줄어드는 것도 세계적 추세입니다.”
정 원장에 따르면 현재 있는 결핵 병동처럼 신체적 질환이나 전염성 질환, 노인·소아병동 등으로 병원을 특화시킬 방침이다.
재건축이 시작되면 기존 병동의 환우들은 다른 병동으로 이동하게 된다. 정 원장은 건축 도면을 꺼내 하나하나 설명했다.
“신관 병동(이곳에는 노인, 여성 병동이 있다)을 우선 리모델링하는데 이때 노인과 여성 환자들은 (앞 건물인) 본관으로 옮길 예정입니다. 병동이 모자라면 가건물도 지을 겁니다.”
환자를 임의로 퇴원시키지는 않겠군요? 기자의 질문에 정 원장은 “환자가 재건축 때문에 외래로 돌려지는 경우는 없다”고 덧붙였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의 이야기다. 장관 부임 초기에 중곡동 지역에서 자주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병원 이전이 주요 화제였다. 당시 유 장관은 지역 대표측 말만 듣고 ‘병원 직원들이 자기들 이사 가기 싫어서 병원 재건축하려 한다’고 오해했다. 그러나 병원을 방문한 이후, 유 장관은 지역 국회의원과 관련 대표들에게 오히려 재건축에 협조하도록 설득했다고 한다. 양 팀장의 전언이다.
사실 중곡동 지역 주민과 병원, 환우와 환우가족 등 이해 당사자들 외에는 사회가 이 같은 문제에 무관심한 게 현실이다. 한국사회에서 정신병원은 여전히 ‘혐오시설’로 인식된다. 정 원장은 이에 대해 “(정신병원은) 법제상 ‘구금 시설’로 분류됩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이 문제를 제기했는데 입원실을 따로 보유하고 있으면 구금시설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개념을 바꾸려 해도 단기간에 어렵겠지요. 마뜩찮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죠.”
지난 해 9월 7일, 이 지역 병원이전대책위원회 소속 주민 300여명이 정문 앞에서 이 ‘혐오시설’의 이전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후 지역 언론이 환자의 요양을 무시한 시위대의 태도를 지적하는 기사를 실은 바 있다. 대책위 내에서도 이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고 한다. 대책위로부터 공식적인 유감 표명은 있었습니까?
“없었죠. 대책위 관계자들과 만나도 재건축 얘기만 나오면 적대적으로 돌변할 정도니까” 이 평온한 얼굴의 노신사 정 원장이 웃었다. 박종언 기자
- 뷰티풀마인드 [서울정신가족협회보 04월호] 인터뷰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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